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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열정을 가지십시다.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6-21 | 조회: 2034
열정을 가지십시다. 수 10:6-14.

지금 미국 LA에서 모자이크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어윈 맥나머스’라는 정말 멋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40대 중반의 이 라틴계 목사는 미국 차세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의 교회는 성도 수가 2천 명에 이르는데도 아직까지 건물이 없습니다. 네 대의 거대한 이삿짐 트럭에 교회의 모든 물품을 싣고, 주일이 되면 LA지역에서 빌려 쓰고 있는 네 곳의 건물을 다니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건물들에는 나이트클럽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강단에 섰을 때그는 결코 피곤함을 모르는 열정 넘치는 사역자입니다.

그는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란 코뿔소 떼와 같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코뿔소는 알다시피 몇 톤이 넘는 거대한 몸집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큰 뿔을 가진 동물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일단 뛰기 시작하면 최고 속도가 시속 50km가 넘습니다. 이것은 다람쥐보다 훨씬 빠른 속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코뿔소는 근시여서 최대 시야가 10m에 불과합니다. 그 엄청난 덩치들이 떼를 지어서 시속 50km의 속력으로 달리는데, 고작 10m앞도 잘 못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코뿔소 떼는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들은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장애물들이 오히려 코뿔소 떼를 비켜 갈 걱정을 해야 합니다.

요즘 들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을 가리켜 “정신을 못 차리겠다”라는 표현을 쓸 것 같습니다. 언제나 문제가 없는 날, 사건이 안 터지는 날은 없었지만 지금은 안팎으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밖에 있는 먼 미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보며 코뿔소 떼처럼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때로 코뿔소를 닮아야 합니다. 기다리고 인내해야 할 때는 잠잠히 있지만, 일단 행동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열정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호수아 강해를 8장까지 하다가 쉬었습니다. 오늘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무너뜨리고, 강대한 기브온의 항복까지 받아 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군은 이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가나안 남부와 북부 왕들의 막강한 연합군과 7년에 걸친 대전쟁의 폭풍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적들입니다. 이들과 하나하나 맞서 싸워 나가야 했던 여호수아의 모습은, 우리가 주어진 일터와 사명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어떠한 열정과 끈기로 뛰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가나안 땅 남부의 가장 거대한 성 가운데 하나였던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은 그 지역의 다른 왕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주력 부대가 되어야 할 기브온의 항복은 충격과 함께 큰 배신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여기에 예루살렘 왕을 중심으로 한 남부의 다섯 왕들은 시급히 연합군을 결성하여 배신한 기브온 성을 향해 칼을 들고 몰려왔습니다. 배신자에게 징벌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기브온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성이었지만 기브온은 성난 다섯 나라의 군대가 총동원해 포위망을 압축하고 들어오는 기세에 다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시 결사 방어 체제에 들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수아에게 사자를 보내 지원을 요청합니다. 속임수에 넘어가 맺은 화친 조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호수아는 이 전쟁에 말려들어야 했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어차피 치러야할 가나안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즉시 전군을 소집하여 가나안의 다섯 나라 연합군과의 전쟁을 위해 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전군을 지휘하여 어두움이 엎여 있는 가운데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30~40km 정도 되는 거리를 빠르게 행군했습니다. 기브온은 해발 1,800m가 넘는 험한 산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행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밤새 행군한 이스라엘군은 피로에 지쳤고, 앞에는 막강한 연합군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 성 2차 전투 때도 그랬듯이, 여호수아는 항상 가만히 앉아서 게으르게 전투에 임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준비 태세를 갖췄으며, 치밀하고도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적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결코 대충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열정의 지도자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온 힐은 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권위자인데 그의 책 ‘성공의 법칙’은 전 세계의 성공한 사람들 500백 명 이상을 깊이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는데, 이들 모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자기가 꼭 이루기 원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그 목표를 향하여 무섭도록 놀라운 열정으로 앞으로 밀고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자신과 목표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것은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행군하는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8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여기서 ‘붙였다’는 말은 ‘배달해서 네 품에 안겨 줬다’는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해 줬으니, 너는 가서 건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열정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누구나 열정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어렵고 힘든 상황, 과거의 실패로 냉소적이고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과연 열정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열정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풀면 “하나님이 그 상황 속에 함께 계신다”란 뜻입니다. 불가능한 난관 앞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그 상황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봅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이 함께 뛰어 주시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지금 무모한 열정을 가지고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행하는 것뿐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긴장하고 있는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약하면 작은 적도 무섭지만, 내가 강하면 큰 적도 무섭지 않은 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왜 염려의 덫에 걸려 늘 불안에 시달리십니까? 왜 자주 주저앉아 모든 것을 다 포기하십니까?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문제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확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열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성도의 가슴에서 폭발합니다. 여기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은 3가지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첫째는 우박을 통해 승리하는 역사를 체험케 했습니다.
다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 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재미난 광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늘에서 내리셨습니까? 우박을 내리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박이 내렸는지 이스라엘 군대의 칼에 맞아 죽은 숫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아모리 연합군은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세례를 받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병사들은 삼십육계 출행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쯤에서 멈출 수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서로 도와가며 살자고 화친을 맺은 기브온 족속과의 약속을 이미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도망치는 아모리 병사들을 추격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앞으로 가나안 정복에 암적인 존재가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갑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모리 병사들을 더 이상 추격할 수가 없고, 설령 추격한다할지라도 산속으로 숨어버리면 그들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저물어 가는 해를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2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여러분, 여호수아의 이 기도가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여호수아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기도를 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했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13-14절을 보세요.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할렐루야!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해가 중천에 그대로 머물렀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그대로 멈추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도망치는 아모리 군사들을 진멸할 때까지 태양과 달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이것이 신화적인 사건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미 우주항공국에서 일하는 해롤드 힐이란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배경에는 기가 막힌 스토리가 있습니다. NASA의 슈퍼컴퓨터가 우주 천체의 시간으로 수백만 년의 지구 역사를 추적해 나가는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사라져 버린 적이 두 번 있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한번은 23시간 30분, 또 한 번은 40분 정도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자전을 감속했다는 얘기입니다. 도저히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미스터리로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롤드 힐이 우연히 성경책을 읽다가 여호수아 10:12-13절에서 그만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바로 지구가 하루 가까이 자전을 멈춘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여호수아의 남부 전쟁이 일어났던 연대를 찾아서 슈퍼컴퓨터가 잡아낸 사라진 시간의 타이밍과 맞춰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기가 막힐 정도로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 순간 무신론자였던 해롤드 힐은 바닥에 엎어지면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정말 계셨군요!” 그때부터 그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혼신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어떤 때는 태양을 멈추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뜻하지 않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거센 풍랑이 몰려 올 때,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의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로, 거센 풍랑 앞에서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센 풍랑을 보고 절망하고 ‘될 되로 되라’고 하면서 자포자기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거센 풍랑 앞에서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센 풍랑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이웃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심하면 하나님까지 원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거센 풍랑을 헤쳐 나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거센 풍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Surfing Board에 몸을 싣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처럼, 거센 풍랑을 이용하여 자기 인생을 복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과 달리, 거센 풍랑을 이용하여 오히려 더 빨리 목표를 향하여 항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입니까? 문제의 파도와 거센 풍랑 앞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문제의 파도와 거센 풍랑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까? 오히려 하늘의 태양마져도 멈추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 앞에 내 인생에게 다가오는 거센 풍랑을 멈추게 해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지도자로서 순수하고 겸손한 영혼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면 여호수아처럼 비상한 기도를 해도 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도움이 그 순간에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셋째는 기대하지 않았던 풍성한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도망치는 아모리 병사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진멸하였고, 전쟁에서 패한 후 막게다 굴에 숨어 있던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을 찾아낸 후 그들까지도 다 진멸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가나안 성읍들을 차례로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복을 받았습니다. 40절 이하를 보면 여호수아가 전쟁을 마치고 길갈로 돌아왔을 때는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치르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데스 바네아에서부터 가사까지, 또 고센 땅에서 기브온까지의 산지와 평지와 경사지를 포함한 가나안 남부지역을 정복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돕기 위해 아모리 연합군과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보니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결코 눈앞에 일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앞에 성취에 도취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임을 말합니다. 지금 보혜사 성령님은 내 곁에 계셔서 눈앞에 있는 것만 익숙해진 나를 일으켜 저 멀리 거대한 푸른바다를 바라보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조금만, 막힘이 있고, 장애물이 있어도 당황해하고 불안해하고 낙심하던 내 인생을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게 하시고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게 하는 등반가로의 삶으로 이끌어 가시지 않으십니까?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1813-73)이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아프리카에 복음의 여명을 가져왔던 선교 개척자, 탐험가, 의사 말입니다. 그가 16년간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다가 그의 조국인 영국으로 일시 귀국했을 때 글라스고 대학은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그의 영웅적인 수고와 헌신을 위로하였습니다. 당시의 대학가의 학생들은 명예 학위를 받는 인사들에게 때로는 야유를 보내곤 했습니다만 리빙스톤이 교단에 서는 순간 장내는 깊은 침묵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의 병약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이미 심한 열병과 풍토병으로 고생하며 그의 육체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고 팔은 밀림에서 사자의 습격을 받아 찢어졌던 상처로 간신히 어깨에 매달린 형상이었습니다.

무려 30여회에 걸쳐 그는 죽음을 모면하는 순간들을 겪어 온 그였습니다. 사회자는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알리며 이제 그의 말씀을 듣겠다고 그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내가 영국을 떠날 때 그리고 저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일할 때 나를 한결같이 지켜 준 성경의 말씀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 28:20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분의 임재가 함께 하는 한 그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아프리카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로 돌아간 그는 말년에 다시 내출혈과 말라리아로 큰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1873년 5월 1일 그가 생을 마감했을 때 그는 잠비아, 일랄라 지역, 방웰루호수 근처 텐트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자세로 발견되었고, 그가 남긴 그의 마지막 일지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난 그의 약속을 믿는다. 그는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지키실 것이다.”고.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왜 열정을 갖고 살아야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나요?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렵다고, 또 주변 여건이 불투명하다고 그냥 손을 놓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십니다. 동일하신 그분의 임재로 여러분과 저도 또한 인생의 광야 길을 완주할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다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그분의 함께 하시겠다는 임재의 약속을 믿으시겠습니까? 필요하시다면 저 자연을 흔들어서라도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결코 눈앞의 일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내다볼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에 생애를 걸었습니다. 우리 역시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인생이 되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동성 교회가 40년이 지난 오늘 그런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 믿음, 이 확신을 갖고 우리 이렇게 외쳐 보지 않으시렵니까?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이 신앙의 열정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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