감사하는 자의 신앙고백(대상29:10-17) 2012.7.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2-07-02 |
조회: 1413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현대에 의학이 이젠 멀지 않아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준에 까지 이른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염려는 끊임없이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질병이 발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것만은 걸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알츠하이머병 이라고 알려진 치매입니다. 나이가 들면 뇌기능이 점점 퇴화하여 기억과 사고에 이상이 생기는 병입니다. 성도님들 가운데도 벌써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치매를 염려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치매에 관한 책을 보니 이 병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누구나 올 수 있답니다. 치매의 단계별 증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초기 단계는, 화장실을 가는데 남녀 화장실을 혼동한다고 합니다. 중간 단계는, 주중인데도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야, 오늘 주말 날씨 좋네!”라고 합니다. 또 골프를 치고 돌아와서는 자기 부인에게 “언니”라고 부른답니다. 캐디 언니를 부르다가 자기 부인을 보고서 혼동합니다. 말기 단계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서 헤어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로션을 머리에 바릅답니다. 그리고 화장품 가운데 ‘두발용’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두 발에다 바릅니다. 두발용은 머리에 바르는 것이 두 발에다 바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되고,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다 상실하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항상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 욕심에 빠져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의 3대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을 계승한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16장에 보면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곧 유월절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다윗의 감사기도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성막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하면서 피를 흘렸기에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짓도록 부탁하고 온 정성을 다해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금이 3천 달란트이고, 은이 7천 달란트입니다. 금 3천 달란트는 102톤입니다. 은 7천 달란트는 240톤입니다. 엄청난 액수의 예물을 성전건축을 위해 드렸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봉헌에 백성들도 감동받아 함께 예물을 드립니다. 7절에 보면 금 5천 달란트와 금 1만 다릭입니다. 1다릭은 130g에 해당되는 것으로 금 1만 다릭은 1300kg, 13톤에 해당합니다. 은 1만 달란트, 놋 1만 달란트와 철 10만 달란트, 그리고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드립니다. 다윗은 온 백성들이 성심을 다하여 하나님 성전건축을 위해 예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재물이 많다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드리지 못합니다. 다윗과 온 백성들이 넘치도록 예물을 드린 것은 하나님의 성전건축에 대한 열망과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감사기도를 통해 어떤 신앙의 고백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감사드리는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에 대하여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1-12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보세요. 그의 생애 역시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일개 목동인 자신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엄청난 쾌거를 누립니다. 한때는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 자리까지 있었지만, 왕의 시기와 미움 속에서 그 그늘 속에서 젊은 청춘을 다 보내야 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황금 같은 시절을 쫓기는 자로 광야에서 도망을 다니는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시102:6-7에 보시면 ?나는 광야의 당아 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삼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광야의 당아 새, 황량한 곳의 부엉이, 밤새도록 외롭게 앉아 떨고있는 지붕 위에 참새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그 감정은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고독하고 처절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그는 어린 소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입니다.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싸움터에서 그가 세운 전공으로 모든 이스라엘 앞에서 추앙을 받던 영웅이었습니다. 너무 특출해 버리니까 왕으로부터 질투를 받아서 이제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연단하기 위해서 주신 한 때의 괴로움이었는데 그 한 때라는 것이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그런 자신이었지만, 지금 왕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절대 다윗 자신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이것은 다윗의 최고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둘째, 감사드리는 자는 받은 은혜에 보답이라는 자세로 감사 드려야 합니다. 1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여기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는 받을 자격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큰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자격도 없는데 큰 물질을 주셨습니다. 자격도 없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고백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가운데 역대상 29장 14절, 오늘 본문 중에 있는 이 말씀을 가지고 만들어진 찬송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70장입니다.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서 곡조를 따온 찬송입니다. 열어 보세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바치나이다", 찬송가들 가운데 가사가 아주 짧은 찬송이지요. 그러나 깊고 강렬한 고백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그 앞의 69 장입니다. 1절 가사를 보세요. "나 가진 모든 것",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다 주의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2절 가사를 보세요. "풍성한 은혜를 주 내게 주시니 그 축복하심 감사해"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첫 열매 드리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찬송가 자가를 작사한 하우(How) 주교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 속에 묻혀 살면서 목회를 한 분입니다. 그 자신도 가난하게 살면서 이와 같은 감사 찬송을 지었습니다.
지금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며 감사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 이 맥추절은 농사를 지어서 추수한 많은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고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풍성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을 회상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절기였습니다. 이것이 칠칠절, 맥추절입니다. 단 하루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 하나 하나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마시는 물 한 방울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습니다. 나 같은 것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일용할 양식을 때를 따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동안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아서 저 논밭이나 저수지에 땅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그 통증이 우리 마음에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맥추 감사 주일에 온 땅에 비가 흡족히 내리니 어떻게 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 북녘 땅엔 올해 가물어서 황해남도에 2만 여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 하루에 굶어 죽는 사람이 세계에서 3만 명이 넘는 다고 합니다. 3초에 한 명 꼴이요, 1년이면 1000만 명이 되는 숫자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내리는 비는 정말 글자 그대로 축복의 비요. 은혜의 비요. 사랑의 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냥 좋아 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다윗처럼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혹시 내 것을 드린다는 교만함이 우리 가운데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 가운데 물질을 마치 내것인냥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것도 자신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생색을 내듯 헌금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구별해 드린다는 겸손함의 신앙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감사절이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감사드리는 자는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드리는 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릴 때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마음으로 즐겁게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드리려면 손이 떨리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정직하게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려다 즉석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직하게 모두 드리려니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절반을 숨겼습니다. 그러면서 전부를 바치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힘들어도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29장을 보시면 특이한 표현이 나옵니다. '드렸노니, 드리되, 드리고, 드림으로, 드렸을 뿐, 드렸사오며' 여섯번 드린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분, 롬6:12-13절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의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러분! 나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항복하고 바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나를 다스리고 통치하실 때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실 때 비로소 주께서 약속하신 빛나고 거룩한 삶의 승리를 오늘 여기서도 체험할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삶을 사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몸을 드리십시오. 우리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의의병기’로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병기라는 단어는 영어의 웨폰이 아니라 도구라는 뜻의 인스트르먼트입니다. 인스트르먼트라는 단어는 ‘악기’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에 피아노가 있습니다. 이 피아노를 제가 연주한다면 바이엘 10번 정도 그것도 서툴게 연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본 교회 성가대 반주자가 연주 하면 동일한 피아노이지만 소리가 달라집니다. 원리는 이와 같습니다. 내 인생, 내 삶을 누가 잡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붙잡고 사용하시면 내 인생은 걸작의 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세상의 학문이, 재물이나 인기가 내 인생을 붙잡고 연주하면 내 인생의 소리는 그것밖에 안 될 것입니다. 누가 나를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께서 자기를 써 주심을 날마다 감사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주여! 어찌하여 나를 초지에서 불러내어 이처럼 존귀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나이까” 푸른 초장에서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을 하나님이 붙잡고 연주하니까 그의 생이 달라졌습니다. 이 드림의 즐거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모 일간신문에 이지선 씨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십년 전 이화 여자 대학교 4학년 때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오다가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의 상황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 현재는 미국에 유학을 가서 UCLA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홀랑 타버린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인기 있는 연애인도, 스포츠인도 아니지만 이 시대에 ‘희망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희망 전도사’로 부릅니다. 30번이 넘는 피부 이식 수술의 고통을 이기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 병원을 세우는 프르메 재단 홍보대사로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이나 완주했습니다. 이지선 씨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삶으로, 오늘이 아닌 내일을 향해 앞으로 계속 달려가게 하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의 삶이라고 고백합니다. 처음 화상을 입고 고통 속에서 죽고 싶었을 때 곁에 있던 엄마가 한 가지씩 감사거리를 찾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때부터 원망 불평이 아닌 감사거리를 하나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간 날, 내 손가락으로 환자복 단춧구멍 하나를 채우게 된 날,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겨우 닿아 오빠를 '오까'라고 부르게 된 날 등등 '감사 찾기'를 했더니 진통제가 결코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보물들을 얻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절망이 얼마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는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년의 시간이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별것 아닌 일들에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서 하나씩 감사할 때마다 신기한 힘이 마음에서부터 퐁퐁 솟아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동성 교회 여러분!
오늘 어떤 마음으로 맥추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직도 내 인생의 주권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셨습니까? 아직도 내 것을 드리는 것처럼 인색하거나 교만하지는 않습니까? 정직함으로 자원함으로 드리지 못하고, 억지로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다윗처럼 바른 신앙의 고백으로 올려드리는 맥추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가 생활화될 때 우리는 고난이 바로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됩니다. 오늘의 역경을 뚫고 내일을 향해 도전하고 달려가게 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감사로 드리는 신앙고백이 회복되어 감사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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