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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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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하여 도전하라 수1:1-9. 2014년 1월 12일 주일 설교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1-12 | 조회: 1665
1945년 4월 12일 제 2차 대전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인들은 믿기 어려운 뉴스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의 뒤를 이어 33대 대통령으로 취임해야 했던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었습니다. 미주리 주 시골 출신의 트루먼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거인 루스벨트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루스벨트는 당시 미국에서 거의 신화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12년간 3회 연속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그의 존재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가히 절대적이었습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사상 최대의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인들은 모두 극심한 고통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을때 과감한 뉴딜 정책으로 수많은 실업자들을 구제하며 나라 경제를 기사회생시켰습니다. 자신이 소아마비로 열등감속에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미국인들은 다른 인물이 백악관에 앉는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루스벨트는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 전쟁의 와중에서 나라를 이끌어야 했던 후계자 해리 트루먼의 부담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트루먼은 당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달과 별들과 모든 행성들이 나에게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만약 일생에 한 번이라도 기도한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너무나 위대했던 전임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임에 틀림없는 것 사실입니다.



여기 두려움 가운데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40년의 긴 광야 생활을 마감하는 감회가 어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눈앞에 펼쳐진 현장까지 와 있습니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그들 앞에 펼쳐진 약속의 땅, 얼마나 마음이 설레겠습니까?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큰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40년 동안 인도했던 모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은 가져다 준 사람입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모세가 나타나서 ‘여기서 나가자.’고,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 도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좌절하고 불신에 빠져 고통을 겪을 때마다 모세는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가나안 땅 바로 앞에까지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런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 충격은 간단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제 그를 이어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백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과연 이 여호수아가 자기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 사실입니다. 항상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조수에 불과하던 여호수아가 과연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여호수아 자신도 백성들도 의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세상을 향해 거룩한 도전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리더십을 가졌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누구도 그가 이런 지도력을 발휘할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모세의 뒤를 이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겠습니까?




2014년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2014년의 남은 시간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날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내적으로 아직 여기저기 시한폭탄 같은 것들이 깔려있는 것 사실입니다. 국외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자신 앞에 주어질 시간들이 희망 부풀게 만드는 시간일 수도 있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과도 같은 시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을 기대하든 우리의 마음속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에 섰을 때에는 두려움이 우리의 가슴에 물밀듯 밀려옵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낼 때 우리가 살아갈 날들이 행복할 수 있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1.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민감한 반응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고 7절에서도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9절에서도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여호수아가 어떤 상태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연속해서 세 번씩이나 ‘강하고 담대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한마디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이 변화의 장에서 그가 얼마나 두려움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제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서 얼마나 고민과 두려움이 많았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애굽에서의 삶도, 출애굽의 과정도, 시내산 주변에서의 사건들도, 그리고 모든 광야의 일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아왔습니다. 애굽 땅에서 종살이할 때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 왕이 하나님께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줄 수밖에 없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시고, 먹을 것을 없을 때 만나를 내려 주시고 마실 물이 없을 때 반석을 깨뜨려 물을 주어 먹게 하신 것.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의 상황까지 그 모든 일을 모세 옆에서 가장 정확하게 보았던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과연 모세처럼 백성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령들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했을 때 여호수아와 함께 다녀왔던 일행들 대부분이 두려움으로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결국 그 일로 인해 모든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간 방황할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할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먼저 두려움에 휩싸이면 모든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음을 체험했던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이 너무나 크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새 땅 가나안을 정복한다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일들이 한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할 때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복?과 ?정착? 두 가지입니다. 먼저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온전하게 정착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 - 그러니 이 얼마나 두려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여호수아, 그의 시선이 환경이나 상황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 5절에 보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서도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약속하신 주의 말씀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론 우리의 삶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홍해를 갈라 우리로 건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서 메마른 광야와 같은 고통의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당신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 없어 궁핍함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굶주림 가운데 방치해 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모든 것을 주십니다. 당신의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주셨는데, 우리를 위해 무엇인들 아끼시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한 해를 사십시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하는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가십시다.




2. 그가 세상을 향해 도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 앞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에게 줄 땅으로 들어가라. 내가 너희 발바닥이 밟는 곳을 모두 너희에게 주리라.’ 여기 ‘그 땅에 반드시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으로 가나안 백성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백성과 싸워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단 한가지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이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발바닥이 밟는 곳을 모두 너희에게 주겠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으로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각나시나요? 홍해를 갈라지는 역사와 요단이 갈라지는 역사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이 광야를 들어가는 길목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요단이 갈라지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홍해는 하나님이 친히 갈라놓으십니다. 그러나 요단은 아닙니다.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 요단은 강물이 불어서 거의 100m가 넘는 큰 강입니다. 이 강은 그냥 갈라지는 게 아닙니다. - 밟아야 합니다. 이는 믿음이 없이는 안 되고 순종을 해야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밟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밟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호수아서를 연구해 보면 그가 33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전승합니다. 33전 33승! 물론 ‘옥에 티’ 같은 사건이 있었죠. 7장에 보면 아이 성 전투가 나오는데 첫번째 공격에서는 패퇴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1차 전투였던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우쭐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작은 아이 성 정복에 애를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두번째 공격에서 결국 승리합니다. 여호수아는 정말 무적의 장군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장군이라도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운동선수라도 전승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 7-8절에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 중심의 삶’의 원칙입니다. 7절(하). “ ...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영적인 진로입니다. 그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앞길을 환하게 열어주십니다. ‘형통’이란 말은 “막힌 것이 뚫어진다. 굽은 것이 펴진다”는 뜻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진정한 형통이 아닙니다. 나중에 잘못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내 뜻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혹은 세상 사람들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뜻은 우둔합니다. 근시안적입니다. 당장은 맞는 것 같고 당장은 성공할 것 같지만 나중에 가보면 실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은 때때로 이해가 안 되지만 그대로 순종하고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혹시 실패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승리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119:165 “주의 법(=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막힘이 없는 축복의 고속도로(Highway)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승리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가 말씀 중심에서 이탈해서 좌우로 치우치게 되는(7절)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우리 마음이 미혹되고 중독되다 보니까 무감각해지고 둔해져서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아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그 지글러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키모인의 늑대 사냥법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칼에 피를 발라 얼린 후 늑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고 늑대들이 와서 혀로 핥아먹습니다. 그러다가 얼음에 자기 혀마저 얼얼해지고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칼날에 혀가 잘리고 피가 흘러나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욕심에 중독이 되면 죽는 줄도 모르고 자꾸 세상으로 갑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일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특별히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말씀 중심으로 삶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2014년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두려움과 설렘으로 새 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4년이라는 새로운 날을 시작한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 주신 약속을 똑같이 해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마.’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간다면 우리도 우리의 삶에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내가 너를 도와주마.’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칠 것이 없는 형통의 인생이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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