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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 ②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2015년 5월10일 어버이 주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05-12 | 조회: 1460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시면서 은혜를 베푸신 부모님의 노고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생각하며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세월의 덧없음을 생각합니다.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면 많은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회에 70세 이상 된 어르신들을 보시고 멀리 포천 쪽으로 가서 바람도 쐬고 음식도 함께 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함께 나들이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아픔을 가졌습니다. 희어진 머리. 굵게 패인 주름살, 구부러진 허리와 잘 걷지를 못하는 모습이 왠지 마음에 진한 아픔이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노년에 자신을 생각하면서 시편 90:10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모세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평범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생은 매우 빠름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감하게 되는 것을 요즘 느낍니다. 어버이 주일을 지키는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우리들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노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입니다. 우리나라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도 잘 알려진 독일의 문호 괴테는 노년기를 지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내용을 그의 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노년은 상실의 시기이다. 건강, 돈, 일, 친구 그리고 꿈을 잃어버리는 시기이다.’ 노년은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 온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시기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 삶을 지탱해 준 것들 하나씩 잃어버리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노인들의 평균 수명 증가와 가임 여성들의 출산율 저하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노령화 사회현상이 촉진되면서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사회 보장 문제가 최대의 사회 현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논의되기를 기피하고 있는 최대의 숨겨진 사회 현안이 소위 노인 학대의 문제와 고독사의 문제입니다.

지난 2013년의 통계에 의하면 그해 한 해 동안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무려 1717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5시간에 한 명씩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고독사로 의심되는 것까지 모두 합치면 11,0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노인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가구 수가 2000년에는 54만 4천 가구였는데, 2014년에는 125만 2천 가구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0년 후인 2035년에는 독거노인 가구 수가 343만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풍요로워지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데, 풍요와 문명의 이면에는 고독의 그늘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노인들 중 해마다 일만 5천명 이상이 고독사하거나 이들 중에는 외로워서 일부러 도둑질을 하고 감옥에 가서 지냅니다. 외로움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흔히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은 많아졌는데 그 안에서도 고독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노인 학대의 문제입니다. 어느 기관이 조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 무려 10%에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의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못지 않은 빠른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던 한 시대가 있었다면 바로 1세기의 로마제국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것 중에 하나가 가정 붕괴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바울사도는 소아시아의 가장 로마적인 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중에 효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효에 대해서 1-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효를 해야 합니까?



첫째,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지극히 옳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것은 “원리에 맞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에 기본 원리를 세우신 것처럼 인간 세계에 기본 원리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기본 원리에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희생하고 자식은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 세계의 기본 원리에 맞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은 옳은 일입니다.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부모가 나 하나를 위해 어떤 희생과 사랑을 쏟았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가시고기와 논바닥에 사는 우렁이를 아실 것입니다. 부성애가 강한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가 떠오릅니다. 가시고기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숫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죽은 아비의 사체를 다 뜯어 먹습니다. 그렇게 다 주고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함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또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묻습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들은 우리 인생의 울타리이십니다. 그 울타리 안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분명 부모님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부모님을 높이십시오.

어느 시집간 딸과 엄마가 자주 싸웁니다. 싸울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아무튼 자주 싸웠는데 어느 날 부턴가 엄마가 시름시름 앓더니 딸의 품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딸은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울면서 말합니다. “엄마, 얼른 눈 떠라. 얼른 일어나서 나와 싸워야지 왜 말이 없어, 일어나!”하면서 엄마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싸우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낫습 求 /span>.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낫습니다. 웬지 아세요?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없거든요. 생명이 끝나면 아무 소용없거든요.

살아있어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어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고 미래의 꿈을 꿀 수 있으며 살아있어야 하나님 은혜에 감격할 수 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좋은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으며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살아생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양주 공원묘지에 다녀왔습니다. 벌써 세상을 떠난 지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말 산소에 있으면서 제가 얼마나 불효자식인 가를 새삼 깨닫게 되더라구요.



둘째,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즉,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 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란 ‘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요즘, 자식들의 고민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든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어있는 분들은 양로원이나 시설에 보내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님이 단지 귀찮아서, 혹은 남의 손을 빌어 형식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양로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천륜을 어기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정채봉님이 쓴 “멀리 가는 향기”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혹 다투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 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나 차츰 날이 감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가게도 되었습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어머니가 남한테 망신 사는 일만 저지르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 밖 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 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습니다. "나를 택하든지, 당신에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말해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나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습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자식은 벌벌 떨며 키우지만, 부모에 대해 이런 자세로 산다면 언젠가 그 차례가 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부모 공경에 대해 축복의 약속이 있는 반면, 부모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의 경고가 있습니다. 레20:9절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신27:16절에도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출21:15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라’ 되어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은 부모를 공경치 않는 것입니다. 딤후3:2절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또한 롬1:30절에 타락한 인생 중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셋째, 효도는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3절 보시죠.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형통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까? 그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길을 열어주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음으로 부모 공경 원칙을 지키면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합니다. 가장 좋은 장수의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기에 건강 장수는 분명 큰 축복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건강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효자 중에도 일찍 가시는 경우는 봅니다. 그런 경우는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건강 장수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하는 괜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절대 펑크 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든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것입니다. 재미교포 가운데 미 상원의원으로 지내셨던 신호범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는 네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떠돌아다니며 거지 생활을 하다가 다행히 미군부대 하우스보이가 됩니다. 그 후 미군 장교 집에 입양되어 미국으로 갑니다. 그때 나이가 19세였습니다. 입양될 수 없는 나이였는데, 하나님의 기적이었죠. 공부를 한 적도 없었던 그가 영어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워싱턴州 상원의원이 됩니다. 출세한 것이죠. 한국에 방문하는 기회가 여러 번 생기면서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왜 자기를 버렸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판자집 같은 데서 새 어머니와 이복 동생 5명이 가난하게 삽니다. 그런데 찾아갈 때마다 아버지가 술이 취해 계십니다. 대화가 안 됩니다. 그래서 한번은 연락도 하지 않고 급습하듯 찾아갑니다. 맨 정신이지만 아버지가 돌아앉아서 말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대뜸 물었습니다. “왜 그때 나를 버렸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기 핏줄을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때 나는 머슴으로 팔려갔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오면서 가슴에 맺혔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그 후 부모님과 이복동생을 모두 미국으로 초청합니다. 생활 기반 잡아주고, 공부시키고, 일체를 도와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 장로님의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미국 사람인데(대개 냉정한 것으로 알고 있잖아요) 식구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쳐주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 전심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면 못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됩니다. 부모가 무엇을 해 줘서가 아니라 그냥 부모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 말씀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주 안에서”란 말은 주 밖에서와 반대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원문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 네가 주 안에 있다면 어버이들에게도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버이들 앞에 효자 성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효자라면 육신의 어버이들에게도 효자로 살아라 그 얘기입니다.


아버지~어머니~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부모님의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인생의 자서전입니다. 흰 머리카락은 나를 위한 고생의 여정입니다. 갈라진 손과 발은 나를 위한 영광의 흔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는 바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를 맡고 우리가 살았다면 이제는 그 향기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일제시대에 이흥렬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너무 피아노를 갖고 싶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피아노를 갖고 싶어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솔방울을 모아 팔아서 400원을 모아 보냅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 그리고 피가 묻은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너무 감격이 되어 눈물로 지은 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양주동선생님이 작사하고 이홍렬선생님이 작곡한 이 노래를 사랑하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저와 함께 노래를 불러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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