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인생의 경주장에서 빌3:12-14. 2014. 1/26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1-27 | 조회: 1524
다음 달 2/7일에 열릴 소치 동계 올림픽은 그 어느해 보다도 우리에게 큰 관심을 갖는 데 우리나라가 동계 올리픽 종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종목이 피겨 스케이팅입니다. 우리나라는 피겨 스케이트의 불모지였지만 김연아가 나타나서 대회를 할 때마다 우승을 거머지는 데 정말 대단한 일입입니다.



올해가 특별한 것은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으로 18년의 선수생활을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24살의 젊은 아가씨인데, 벌써 18년의 선수생활을 했으며, 올림픽을 위시하여 모든 선수권대회의 금메달을 휩쓴 정상의 선수입니다. 더 증명할 필요가 없는 그녀가 해가 바뀐 줄도 모르고, 초년생처럼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 모습을 보고 은퇴를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은퇴할 새해의 소감을 묻는 기자 앞에 김연아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올림픽의 목표는 금메달만이 아닙니다.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어떻게 잘 찍느냐’입니다. 내 목표는 1등보다 마지막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어린 소녀띠가 물씬 풍기는 자매에게서 그런 대견한 말을 합니까?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만약, 저에게도 새해를 시작하는 소감을 묻는다면, 24세의 김연아가 은퇴를 운운함이 어색하듯, 동성 사역의 출발점에서 ‘오늘이 나의 목회의 마지막이다’하는 각오를 염두에 두고, 오늘 처녀 목회를 하는 풋풋한 목사같이 땀 흘리며 뛰고 싶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요즘 저는 교회 나오는 성도님들을 보며, 제 눈에 감동의 촉촉함으로 적셔져 갑니다. “저렇게 은혜를 받으려고 이곳 저곳에서 나오시는 데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해 줄 것이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즘 사업장 심방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남대문에 도깨비 시장으로 유명한 상가에 우리 교우가 새벽시장을 하기 때문에 가서 기도하고 동대문에 가게를 돌아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결같이 이야기가 불경기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매상이 절반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제가 할 일은 목이 찢어지도록, 목이 터지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동성의 선장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무릎 꿇는 동성의 성도들과 함께 엎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빌립보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한 5,6년 전쯤 기록을 하지 않았나 추측을 합니다. 그 당시 바울의 나이는 이미 60대에 접어 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불행하게도 로마 감옥에 수감 되어 있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13-1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직 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이런 자리에 있으면, 도무지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 할 텐데 오히려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바울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새롭게 시작을 하는 이 새해 벽두 의미 있는 순간에 서 있으면서 이 바울의 말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경주장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과거를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기에서 말하는 '뒤에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은 지금 현 시점에서 과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전력을 감추기 위해 이력서를 세탁까지 하며 삽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과거란 세상적으로 대단한 스펙을 갖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누렸던 유대인이라는 자부심과 배울 만큼 배웠다는 학벌, 그리고 전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의 시민으로서의 특권의식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단한 결단입니다. 빌3:7,8절에 보면 바울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경주에 방해받지 않도록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 바울이 뒤에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예수님 믿기 전의 여러 가지 것들을 다 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를 정리하겠다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있어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일어난 일에 대해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잊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한 것을 기억하면 자칫 교만하기 쉽고, 잘못한 것을 기억하면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절망하기 쉽습니다.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그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첫 금메달를 땄습니다. 그 당시 기자들도 흥분이 된 것입니다. 이 자그마한 선수가 세계의 최고의 선수가 되니까 충격과 동시에 기대감을 갖고 좌우명이 뭐냐고 물어 본 것입니다. 어린 선수에게 이 질문이 좀 무겁지만, 김연아 선수는 인터뷰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인의 경전인 미드라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김연아가 고된 훈련과 시합으로 힘들 때면 이 말을 붙잡고 극복했다고 합니다. -



어린나이지만, 자신이 거머진 이 명예와 이 승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승의 영광.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모든 인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부귀, 영화, 권세, 지위, 명예, 재물 등 그 어떤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 지나갑니다. 새해를 시작을 하면서 여러분의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뻗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니면 지난 날 잘 된 것 때문에 안일함과 나태함은 없습니까? 이제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다 잊고 나아가야 합니다.



2.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우리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목표를 세우지도 않은 채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구체적인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웃기만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표가 없으면 방황한다는 사실입니다. 파브르라는 곤충학자는 날벌레를 연구하다가 기가 막힌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날벌레들은 무턱대고 앞에 있는 날벌레만 따라다니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먹이가 바로 앞에 있는 데도 그것을 보지 못한 채, 앞에 있는 날벌레만 따라다니다가 나중에는 굶어죽는 날벌레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7일 동안 무조건 앞에 있는 친구 날벌레만 따라다니며 방황하는 날벌레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목표가 없으면 방황하다가, 귀중한 시간만 헛되이 낭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 달려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였던 황영조선수는 차라리 달려오는 자동차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그 고통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마라톤 경기는 여러 가지 운동 중에서 가장 힘든 운동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마라톤 거리인 42.195Km에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달리는 경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토너들은 어지간한 부상이 아니면 멈추지 않고 완주를 하려고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마지막 42.195Km 너머에 있는 골인지점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달려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은 과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사건을 말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를 붙잡은 것입니다. 낚아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 잡힌바 되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어떨떨 했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왜 자기를 갑자기 붙들고, 자기를 손에 꽉 쥐시었는가 하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그의 마음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자기를 불쌍히 여기셔서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사도로 불러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입니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나는 이제 이 예수를 위해 살리라. 이 예수를 나의 인생의 최대 목표요,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살리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아볼까? 예수님의 마음에 들고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나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요, 내가 달려갈 유일한 푯대다.' 그는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목표를 정한 다음 그는 주님을 더 알기를 심히 원했습니다. 주님을 더 알기를 원했고, 주님처럼 살기를 원했고, 주님처럼 가신 길을 따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10절, 11절을 한번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 하나니'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예수처럼 욕먹고 예수처럼 매맞고 예수처럼 굶주리고 예수처럼 멸시 받고 하는 일을 자청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서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에 자기도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능력을 자기도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 주님을 존귀케 하기를 원했던 것이 바울이 자기의 인생 목표로 설정한 것이었습니다.

빌1:20절로 가 보십시오. 바울의 기대, 바울의 목표, 바울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다시 한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 이것만이 바울에게 있어서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이 일을 향해 그가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 찬송을 부르면 바울의 그 심정을 우리가 알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애에 분명한 목표는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인생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있는지 우리 모두 한번 자신에게 물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에게 붙잡힌 자, 예수님의 은혜에 빚진 자, 그래서 사나 죽으나 우리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존귀케 해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는 소박한 꿈, 즉 '이것을 놓고 나는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것을 분명히 알았다면



셋째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 ‘달려간다’는 말은 원래 굶주린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하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14절도 보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주님 앞에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자로 서기 위해 절대 멈추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향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집중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이 목표,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달려간다는 이 말은 약간 강한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올림픽 경기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셨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카메라가 워낙 발달해서 자세한 동작까지 다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탄환을 가리는 100미터 육상경기,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마지막 결승전에서 달립니다. 자메이카의 ‘우샤인 볼트’라고 하는 사람이 현재 세계 100m 신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9초58의 기록을 냈습니다. 100미터를 9초58에 뜁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앞에 있는 테이프를 향해서 달려옵니다. 가슴에 누가 그 테이프를 먼저 대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얼굴 표정, 팔 동작, 다리 동작, 그 눈동자 하나 하나를 예전 같으면 못 보지 않습니까? 카메라가 저속으로 하나 하나를 분석해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오로록' 하다가 그냥 끝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사람에게 다른 생각이 있겠습니까? 오직 골인 하는 저 지점을 바라보면서 '내가 먼저 가슴을 댄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0.01초로 판가름이 나 버리지 않습니까? 바로 이와 같이 선수가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 태도를 일컬어서 달려간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긴장이 있습니다. 그 말 속에는 굉장한 힘이 담겨 있습니다. 전심을 다 쏟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형편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지금 수감되어 있습니다. 갇혀 있습니다. 언제 풀려 나올 지도 모릅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그는 이미 불길한 죽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지금 60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몸에는 여전히 괴롭히는 가시가 있습니다.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늘 어떤 통증을 달고 살고, 불편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육상선수가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가듯이 인생을 살겠다,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가볍게 들으면 안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다 포기하고 그저 앉아 있을 만도 한 처지인데 끝까지 달리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그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달리리라.' 하는 그 바울을 우리 마음에 한번 그려 봅시다. 그래서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기가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요사이처럼 볼펜이 있습니까? 종이가 제대로 있습니까? 그 어두침침한 감옥 속에서 시력도 좋지 않아 고생을 하는 마당에 글을 썼습니다.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리고는 시간만 나면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성도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가며 밤이고 낮이고 기도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대인들을 앉혀 놓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감옥에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달려가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헌신할 수 있습니까?나는 지금 무엇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셨던 십자가 사랑과 은혜가 남아 있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랑, 그 은혜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한해를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갑니다. 아직도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도 방황을 하는 분계십니까? 그 방황, 빨리 끝내야 합니다. 이제 다시한번 나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끈에서 벗어나서 우리 한번 도약하지 않겠습니까? 이 2014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기회입니다. 모두가 위기다 불황이다하지만, 이리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의 한해입니다.



오늘 바울은 사방이 다 자기를 에워싼 차디찬 감옥 한복판에서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며 당당한 고백을 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람들은 다 큰일났다,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담대해야 합니다. 이 시간 기억하십시오. 모두가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 다음 우리가 내일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에 비쳐질 그 영롱한 아름다운 빛살을 볼 수 있는 안목만 있다면,/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환경다음에 나를 만드시고 또 나를 붙들고,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손길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벌떡 일어 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합니다.



다 같이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찬양 드리기 원합니다.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모든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