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곡점에서 삼상30:1-6절 2015년 11월 29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11-29 |
조회: 1681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인생의 교차로를 만납니다. 교차로에서는 어느 길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선택을 하고, 그 길로 발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인생의 교차로와 거기에 따른 중요한 결단을 해야 되는 또, 선택을 해야 되는 기로에 자주 섭니다. 구소련의 수상이었던 어떤 분의 딸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결국 소련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미국 생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과거의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 여러분의 선택을 통해서 여러분의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속에 어떻게 하면 바른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떻게 유익한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선택을 바라는 욕구 때문에 늘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페터 비에리(71)는 ‘자기 결정’이라는 책에서 “인생은 삶의 변곡점에 서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 상황에 휩쓸리거나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지 바르게 결정할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참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사울의 미움으로 그는 원치 않는 피난길에서 있었던 이야기 가운데 가장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쳤던 암담한 시절에 관한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아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된 다윗은 더 이상 유다 땅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블레셋 땅으로 망명을 갔습니다. 블레셋으로 망명을 떠나는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상 27:1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오랜 기간 동안 사울에게 쫓기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습니다. 이제는 유다 땅에 머물러 있다가는 언제 사울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마음에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블레셋으로 망명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길만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는 600명의 군사들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으로 망명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다윗에게 있어서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젠 불레셋에서 녹을 먹고 사는 다윗입니다. 이 전쟁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전쟁에 나가게 되면 다윗은 일생일대에 오점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인생의 변곡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차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면 얼마나 기기 막힌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이제 그의 장래는 끝장날 판국입니다. 사울 왕에게 핍박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삼상29:2절에 보면, 마지못해 전쟁터로 끌려가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그 꼬락서니가 가관입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그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지만, 승리한다고 해도 큰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시라도 이번에 사울 왕이 전사한다면 다윗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그러면 쿠데타를 일으킨 게 됩니다. 왕이 될 수도 없고, 설사 왕이 된다 하더라도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블레셋 장수들이 반대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참전이 취소됩니다.(삼상29:3~11 참조) 장수들이 왕에게 항의합니다. 도대체 무얼 믿고 다윗의 군대를 데리고 가느냐 이겁니다. 한참 싸우다가 이스라엘 군대와 한 패가 되면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에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철군을 명령합니다. 안 그런 척 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가는 다윗의 쓸쓸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윗 일행이 시글락에 돌아갑니다. 자리를 비운 게 겨우 3일인데, 그 사이에 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노한 겁니다.(삼상30:1~6 참조) 성읍을 불태우고 아녀자들과 아이들을 붙잡아 갔습니다. 그 참상이 오늘 우리가 읽은 삼상30:3-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망명 생활이 서럽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너무 기가 막혀 넋을 놓고 웁니다.
이 암담한 현장 앞, 자신들이 가꾸어 놓은 삶에 현장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울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다윗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려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요? 모든 게 다윗의 책임이거든요.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여하려다가 거절당한 것도 다윗 때문입니다. 다윗을 따라 전쟁에 나가려 하던 중에 자기 집들은 다 불타 버렸고, 자기의 아내와 자녀들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가버렸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난 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6절 보시면 부하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이것도 다윗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늪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불신앙, 그리고 인본주의적 태도 때문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도피 생활 중에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신앙을 잘 지켜왔습니다. 심지어 사울을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그 중에 삼상26:24을 보면, 사울을 살려주고 난 후 그가 한 말이 나옵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그의 멋진 신앙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시선을 놓치면 이렇게 됩니다. 작은 고난에도 흔들립니다. 낙심합니다. 그래서 불신앙으로 떨어집니다. 사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신앙은 시선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스스로 낙심하고, 마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참담하게 느낍니다. 현실의 문제를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보느냐 이것이 곧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불신앙은 결국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불신앙 가운데 빠지면 인간적인 계산만 하게 됩니다. 이게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잔 柰 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에는 인간적인 생각이 통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망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삼상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수년 전에 그가 국경을 넘어 블레셋에 피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국경 안으로 들어갈 것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른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국경을 넘고 말았습니다. 국경을 넘은 것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이동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곧 말씀의 선을 넘어간 겁니다. 힘들다고 말씀을 어겼는데, 이게 탈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말씀의 선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고전4:6 “ ...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 ” 말씀의 선을 넘어가면 곤란합니다. 내 생각에는 잘 될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망하게 됩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마치 이런 겁니다. 운동 경기를 할 때 선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한 마디로 아웃(out)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선 밖으로 나가면 우리 인생에서 아웃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지만 다윗처럼 실수를 함으로 늪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고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기다려도 그 약속이 이뤄지지 않자 그는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합니다. 좀 더 기다려야 했는데, 인간적으로 잘못 생각한 겁니다. 그 후 어떻게 됐나요?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 다툼이 생깁니다. 나중에 태어난 적자 이삭과 먼저 태어난 서자 이스마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이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 지금까지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씀의 선을 넘어가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에는 무조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말씀을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게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고난 아닙니까? 힘들다고 피해 가면 더 큰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젠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때 희망을 잃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입니다. 여기 지금 자기에게 돌을 던지려 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삼상 22장 2절에 보면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자?들입니다. 이들이 다윗에게 와서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철저히 그 시대에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정말 오갈데 없는 이들과 함께 내일을 기다리며 그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로 맺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자제력을 잃고 돌로 다윗을 치려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끝나 보이지 않습니까? 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에서 다윗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납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인생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여기 보십시오. 6절 하반 절에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절망적인 때 환경을 바라보거나 주변에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환경과 자신의 연약함을 뛰어넘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장애물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6절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요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이 상황을 이겨나갈 힘을 주시옵소서/ 2)헤쳐 나갈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게 실력이더라구요. 영적인 일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실력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위기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사람들이 다 등 돌리고 배신할 때, 하나님께 힘을 얻을 수 있는 능력!--앞이 캄캄할 때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절망 중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이게 다 영적인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길은 나만 홀로 외로이 걷는 게 아닙니다. 내가 쓰러져 지쳤을 때, 다시는 일어설 것 같지 않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나의 구원자 이신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작자 미상의 글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자매가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큰 시련의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가 꿈을 꾸게 됩니다. 어느 날 밤에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스크린 삼아 그의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짝의 발자국이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밀려오고 모래사장은 아름답게 찍혀 있던 두 개의 발자국이 사라진 채 어지럽게 찍혀 있는 단 하나의 발자국만 보입니다.
그는 항의하듯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주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주님은 저를 떠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본 그 한 짝의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란다. 네가 고통과 환난을 당했던 그 시간에는 내가 너를 업고 갔었단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주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를 홀로 버려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힘겹게 내 인생의 길을 비틀거리며 걸을 그 때에도 주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다고 부르짖을 때 조용히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꼭 붙잡아 주셨고 , 우리의 삶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의 현장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변곡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생각, 내 주장, 내 상식을 가지고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희망을 가지고 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험악한 세상을 살다 보면 다윗처럼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함으로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요? 일단 늪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블레셋 장수들의 반대로 참전이 취소된 겁니다.(삼상29:3~11)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비상 섭리를 행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입니다.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구원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글락이 아말렉 족속에게 노략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삼상30:1~6) 극한 시험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생포되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살아남아 있었기에 나중에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건 것입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 덕분에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는데 여기 결과를 보실까요? 18-20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한 결과는 항상 아름답습니다. 나중에는 여기 저기 전리품을 선물로 나눠주었습니다. 승리했을 뿐 아니라, 그 승리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는 축복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 중에 이런 곡이 있죠.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때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속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이 되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럴 때 사람들은 다 나를 외면하고 떠나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새가 비를 피하는 법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독수리처럼 구름을 뚫고 더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거나 참새처럼 처마 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장은 처마 밑에 피하는 참새가 약은 것 같지만, 참새는 구름 위 눈부시게 푸른 하늘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면승부를 거시기 바랍니다. 시련이 닥쳐와도 주저 않지 마시고 당당하게 맞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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