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기다리라 느2:1-10 2014년 2월9일 주일 예배 느강②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4-02-09 |
조회: 1633
여러분 가운데는 "여자의 일생"을 쓴 프랑스 작가 모파상(1850-1893)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는 본래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퇴학당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신앙과 결별하기로 하고 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후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 10년 만에 유명작가가 되고 돈을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1800년대 말) 노르망디에 대 저택을,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를 갖고 쉴새없이 애인을 바꾸며 살았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군중들은 그를 흠모했고 그의 은행에는 쓸수 있는 여유로운 돈이 항상 넉넉했지만 그는 안질병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189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잃은 그는 종이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이 파탄 난 그는 정신 병동에서 몇 달을 알 수 없는 소리로 허공을 향해 절규하다가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무덤 묘비명에는 그가 말년에 자주 외친 삶의 독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그는 내일이란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그 엄청난 명성, 움켜잡은 돈도 그가 미친 듯이 쾌락에 젖은 그 모든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채 비참한 인생을 마치고 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내일이 있다, 없다는 엄청난 결과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안정되고 가치 있는 내일을 선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우선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를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그의 백성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내일을 잉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조국의 내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가 내일을 잉태하기 위해 기도하며 해야만 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이 질문을 통해 얻고자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내일을 위해 기도할 때에 동시에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1.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버린다면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조국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여 마침내 조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경과된지 아십니까? 적어도 4개월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2:1에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때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된 달이었습니다.
니산월은 4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기도를 시작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1:1에 보면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 기슬르 월에---"기슬르월은 11월에서 12월경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4개월 이상 경과한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충분히 기도한 것입니다. 충분히 기도하며 충분히 기다린 것입니다. 그 동안 느헤미야 안에서 조국의 아름다운 내일이 잉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우리 성도들 같으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언제인가부터 우리 한국인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 하는 민족, 엘리베이터안에 들어가 자동으로 닫히는 그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고 단추를 눌러 닫아야 하는 대표적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습관은 우리의 기도생활에도 영향을 끼쳐서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자 당장에 응답을 기대합니다. 소위 인스턴트 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조차 인스턴트식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란 시간과 함께 열매를 맺는 하나님과의 교통의 장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눅18:1이하에서 주께서는 기도를 가르치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탄원하는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그러면 왜 주께서는 당장의 응답보다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게 하실까요? 아마도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기도의 응답 그 자체보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더 중시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한 재벌가문이 있다 하십시다. 재벌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상속받는 일에 무엇보다 관심을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재벌 아버지가 지혜로운 분이라면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재산의 상속이 아닌 상속받기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는 아들로서의 인격적인 성숙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자식농사를 짓는 비결이 남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현대 가문의 정주영 회장은 모든 자식들을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교육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자식이 귀할수록 혹독하게 길렀습니다. 삼성그룹을 이룬 이병철회장은 기록하는 메모습관을 길러주었고, “말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재벌 중에 LG가문은 아주 특이한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 사귄 사람과는 헤어지지 말고,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라.” 그런데 한화가문은 “단맛 쓴맛 다 겪어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말하는 대로 되고, 교육하는 대로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기업을 승계를 위해 적당히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선 왕조도 스물일곱 명의 임금이 있었는데 이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데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세자의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 4에 일어나서 5시까지 문안 인사를 하고 새벽 5∼7시까지 조강(아침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7∼8시 아침식사를 하고 9시부터∼11시까지 주강(낮공부), 낮 11시∼1시 점심식사, 그리고 오후 3∼5시 석강(저녁공부), 오후 5∼7시 저녁식사, 밤 9∼10시 문안인사 후 취침. 그리고 중간에 ‘소대’와 ‘야대’라 하여 일종의 보충수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기까지 철저한 교육으로 내일의 조국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내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의 은혜 앞에 오늘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2. 기도하며 계획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또 한가지 한일이 있었다면 내일을 계획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자, 이제 느헤미야가 그가 모시고 있던 왕으로부터 그가 기다리던 결정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마음속에 품고 기도하던 제목을 내어놓게 됩니다. "내 고향 내 조국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왕은 다시 묻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되겠느냐?"고. 이때 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가 "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소요될 시간을 산출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7절 이하에는 그가 왕에게 이 프로젝트의 완수를 위한 구체적인 도움의 리스트를 열거합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 기간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는 우선 왕이 주변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림으로 그가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일에 장애가 없게 명령서를 하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8절에는 왕의 삼림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성과 가옥 건축에 필요한 충분한 재목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계획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두가지 상이한 입장이 존재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①.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되었지 계획이 무슨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입장을 극단적인 신비주의적 접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②.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계획하면 되었지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고를 역시 극단적인 이성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 접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계획합니다.
기도에서 비전과 계획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느냐 못 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운데 하나가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가 계획하지 못할까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계획하고 실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 맥스웰은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입니다."(John Maxwell) 그러므로 복된 내일을 잉태하고자 하십니까?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비전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주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내일을 계획하십시오. 치밀하게 계획하십시오.
3. 그리고 기도하며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찾고 그 때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기회가 옵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귀중한 기회를 놓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은 항구에 큰 배들이 직접 접안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대시대에는 대부분의 항구들이 수심이 낮아서 평상시 큰 배들이 항구에 접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심이 깊어지는 밀물 때 조류의 힘을 빌려서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밀물 때가 아닌 경우 배들은 항구 근처에서 밀물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항구 근처에서 밀물 때를 기다리는 배를 가리키는 말이 라틴어로 '옵 포르투'(ob portu)입니다. 이 ‘옵 포르투’는 밀물 때 항구에 들어가려고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 때를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 ‘옵 포르투’라는 말에서 영어의 ‘opportunity’ 즉 ‘기회’라는 말이 왔습니다. 항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들에게 물이 밀려드는 밀물의 그 순간은 항구에 들어갈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배가 만조가 될 때 그것을 이용하여 항구로 들어오는 것처럼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 때를 놓치면 삶의 그 모든 항해가 얕은 곳에, 불행에 매이게 됩니다.
우리는 기회를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고, 그 기회가 찾아올 때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내 인생에 주어진 기회를 붙잡지 못해서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내 모든 인생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느혜미야를 보십시요!! 2절에 보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 즉 근심의 표정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3절의 느헤미야의 대답을 읽어보십시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까?" 4절에서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는 다시 묵도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달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이제 5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그의 요청을 내놓습니다. '---나를 유다땅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는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기회를 찾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그 기회를 얻기 위해 기도해 오지 않았습니까? 1:11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이 사람(아닥사스다 왕)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 기도는 구체적으로 기회를 얻기 위한 기도였고 드디어 그 기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을 전도하고 그가 구원받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가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십니까? 정말 그가 구원받기를 소원하신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에게 전도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막연히 기도하면 주께서도 막연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구체적이라면 주님의 응답도 구체적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위하여 기도했고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그 기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 해를 시작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갑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도에 걸 맞는 계획과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 아십니까? 주님이 제일 쓰기 어려워하는 인생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살 의욕이 없어지고,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 사회가 나를 포기하고, 내 형제들도 나를 포기하고, 내 마누라도 나를 포기했어도(마포불백이 되었어도-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나 스스로 아직 나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았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분명히 다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거기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 없는 내일의 기대는 허망한 꿈입니다. 여러분, 내일을 향한 자들은 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꿈은 값을 다 갖고 있습니다. 꿈에는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 값을 치러야 합니다. 큰 꿈이면 그 값이 비쌀 것입니다.
작은 꿈이면 아마 그 값이 조금 쌀 것입니다. 그 꿈이 특별히 고상해서 많은 사람이 감히 꿀 수 없는 그런 독특한 꿈이면 아마 그 값은 대단할 것입니다. 어떤 꿈도 값이 없는 꿈이 없습니다. 꿈은 큰데 싼값으로 그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꿈을 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에는 외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할인매점도 없습니다. 일단 내가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성취하기를 원하면 그 꿈의 값에 따라서 내가 희생을 치러야 되고 내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달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이 얼마나 비싼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떤 값을 치루든 그 값을 치루는 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값을 치루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강요당해도 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80여군데가 되는 크고 작은 사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IMF때부터 시작한 이 심방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업장마다 다양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사업장에 어떤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하며 길을 떠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 사업장을 당신의 기업으로 삼으시고 그 기업을 통해 선교하는 사업장이 되기를 원하심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열매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맺는 씨를 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요즘, 우리 모두가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다 어렵기도 하지만 특별히 우리나라 가운데서도 어려운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연 이 터널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빠져나오긴 하겠지만,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다릴까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그 섭리를 믿을 수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지금의 현장에서 내일을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때문에 내일을 기꺼이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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