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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반석위에 세운 교회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6-15 | 조회: 2751
반석 위에 세운 교회 마16:17-24.

만일 여러분들이 다시 교회를 선택한다면, 어떤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각자 한번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을 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를 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병을 안고 씨름 하는 사람에게 병이 나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반가워하겠습니까?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사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예수님에게 오세요. 하고 말하면 그 말 때문에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성향입니다.

실패하여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낙망하지 마세요. 하면서 소망과 희망을 주는 교회로 인도한다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를 나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가 한 다음의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종교를 찾지 않는다. 그런 행복이면 와인 한 병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찾는 사람이라면, 나는 굳이 당신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수준을 가진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강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펴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오늘은 우리 동성 교회가 1969년 성령강림주일을 보내고 일단의 믿음의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6월 2째 주 교회가 탄생한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교회 창립 선언을 한 것을 기념하는 교회 창립 40년째 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주일 오늘 오후에는 16분의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는 임직식을 갖게 됩니다. 이에 앞서 우리들의 교회 사랑이 어디에 근거한 것이며 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교회사랑-무엇 때문이어야 합니까?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예수께서 보시면서 자기와 3년을 함께 해온 제자들의 믿음을 세워주실 목적으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3년에 걸친 제자훈련의 핵심을 되묻는 질문으로 일종의 졸업시험의 성격이었습니다.--"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은 후 그는 다시 물으셨습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이때 베드로는 바로 그 유명한 대답-"주는 곧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하십니다.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저는 이 한마디에 기독교의 기본 메시지가 모두 포함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문자 그대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구약시대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만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왕은 다스리는자요, 선지자는 가르치는 자요, 제사장은 문제의 해결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온 메시야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다 완성할 수 있는 어떤 분이셨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께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 당신만이 나의 왕-나를 완전하게 다스려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당신은 나의 침 된 선지자-나를 온전한 진리로 가르칠 수 있는 분이시고, 당신은 나의 제사장-곧 나의 죄 문제와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믿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구주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믿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이 고백이 분명하지 못할 때 교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교회의 기초요 반석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18절에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 반석위에 세워진 이 교회를 예수께서는 ‘나의 교회’(My church)라고 선언하십니다. 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려 오셨기 때문입니다.우리는 흔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그분의 사명을 확인할 때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눅19:10의 선언처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개인 개인들을 구원하시는 데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심이 또한 그의 사명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의 본문인 마태16:18에서 한줌 밖에 안 되는 제자들 앞에서 그리고 아직도 미성숙하기만 했던 제자 베드로를 향해 교회 창립을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베드로는 한 개인에 불과했지만 그가 주님 앞에 엎디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고 고백하자 그의 고백에서 감동을 얻으신 주님은 이 한 사람의 헌신에서 교회의 미래를 보신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구원의 복음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뻐할 일이지만 교회의 존재는 의미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소수를 통해 역사해왔습니다.

어느 개척 교회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회 개척을 하면서 매일 매일 자기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축호전도를 하고 교회 개척을 알리고 전도 편지를 돌리는 등 최선을 다했음에도 일년이 지나간 시점에서 교인라곤 주일 학교 어린이 몇 명뿐 아직 장년은 한명도 모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실망이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리며 이 목사님은 “주님, 이 장소가 잘못된 것입니까? 교회 문을 닫아야 합니까? 아니면 한 번 더 장소를 옮겨야 합니까? 일년이 지났는데 교인은 아직 한명도 없습니다.”하고 울었답니다. 아침에 사모님이 편지 한통을 건네주어 뜯어보았더니 초등학교 2학년 주일 학교학생이 쓴 편지였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찬 바람 부는 날에도 전도지를 돌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기는 안 드셨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힘을 내셔요” 그날 아침 목사님은 그 어린 학생을 훌륭한 자기 교회 교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 어린 영혼에게서 자기 교회의 미래를 새롭게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주의 교회들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동성 교회도 예외가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갈릴리의 젊은 어부들과 갈릴리 해변 작은 마을 가버나움에서 그렇게 교회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당한 외로운 사람들이요, 가난한 사람들이며 죄인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실패자들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을 어떻게 이들을 가운데 제자를 삼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참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서 이들과 함께 주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성경은 주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우시고자 당신의 생명을 버려주셨다고 증거 합니다. 오늘의 또 하나의 본문인 엡5:25의 바울 사도의 증언을 읽어 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여기 ‘자신을 주심’이라는 말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희생의 결과로 오늘의 우리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행20:28에서 교회를 가르쳐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산 것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습니다. 그러면 자기 생명을 주고 산 교회를 주께서 어떻게 사랑 안하실수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질문을 좁혀 보겠습니다. 정말 동성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 누구일까요? 그동안 교회를 위하여 진지한 희생을 하신 분들,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헌신하고 희생을 하신 분들입니다. 교회는 이런 분들에 의해 지켜지고 존속되고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해 보십시오.

제가 처음 목회를 하던 교회 한 남편과 이혼하고 그 남편이 다른 여인과 낳은 아이 마져 떠안으며 행상으로 5남매를 과부 아주머니 집사님이 종종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분은 본래 동네에서 인색하기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사는 것도 어려워서 이겠지만, 어떤 일이도 돈을 안내놓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별명이 ‘노랭이 과부 아줌마’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어느 주일 예배 헌금시간에 펑펑 소리 내어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우시는 타이밍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예배 시간에 눈물 흘리는 시간은 기도 시간 아니면 설교 시간인데 이 분은 헌금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일에도 돈 주머니를 열지 않던 이 분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위해 처음 돈 지갑을 열면서 스스로 감격하여 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분은 나중 그 교회에서 기둥 같은 중요한 직분 자가 되셨습니다. 헌신하는 자가 공동체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교회-그 교회가 또한 저와 여러분의 사랑하는 영혼의 신부이기를 기도하십시다. 3.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공동체가 쇠퇴하거나 정체할 때 그 현저한 징후는 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비전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비전은 바로 주님의 비전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비전을 갖고 헌신하는 것을 보면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한마디로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였습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빌딩을 세운다는 말입니까? 아니지요.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 일꾼을 세우는 것-그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해 일할 사람을 24절에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여기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 뜻 앞에 순종하고 자신을 드리는 삶을 날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고집을 꺽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뜻 앞에 자기를 바쳐야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께서 핏 값으로 세우신 교회의 지체로서 한 생을 죽어도 좋은 목숨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아야합니다. 때로 그 분은 나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를 것입니다. 거기도 따라 올라가야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나를 데리고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신다고 해도 따라가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나를 데리고 사자굴 속으로 인도하셔도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풍랑이 일고 있는 갈릴리의 바다 한 복판에 인도하신다면 거기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그곳으로 가게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를 훈련시키시고, 나를 닦으시고, 나를 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 제자다운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고난을 허용하신다면, 기쁘게 감수하면서 일관성이 있게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값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데는 치러야 할 대가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다 치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 대신 고통을 받으심으로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구언을 선물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뜻을 내 생애 속에서 이루는 과정 속에서는 치루어야 할 대개가 종종 있습니다. 그 값을 치룰 각오를 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불의 전차>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입니다. 파리 올림픽 400m 계주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챔피언이 되어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던 스코틀랜드의 ‘엘릭 리들’은 영웅이었습니다. 조국의 영웅이었고 올림픽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 그가 고국에 돌아왔을 때 이상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인 그에게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받은 메달보다 더 위대한 메달이 있다. 더 위대한 영광이 있다. 너는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느니라.” 그는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중국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복음을 들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보장된 출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의 앞에 놓여진 안정된 삶, 이 화려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떠나는 그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중국에 갔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중국을 침략했던 시기였습니다. 중국도 일본의 치하에 잠시 동안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섬기고 도와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사람들이 그를 스파이로 몰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감싸 안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옥 안에 신앙의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히도 에릭 리들은 일본이 패망한 것을 보지 못하고 42세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숨질 때 그의 얼굴은 빛이 났고, 그는 찬양과 경배 속에서 자기의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에릭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감옥 옆에 있는 자그마한 동산에 그를 묻었습니다. 그들은 이 무덤 위에 초라한 비문을 하나 새겼습니다. 그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 하나님의 영웅! 그에게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이 명칭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숨이 멈추고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내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에 땅에서 잠시 누렸던 쾌락이나 잠시 쥐었던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순간 내 인생은 얼마나 보람과 가치와 의미가 있던 삶일까요? 내 인생은 마지막에 어떻게 결산 될까요? 마지막 순간에 돌아보는 나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에릭 리들은 자기 조국,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통해서 불멸의 아름다운 타이틀을 그에게 수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웅, 에릭 리들 여기에 잠들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산다면, 내 인생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영웅이여!

여러분, 내가 일평생 살아온 것을 깨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뜨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좋고 귀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깨뜨리시고 그 피값으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지 않습니까? 이 교회는 무너지지 않도록 반석위에 세운 교회입니다. 주님이 세우기를 원하셨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도 음부의 권세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 믿는 자들을 굴복시키려는 자리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해야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 타락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건 곧 멸망을 향해 가는 길목입니다. 세상이 어둡고 죄악 투성이라 하더라도 교회가 교회답게 바로 서 있으면 그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각오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감으로 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세상에 희망이요 빛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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