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 - 네 자녀를 양육하라① 엡 6:1-4. 2015년 5월3일 어린이 주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05-06 |
조회: 1463
오늘은 가정의 달 첫 번째 주일로 어린이 주일입니다. 시127:3절에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러다”라는 말씀을 할 때, 어느 영어성경 번역본에 기업을 숙제라고 번역된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숙제를 우리가 세상의 방법을 가지고 풀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지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숙제를 어떻하면 축제의 자녀로 키울 수가 있을까? 여러분도 아시지만, 우리의 삶이 예측불허입니다. 자녀를 다 키우시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미 성공적으로 자녀를 키우신 분도 계십니다. 대부분은 지금 자녀를 양육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부모의 꿈이 있다면 자식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자식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자녀는 아비의 면류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잘 키워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네 자녀를 양육하라」입니다. 이 얼마나 당연한 얘기입니까?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누가 있겠으며, 양육하되 잘 양육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성경은 우리에게 “네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 마음, 어머니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아비들아!”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여서 우리에게 맡긴 소중한 자녀들을 어떻게 키울까에 대해 성령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왜, 어미들아 하지 않고 ‘아비들아’ 했을까요? 이 말을 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로마시대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로마시대엔 “빠드라아 뽀데스따스(Patria potestas)”라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법이란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자는 자기 자녀에게 절대적인 소유권이 있었습니다. 자녀를 버릴 수도, 노예로 팔 수도, 교육이라는 명분아래 채찍질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성경은 혁명적 선언을 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로 노엽게 하지 마라. 로마의 법률이 아니라 주님의 교훈으로 양육해라. 네 법이나 전통이 아니라 주님의 훈계로 양육해라!” 여기 주동사는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까요? 4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주 간단하지요. 아주 분명하지요. 주동사는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 중 첫 번째는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여기 ‘노엽게’라는 이 말은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고 격노케 하는 것은 더 이상 배가 항해할 수 있는 힘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의 미래의 길을 꺽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골3:21절에는 ‘자녀들을 격노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 세대를 가르쳐 ‘성난 세대’(angry generation)라고 표현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성난 세대를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의 자녀들이 그렇게 성난 상태에 있게 된 다양한 원인들 중 가장 보편적인 원인들을 지적할 수 있다면 저는 세 가지 1)방임과 2)과잉 보호, 3)과잉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거의 방임상태에 버림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방임 못지않게 나쁜 것이 과잉보호입니다. 과잉보호의 뿌리는 불신입니다. 자녀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잉징계는 결정적으로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원인입니다. 징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과잉징계를 경계합니다. 그것은 자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잃는 것입니다. 성난 자녀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떤 경우에도 부모는 성난 상태에서 자녀들을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자녀들을 향한 속상한 마음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 성경적 대답은 ‘성령 충만’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가정에 대한 그의 교훈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엡5:18을 기억하십시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자제력입니다. 부모의 감정이 다스려지지 못한 상태는 마치 술 취함과 같습니다. 성경적인 자녀 양육을 원하신다면 먼저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자녀들을 인해 속상한 상태에 계십니까? 먼저 엎드려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구하며, 성령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적 자녀 양육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절하반절에 나온 말씀처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는 주의 관점에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 주의 교훈 “The training” 주님의 훈련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예방에 대한 성격이 강합니다. 그리고 여기 “훈계”란 치료의 성격이 강합니다. 신속한 치료를 말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쳐주는 치료, 이것을 훈계라 얘기했습니다. 교훈과 훈계- 이것은 내 경험과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녀들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일관성’과 ‘균형’입니다. 부모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양육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매뉴얼’입니다.
여기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가 무엇인가? 묵상하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저 아이를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비전과 목적에 맞게끔 양육할 것인가? 기도하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록펠러입니다. 10가지 주의 교훈 지침을 만들어서 이 아이에게 양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그 어머니의 양육의 지침을 따라서 그 자녀들을 양육하기를 기뻐하는 지침 10가지가 있습니다.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그 아버지가 복을 주신다.2. 평생 목사님과 좋은 관계 안에서 살아라.3. 주일 예배는 항상 본 교회에서 드려라.4. 평생 십일조 주머니를 준비하고 먼저 그 곳을 채워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마라.6. 아침에 네가 세운 목표와 비전을 위해 기도해라.7.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반성하고 기도해라.8. 아침밥 먹기 전에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기쁨으로 도와라.10. 예배시간엔 꼭 앞자리에 앉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를 아름답게 키워보고 싶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학교는 좋은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또한 그 학교를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래서 자살이 속출하고 그리고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충격적인 일들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이제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이 아름다운 선물들을 잘 키울 의무가 분명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자녀의 실패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녀의 무능력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 자녀의 방황을 기쁨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한나처럼 자녀를 위한 끊임 없는 기도입니다.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만이 내 가정 내 문제를 치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도의 무릎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자녀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해도, 약속의 말씀, 우리 인생의 지침서인 말씀 붙잡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만이 갖는 힘, 이 위대한 사랑의 힘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합시다. 자식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