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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축복의 그림을 그립시다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7-27 | 조회: 2880
축복의 그림을 그리라. 수18:1-10. 주일 설교 7/26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본래 ABC TV에서 한 흑인 비즈니스 맨의 인생을 다큐로 내 보낸 것이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자 이것을 다시 본격적인 영화로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Chris Gardner)의 이야기는 계부의 폭력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가는데서 시작됩니다. 폭력을 견디지 못한 그의 어머니는 가드너가 8살이 되던 해에 계부가 있던 집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결국 가드너는 남의 집에 입양되어 어린 시절을 살아갑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정 폭력, 알콜 중독, 아동 학대등의 상처로 얼룩진 삶이었습니다. 세일즈 맨으로 청년 시절 새 인생을 향한 몸부림을 해보지만 생활고로 어느 날 세금도 못 내고 자동차 마져 압류 당하자 전세 집에서 쫓겨 나가 거리로 내몰리고 그의 아내는 아들을 아빠 곁에 놓아 둔 채 떠나 버립니다.



1980년대의 을씨년스런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그는 하나 밖에 없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때로는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때로는 노숙자 쉼터에서 처절한 생존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는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인 기도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고, 그리고 기도하고 있는 한 그는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었다고 후일 고백합니다. 그에게 노숙의 좌절 가운데서도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올 또 하나의 미래에 대한 그 희망의 그림을 그리는 이 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어느 날 그는 주식 중개인을 만나 인턴이 되고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 회사’를 설립하고 1억 8천만 달러의 윌가의 신화적 사업가가 됩니다. 그는 시련의 강을 건너 마침내 그토록 그가 소망했던 소망의 그림을 실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접어둔 채 희망을 포기하거나 주저앉는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무력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나안 정복에 나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아직도 7지파가 땅을 차지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 지파들에게 지금 여호수아가 호되게 닦아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여기 지체한다는 단어는 ‘늦추다, 게으름을 피우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가나안 땅은 이미 주신 땅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신 땅'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나탄'이라는 말인데 약속해준 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너희에게 주리라고 약속해주신 것이고 이미 그들에게 주시기로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난 번 17장에서도 보셨지만, 땅이 적다고 불평하고 있는 요셉 지파에게 여호수아가 뭐라고 야단을 칩니까? 17:18절에 보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산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 내리라.” 아멘! 하나님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개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요단 서편의 일곱 지파는 열정이 없습니다. 비전이 없습니다.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계속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은 분이 계시다면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여러분 속에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 29:18의 말씀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묵시라는 말이 곧 비전이요, 꿈입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꿈이 없으면 인간이 경고 망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전이란, 꿈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맞닿아 있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꿈이 없는 인간은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자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항상 목전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은 방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꿈이 없으면 목회자이든, 교인이든, 어떤 인간이든 방자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꿈을 가졌다, 가지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어떤 값을 치루고 있습니까?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던 헬렌 켈러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때 헬렌 켈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꿈이 없이, 비전이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여호수아가 말씀합니까? 4-6절에 보시면 ‘너희는 매 지파에 삼인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에 나누되 유다는 남편 자기 경내에 거하고 요셉의 족속은 그 북편 자기 경내에 거한즉 그 남은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올지니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림을 그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희망을 갖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서 세 사람씩 선발을 해서 차지해야 할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게 합니다. 그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구체적으로 지도를 그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이 7지파에게 그림을 그려오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그리라’는 말을 ‘축복의 지도를 그리라’는 말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자연에는 자연법칙이 있고, 과학에는 과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축복 받는데도 축복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축복의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행복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성공하기 원하는 사람은 성공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축복받기 원하는 사람은 축복의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그림은 그린다는 것은 곧 비전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저는 그림이란 그 어원이 '그립다 그리워하다'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워해서 그림을 그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운 것을 그립니다. 소원하는 것을 그립니다. 그런 관심이 좋은 작품을 낳고 심지어는 걸작품이 탄생되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 피카소의 <황소머리>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피카소가 길거리를 지나다가 버려진 자전거를 보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황소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을 떼다가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약 300억 원 정도합니다. 버려진 쓸모없는 자전거 핸들과 안장도 피카소의 손에 들려지면 작품이 됩니다.



창세기 13장 17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그 후에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비록 조카 롯에게 기름진 소알 뜰을 주었지만 너는 낙심하지 말고 나머지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며 보라는 말씀입니다. 두루 다니며 본다는 말씀은 오늘 본문의 지도를 그려오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아직은 차지하지 못한 땅이지만 네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그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을 밟으면 반드시 너에게 주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절망의 골짜기에서 희망의 정상으로 이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해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자전거 경주인 뚜르드 프랑스를 6연패한 랜스 암스토롱은 ‘자전거, 그 이상의 이야기’ 라는 자서전에서 말합니다. “내게 1%의 희망만 주어져도 나는 그 희망을 위해 달린다.” 단 1%의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향해 달리면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습니다. 그 1%의 희망은 생명을 위협하는 암도 정복하게 만듭니다. 그 1%의 희망은 죽음도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미래를 희망 가운데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힘들고 지치고 곤고하십니까? "나는 안 돼, 할 수 없어, 나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고민하며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빛이 없는 캄캄한 밤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고독과 절망 속에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바로 그 절망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 다가오셔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날 믿음에 대해 존재하는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믿음을 아무 것도 안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의 장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행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포기할 수 없는 최선의 행동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다시 크리스 가드너의 <행복을 찾아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는 아버지 가드너가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누구도 너에게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게 내 말(아비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알았니? 네게 꿈이 있다면 넌 무엇보다 그 꿈을 지켜내야 한다” 히11:1의 말씀이 그것이 아니었나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상을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응답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건강 주실 것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축복의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8-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뽑으리라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리고 실로 진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더라’



보십시오. 지금 이들은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일곱 지파는 순종함으로 두루 다니며 지도를 그려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합니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싸우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믿음의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부분에서 실수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하나님 최선의 결과를 주셔야지 왜 이렇게 신통치 않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비록 사람이 계획하고 뜻을 세우지만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16:9).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꾸고 하나님은 일하시는 이 소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리고 안 된다고 말하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이제 우리 역시 다시 한번 일어나십시다. 일어나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한 순례를 계속하셔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시련의 장에서 부르짖어 기도했어도, 말씀에 대한 순종을 결단했어도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크게 변화가 따라주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미래의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기도를 들으신 주님, 말씀을 주신 주님, 그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인생의 광야를 계속 걸으셔야 합니다. 이미 함께 하심을 그분은 징조로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범람하던 요단이 열리던 그 광경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리고가 맥없이 무너졌던 그 순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이 모든 기적의 주인이 여전히 함께 하시다면 그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한 순례를 계속하셔야 합니다.



일찍이 패턴 장군은 전역하는 부하 장병들을 훈시하는 말 가운데 흔히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먼 훗날 그대들의 후손들이 그토록 처절했던 전쟁 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물을 때 그대들은 자랑스럽게 그렇게 대답해라. "나는 대 패턴 전차군단의 일원이었다."역사의 대열을 놓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하는 사람 가운데도 패잔병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승전군인처럼 자신만만하고 긍지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 한번을 드리더라도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기분으로 오는 사람이 있고 결혼식 에 오는 듯한 행복감에 젖어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늘 긍정적인 사람들 에 의하여 창조되어 집니다. 언제나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 어두운 구석만 파헤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한발자국도 전진해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 제가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이것'이란 무엇일까요? 5단계의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1단계,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함정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쉽게 빠집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2단계, 이것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함정인 것을 알지만 나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주 평안하고 즐겁지만 그러나 무엇인가 찜찜합니다. 3단계, 이 함정에 빠져있으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기쁨과 감사입니다. 4단계,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함정에서 끌어 올려주는 팔과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5단계, 이것의 반대말은 도전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안주'입니다. 아무리 인생의 방향을 올바로 잡았다 할지라도 안주, 태만, 자기 안일함에 빠져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개인적인 열매로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결코 좌절치 않고 행복의 그림을 찾아 나섰던 크리스 가드너에게 필요했던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가드너는 한 크리스챤 기자에게 “당신이 현실의 좌절의 벽을 뛰어넘어 행복을 찾기 위해서 얼마큼이나 하나님이 필요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제가 노숙자의 삶을 살 때나 CEO의 삶을 살 때나 항상 저는 교회에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하나님이 주실 꿈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는 항상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크게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도화지에 마음껏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나의 모습, 축복의 모습, 잘되는 나의 모습, 자녀들의 모습을 그리십시오. 지금보다 더 창대케 되는 직장의 모습과 사업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날마다 부흥하는 동성교회의 모습을 가득 그려보십시오. 날마다 축복의 지도를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리십시오. 그리고 단순히 허황된 꿈이 아닌 구체적인 비전으로 가슴에 새기고, 묻으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이 여러분 자신의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내 삶이 되고, 그 비전을 위해 내가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그 꿈은 마침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축복의 열매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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