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국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08-16 |
조회: 2192
통일 한국 겔37:17-22. 2009. 8/16
오늘 주보에 나오는 이 시는 제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상영 장로님과 우리 양승관 장로님과 함께 중국 선교를 갔을 때 두만강이 흐르고 있는 한 언덕에서 쓴 시입니다. 며칠 전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서 북한에 억류 되었던 여기자 둘을 본국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대 그들이 잡혔던 바로 그 언덕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산새, 이름 모를 풀벌레는 숱한 세월 가운데도 여전한데/나는 이 언덕에서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나/북녘땅에도 이 소리는 있으련만/강하나 사이로 갈라져 버린 저 도시는/ 푸른하늘을 잿빛으로 만들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천리길 마다않고 너를 찾아왔지만/두만강 푸른물마져도 잿빛에 휘감아 내 마음에/절망의 소리만 들려지는구나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이 언덕에서 내 고통을 저 붉은 강물속에 쏟아야 하는가
언젠가 저 검붉은 물이 보혈의 강이 되어/50년 세월 마디마디 부서진 내 동포 상처난 가슴속에 흘러/생명의 태동이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 우리는 지난 36년 간 일제의 압제로 자유를 상실했다가, 해방된 지 64주년을 맞는 광복절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지배를 받아보았기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어떻게 하면 그 자유를 잃어버리는 지도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주어진 자유를 잘 가꾸고 다듬지 않아도 곧 방종으로 이어져, 동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외세의 힘 앞에 분노도 치밀어 오르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중국은 동북공전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역사전체를 왜곡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고, 일본이 독도나 교과서 왜곡 사건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어 여론화하려고 할 때마다 이 무례한 모습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가장 가까우면서도 너무 멀리 가버린 우리의 북한을 보면 아픔이 터져 나 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이 땅에는 온 국민의 관심을 일깨우는 사건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있다면 북한에 억류돼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 씨가 137일 만에 풀려나 무사히 귀환했고, 지난달 30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우리 선원 4명의 귀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가까이 한 핏줄인 형제 이면서도 가장 먼 나라처럼 되버린 북한을 보면 우리는 다시 한번 분단 조국의 민족적 과제인 통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민족 통일은 이렇게 우리 민족 최대의 역사적이고 지상적인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이후의 우리 겨레의 통일 의식 조사 연구를 살펴보면 통일 의식은 세월이 흘러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아직도 80% 정도의 국민이 지속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되도록 신속하게 통일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2000년에 는 69%가(남북 정상 회담의 기대치가 끼친 영향), 2004년에는 30% 정도로, 그리고 2006년도 말의 한 통계에는 약 14%의 국민들만이 동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는 통일 비용 부담을 꺼리는 경제 의식이 가장 중요한 반통일 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소원해야 할 통일은 어떤 통일이며 이런 통일 한국의 비전을 위해 우리가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오늘의 본문은 에스겔서 37장입니다. 저 유명한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왕국으로 분열된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북방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 왕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멸망하는 이 시점에 유다 왕국에 살면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이라는 젊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때는 주전 약 58! 6년경의 일입니다. 그는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자기의 조국 유다가 완전히 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는 이 선지자의 가슴속에서 탄생한 중요한 민족사적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남북 분단의 상처를 입고 쓰러진 자기 조국이 다시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그는 16-19절에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무슨 말입니까? “막대기 두 개를 취해서 하나는 먼저 망했던 북쪽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또 하나는 남쪽 유대라고 써라. 그리고 그 둘을 네 손에 쥐어라 그러면 네 손에서 하나로 이어지리라. 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이 무슨 뜻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이 손으로 붙잡을 때 여호와 내 손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응답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나는, 19절의 말씀처럼 “내 손(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통일의 비전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그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통일일까요? 이때 그가 받은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17절에 이미 계시하신 말씀인데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상반되게 들려온 이 두개의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시겠지만 여전히 우리 손으로 우리가 할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질 민족의 통일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1. 통일에 대한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도 갈망하던 해방은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5년 만에 6.25 동란의 비극으로 한국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온 나라가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우리나라는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 국가였던 것입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가 오늘 세계 13위 경제대국인 된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꿀꿀이 죽 먹고, 구제품 입으면서 지내던 때가 불과 수십 년입니다. 보릿고개(춘궁기)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게 불과 삼사십 년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100불 미만이었던 우리가 지금은 약 2만불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앞으로 한국의 장래에 대해 전망한 이야기가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미래학자인 폴 케네디 교수(Paul M. Kennedy 1945~ )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美 예일대 교수이며 미래학자로 강대국의 흥망』『21세기 준비』저자입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데, 한국의 여러 여건들을 검토 분석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문제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발전의 가능성이 많다.”
요즘 TV를 보면 『가능성의 나라 대한민국』이란 공익캠페인이 가끔 방영됩니다. 과거의 예측들이 맞았나? 틀렸나? 언급하면 미래를 전망한 겁니다. “이 나라를 복구하는데 100년은 걸릴 것이다 - 1953 맥아더 장군 Yes □ No ■ 한국은 16강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다-2001 미국 USA 투데이 Yes □ No ■ 한국은 디지털 미래의 강국이 될 것이다 -2004 포춘 Yes ■ No □ 2050년 한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골드만삭스 Yes ■ No □ NA: 예측을 맞게 하는 것도, 틀리게 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믿습니다! 가능성의 나라, 대한민국!” 이 말처럼 정말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나서 잘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셔야 됩니다.
2. 여기 진정한 통일은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이 통일이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17절에서는 "네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했는데 19절에서는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이 말씀은 화해와 통일이 사람들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쥐고 계시는 창조주와 섭리주의 손입니다. 렘18:6절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내가"라는 말이 거듭해서 4번 나옵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 함석현 선생은 우리나라 해방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우리나라 해방은 도둑 같은 해방이었다, 예기치 않았다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이었다. 그리고 이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었다. 어느 누가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해방을 스스로 할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고 그는 평하고 있습니다.
만일 64년 전 우리에게 광복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일제 치하에서 고통과 치욕 속에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을 해야합니다.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고 겨우 건국을 했지만 곧이어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 자칫 잘못했으면 공산화되고 말았을 겁니다. 다행히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고 유엔군의 참전이 전격 결정되었습니다. 사실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끝장입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소련 대표가 캐! 딜락을 타고 오다가 엔진이 꺼져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겨우 고쳐서 부랴부랴 도착했지만 이미 한국전 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습니다. 얼마나 절묘합니까?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요 놀라운 은혜입니다. 6.25 당시 국군 전사자가 15만 명, 유엔군이 4만 8천명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때에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공산 치하에서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생각! 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이 땅에 광복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남북의 통일의 날을 이루시고 말 것입니다.
3. 그러면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 그런 미래 통일 조국을 만들어 갈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 대답은 우리가 읽은 말씀 앞에 에스겔 골짜기의 환상의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통일의 비전을 들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은 죽은 뼈로 가득찬 사망의 골짜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오고 말씀이 대언되는 순간 죽은 뼈들이 거대한 군대가 되어 일어나는 민족 부활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답은 부활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통일 조국은 부활의 복음으로 새로워진 조국인 것입니다.
여러분! 황지 예수원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누구보다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며 이 나라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신 분입니다. 대천덕 신부께서 이런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하나님이 행동하실 기도의 잔이 다 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잔이 다 채워지기 까지 기도할 중보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도 필요합니다.”
저는 지난 8/14일 날 호서 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한 대학생 집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장 무더운 여름 아침에 젊은 청년들이 세계 선교에 비전을 두고 부르짖는 모습 속에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2박 3일의 기간 동안 젊은 대학생들이 회비를 10여만원을 내고 수백명이 자신을 써 달라고 자신의 세계 선교의 선두 주자가 되고 또 마지막 주자가 되 달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회에 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가 1980년 방한해서 여의도 광장 집회를 인도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캐나다에서 숲속의 새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나는 일본 토쿄에서 이른 아침 자동차 엔진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번영을 보았다. 나는 한국 서울에서 교회당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나라 한국은 세계의 희망입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가 이만큼 된 게 무엇 때문입니까? 물론 많은 국민들이 많이! 수고했죠. 그러나 수고한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닙니다. 눈물 흘리며 악착같이 새벽기도 하고 산기도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믿음의 사람들 때문에 잘 된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도가 예전만 못합니다. 이제 다시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중보의 용사들의 중보의 잔이 다 차면,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면 주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분단의 벽은 무너지고 평화 통일의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피 흘림이 없이 서로를 안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시대에 통일의 비저너리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잘 아실 줄로 압니다. 이상재 선생이 애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패망한 민족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의 근심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감옥의 벽 속에 조그만 종이쪽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꺼내서 보니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끝부분이었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중략)...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얼마나 역설적인 이! 야기입니까? 이상재 선생의 가슴 속에 콱 치미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로 대항하려는 분노와 복수심 대신에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때 펼쳐질 놀라운 하나님의 화평을 바라본 것입니다. 무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할 때 허락하실 참다운 하나님의 평강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을 나와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1907년 7월 20일 고종황제가 폐위되었습니다. 절망감에 젖어있던 이상재 선생에게 또 다른 절망감이 찾아왔습니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감옥에 있느라 돌보지 못했던 아내 유씨가 숨을 거뒀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사흘 만에 맏아들 승윤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듬해에 둘째 아들 승인이 마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친구 같은 동반자이던 아내는 죽고, 미래의 희망이던 아들 둘도 한꺼번에 잃은 상황 속에서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 포기하고 정리한 후 자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이것을 알고 선교사 몇 분이 찾아왔습니다. 게일 선교사와 YMCA 운동을 하고 있던 질레트라는 선교사 그리고 브랑방 선교사가 왔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어떤 위로 받기도 거절했습니다. 그때에 어느 선교사님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설사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다 죽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는 아직 조국의 미래인 저 젊은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 젊은이들은 선생님의 자식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희망이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토록 고통스럽고 아픈 과정을 허락하시면서 선생님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절망했던 그의 가슴에 아들과도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가왔습니다. 패망한 조선, 무너져가는 한반도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그 비전과 꿈을 보았습니다.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YMCA의 총무일을 맡았습니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백성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고 결단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일만 육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1907년 일백만 구령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전하며 절망한 이들의 가슴에 생명의 불을 던졌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통해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 募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한국이 살 유일한 길은 기독교이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통일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모두가 소망을 잃을 때 우리는 이 통일의 환상을 갖고 영적 젊은이들로 내 가슴에 적셔있는 복음의 보혈이 이 땅을 적셔나갈 그 날을 위해 남 북한 7000만 형제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런 시 한편을 설교 시작에 말씀드렸습니다. 언젠가 저 검붉은 물이 보혈의 강이 되어/50년 세월 마디마디 부서진 내 동포 상처난 가슴속에 흘러/생명의 태동이 있으면 좋으련만… 기도하십시다. 오늘은 다 같이 일어서 서 이 찬양을 부르십시다. “동방의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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