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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감사하며 사십니까?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7-06 | 조회: 2046
감사하며 사십니까? / 신명기 16:16-17. 2009. 7/3



Master of Influence라고 하는 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 드리는 특별한 상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도 탑을 누리는 자리에 있을 때 주는 상이기에 많은 사람이 타지를 못한 아주 특별한 상입니다. 얼마 전에 지그 지글러(Zig Zigler)가 이 상을 받았는데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정상에서 만납시다'라고 하는 책을 쓴 저자입니다. 그가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 자서전의 마지막 결론 부분만 말씀드립니다.



그 결론에서 그는 딱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자신은 혼자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천사가 나를 늘 지켜주셨다' 하는 것을 거듭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가족들에게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 딸과 그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서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귀한 동반자였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그 이웃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 감사하고, 감사외에 다른 말이 없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성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세를 누렸다고?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또 감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느냐,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메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뜻 깊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고 있는데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하며 사십니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신앙생활은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피 눈물나는 수고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피 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가 나에게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아야 자동적으로 감사가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곧 유월절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3절기를 앞에 놓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마음에 잘 정리해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왜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날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 만에 지키는 절기라 하여 칠칠절, 오십 일째 되는 날이라 하여 오순절,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라 하여 초실 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뿌린 씨가 열매되어 그들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 첫 열매에 대한 감사를 의미합니다. 구약 맥추절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맥추절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신령한 첫 열매,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맥추절은 애굽에서 나온지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그 백성을 광야교회로 조직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교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모일 때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약교회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 교회를 통하여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며 이 교회 안에서 하늘가는 복을 배우게 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살아가는 이 행복감 이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둘째는 감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해야 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1년에 3차례씩 명절을 지키라고 당부하시면서 재미있는 명령 1가지를 주셨습니다. 곧 명절을 지킬 때마다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얼굴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킬 때에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만 이렇게 보이라고 했을까요? 남자들만 감사하라는 말일까요? 언뜻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가정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얼굴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특히 맥추절이 되면 곡식을 추수한 다음에 모든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데 대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 하나 하나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마시는 물 한 방울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습니다. 나 같은 것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일용할 양식을 때를 따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감사가 얼마나 많아야 되겠습니까?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한반도 조그마한 땅에 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군데 군데 손바닥만한 농경지가 여기저기 박혀있습니다. 확 트인 평야가 있는 곳은 남한에서 거의 한두 곳 밖에 없습니다. 모두 산과 산 사이에 조그만 논바닥들이 바둑판처럼 박혀있습니다. 거기에서 농사를 지어 우리 조상들이 살았고,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 이제 쌀 쌓아놓을 일이 꿈만 같고,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고민을 하는 참 기가 막힌 나라가 되었습니다. 태풍이나 전염병이 지나가면 수확할 과일도 없을 것 같은데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과일들이 종류대로 시장바닥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채소 역시 너무 많이 출하되어서 가격이 폭락 되곤 합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 번째로 예물을 들고 나와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명령하시기를, 3번 절기를 지키면서 감사를 드릴 때 반드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16절에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그리고 17절에는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원인을 조사해 보면 1순위가 언제나 "교회에 나가면 돈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래전 종교 개혁자인 칼빈은 당시의 교회를 가르쳐 "오늘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해 바른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 문제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해 보면 그 비유의 절반이상이 돈과 관련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돈은 절실한 인간 현실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본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물이라고 불렀는데 제물을 영어로는 sacrifice 곧 희생의 제물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헌금의 성격은 어느 정도 희생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그것은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성의 없는 헌금행위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마치 싸구려 은혜인 것처럼 은혜를 격하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독일 고백교회의 순교자요 신학자였던 본 훼퍼 목사는 당시의 독일교회가 무력해진 원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은혜'(cheap grace)로 전락시킨 것 그리고 희생정신을 상실한데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그러면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이란 희생만 하다가 마는 것이냐고 물을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희생은 일종의 씨 뿌림과 같은 것입니다. 씨 뿌림은 땀흘림이요 희생이지만, 거기에는 열매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비밀을 안다면 희생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고후9장에서는 이것을 '심음과 거둠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고후9:6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8절의 약속의 말씀을 보십시오."하나님은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은 결코 자학적인 희생이 아닌 기쁨의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래드패츠(Dr.Alan Redpath)라는 신학자요 목사님의 책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어떤 교인이 와서 그에게 "목사님, 우리 교회가 교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그때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눈만 뜨면 우리 부부를 보기만 하면 그는 줄곧 무엇인가를 달라고 졸라댔지요.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지난해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그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자매님, 살아있는 교회는 헌신을 요구합니다. 죽은 교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자매님의 몫이지요." 래드패츠는 C.T.Studd의 말을 인용하면서 헌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우리의 어떤 헌신도 결코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익산에 가면 국내 최대 축산업 공장인 하림 공장이 있습니다. 이 하림 공장의 회장이 이리 신광 교회를 섬기는 김 홍국 장로님입니다. 그 분은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사업을 하다보니 시시로 변하는 닭 값이 시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기업이 되려면 생산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사육과 가공과 유통을 함께하여 소비자에게 큰 반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1986년 하림 식품을 출발시켜 하림은 농장과 공장 유통을 통합하게 됩니다. 1997년 코스닥에 등록하고 뒤이어 일일 생산 능력 200톤 규모의 육가공 신축 공장을 건립한 이 공장이 지금부터 5년-6년 전에 두 번의 화재로 1,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됩니다. 너무 엄청난 피해였고 어떻게 보면 재기가 힘들어 보이는 절망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일을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화재 사건을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산이 날아간 것 보다는 과거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이 스치면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에는 웬 만한 일을 당해도 눈물이 없었는데 회개의 눈물이라고 할까요. 대책회의를 마치고 직원들 안 보는데서 실컷 울었지요” 국민일보는 계속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지만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던 그에게 공장 화재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불이 난후 화학적인 변화가 생겼다. 성경을 읽다보면 다음 장이 궁금해지고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설교가 기다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고난이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공장 화재 3개월 후 자신이 섬기던 이리 신광 교회 건물을 다시 짓는 사역에 건축 위원장으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회사 사태 수습에 아직도 여념이 없었겠지만 어쩐지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해야 하겠다는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문화적으로 탁월해야 안 믿는 이들을 전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땅 값을 빼고 5년 동안 450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아마 한국 땅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예배당 건물을 완성하여 주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가 새 예배당 건물을 짓는 동안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닭, 오리, 돼지고기 사료 부문에서 국내 점유율 제1위로 떠올랐고 모기업 하림은 지난해 3618억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25개 계열사중 양돈 업체인 선진은 2108억원, 농수산 홈 쇼핑은 2108억원, 제일 사료, 제일 곡산, 천하제일 사료는 3063억원, 역시 양돈 업체인 대상 팜스코는 3537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야곱, 이삭 모두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고난도 축복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고생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자 계속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고난의 한 복판에서 뜨거운 감사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림 공장의 식당 벽에는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는 내용의 찬송가 503장의 한 대목을 서예 글자로 써 놓았습니다. 김 홍국 회장은 화재 사건이 일어난 그 을씨년스러운 현장에서 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헌신하면서 재기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그의 인생의 새 시대를 열었고 오히려 그는 고난 앞에서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삶으로 더 큰 인생의 부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요즘, 우리 모두가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다 어렵기도 하지만 특별히 우리나라 가운데서도 어려운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연 이 터널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빠져나오긴 하겠지만,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다릴까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그 섭리를 믿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내 삶의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만 있다면, 내 삶의 죄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나를 지키신다는 이 믿음,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기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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