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변화. 도전으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 롬12:2 2014년 1월 5일 신년 예배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1-06 |
조회: 1704
2014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2013년과 2014년을 우리가 현상적으로 비교해 볼 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예배당도 그대로이고, 설교자도 동일합니다. 분명히 역사는 새롭게 진행되었지만,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작년과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부적인 변화는 실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결심입니다. 새로운 각오와 자세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에게는 작년과 다른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며, 그 목표를 방향 삼아 이 한해를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맥그래스 교수가 쓴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책에 보면 인생을 묘사한 한 구절이 참으로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짧고 상쾌한 산책일 줄 알았던 것이 미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마라톤으로 바뀐다.?어린 시절, 철이 없을 때는 인생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걷는 산책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좀 더 걷다 보면 미처 준비가 안 된 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되어 버립니다. 이 마라톤을 달리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쳐 쓰러집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탈락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지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인생길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롬12:2절을 가지고 ‘회심과 변화와 도전으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 라는 표어 속에 한해를 살아가려고 합니다. - 다 같이 읽읍시다.
지금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1-11장까지 바울이 피를 토하듯 외친 것은 바로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혈통으로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미듬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이신칭의의 교리입니다. 그리고 나서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두 가지 변화를 갖게 됩니다. 하나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준의 변화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즉각적이지만, 수준의 변화는 성도마다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정말 그의 삶 속에서 예수 향기를 발하는 근사한 신앙의 모습을 갖고 사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이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고 내가 달라지지 않은 채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삼성에 대한 자료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선두 주자인 삼성그룹의 매출액 300조가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간매출액이 300조가 넘은 것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이 수치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를 하려면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가 되었는데 356조8000억원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한 기업이 나라 예산과 맞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삼성이 늘 승승장구 한 것은 아닙니다. 삼성이 한국의 일류기업에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는 데는 하나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즉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소위 프랑크프르트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신경영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발판이 되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랑크프르트 선언의 골자는 이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다 남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변화는 없다. 나 자신부터 양보하고 나부터 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때 생겨난 모토가 있는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건희 에세이]라는 책을 보니까 이 때 이건희 회장이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더라구요. 이분이 1992년에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같은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삼성 내부에 긴장감도 없고 나름대로 국내 제일이라는 자부심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고민하느라고 체중도 10키로나 빠지고 강력한 변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변화를 이루어 냈고 세계 초 일류기업으로 삼성전자를 도약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변화해야 할 때 제대로 변화하면 남보다 앞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할 때를 놓치거나 변화를 외면하면 도태되고 결국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를 이야기 할 때, 환경과 주변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이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고 내가 달라지지 않은 채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항상 내가 주장자가 되어서 현 사회와 주변을 판단하고 비판을 합니다. 성경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일어나는 현재의 문제를 다른데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변화에 몰두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변화와 사회 변화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변화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가라는 질문 앞에 반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변화를 받아’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질적인 변화, 즉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완전히 다른 존재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이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을 보십시오. 성경에 보면 그는 자신의 이력서를 두 번 기록한 것을 공개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예수를 만나기전의 이력서입니다. 자기에 대한 프라우드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자손 가운데 가장 순수한 혈통에 해당하는 베냐민지파 출신이었고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는 유대인이요 선민임을 자랑합니다.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선생의 문하에서 히브리즘을 공부했고, 또한 다소라는 곳에서 성장하는 동안 최고의 헬레니즘 학문을 공부했고, 누구나가 부러워했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자였습니다. 요즘 우리 잣대로 보면 이만한 학벌 좋은 신랑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큰 과오만 없다면 미래가 보장되는 자가 아닙니까?
그러던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순간 그의 생애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신봉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들이 모두 쓰레기였음을 깨닫습니다. 여지껏 보화로 알았던 것은 더러운 배설물이었습니다. 대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아는 지식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영광스럽고 고상한 지식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아침 해가 솟아오르자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그가 과거에 자랑하고 높였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만이 그의 생애에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이제 그의 삶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더욱 알기 원하는 열망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기생애에 새롭게 떠오른 예수그리스도를 점점 더 깊이 알려는 삶으로 초지일관 달려갑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또 다른 이력서를 남깁니다. 그 이력서 내용에는 어떤 학교의 졸업장도 어떤 사회적인 경력도 기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엔 신앙고백과도 같은 자기 삶을 보여주는 내용뿐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딤후4:7) 이것은 그가 지난 날 구원받은 이후 이 세대에 속해 살기를 거부하고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깨달은 지혜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 뜻 앞에 자기의 삶을 일관되게 맞추어 살았던 가장 아름다운 삶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그가 보람되게 느꼈던 이력서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의 장에 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여기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 유행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악하고 음란한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세대를 너무 본받고 싶습니다. 나이 들어서 하나님을 만난 어떤 분은 “젊어서 세상 문화에 젖어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세상이 나를 부른다”고 합니다. 아무리 본을 받지 않으려해도 뒤에서 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술을 끊고 담배를 끊으려해도 알코올과 니코틴에 익숙해진 몸이 자꾸 원하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몸에서 ‘땡기는’ 걸 막을 힘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하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나안에 금방 들어갔습니까? 못갑니다. 430년을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계속 나를 붙잡는 것이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노예근성을 떨쳐내기 위해 40년 광야 생활이 필요했습니다. 본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 광야 훈련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계속 일어날 때, 흔들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광야와 같은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도록 막아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십니다. 애굽 430년 뒤에 광야 40년의 훈련을 거쳤는데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또 가나안을 본받으니까 바벨론 포로로 보내셨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을 본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꾸 없어지게 만들고 망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이 세상이 추구하는 일에 동화되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이제 상상 방법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 가는 날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참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배짱을 가지고 멋지게 살다가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터키로 회사일로 잠시 떠나는 한 자매가 제 목양실에 왔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게 처음이니 설레임도 있고 두려움도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비행기를 타고 8 시간 이상을 가면 터키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도중에 나쁜 사람들에게 하이재킹을 당해서 불안과 초조 속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겨우 터키 땅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힘있게 살다가, 멋있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 휩쌓여 마귀에게 하이재킹 당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비참하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시 본문을 읽겠습니다. 2하반절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6: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엄청난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살4:3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죄로 인해 멸망을 당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거듭난 우리들이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여기에 대해 주님은 조금도 양보를 안 하십니다. 이 뜻을 내 영혼에 품고 사는 것이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생명은 세상과 다름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세상 사람과 얼마나 다르냐에 달려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기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갈대아 우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하시고 전혀 생소한 땅으로 가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사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불러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 된 우리를 예수 믿도록 불러내셨습니까? 왜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불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이젠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 발생한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멀리 떨어진 곳에 영향을 끼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여기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 받은 사울 한 사람의 가치를 아십니까?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부담을 주는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핍박자이고, 우리와는 너무 먼 길을 가는 삶처럼 보이는 그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하는 한 사람이 아닙니까? 다메섹에서의 회심은 그 한사람만의 변화가 아니라 그 한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복음 앞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 한 사람의 가치는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설교를 한 경영자 CEO의 이야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우리가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노라면 며칠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이 고민이 오늘 나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로 서기 위해 내 자신이 교회 앞에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의 장에서 자신을 성령께서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드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 한해 우리 모두가 예배에 생명을 겁시다. 예배 때마다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으로 뜨거운 구원 감격 속에 날마다 감격이 넘치며 예수 믿는 게 이렇게 좋은가를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오게 전도에 힘을 쓰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삶이 놀랍도록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가득 채워지는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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