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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인생(요4:5-10) 터치153 새생명축제2012.11.4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2-11-05 | 조회: 1671
오늘 저희 교회 터치 153 새 생명 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참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걸음이 인생의 강장 값진 걸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드립니다. 참 아름답게 하시는데 저도 한 곡 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의 곡목은 바로 ‘만남’입니다.<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나 슬픈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흘리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가사를 불러 드리지만 이미 여러분 머릿속에서 곡조를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노사연씨의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노래를 듣다보면 첫사랑의 기억, 지금은 달라진 고향의 그 언덕, 어릴 때 뛰놀던 친구들, 그들과의 아름다웠던 사귐 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우리로 하여금 아련한 옛 추억으로 데려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인생은 만남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숱한 만남을 갖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만남을 가질 때,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남이 잘못되었을 때 마음의 상처나 아픔들이 쉽게 치유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떤 만남을 가져 오셨습니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예전에 꿈꾸고 반드시 그렇게 살겠노라 했던 소망하는 자리에 와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닌데 지금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잘못된 만남의 아픔을 갖고 계시지는 않습니까?지금 함께 대하는 본문의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인생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안타까움이 수가성 여인 속에 있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무려 다섯 번이나 바꾸어 버렸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여인을 보고 능력 있는 여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한테 다섯 번이나 바뀌는 중에 한 남자가 됐을까 얘기하지만, 어쨌든 한명의 남편과 사는 것도 힘든데 다섯 번이나 바꿀 정도면 그녀 인생에 깊은 갈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만남을 그토록 사모했던 수가성 여인,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싫고 무서웠으면,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중동의 정오 뙤약볕 아래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갑니다.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간 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남에 대한 기대들 속에서 오로지 다가왔던 것들은 깊은 상처와 아픔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그녀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도 그 마음속에는 남편이 아니라고 생각한지 오래였던 외롭고 불행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고,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것을 누렸지만, 사람들이 공허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여인처럼 외딴 섬에 고립 된 것 같은 인생을 사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이혼이 많습니까? 왜 이렇게 자살이 많습니까? 왜 이렇게 무너져 가는 가정이 많습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문화 학자는 이런 사회 구조속에 사는 인생을 가르쳐 “고립되고/상처 난/목마른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1. 고립된 인생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여인은 6절에 보면 제 6시에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시각으로 6시면 낮 12시 정오입니다. 사막지대에선 가장 더운 시각 아무도 우물가에 나오지 않는 시간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녀는 고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바로 우리 시대의 삶의 풍경이 아닌가요? 한 아파트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를 모릅니다. 이웃집에 죽은지 6달이 되도 누구하나 관심이 없이 살아갑니다. 이웃이 문을 열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스스로도 문을 닫아걸고 이웃을 외면해 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립되어 버렸고 우리는 뼈 속까지 스며온 춥고 떨리는 외로움을 당연한 존재의 모습으로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오죽하면 설교가 촬스 스윈돌의 글에 보면 미국 캔사스 신문에 어느 날 이런 광고 기사가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저에게 전화해 주셔서 30분을 이야기 해 주시면 5불을 지불하겠습니다.” 고립된 아파트에서 고독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풍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심각한 징후라고는 할 수 없는 그래도 희망적 케이스라고 할만합니다. 문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달라고 부탁할 의욕조차 상실한 채 스스로 관계를 차단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우물가의 여인이 바로 그런 고립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상처 난 인생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는 요청에 줄 수 있다/ 없다하면 될 것인데 이 여인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9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얼마나 공격적입니까? 그 안에 뿌리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인생이란 무엇인지 아세요? 자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이웃을 믿지 못하고 이웃에 대하여 공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들이 평범하게 던지는 말도 순수하게 받지 못하고 늘 불만투성이의 말을 쏟아 넣습니다. 상처는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에서 고름이 나옵니다.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몸을 썩게 만듭니다. 육체의 상처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육체의 상처는 치유하지 않으면 심한 고통을 동반하기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와 달리, 바로 조치를 취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미루다가 더 큰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깊어지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두면 마음에는 쓴 뿌리가 자라게 됩니다. 잘못하면 절제력을 상실한 채 분노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시대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입술로 표현되는 말이 영어로 “Leave me alone"(나를 버려두세요)라고 말합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3. 목마른 인생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과 물 길러온 이 여인과의 대화에서 제일 흥미로운 대화의 역전은 “물 좀 달라”던 예수님이 갑자기 이 여인에게 “네가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내게 오히려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네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목마른 인생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을까요? 목마른 인생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인을 바꾸고, 파트너를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종교를 바꾸고 심지어 교회를 바꾸어 봅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방황입니다. 끝없는 목마름,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이는 인생입니다.



우리 시대의 신데렐라인 비운의 다이애나 비가 경험한 목마름일지도 모릅니다. 본래 다이애나는 영국의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그녀의 나이 6세 때 어머니가 자녀들을 버리고 돈 많은 사업가를 따라 나설 때부터 그녀의 목마름은 시작되었다고 진단합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분노와 상처는 다이애나를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 목마른 여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찰스 황태자와 결혼 후 카밀라 파카볼스와의 염문 사건이 터지자 그녀는 다시 버림받은 내면의 고독한 공간을 채우고자 대리 만족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머리 손질에만 5천 4백달러를 썼고 몸매 관리와 의상 구입에만 년 간 87만 달러(한화 7억 5천만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마음의 공간을 달래지 못해 5번의 자살기도와 거식증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애인을 바꾸었습니다. 영락없는 우리 시대의 사마리아 여인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허무한 종말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보면 이 땅에 희망을 두고 살 수 없는 여인, 마지못해 남의 이목을 피해 더운 태양의 그 작렬한 햇빛을 받으며 어쩔 수 없는 이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길로 온 이 여인에게 70km나 되는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여인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이 이 여인을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었습니다. 4:4을 읽어 보면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당시 사마리아 인들을 경멸하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땅을 반드시 통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물가에 먼저 도착하여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만남이 우연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초대받아 오신 것이 우연일까요? 만일 여러분을 만나시고자 그분이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오게 하시고 지금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 앞에 솔직하시겠습니까? 내가 무척 외로웠다고--그동안 인생의 상처로 많이 아팠다고--목말랐다고--고백하시겠습니까? 내게 이제 주님이신 여러분이 필요하다고--주께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그렇게 구하시겠습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입니다. 성경은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 이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지금 당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요 구주이신 예수님 앞에 오십시오. 지금 오십시오. 지금 결단하십시오. 지금이 여러분의 변화의 기회입니다. 정말 이 땅이 주지 못하는,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목마름의 문제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절과 1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의 우물물은 아무리 깊이 들어가서 신선한 물을 퍼서 마신다 할지라도 목이 다시 마르지만, 주님이 주시는 living water, 생수를 마시는 자들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마신 사람입니까? 정말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예수의 생수를 날마다 맛보면서 사는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처럼 돈은 없어도,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어도, 마음은 항상 천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러한 분들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갈증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계신분이 있습니까?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처럼, 갈증 가운데 사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한 분들은 이 시간에 사마리아 여인처럼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생수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를 잡으시고 여러분의 고통과 문제를 기쁨과 평강으로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생수이신 예수님을 마심으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신 분들이라면 십자가의 복음으로 세상의 헛된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한번 나의 이 소중한 인생을 잘 가꾸어가는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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