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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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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감사 생활 시30:1-12. 2015년 11월15일 추수 감사 주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11-15 | 조회: 1247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여 어느 때보다도 크게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도 감사절을 맞아 여러분의 가정과 관계된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며칠 전에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 내용입니다. 미국의 일간지인 뉴욕타임스에서 인류 역사상 ‘제일 잘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가를 조사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뽑힌 사람이 다름이 아닌 다윗 왕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다윗보다 더 잘 산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한 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겐가 인정을 받고 산다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요즘 다원화 된 사회에서 정말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다윗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값진 생애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 다윗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을 했습니까?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행13:22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을 무엇이라 소개합니까?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여기에서 '마음에 합한다'는 말은 '마음이 맞는다', '마음에 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듯이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어도 잘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하여 그와 같은 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떠한 사람이길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부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영웅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또는 그가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어 나라를 통일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도 치명적인 실수를 한 인물이 아닙니까?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정말 하나님 앞에 불충한 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도 인간관계에서 느껴서 아시지만, 직장 생활이라든지, 회사에 다니면서 상관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일하는데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면 굉장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니 너무나 부러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자신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도 그리고 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도 아낌없이 칭찬하는 다윗, 그런데 다윗에게 있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 늘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시편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다윗의 감사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고 했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다윗처럼 감사생활이 일관된 사람도 드뭅니다.

오늘 함께 본 본문은 ‘다윗의 감사 생활’에 대해 잘 증거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사 신앙’입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신앙의 수련을 통해 환경이나 조건을 초월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처음부터 늘 감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환경 조건에 따라 휘둘리고, 그의 마음이 흐렸다 갰다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낙심했습니다. 그리고 형통할 때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을 수련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1. 다윗은 실패를 통하여 감사를 배웠습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교만했죠. 그러다가 고난을 당했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 6절을 보면, 그는 과거 형통할 때에 영원히 그 인생이 요동치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장담했습니다. 6절에 보면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그만큼 축복 받고 형통한 삶을 살았던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한 동안 잘나가니까, 좀 잘되니까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잘되는 줄을 알고 자신만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사실을 다윗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웠다”는 것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우심으로 다윗의 인생이 정상까지 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순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한순간에 지위와 가정을 다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이르는 절망이 그의 삶을 덮어왔습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누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하여 인생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많은 사람들은 ‘중도하차’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잘 달리다가도 어떤 사람은 갑자기 폐병 같은 무서운 병을 얻어서 학교를 휴학하고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정치적으로 밀리는 바람에 감옥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인생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 무슨 생각이 나겠습니까? 물론 절망감과 함께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좌절감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사람들이 나를 찾지도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사람의 손에 붙들려 사용될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비참한 순간에 자기를 덮고 있던 오만과 고집의 가면을 벗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내 자신만 믿고 교만하게 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 이 어려운 자리에서 한 발만 더 밀어붙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데, 그 동안 무엇을 믿고 그렇게 날뛰었는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코만 잠깐 막아도 숨이 막혀서 죽을 수밖에 없고, 당장 몇 끼만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여기 다윗이 이 고난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 무엇을 합니까? 8-10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여기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처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셍. 이 땅에서 아직 사명이 남은 것 같은데 원수들에게 무력하게 고통당하고 또 질병의 무게에 눌려 죽음 앞에 섰다면 얼마나 큰 통증이 일어나겠습니까? 다윗은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이 세상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혹시 죽음의 계곡에 서 본 일이 있습니까?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에 서 본 일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한밤중에 여러분의 허파 속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며 펌프질을 하는 기계 소리를 누워서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나중에는 그 눈빛에 있던 생기의 빛마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 죽음의 계곡은 당신에게 낯선 곳이 아닐 것입니다. 그곳은 황량한 계곡입니다. 그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계곡 밑을 내려다보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할 말을 잊어버립니다. 그 계곡 끝에 서게 되면 모든 삶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못한 것이 금방 구별이 됩니다.

그 자리에서는 내가 무슨 차를 타고 왔느냐,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했고, 내가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안중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성패, 승자와 패자, 성공자와 실패자라고 하는 어떤 구별도 그 자리에서는 하등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만큼 죽음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고 완전히 기를 꺾어 버립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를 부어주시는지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찬송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어느 평범한 주부의 간증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소 단조롭고 분주한 일상으로 마음에 불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4쨉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있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고, 119를 불러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살다 가나?''이러다 그냥 죽는 건 아닌가?'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걷게만 해 주세요. 아니, 아이들에게 밥해 줄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아니, 일상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 그분의 병명은 '급성요추부염좌'였습니다. 다행히 한달만에 퇴원합니다. 그 때 그분은 감격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감사 제목이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뭐, 우리 역시 크게 이 자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동안 내가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이요 자기 과시였다는 깨달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죽으면 그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뭐, 다윗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죽음이 그를 덮어왔지만,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신앙이 꿈틀거린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며 감사했습니다.
4절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이 다윗의 감사는 그냥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의 심령 속에 터져 나오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랜드 박성수회장의 간증입니다. 자신은 지난 20년 동안 엄청 화를 내며 살았다고 합니다. 직원은 물론이고, 특별히 아내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QT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치유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미국에 가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노동도 해보고,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종업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그 수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다음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감사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여보, 감사해요’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더랍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감사하다고 하니까 아주 이상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1년을 계속해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제 서야 상처로 말미암아 꽁꽁 얼어붙었던 아내의 마음이 녹더랍니다. 박성수회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감사하지 않을 때 생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 다음부터 화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행복해지고, 감사의 말을 하기 시작하자 가정이 천국이 되고 가정이 행복해졌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절대로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감사는 훈련으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술이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원망도 습관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든지 부정적으로 봅니다. 장점보다 단점을 보고, 되는 쪽보다는 안 되는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우리는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오늘도 하루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 이 일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과 축복과 형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사에 따른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윗에게 전천후의 감사가 터집니다.
이제 이런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윗도 그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는 5-6절에서 말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가 이 구절을 쉽게 변역 한다면 "진노는 잠간이요, 은총은 영원하니, 저녁에는 눈물을 흘려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라."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슬픔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스테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순교하기 전에 말했습니다. "보라 하늘 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바울은 그의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말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크나큰 슬픔, 어려움, 고통이 있습니까? 열려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 된 면류관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하늘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생 밑바닥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걸까요? 그 때의 우리 모습이 가장 정직한 우리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코만 막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생, 당장 다음 끼니가 해결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본모습입니다. 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만나주셔서 풍성한 것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 동안 우리는 세상의 헛된 영광을 위하여 달렸는데, 그것이 하나님 안에 있는 부요하심에 비하면 모두 가짜 영광이며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우리를 다시 이 세상에 복귀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한번 실패한 후 영원히 인생 밑바닥에서 살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연착륙’하게 하셔서 당당하게 직위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합니다. 비록 내가 저녁에는 눈물을 흘릴지라도, 아침이면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1-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 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 앞에 어떠한 감사를 드렸습니까? 입으로는 많은 감사를 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귀한 예물을 손에 들고 그 예물에 내 마음을 담아 드리는 감사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잘 하고 계십니다. 제가 감사헌금을 가끔 확인해 보는데, 감사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잘 담으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 없이는 한 순간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하루, 아침에 나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가정이 평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안심하고 앞날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입니까? 물질도, 건강도, 지위도, 권세도, 명예도,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감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모든 것 다 갖고 있어도 감사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벽에 던진 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을 벽에 힘껏 던지면 그 공은 힘차게 우리에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힘없이 던진 공은 힘없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다시 나에게 찾아옵니다. 감사를 잊고 살면 우리에게 감사할 꺼리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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