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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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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라와 헵시바(사62:1-4) 2012.10.2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2-10-21 | 조회: 1787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듣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닥’이란 용어입니다. 전 세계 경기가 침체를 겪으면서 바닥이란 단어가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립니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주식의 바닥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집값 하락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등’ 주로 경제와 관련해서 바닥이란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생활고를 표현할 때 ‘밑바닥 인생’ 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아무튼 ‘바닥’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이 정말 가장 힘들고 어려운 바닥상태라면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본문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백성들에게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장엄한 내용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제국이 쳐들어와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주전 586년경에 느부갓네살 2세가 이끄는 바벨론 제국은 예루살렘 성을 초토화시키고 왕을 비롯한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상상도 할 수없는 현실이 그들의 눈에 펼쳐진 것입니다. 70년 만에 고국으로 갈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3번에 걸쳐서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천신만고 끝에 자신들이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으로 왔지만, 기쁨도 잠시입니다. 고향 땅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예루살렘 도성은 잿더미가 되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의 제사를 드렸던 예루살렘 성전은 형편없이 허물어져버렸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마음대로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 눈앞에 비쳐진 현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가족들이 살던 옛 집 옛 동네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기뻤겠지만 현실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건물들은 다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먹을 것 입을 것 마져 여의치 않을 때 그 좌절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에 왔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무너지고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통이 그들을 덮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4절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하며 네 땅을 ??라라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것임이라”여기 '헵시바'(Hephzibah)는 히브리어로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라는 뜻입니다. 즉각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감탄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라'(Beulah)는 히브리말로 '결혼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헵시바는 신랑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신부, 즉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라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든든한 보호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축복받은 상태의 땅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헵시바는 사랑받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라는 그 사랑받는 사람이 사는 축복받은 땅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한 가닥 기대와 희망을 안고 고국에 돌아온 저들의 눈앞에 비쳐진 언약의 땅은 버려진 땅처럼 보였지만, 이제 이 말씀을 붙잡고 선, 저들은 더 이상 패배자도 실패자도 아닙니다. 지금은 비록 어려움이 있지만, 약속에 있어 신실하신 주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시고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고백의 말씀을 들을 때 놀라움과 감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시8: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기뻐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사랑하시나이까?" 그렇다면 이 은혜 앞에 선 우리가 가져야 할 일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첫째로, 나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라와 헵시바, 축복의 땅에 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줄 아십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의인이 된 거예요. 의인, 여러분 의인이예요 아니예요? 자신 없어요? 의인이예요 아니예요? 이거 대답 제대로 못하면 큰일나요. 의인이라는 개념이나 성도라는 개념이나 꼭 마찬가지예요. 우리 예수를 믿는 순간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느냐와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것이고 성도가 된 것 이예요.



이것은 새로운 신분이고 새로운 위치예요. 새로운 신분이고 위치,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이제부터 어떤 의식이 필요해요 ‘나는 의인이다, 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이젠 신분에 걸맞는 수준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으나 전혀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신분의 변화가 있지만, 거기에 걸맞는 수준이 안되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날 성도로서 살아 갈 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항상 감격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나 한 사람의 영향력이 세상에 미칠 엄청난 파장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 하나의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찌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그 가치를 안다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십시오. '광해'는 정치와 무관한 만담꾼 하선이 예기치 않게 왕(광해군) 역할을 하면서 겪는 일들을 담았습니다. 영화는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광대인 하선이가 왕대신 궁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다가 대동법을 시행한다든지, 그리고 “하선이 사대외교를 주장하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런 당당한 모습을 본 허균이 오히려 왕보다 더 분명한 모습으로 백성을 위하는 정치의 결단을 보고 허균이 무릎을 꿇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오늘 날 왜 기독교인이 이토록 무기력한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로서 왕답지 못하니까 마귀의 조롱거리가 되고 세상 앞에 힘 한번 제대로 못쓰는 초라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통하여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헵시바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동성 교회는 하나님의 ?라, 축복받은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에 사는 헵시바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야 말 것입니다.



두 번째는 행복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미녀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한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돈이 많습니다.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펜 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정말 이유없이 불행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인기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 가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 너는 버리운 자가 아니다. 너는 축복의 땅의 주인공이다. 멋지지 않습니까? 근사하지 않습니까? 이번 11/11일에 하는 ?라와 헵시바는 그런 면에서 우리가 당당해져야 합니다. 지난 주 저녁에 기관 찬양 예배 때 어느 전도 기관이 부른 찬양을 듣고, 잠시 제가 휘청거렸습니다. 그래도 광진구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데 저렇게 불러서 되겠는가!! 갑자기 식은 땀이 쫘 흐르더라구요!! 그러나 생각난게 있습니다. 거기 나오신 분들, 얼굴 표정입니다. 비록 소리는 제 가기고, 자신의 처지도 모른 채 곡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좀 못부르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손에 공연 티켓이 나갑니다. 주를 위해 여러분의 지갑을 엽시다. 그리고 태신자들에게 주시고, 또 가족에게 당당합시다. 부인이 그 영광스러운 예술의 전당, 광진 나루 아트에 오는데 남편, 자녀들 다 초대 합시다. 이번에 우리는 이 수익으로 캄보디아에 에이즈로 고생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 티켓 수익금이 쓰여 질 것입니다. 처음엔 이런 생각을 못했는데 한번은 서점엘 갔다가 책 한권을 사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한다면 지갑을 찢어라’라는 김동호 목사님이 쓴 책입니다. 책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 궁금했는데 그 책의 제목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자기 교회 청년들이 아프리카의 말라위에 들어가서 단기선교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스텝 한 명이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들어왔는데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자기가 정성스럽게 돌보던 아이가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했습니다. 그 모습을 김 목사님이 보고 페이스 북에 그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라고 댓글을 달더랍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무리 가슴이 찢어지면 뭐하냐. 그렇다고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페이스 북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릴 위해 몸을 찢으셨다. 그분의 찢기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고 구원을 얻었다. 이제 신음하는 세상을 위해 우리 가슴을 찢자. 가슴만 찢지 말고, 우리 지갑도 찢자!” 그래서 ‘가슴만 찢지 말고, 지갑을 찢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마침 10달러짜리 모기장을 사서 보내주면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모기장을 사서 전해주자’고 일명 모기장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은행 송금계좌를 페이스 북에 올렸더니 일주일 만에 5천만 원, 한 달 후 무려 7천 5백만 원이라는 돈이 모였습니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생명의 모기장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다 찢기셨습니다. 로마의 군병이 내리치는 채찍에는 날카로운 뼈와 쇠 조각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채찍으로 내리칠 때마다 온몸의 살을 찢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찢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찢어야 할 것인가? 그러다가 월드비전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프레아 비헤아르 지역이 오랫동안 내전으로 인해 식량 부족과 에이즈가 창궐함으로 아이들도 이 에이즈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을 가지고 그들을 섬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취지를 알고 유명한 찬양팀이 와서 우정 출연도 합니다. 이번 11/11일에 하는 기관 찬양제는 우리의 가진 행복을 다른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우리가 왜 행복해야 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라와 헵시바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자, 라고 끝없이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버림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헵시바입니다. 신랑 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이는 내 기뻐하는 여인이라고 불러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저주받은 황무지가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가 사는 땅을 버림받은 땅 황무지라고 끝없이 속삭이지만, 아닙니다. ?라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성지, ?라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라에 사는 헵시바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동성 교회에서 하는 축제가 몇몇 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가을에 비옥한 땅에 또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울며 씨를 뿌리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일 새벽부터 11/4일 터치 153 새 생명 축제까지 두 주간 “흘러넘치게 하라”는 주제로 새벽 특새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개인 기도는 물론이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앞서서 함께 기도하는 일은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5분만 숨을 쉬지 않으면 뇌사상태에 빠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한 기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는지 조사했습니다. 성도는 5-10분 정도, 중직들은 15분 정도 기도한답니다. 그러면 목사는 얼마나 기도할까요? 평균 30분 정도 기도한답니다. 이 통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한국교회의 자랑은 뜨거운 기도의 영성입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새벽기도와 산 기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기도의 열기가 식어졌습니다. 대부분의 기도 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산 속에서 나무를 붙들고 밤을 새워 기도하던 기도의 야성이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고등학교 때에 전도사님과 함께 산 기도를 갔습니다. 한 사람씩 소나무 앞에 앉혀 놓고 데리러 올 때까지 기도하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얼마나 무서웠던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주여 소리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려고 주여를 부른게 아니라 무서우니까 주여를 외친 거예요. 그런데 그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날 밤 많은 학생들이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도가 점점 줄어듭니다. 기도의 목소리도 작아집니다. 기도를 크게 하면 무식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귀 먹었냐 왜 그렇게 요란 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시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정말 힘들고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소리 질러야 합니다. 나를 도와 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체면 따집니까? 점잖게 살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조용하게 체면을 따지면서 시간이 있으시면 저를 좀 구해주실래요? 이렇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죽을힘을 다해 외쳐야 합니다.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은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하늘의 영광과 능력을 체험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정말 기도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새벽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마음의 스크린에 영상으로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대속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사랑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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