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단6:10. 16-23. 2015년 11월 8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11-08 |
조회: 1123
모든 사람에게는 위기가 있습니다. 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그 누구도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 나라의 정치, 경제를 보면 우리 모두가 위기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힘든 외침을 하게 됩니다. 특히 지난해에 우리 국민은 세월 호 사건으로 모두가 심각한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이름도 모르는 메르스 여파는 우리의 생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어마어마한 통증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개인적인 위기, 경제적인 위기, 관계의 위기등 많은 모양으로 위기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위기를 맞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이것이 방법이 선하느냐 악하느냐는 상관없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에 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며 해결해 나가는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말씀에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갈 때에 함께 끌려갔던 청년입니다. 그리고 이국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포로생활이란 언제나 괴롭고 비참한 것이 아닙니까? 이런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다니엘은 신실하고 성실하게 오직 믿음으로 살아서, 마침내 그는 왕에 의해 기용되고 높이 등용되어, 이제 바벨론을 뒤이은 바사, 곧 페르시아 나라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처한 사회여건은 하나님도, 교회도 없는 사회였습니다. 온 천지가 죄악으로 가득 찬 이방 국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사회 속에서 90세가 넘도록 살았고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가장 유능한 정치인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의 생애에 엄청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는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바사 제국의 시대입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워낙 모든 면에 탁월한 다니엘은 총리의 직을 계속 감당합니다. 당시 총리는 3명이었는데,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수석 총리로 삼으려 합니다. 이를 고깝게 여긴 다른 2명의 총리와 고관들이 다니엘을 무너뜨리고자 별짓을 다합니다. 그의 허물을 캐려고 이 잡듯이 뒤지고 뒷조사를 했는데 허사입니다. 그러던 중 허물 아닌 허물을 하나 찾아냈는데 하나님께 하루 3번씩 기도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그들은 왕을 충동하여 특별 법령을 만듭니다. 그것은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제단속기간 비슷한 겁니다. 만일 걸리면 사자 굴에 집어넣어 처형하는 무서운 법입니다. 이는 다니엘을 죽이려고 흉계를 꾸민 것인데 왕은 자기를 높여주는 것인 줄만 알고 얼른 도장을 찍습니다. 문제는 당시의 법으로 왕이 한번 도장 찍으면 그 법령은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다니엘의 반응이 10절에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평소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정확히 3번 기도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30일만 참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창문을 꼭 걸어 잠그고 기도하든지, 더 확실하게 하려면 이불 속에 들어가 기도하든지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에 관해 감사했을까요? 다니엘도 사람인데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Ⅰ. 그가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이 섬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는 10대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왔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지 66-67년이 지났을 무렵입니다. 대략 계산해 봐도 80세가 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지금 이 다니엘에게 일어난 이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입니다. 기도하면 죽고 안하면 삽니다. 해결 방법은 너무 간단합니다. 이처럼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끌고 가는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고집스럽게 늘 하던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동안 쌓아왔고, 누렸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는 순간입니다. 남들이 보면 미련한 모습이지만, 이 엄청난 위기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지켜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포로 소년으로 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운 비참한 환경에서 대제국의 총리까지 올라오게 하신 것은 자신에게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잊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지혜를 주셔서 그 위기의 상황을 얼마나 많이 벗어났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다니엘은 그 은혜 앞에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더 큰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음에서 눈이 열려서 깊은 감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49: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그것은 마땅한 반응을 못 하는 것이고 미련한 것입니다. 감사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신앙생활의 동기가 너무나 중요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도 중요하고, 얼마나 많이 바쳤는가도 중요하고, 얼마나 헌신했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열심히 헌신봉사한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 하십니까? 왜 봉사합니까? 왜 헌금합니까? 왜 성가대하고 교사합니까?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건강과 자녀를 지켜주시고 장수하게 하시는 것이 신앙의 동기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상관없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 물질적인 보상, 이 땅의 보상을 바라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환경이 좋을 때는 감사하지만, 조금만 어려우면 자기 것 챙기느라 바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내 안에 잘못된 신앙의 동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주님이 너무나 귀해서 신앙생활, 헌신, 봉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목회자들의 불만 1호는 내가 그렇게 수고하고 사역했는데, 왜 교인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가 입니다. 반대로 교인들의 불만 1호는 내가 이렇게 이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했는데, 우리 목사님이 나를 알아 모시지 않는가입니다. 목사도 불평이 있고, 교인도 불평이 있습니다. 공로의식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 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 누구 덕인데!' 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힘을 안 썼다면 이 교회가 이렇게 될 수 있었나! 어림도 없지! 이 교회 지을 때 내가 힘 좀 썼잖아!' '내가 여전도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이렇게 되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은혜로 봉사합니다. 구원의 감격으로 교회에 들어와 천국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공로 의식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감사의 마음이 말라갑니다. 그리고 원망이 일어나고 불평을 합니다.
참 된 신앙은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앞에 어떤 문제를 만나도 감사함으로 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니엘은 자신의 인생 말년에 정권이 바뀐 지금 그는 그 어떤 때보다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할 때입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 시대 최대의 왕국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고 그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처럼 엎드려 기도하며 감사합니다. 다니엘은 그 어떤 문제가 있어도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참되신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이 하던 그대로 하루에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의 무릎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Ⅱ. 다니엘의 이 감사는 일상의 감사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다니엘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과연 목숨을 담보로 하고 이처럼 기도 할 수 있고 또 그 절망의 환경에서 이런 감사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놓쳐서는 않됩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피눈물 나는 수고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이번에 국립 발레단 책임자로 있는 강수진 발레니라가 은퇴를 선언을 했습니다. 그 분이 하루 아침에 세계적 발레리나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루에 적게는 15시간에서 많게는 19시간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발레 연습에만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말입니다. 발레리나는 ‘토슈즈’라는 신발을 신고 무용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토슈즈 한 켤레를 2-3주에 걸쳐 신지만, 강수진 씨는 하루에도 네 켤레씩 갈아 신기도 했습니다. 계속된 연습 때문에 남들은 2-3주 신는 신발이 그녀에게는 하루도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발레단 물품 담당자가 ‘제발 토슈즈를 아껴 쓰라’고 사정을 할 만큼 쉬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런 연습 때문에 1년 동안에 천여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녀의 발은 정말 괴물의 발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발레리나,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는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예술 터득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피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가 나에게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아야 자동적으로 감사가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이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무엇을 감사했겠습니까? 사자 굴에 던져지다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80세가 넘는 노인이라 하더라도 사자 굴에 던져져 사자에게 찢겨 죽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니엘은 무엇에 대해서 감사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감사했다는 것은 늘 감사했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감사를 마음에 새겼다는 뜻입니다.
감사할 조건은 별로 없어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감사거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게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비록 사자 굴에 던져져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지만, 그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보다도 지금까지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것,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것들을 헤아렸습니다. 어쩌면 다니엘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의도적으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지금의 상황에 바뀌어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가 마음을 바꾸어줍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보게 하고, 불안이 아닌 평강으로 자신의 삶을 보게 해 줍니다.
Ⅲ.감사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법령을 어기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는 말을 들은 왕은 그제 서야 그 법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간신들의 술수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왕의 도장으로 승인한 것을 번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왕은 다니엘을 제일 신뢰했습니다. 그러한 다니엘이 이제 꼼짝없이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들의 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히 근심이 되었고 그를 구원하고 위험에서 건져내기 위해 힘을 다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무리들은 다시 몰려와 메대와 바사의 법률을 예로 들어 다니엘을 벌할 것을 촉구합니다. 왕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않는 규례를 자신이 어긴다면 나라에 권위가 설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왕은 명령을 내렸고 다니엘은 끌려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왕도 다니엘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다니엘은 결국 사자 굴에 던져지고 맙니다. 왕이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사자 굴에 들어가는 다니엘을 향하여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아무리 세상 왕이라 할찌라도 그가 아무리 엄청난 권력을 가졌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18절에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놓고는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너무 괴로워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못 잡니다.
이튿날 새벽에 다니엘이 어떻게 됐나 달려갑니다. 놀랍게도 사자굴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립니다. 22절에 보게 되면.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 ”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털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다는 겁니다. 사자굴이 천사굴이 된 셈이 아닙니까? 이 엄청난 모습을 그림, 이 장면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입니다. 그의 작품 “사자굴의 다니엘”을 보면 사자들이 순한 양처럼 다니엘 옆에 있고, 다니엘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 평안한 모습입니다.
다니엘의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너무 기뻐했고, 흉계를 꾸민 자들을 당장 사자 굴에 넣어 처형하도록 명령합니다. 24절에.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다니엘이 있을 때는 순한 양 같던 사자들이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뼈까지 부수며 잡아먹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후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들 앞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어떻게 됐나요? 단6:28절을 보십시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계속 장수하면서 바사 제국의 총리까지 지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누가 이 남은 길을 행복하게 갈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을 인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내일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인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미래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작가 겸 설교가였던 스코틀랜드의 죠지 마티슨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주님께 내 인생에 장미꽃을 주신 것 때문에는 천 번도 넘게 감사를 드렸어도 나의 ‘가시’ 때문에 감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님, 나의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가르쳐 주옵소서. 나의 ‘가시’의 필요함을 알게 하옵소서. 내게 고통의 길이 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기어서 올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내게 눈물이 있었으므로 나의 무지개가 생겼음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는 올해 10개월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한해의 농사를 끝내고 추수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 지난 10개월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때론 힘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론 어려운 문제 때문에 마음 아플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론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가야하기에 가기 싫은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고, 삶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복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그 복을 누리도록 말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 할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합니다. 감사가 이제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이 되게 하십시다. 매일 매순간이 감사로 넘쳐나는 삶을 사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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