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징검다리 축복 신16:13-17. 2013년 11월17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3-11-17 |
조회: 1336
오래전에 영국에 살던 한 여자성도에 의해 쓰여진 편지 한 부분을 읽고자 합니다. “우리는 출발에서 도착까지 상상외의 노도광풍과 침몰의 위기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항해의 출발이 결격사유로 인해서 지연된 까닭에 항해중 비축해 놓았던 식량이 거의 전부를 소모했습니다. 더욱이나 항해가 시작했을 때는 여름이 아닌 9월의 초가을이었고 모두 102명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살인적인 괴혈병에 시달려야 했고 이미 죽어 장사를 해야 하는 그런 불상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 편지는 그 유명한 아메리카의 신대륙을 향해 탑승했던 메이플라워에 탑승한 엘리자베스 합킨즈라는 여성도가 영국에 있는 자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한토막입니다.
이들은 출발 후 2달이 다되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있던 식량도 바닥이 나게 되었습니다. 한 지도자는 하루분의 비상식량이라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금식의 날로 제안했을 때 모두가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한 다른 지도자는 금식은 동의하나 감사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감사의 날이라뇨? 하자. 이제 우리는 그토록 열망하던 신대륙에 거의 가까워 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건강하게 살아있고 또 우리 안에는 아직도 신대륙에 소망이 담겨있는데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이 지도자의 제안으로 감사의 날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그 후 꼭 다샛 후 1621. 11. 22에 프리모어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도시 지식인 출신이라 겨울에 도착했기 때문에 절반가량이 그해 겨울에 죽음. 봄이 되자 인디언족장 한 사람이 와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해 가을 풍성한 수확 앞에 너무 감사해서 90명의 인디언과 함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킨 후 2년 만에 그들이 살던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적인 명절로 선포하게 되었고, 1789년 미국의 초대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서 추수감사절은 국경일로 지정되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그 이전에 이미 성경에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일 년에 세 번 중요한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 광복절과 비슷한 절기입니다. 칠칠절은 초실절, 오순절, 맥추절이라고도 부르는데,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곡식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그날을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월절을 지낸 후 49일이 지난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수장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농사지은 곡식을 다 거둬들인 후 창고에 곡식을 쌓아놓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해 좋은 날씨와 햇빛과 비를 내려주셔서 많고 적음을 떠나 추수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는 감사절입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이라는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초막절은 나뭇가지나 풀 등으로 임시 거처인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일주일을 사는 절기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40년 동안 광야생활하던 것을 추억하기 위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허름한 초막 안에 살면서 광야생활하던 조상들이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밤에는 추운 바람으로 인해 고생하던 것을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산 체험을 하게 됩니다. 추수한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서 지키는 수장절과 광야생활하던 조상들의 고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지키는 초막절을 함께 지킨다는 것은 참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자기들은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추수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물을 모아놓는 저수지 같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에 그 때에 맞게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셨다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곡식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위해서 많은 수분이 필요할 때 내리는 비가 이른 비이고, 곡식이 자라서 열매를 맺어 수확할 때 필요한 비가 늦은 비입니다. 그렇게 때에 적절하게 비려주는 비는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한다면 ‘복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른 비가 필요할 때에 비를 내려 주시고, 늦은 비가 필요할 때 비를 내려주셔서 곡식이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추수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확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추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비록 비를 통해서 주신 것은 아니지만, 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일 때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막의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배고 고파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만나를 주셨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에는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고통스러울 때에는 반석을 깨뜨려서라도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 때에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 때에나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삶입니다. 그래서 추수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날 선조들이 광야생활하면서 힘들지만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았음을 회상하면서 그 때의 힘든 삶을 체험해 보는 것입니다. 비록 1주일이지만 편안한 집을 떠나서 들판이든 옥상이든, 어디에든지 초막을 짓고서 그곳에서 조금 불편하게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경험합니다.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초막절을 지킴으로 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큰 어려움이나 힘든 일을 겪고 났을 때에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같다가도 금새 현재의 풍요로움과 평안함에 익숙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 때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오늘의 풍요로움에 도취되어 지난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다 가져가신 것처럼 불평하기도 하고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초막절을 지키면서 것은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그 때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 약하고 힘들 때 우리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추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초막절은 감사절입니다. 초막에 거한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초막절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1주일 동안 지켜야 하는데, 반드시 어려운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너와 네 자녀만이 아니라 노비와 네 주변에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에 내 창고에 추수한 것들을 가득 채워놓았다면 그것은 내 배만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들, 너무너무 가난해서 살아가는 것이 힘에 겨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나를 위해서 더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경고해 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그 해 농사를 지어 많은 곡식을 거둬들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창고가 비좁을 정도로 거둬들인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다가 곡식을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됐다. 여러 해 먹을 것을 가득 채워놓았으니, 평안히 쉬면서 마음껏 즐기며 살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을 내가 불러갈 것인데, 여러 해 먹을 것을 그렇게 쌓아놓은 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비단 그 어리석은 부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 좋은 집 사놓고 집 걱정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통장에 잔고를 많이 쌓아놓고 안심하고 사는 사람들, 빌딩을 가지고 있어 매월 월세를 받든지 튼튼한 연금 때문에 노후 걱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심지어 자식들에게 물려줄 충분한 유산을 준비해 놓은 사람들, 그 모두가 이 말씀 잘 들어야 합니다. 지금 나와 내 자식들만 생각하면서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이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생명을 거둬가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소유를 불어버리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안심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감사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각자 과일을 가져와 제단 앞에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적지만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믿음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충분히 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복을 나눠야 합니다. 아직도 삶에서 감사를 찾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조금이나마 우리의 감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는 표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초막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앞에 와서 여호와를 뵈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릴 것을 준비하여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로만 하는 감사는 껍데기일 수 있습니다. 가식일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표현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표현을 분명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음 주에 추수감사절 헌금을 드리긴 하지만, 작은 과일 하나일지라도 들고 와서 제단 앞에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직접 몸으로 감사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잘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초막절을 지킬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출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은 이미 베풀어주신 것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많든 적든 창고에 들여놓을 수 있는 곡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으로 즐거워하며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열심히 일한만큼 추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수고한 것만큼 다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갚아 주실 것이기에, 그것을 믿고 미리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노력하고 수고한 만큼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성적이 영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장사했는데 남는 것은 고사하고 밑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수고를 받지 않으시고 내게 아무런 은혜도 베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다’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봉투에 감사 기도 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들 5가지를 적어보자고 했습니다. 그 5가지 중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것에 감사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까?(내 소개) 아직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게 축복의 열매로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아픔의 순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언젠가 내게 큰 축복으로 열매 맺혀질 것입니다. 그런 힘든 일들이나 힘든 순간들이 내게 고통만 안겨준 채 지나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복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고난은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말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축복이 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만을 보게 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 살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일의 축복과 영광을 보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된 내일을 기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내일의 그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땅에서 내일 주어질 축복의 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징검다리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축복의 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징검다리가 감사입니다.
우리에게도 널리 소개된 ?빙점?의 작가 삼포능자가 있습니다. 이 미우라 아야꼬는 척추결핵이란 병으로 오랜 세월 누워서 지내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낙심치 않고 그 연약한 자리에서 시를 발표했는데 그 시가 첫해에 6판이나 발간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시 가운데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하나님을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 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다면/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지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신앙의 기쁨을 잃지 않는 자가 만들어낸 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면서 읊은 시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고, 이웃을 보면 원망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보면 구원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 고난을 이 역경을 감사로만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고 얼마든지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실패는 결코 좌절의 자리가 아닙니다. 고통은 결코 우리의 무덤이 아닙니다. 고된 시련은 결코 낙담할 자리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자리로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오늘의 실패의 자리에서 내일의 축복의 자리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입니다. 감사는 고통의 땅에서 축복의 땅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입니다. 감사는 힘들고 고된 오늘의 삶에서 희망 가득하고 축복 가득한 내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입니다. 믿음은 그 축복을 바라보게 하고, 감사는 징검다리가 되어 그 축복의 세계로 건너가게 만들어 줍니다.
이제 감사에 인색하지 맙시다. 감사로 일어섭시다. 감사 충만 합시다. 이제 겸손하게 하나님의 손에 내 인생 맡기고, 광야와 같은 길을 가며 감사하며 가는 우리 동성 교회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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