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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7-21 | 조회: 2491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막6:30-34. 2009. 7/19



얼마 전에 한국에도 오셔서 귀한 은혜를 끼친 고든 맥도날드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저술가요 강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복음사역에 있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받는 이 분이 쓴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같은 인생이지만, 전혀 다른 두 삶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유형의 인생은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의 사람은 '부름 받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똑 같이 바빠요.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얼마나 분주하게 보내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정이라든지, 또 직장과 사업, 그리고 심지어 교회 생활에서까지 얼마나 복잡한 가운데 정말 쫓기는 듯 살아갑니까?



그러나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한 인생은 쫓기는 듯이 그냥 그렇게 끌려 다니며 사는 인생이고, 다른 한쪽은 정말 보람차고 영광스럽게 살아갑니다. 이 둘의 차이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뭐, 간단해요. 바로 부르심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다릅니다. 자신의 삶에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힘들어도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습니다. 심지어 잿더미에 주저앉아도 재기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 만에게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인생을 쫓기는 듯이 살아갑니다.



이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여유라든지, 창의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보다 기능적인 삶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한 사회학자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콘크리트 사회입니다. 현대 도시인들이 아파트, 빌딩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살다보니 마음과 사고까지도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나 깊이 상처를 안겨 줍니다.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는 이웃을 돌보고 섬길 기회가 주어져도 그 복을 놓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피드 시대입니다. 남보다 좀더 빨리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경쟁대열에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피곤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씨는 신세대 문화를 가마솥 문화라 할 수 있는 옛시대에 비해 빨리빨리 세대, 라면 세대라고 일컬었습니다. 라면이 얼마나 많은지 숫자마다 라면이 있습니다. 일 - 일번지 라면, 이 - 이백냥 라면, 삼 - 삼양 라면, 사 - 사천 짜장면, 오 - 오뚜기 라면, 육 - 육계장면, 칠 - 칠보면, 팔 - 팔도 라면, 구 - 구운면, 열 - 열라면 - 소위 인스턴트 문화입니다. 셋째 현대사회는 스트레스 시대라는 겁니다. 스트레스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의과대학 연구팀이 어린아이와 어른의 웃음에 대해 연구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400-50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 15-20번으로 감소된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자기의 탐욕 때문에 인간은 자기에게 정말 축복 되는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콘크리트 문화, 스피트 문화, 스트레스 문화에 중독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쉬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가 궁금하지 않고 전화도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슬픈 연속극을 보면서 극본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도 궁금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같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도 같고 산이나 바다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쉬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 지금은 내가 쉬어야 할 때이구나'라고 느끼지 않는 현대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생각을 가장 절실히 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제가 쉼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나를 비웃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보니까 중증 환자 같습니다. 일 중독증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신만 잘 쉬면 다 잘한다." 그래서 이 설교는 제가 제게 하는 설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워 파송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능력을 받아 각 곳에 흩어져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고,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가 일어나고, 죄인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깐 쉰다는 말은 휴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여기에 어떤 단어가 스트레스를 일으킵니까? 여기 “낱낱이” 란 단어입니다. 정확하다는 면에서 매우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착하마자 아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몰아세우면서 그들이 있었던 일들을 막 보고하기 시작 했을 거예요.. 낱낱이 보고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마도 그보다 중요한 안식의 여유가 제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님이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가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고통의 시기 어떤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저마다 땀 흘려서 우리는 여기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모두 다 힘겹게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인생은 장애물 경기와 같다.” 장애물 경기를 허들 경주라고 부르는데, 그냥 달리는 게 아니리 중간 중간 허들을 여러 개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합니다. 종목에 따라서는 허들 외에 물웅덩이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경기를 치르게 합니다.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달리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관중들이야 흥미도 있고 스릴도 있어 구경할 만하지만 선수들로서는 정말 어려운 경기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가리켜 장애물경기와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은 장애물 경기보다 훨씬 더 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애물 경기는 장애물을 미리 예상하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장애물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돌출할지 전혀 모릅니다. 미리 연습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긴장감이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돌아 온 인생을 길을 여러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최근에 가져 보셨습니까?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막1장에 보면 우리 예수님의 하루 스케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굉장히 바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 오전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다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방해를 하자, 귀신을 쫓아내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마 이 때는 안식일 오후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냥 발 씻고 주무신 것이 아닙니다. 33절에 보면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지방에 퍼져서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을 때,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시몬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많이 피곤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살인적인 스케줄이 아닙니까? 이쯤 되면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몹시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조금 과장하면 파김치가 되듯이 녹초가 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날 늦게까지 사역하셨기 때문에 늦잠을 주무셨습니까? 아니면 오전 스케줄을 다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까? 아닙니다. 1:35절을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피곤한 삶을 자신만의 휴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재충전의 시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듯이 정신 오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요구하나 우리는 그 요구에 응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자꾸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쉼을 얻는 비결을 갖고 이 현실을 대처하지 못하면 비탈을 올라가던 소가 주저앉아 버리듯이 언제 우리도 모두 주저앉아 버릴지 모릅니다.



여기 ‘쉼?은?아나 포신’인데 ?아나?(ana)는 ?다시?라는 뜻이고 ?포신?(pausin)은 영어의 ?pause' 다음 단계의 행동을 위한 '멈춤'이란 뜻입니다. 쉬고 나면 새로운 창조를 위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은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최근에 많이 읽히는 시중 책 중에 ?행복한 멈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본래의 제목은 ?행복한 멈춤?이 아닌 ?능력 있는 멈춤?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하루에 단 3분이라도 멈추어 서서 행복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경이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여기 한적 한 곳은 갈릴리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벳세다라는 평야를 말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아주 작은 사막이었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광야, 자기만의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에 방 하나를 여러분 광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쉴 수가 있는 곳, 혹은 여러분 집 근처의 조용한 오솔길, 혹은 어느 산마루, 늘 내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찾을 수 있는 광야, 거기서 주 앞에 엎드리고 기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 의 광야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의 회복을 위해서 이 한적한 곳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는 모처럼 전 교인이 나들이를 나갑니다.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환경 속에 잠시 들어가서 일상의 삶을 내려놓고 그 동안 서로가 바쁨 때문에 교제하지 못한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또 말씀 가운데 자신들을 돌아보고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지고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마음은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맞물려서 이번 연합 수련회를 포기한 분도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함께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일 가운데 하나가 아마 건강 검진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검진을 받다가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여러분은 그 때부터 그 문제의 원인을 고치려고 병원에 가기 싫어도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고 고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저는 이번 수련회가 영적 건강 진단을 받는 기간으로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며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현장이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저는 이제까지 지성이든 건강이든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하늘이 열리지 않아’ 제대로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해주시지 않은 재물, 그것 때문에 싸움 나는 것을 숱하게 봤습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과 사용해주심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갖춰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참 묘한 것은, 내 손에 있을때는 초라했는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니까 화려한 보석으로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닫힌 세계에서 살지 말고 열린 세계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번 연합 수련회에 성도의 교제와 자신의 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열린 하늘 가운데 그분의 축복을 누리는 은혜의 현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휴식을 영어로는 recreation 즉 재창조라고 합니다. 휴식은 ‘재창조’가 된다는 뜻입니다. 요즈음에는 국립공원에 안식년제도가 있습니다. 산도 안식년을 만들어 입산금지를 시켰더니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산이 깨끗해지고 울창해집니다. 단지 쉬게만 해주었을 뿐인데 산이 산다워집니다. 단지 휴식만 주어도 산이 창조 시와 같은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휴식은 재창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산에게만 쉼이 필요할까요? 정말로 쉼이 필요한 대상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을 명령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면, 그것은 일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암세포란 자기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세포입니다. 쉬어야 할 때 쉬고, 번식할 때 번식하여야 하는데, 쉬지 않고 계속 자기번식을 진행시켜서 결국은 생명을 죽게 만드는 것이 암세포입니다. 사람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번영만을 추구하면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암세포처럼 되어 파멸을 몰아온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그만큼 생산도 늘고 이익도 생겨날 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여 생명에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하여서입니다. 더 많은 이익은 바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더 잘 먹고 더 좋은 집을 사고 더 멀리 여행을 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쉬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기 때문이 아니라, 밑 빠진 독과 같은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은 죄 입니다. 이 죄 때문에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번영과 이익을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다스리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참된 쉼은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휴식을 통해서 한 박자 쉬면서 내가 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지, 일을 해서 얻은 수입은 어디에 쓸 것인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일을 돌아보고 방향을 다시 수정하는 그런 휴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챙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쉼은 사람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이제 쉼을 위해 결단하십시요!! 구약에 불의 종이라고 일컬었던 엘리야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제사장들 850명과 영적 싸움을 벌이고, 또 비가오기를 탈진하리만큼 간절히 기도하고, 비가 올 때에 아합왕보다 더 빨리 달려 이스르엘까지 간 이 엘리야는 몹시 지쳤습니다. 이때 이세벨왕후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에 그는 이 협박을 감당할 힘이 없었습니다. 쉽게 무너졌습니다. 음식을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물을 먹이고 어루만져 주시면서 호렙산 동굴에서 쉬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육체적으로, 마음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회복되었을 때에 새로운 사명을 맡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잠깐 쉬십시오. 이제 여러분 나름대로 진정한 회복을 위한 안식이 무엇인지 찾으십시오. 미래를 준비하는 그 안식은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균형 있게 쉬고 회복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더 멀리, 더 복되게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여러분 오래간만에 주님을 묵상하시고 깊이 주님 안에 빠져보세요.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 그 주님의 품에 내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고 그 품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또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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