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렘 18:1-6절 2015년 5월 17일 주일 설교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05-17 |
조회: 1450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되고 있는 사업 중의 하나가 리모델링 (remodeling)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옛날에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부숴 버리고 다시 지었습니다. 부수는데 비용이 들고, 새로 지으려 해도 경제적인 손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오래된 집들의 뼈대를 그대로 놓아둔 채 개축, 리모델링(remodeling)을 합니다. 저희 교회도 15년 전에 본당 전체를 다 뼈대만 남기고 리모델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리모델링(remodeling)하고 나니까 한때는 전국에서 우리 교회가 아름답다고 와서 견학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리모델링을 하니까 정말 편해지고 아름다워진 모습 앞에서, 우리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고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는 생각이 듭니다. 흔 집도 몇 주간 다시 손질을 하니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건물이 아름답게 바뀌어지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그렇게 바뀔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누구라서 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는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몇 달만에 간단히 뜯어 고치듯이, 우리의 심령은 그렇게 간단하게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주전 586년을 전후하여 약 40년 동안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 뭐 이정도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 데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하나님 곁을 멀리 떠났습니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극하게 부패되었고, 정치는 흔들리고, 무엇보다 영적으로 백성들이 타락의 길로 가던 때입니다. 한마디로 시대의 흐름자체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며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교회에 나오고 있고 주님께 예배한다고 하지만, 더 많이 접촉하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돈이면 친구도 부모도 가릴 것 없이 죽여 매장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한 기업가의 자살한 유서에 나온 정치자금으로 모든 정치인들이 돈 때문에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잘 표현해 주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것인데 지금은 아마 그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냐는 인생의 비전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대답은 편안하게 살고 싶다, 유명하게 살고 싶다, 부자로 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인생의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요즘 흉부외과등 어려운 과에 전공의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에 죽고 사는 그런 세상입니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는 이 예레미야 1-17장까지 하나님은 이미 수많은 심판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였고, 실망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힘은 이제 소진되었고, 그의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조국의 멸망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에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뚜렷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사실을 저는 여러분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좀 더 나은 인생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인생으로, 복 받은 인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이 비유를 통해 그 구체적 방법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은 실물 레슨이었습니다.
1. 예레미야 선지자가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가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3절에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여기 녹로는 요즘 잘 쓰지 않는 표현인데 물레라는 말입니다. 물레는 도자기 원료로 쓰이는 진흙에 힘을 가하여 성형을 하는 기구를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에 인도했습니까? 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녹로 위에 올려진 한 덩어리의 진흙을 보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메시지는 뚜렷합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보느냐? 너와 나의 백성들인 저 이스라엘 민족들은 한 덩어리의 진흙이니라!"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신 겁니다. "네가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너의 모습을 올바로 직시하여라. 너는 진흙이야!" 여러분, 이 녹로 위에 올려진 파손이 된 그릇, 토기장이의 계획과 의도에 상관없이 만들어져 버린 이 잘못된 그릇, 오늘 하나님은 그 파손되어서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용도 폐기 처분 될 그 그릇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존경받는 자요, 교인들이 볼 때 훌륭한 성도인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자신의 안을 들여다봐라. 네가 진흙임을 인정하는가? 네 안에, 도무지 쓸 수 없는 삶 속에 흠이 있었음을 내 앞에서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인정하는 자만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준비하면서 여기 녹로 위에 올려진 그 파손된 그릇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예레미야서 18장을 읽어내려 가는데,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예리한 칼로 찔러 주셨습니다. 이 녹로 위의 파손되어서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그 그릇은 바로 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 막둥이가 이제 고3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중학교에 들어 갈 때 아이를 가방을 사주기 위해 시내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식사를 하러 들어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4살이 채 안된 어린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들은 그 어머니의 말 “난 너하고 다니면 굉장히 창피해, 왜 밖에만 나오면 엄마말도 듣지 않고 네 맘대로 하려고 그러니? 너하고 있으면 너무나 창피해!”가 제 가슴속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 앞에 제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실패도 자주 하고, 하라고 명하신 일을 거역하기도 잘합니다. 심지어 사탄이 보기에 죄를 행하고 나아가서 사람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압니다. “난 네가 죄를 지을 때 슬퍼하면서 너를 사랑해! 난 네가 믿음 안에서 살 때 기뻐하면서 너를 사랑해! 난 한번도 너를 버린 적이 없고, 한번도 너를 귀찮게 여긴 적이 없고, 한번도 너를 무시한 적이 없고, 한번도 너를 모른 척 한 적이 없단다.”
여기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우리 백성과 내가 파상(破傷)된 그릇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실물 교육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얘들아, 너희가 새로워지기를 원하느냐? 나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너희의 모습을 올바로 바라보라! 너희는 녹로 위에 올려진 나의 계획에 빗나간 파상(破傷)된 그릇이니라!"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용도 폐기처분 대상인 우리입니다. 그러나 폐기처분될 인생이라 할찌라도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치지도, 결코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 사실입니다. 세상과 짝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 주님은 이 진흙같은 인생들을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열심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 예레미야를 토기장이 집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토기장이가 그릇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삼기 위해 연단의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세요. 완성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하여 진흙을 잘게 부수고 물에 담그기도 하시고, 밟기도 하시며, 물레에 놓고 정신을 못자릴 정도로 빨리 돌리기도 하고, 칼로 상처를 내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뜨거운 가마불 속에 넣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가마의 뜨거운 불을 거치지 않는 그릇은 그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토기는 더욱 순수해지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색깔의 토기 무늬가 달궈집니다. 이 과정이 없이 어떻게 아름다운 그릇이 나오겠습니까?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완성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물에 담그기도 하시고, 우리를 밟기도 하시며, 우리가 정신을 못자릴 정도로 빨리 돌리기도 하고, 우리에게 칼과 같은 시련으로 상처를 내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우리를 뜨거운 가마불 속에 넣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인생길에는 때로 뜨거운 불과 같은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 모든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토기는, 그리고 특별히 가마의 뜨거운 불을 거치지 않는 그릇은 그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토기는 더욱 순수해지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색깔의 토기 무늬가 달궈집니다.
오히려 토기장이의 손에 터져버린 아무 쓸모없는 내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하시는 그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삶의 고난의 상처 이모 저모 삶의 상처가 있다면 지금 그 상처를 싸메어 주시고 다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용광로에 나를 던지십시오.
제가 목회 하면서 만나 본 사람 가운데 상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루는 제 자동차에 여러군데 긁힌 자국이 있었어요. 그래서 견적을 받고 고쳤는데 깜짝 놀랐어요. 감쪽같이 고쳐놓은 겁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경남기업의 성완종회장의 메모가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불법행위로 사법처리에 몰리자 정치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성완종씨는 자신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자 그 충격으로 자살하기 직전 정치가들을 죄인으로 지목하였고 이에 당사자는 물론 나라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 그는 억울하단 말을 수 없이 토로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감싸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매우 크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평범한 사람도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절제력이 강한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얌전한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공격적이 되고 은혜로운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사탄이 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을 비관하여 우울증을 앓거나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움츠려들거나 비뚤어져서 대인 기피증이 생기며 매사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또 남을 쉽게 미워하고 쉽게 저주합니다. 진리를 진리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상실하거나 행복해야 할 때에 행복하지 못하고 기뻐해야 할 때에 기뻐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상처의 아픔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겉은 멀쩡해도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훌륭한 분이든, 술주정뱅이든, 폭행을 가했건, 무엇을 했건, 그 환경을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왜요? 그 환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상처에 메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지금 이런 불과 같은 시련을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불은 우리의 삶의 무늬를 더욱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그 불은 우리를 더욱 완전하고 단단한 귀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최종적인 단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순간에도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토기장이의 사랑 가운데 있는 우리는 그러한 불을 통과할 때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 그리고 이 뜨거운 불 시험을 거치고 난 욥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말입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쓰여지기 위해 토기장이이신 주께서 나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토기장이도 그 손으로 악한 그릇, 볼품없는 그릇, 쓸모없는 그릇을 만들고자 수고하지 않습니다. 토기장이는 되도록 견고하고, 좋은 그릇, 아름다운 그릇, 용도에 맞는 그릇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수고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외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토기장이 하나 님이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름다운 토기로 빚어지기 위하여 물속에 있을 때나, 녹로에서 돌아갈 때나, 우리의 몸에 무늬가 그려질 때나, 뜨거운 불가마에서 신음할 때나 바로 거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시 17:8절에 ‘그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말씀하였고 시 121:4-5절에는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살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는 언제나 그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토기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토기장이의 손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절대로 힘들다고, 고달프다고, 아프다고, 뜨겁다고 튀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패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만일 토기가 불가마 속에서 너무나 뜨겁다고 튀어나오면 그 토기는 온도차이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다고, 어렵다고, 뜨겁다고 튀어나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빚어가시는 그 분의 손에 우리를 온전히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예레미야는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고, 그가 그곳에서 토기장이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에 가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태도, 그가 섰던 순종의 자리는 바로 오늘 우리가 또한 서야 할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힘드십니까? 너무도 힘들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일수록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토기장이의 선하신 손길이 결국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작품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그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엡 2:10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우리는 토기장이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빚어져 가는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빚어 가시는 것은 우리가 온전한 그릇되어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야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올 때에 하나님께서 “네 평생에 이루고 오너라”하고 부탁하신 거룩한 심부름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한평생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거룩한 숙제입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업적들을 많이 이루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대절명의 숙제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내일부터 ‘다시 일어 서십시요’라는 주제로 대구의 반야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승희 목사님을 모시고 3일 동안 집회를 합니다. 이번 집회는 누구를 위한 집회가 아니라 선한 토기장이가 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기 위해 열어 놓은 축복의 현장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부흥은 우리의 영적인 배고픔,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집회를 준비하였지만 금번 집회가 우리 자신과 공동체에 더 은혜롭고, 더 복된 집회가 되기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매 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참여합시다. 어느 시간에, 어떤 말씀이 나를 고치며, 새롭게 만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늦지 않도록 참여하고 앞자리부터 앉읍시다.
둘째, 모든 말씀 말씀을 아멘으로 받읍시다. 선포되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내게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며 개인화 합시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말씀을 받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셋째, 믿음의 예물을 드립시다. 예물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매 시간마다 주실 은혜를 확신하면서 정성껏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믿음과 열심을 가집시다.
넷째, 강사 목사님과 집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사탄의 방해 역사가 차단되도록 기도합시다.
다섯째, 가족과 함께 참여합시다. 가능하면 온 가족이 함께 은혜 받는 자리에 나옵시다. 그래야 같은 믿음, 같은 은혜, 같은 비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모쪼록 금번 심령부흥회를 통하여 우리 성도들 개개인과 가정과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원하심이 이루어지며, 우리들의 신앙이 뜨거운 열심으로 불붙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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