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시128:1-6. 2015. 10월11일 주일 예배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10-11 |
조회: 139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우리 인간이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생활의 풍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최첨단 과학 문명으로 편리함과 품격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대가로 결코 잃어서는 안될 것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 중에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지금 많은 가정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오늘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을 'Homeless Mind' 즉 가정을 잃어버린 마음에서 찾고 있습니다. 마음 편히 쉴 곳인 가정을 잃어버린 것 이것이 오늘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의 근본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피곤하게 일하다가도 돌아가 편히 쉴 가정이 없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복잡하고 분주한 삶의 경쟁 한 복판에서 그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가 돌아가 편히 쉴 안식처가 없다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오늘 그 많은 사람들이 편히 쉴 가정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세상 풍파에 고스란히 빠져서 가정의 위기를 만나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휴고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집과 가정은 다르다. 집은 나무와 돌과 타이루로 세워져 있지만, 가정은 사랑으로 세워진다. 집은 몇 십 년 동안 지탱되지만 사랑으로 세워진 가정은 수천 년 살아간다." 오늘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우리 가정의 위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여 있는 것은 시편 120-134편까지 모두 15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성전에 올라가야 합니다. 이?‘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순례하며 불렀던 대표적인 찬송 시입니다.?바벨론에서 고국 땅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다시는 지난 날 비참했던 멸망의 길을 반복하여 걷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되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이런 각오와 헌신을 고백하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부른 감사의 찬송들입니다.?? 시편 128편을 묵상할 때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그 의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제를 올렸습니다.?가족과 함께 제사 드리러 집을 떠나온 순례객들은 저 멀리 시온 산에 자리 잡은 성전이 보일 때 마음이 설렙니다.?긴 여행을 마친 순례객들은 이 찬송을 부르며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갑니다. 이 가족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분문은 가정을 축복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오늘은 교회가 가족 초청 주일을 맞이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서 그들은 몇 가지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여호와를 경외한다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요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너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며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렵게 여기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 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경한다는 말입니다.?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입니다.?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항상 무게 있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만큼 무게 있는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번 전도 기간에 가정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입니다.?남자들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합니까??현대 가정들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지만 고대 히브리 사회의 가정 경제는 남자들의 손에 달렸습니다.?남자들이 밭에 나가 땀흘려 일하여 얻는 열매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립니다.?땅은 정직하다고 했습니다.?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와 병충해가 없으면 농부가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두고 일 년 농사가 잘되면 가족들은 편안하게 일 년을 지냅니다.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이 복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누리는 복입니다.?하늘의 우로를 철 따라 내리게 하시고 재해로부터 막아주시며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시는 손길이 있을 때 비로소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심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도박이나 투기사업으로 큰 수확을 기대하는 허황된 마음이 아니라 땀 흘려 손으로 수고한 댓가를 먹는 정직한 노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어떤 가정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수입도 없는 경우도 있고 어떤 가정은 앞으로는 남는데 뒤로는 밑지는 장사도 많습니다. 학개 1:6절에 보면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봉급을 받아도 통장이 구멍 뚫린 것 같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 같습니다. 수입은 많은데 다 빠져나가니 이 얼마나 힘듭니까? 요즘 삶이 어렵다보니 카지노나 복권, 또는 건강한 주식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성 주식을 손대다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됩니다. 설령 돈을 거머지어도 그 돈이 그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복권에 당첨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족사랑이 깨어지기 쉽습니다. 수입이 많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학개 선지자는 수입의 많고 적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출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벌어들어도 구멍난 전대에 돈을 넣음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겁니다. 죽으라고 벌긴 버는데 사고가 나서 빠져나가고, 병이 나서 치료비로 빠져나가고, 이리저리 다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이것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돈을 넣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는데도 언제나 적자요, 늘 모자랍니다. 모자라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가정은 어떤 것입니까? 수입이 많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기의 능력대로 일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손을 축복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수고하면 수고한대로 그 수고에 보람이 있습니다. 횡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대박이 터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보람을 가지게 됩니다. 수고의 열매, 이것이 정말 건강한 가정의 모습니다.
둘째는, 또 아내를 축복하셔서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관상수나 땔감이나 재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포도나무는 열매를 바라고 심습니다. 포도열매는 기쁨과 즐거움의 상징입니다. 포도나무는 밀, 보리같은 곡식과 함께 팔레스틴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동반자입니다.?포도송이가 풍성하게 달린 포도나무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기쁨을 주는 아내는 하나님이 남편들에게 주신 복입니다.?한 공간에 살며 쳐다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역겨우며 원수처럼 등지고 사는 부부관계라면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는 권위의 부정입니다. 특히 현대 가정 안에서 남성의 권위는 실종되고, 아버지들이 설 곳이 없습니다. 어버이날에도 아버지들은 종이로 된 모조 카네이션을 달고 어머니들은 생화를 답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해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여성들의 수가 늘어가고, 모든 영역에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의 반란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남성의 존재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할 때도 남자들은 이전에는 냉장고를 붙들고 있어야 했는데 이제는 강아지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개그도 오래되었습니다.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간에는 아내들끼리 모이면 가장 좋은 남편감으로 원양어선의 선장이 최고라고 합니다. 이유는 한번 나가면 반년 이상 안 돌아오고,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고, 가끔씩 집에 오니까 반가워서 좋다는 것입니다. 늘 같이 있는 남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남자는 왜소해지고 실용적인 필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여성들은 홀로 자립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남편에게 억압받으면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여성 편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양가 집안에도 문제가 생겼을 때 장모의 파워가 커졌습니다.
우리는 문화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늘 들이키며 문화 안에 살고 있지만,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오염된 공기를 마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안에는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아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가정의 기준을 붙잡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가정관을 가지고 살게 되고, 결국에는 붕괴되고 우리의 존재를 잊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가정의 모델,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도리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그 진리를 붙잡고 있는 가정만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아내들이여, 잘 익은 포도송이 같이 달고 싱그러운 삶의 즐거움을 여러분의 남편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여기 집안에 있는 자녀들을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3절 하반 절에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기 ‘감람나무’는 천박한 땅에서도 굉장히 오래 삽니다. 지난 성지순례를 통해 직접 보고 왔지만, 감람 산 눈물교회 정원에 있는 몇 그루의 감람나무는 예수님 당시의 나무라고 하니 2,000살이 넘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신선함과 활력, 건강하고 유쾌한 삶의 상징으로 보아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인데 기름과 피클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기름은 성전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 사용되고, 왕에게 기름 부을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네 상에 둘린 어린 자식들은 감람나무와 같다는 말은 하나님과 세상에서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는 자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이렇게 표현합니다.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즐겁게 음식을 먹는 것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현대 가정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이런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뿔뿔이 흩어져 바쁘게 살다보니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을 기회가 없습니다.?아빠와 아이들이 대화할 기회가 없어 모처럼 한 자리에 앉으면 낯선 손님처럼 어색합니다.?오늘 말씀처럼 밥상에 둘러앉은 자녀들을 바라보며 가장으로서 마음껏 축복하시기 바랍니다.??아내가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마음으로 자녀들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아주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늘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식구(食口)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입을 마주보고 식사를 함께 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식구들끼리는 모든 허물과 실수도 용납이 됩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고 함께 밥을 먹습니다. 서로의 부끄러운 모습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드러냅니다.
얼마 전에 전교 1등을 하는 초중고생 100명의 가정을 조사해 보았더니 아버지를 포함한 식구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횟수가 다른 가정에 비해 무려 2.6배나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먹는 식사가 그 가정의 행복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 반찬에 먹느냐 하는 것보다 그 식탁에 얼마나 사랑이 가득하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값비싼 음식과 값비싼 식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식사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 삶을 산다 하더라도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은 항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유대인의 전통과 예절을 배우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식사자리에서는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절대로 자녀들을 혼내는 일이 없습니다. 꾸짖을 일이 있으면 식사 이후로 미룹니다. 그들은 식사자리에서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식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탁을 ‘앨터(Alter)’라고 부릅니다. ‘앨터’는 예배드릴 때 사용하는 ‘제단(강단)’을 말합니다. 그들은 식탁을 단순히 ‘밥 먹는 자리’라고만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식사하면서 가족들끼리 삶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삶의 지혜를 나누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고,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에 대해서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유대인의 교육 방식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물고기를 주면 한 끼 식사가 되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면 일평생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당장 발 앞에 떨어진 자녀들의 학업과 성적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멀리 보이는 영원한 삶에 대한 목표 또한 소중함을 이 식탁에서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밥상에 둘러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는 우리 자녀들은 마치 묵은 올리브 나무 주위에 막 돋아나 자라고 있는 새싹과 같습니다.?사시사철 푸른 나무 올리브 새싹은 희망입니다.?묵은 올리브 나무는 갈수록 소출이 줄지만 새로 나온 줄기는 내일을 위한 희망입니다.??아직은 열매가 없지만 때가 되면 장성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으로 자녀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모든 부모들의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가 어울려 사는 이 행복한 가정을 위해 다시한번 4절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축제가 마치는 날 제사장은 사람들을 각 가정으로 돌려보내며 또 축복합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을지어다’ 하나님의 복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의 삶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삽시다. 하나님의 복은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달렸습니다.?순례객들은 이 축복을 마음에 품고 가정과 일터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부분 5절과 6절을 봅니다.?하나님은 이런 복을 시온에서 주셨습니다.?시온은 성전이 자리 잡고 있는 다윗성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읍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님은 그곳에 성전을 세우게 하셨고 그 성전에서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거기서 복을 약속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성전이라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뵈었고 복을 받았다면, 신약의 성도들은??성전의 주인이며 그 몸이 곧 성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민족과 혈통을 초월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 교회의 부흥은 가정의 영적 변화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날 동안 예루살렘의 평화와 번영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자식의 자식을 보는 복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전쟁과 재난이 끝없이 발생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복중의 복이었습니다.??그냥 오래 살며 손자 손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의 신앙이 대를 이어 자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는 복입니다.?바벨론의 포로라는 쓰라린 경험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평화와 안정된 신앙생활은??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으니 자손대대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습니다.?이 복이 오늘 예배를 드리러 나온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의 가정은 세상 가정과는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정의 기초가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기초석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어떤 시련도 이겨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정들이 사회과 국가를 위해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미친 듯 달려가는 세상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청와대와 국회와 학교와 기업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부족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험악하고 미쳐 날뛰듯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바로 산다면 내 가정 뿐 아니라 교회와 국가를 평강으로 이끌게 됩니다.?가정을 이끄는 가장 여러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거리에서 내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삽시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따라갑시다.?그리하여 시편 128편이 약속하는 이 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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