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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님- 성탄 요1:9-14. 2015년 12월 20일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5-12-20 | 조회: 1296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서로 기뻐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자!! 옆에 분들과 인사를 나눕시다.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을 축하합니다.’

몇 해 전인가요? 우리 교회에 와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연탄길”의 저자인 이철환집사를 아실 것입니다. 한 300여 만 권이 팔린 빌리언셀러입니다. 그분의 책 “연탄길”에 보면 "먼 불빛"이라는 제목의 실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태란 이름을 가진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사고치고 친구들과 패싸움하고 심지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 나두었다간 사람 구실을 못하겠다는 생각에 얼마나 근심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인 아들, 언제 교도소로 들어갈지 모르는 위태 위태한 자식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마지막 충격 요법으로 아들이 교도소에 가기 전 자신이 먼저 교도소에 가서라도 자식의 교도소 행을 막아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 현태 아버지가 어느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없는 도적질을 하는 체 하고 그 현장에서 붇잡힙니다. 절도죄이니까 교도소에 가게 됩니다. 어느 날 마지못해 어머니를 따라 면회 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아버지를 용서해라.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넌들 바른 길을 갈수가 있었겠니.--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교도소는 인간을 처참하게 만드는 곳이란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를 면회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아들 현태를 붙잡고 통곡으로 절규하면서 폭탄선언을 합니다. “현태야, 할 말이 있다. 네 아버진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정말이다. 이 엄마가 네 아버지를 안다. 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 하실 분이 아니다. 너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교도소가 사람있을 곳 아니라는 걸 너에게 보여 주려고--생떼 같은 네 놈, 거기서 네 젊은 시절 다 보낼까봐서--네가 갈 그 곳에 미리 가셔서 네가 오는 걸 막아 보시려고” 아들인 현태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늘 방황하고 거칠었고,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고 있는 자신에게 아버지는 존재가치가 없는 오히려 가난을 물려준 아버지는 그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 아버지가 감옥에 간 그 경위를 어머니에게 듣고 받은 충격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아들 현태는 이 날부터 마음먹고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검정고시 치르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새 인생의 길을 걷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끝을 이런 말로 마무리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었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 두고 바라 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었다.


오늘 본문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여기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9-11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알지 못했을까요?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는데 왜 그들은 그 메시야를 맞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때, 이스라엘의 형편은 모두가 깊은 절망 가운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땅에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거의 400여년 가까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온 세상이 어두움에 갇혔습니다. 그 어두움을 뚫고 이 땅에 생명의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깨닫지 못했다 했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빛은 그 비추는 곳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춰지면 그 빛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요8:12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첫째로, 왜 세상이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 5절에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면 너무나도 잃어버릴 것이 많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성탄절이 맞이했지만,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누가 받아들이고 영접했나요?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영접한 사람의 숫자는 그 당시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토록 이스라엘의 모두가 메시야를 갈망한 것 같은데 막상 생명의 주께서 오셨는데 거절하고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 아침!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빈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외치며 다니는 그 처절한 외침을 외면한 우리 인간이 도대체 누구길래 저 구유에까지 당신의 자리를 펴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면 안되었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이길래 저 거룩한 영광의 보좌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합니까? 도대체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그런 수모, 그런 수치를 감당을 하셨습니까? 암만 생각해도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 앞에 여기 먼저 부름 받은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서 그렇지 그 십자가의 보혈로 적셔진 우리는 그 엄청난 은혜 앞에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도 기쁨이 없다면 그 마음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겼거나,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도박 시장이 연간 60조원이라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단합니다. 세계 1위하는 것 많아요. 술 마시는 것, 교통사고, 도박도 나라 규모에 비해 단연 1위가 아닐까요? 그 조그만 나라의 도박 시장이 연간 60조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이 387조인데 상당한 액수입니다. 왜 도박 시장이 이렇게 커질까요? 나쁜 것인 줄 알면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잘 나가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 가운데 번 돈을 다 도박으로 날려 버리는 경우도 우리가 종종 봅니다. 잘 나가는 사회 지도층 인사나 연예인들이 마약에 빠지거나, 프로토콜 주사를 수천 만원, 수억을 들여 150번 200번 맞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약이나 도박으로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됩니다.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덤벼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스포츠 토토에 중독이 되어 인생 망친 한 청년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서울대 졸업한 20대 청년입니다. 자기 동창들은 지금 다 좋은 직장 취직하고 잘 나가고 있는데 3년 전에 스포츠 토토 사행성 게임에 우연히 발을 들여 놓았다가 어머니 적금도 날리고 저축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도 날리고, 마지막으로 대부업체에 높은 이자를 주고 빌린 돈까지 날리고 "돈과 시간, 꿈과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잃어버리고 지금은 페인이 되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청년의 스토리였습니다. 3년 동안 밤을 새가며 했다는 것입니다. ‘그만 해야지, 그만 해야지’ 결심하고 결심했지만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나쁜 습관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힘으로도 안 됩니다. 노력으로도 안 됩니다. 결심하고 결심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거부해도 어두움은 빛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 빛을 받는 사람은 어두움에서 나오게 되고, 영적 죽음에서 살아 나게 됩니다.

신약 성경 13권을 기록하고 서구세계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도 바울은 한 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예수를 이단으로 여기고 교회를 파괴하러 다니던 어두움에 살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시리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 언덕을 지나가다가 하늘로부터 오는 이 빛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강력한 빛이라 거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빛을 향해 사울은 외쳤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를 핍박하던 자리에서 돌이켜 예수를 증거하는 사도로 바뀌게 됩니다. 이 빛은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빛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은 숱한 악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 바울처럼 빛을 받아 인류 역사와 문명을 밝힌 위인들이 허다합니다. 어거스틴도 10년 동안 마니교에 빠져 있다가 어느 날 생명의 빛을 받고 변화하여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나 존 칼빈 역시 어둠 속에 있다가 생명의 빛을 받고 세계 역사를 바꾼 위인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성탄의 즐거운 소식 앞에 내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정말 이 생명의 빛을 선물로 받은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다 두고 사셨습니까?



둘째로,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던 그분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었습니다.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출 40:35절에 보면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서 행군을 시작하기 직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성막 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덮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놀라운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한 것입니다. 모세를 비롯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깊이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그 영광의 주님이 낮고 천한 죄로 오염된 바로 내 안에 당신의 장막을 만드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장막을 친다 텐트를 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실고 있는 곳에 함께 텐트를 치고 사셨다는 말입니다. 버림받은 창녀와 같은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오셔서 그 곳에 천막을 치고 함께 유숙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른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다만 유대인처럼 구약에 있는 하나님만 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에게서 어떤 이미지를 느끼게 됩니까? 높이 그리고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두려우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시내 산에서 우레소리와 함께 연기와 구름가운데 임하시던,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3, 4대까지 징벌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설혹 죄를 용서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죄 값을 반드시 갚으시는 철저하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만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하나님으로만 알 것입니다.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이요, 너무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요, 너무나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항상 조마조마 해야 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되고,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그 하나님이 어떻게 마음에 와 닿습니까? 어떤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려집니까? 어떤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심각한 필요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인품을 가지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며,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깊이 깨닫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고,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진면모를 확인한 사람에게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오늘 이 혁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 세상에 오신 하나님, 내 곁에 오신 하나님 ,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 안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탄사건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오늘 성탄을 맞는 우리들도 이 성탄사건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우리 생애의 최고의 감격이요, 기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볼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너무 사랑 받는 자녀이기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악과 죄와 모든 범죄를 예수의 십자가로 깨끗이 씻으시고, 이제는 죄와 흠이 하나도 없는 거룩한 자기 자녀들처럼 날마다 보시면서 그 머리터럭도 다 세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어디를 가나 동행하시고 모든 기도를 귀담아 들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신앙생활이란 자녀됨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구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려 하기 때문에 옵니다. 자녀에게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기도 안 들어주셔도 좋고 그냥 깊은 내적 평안이 있습니다. 상속권자가 누리는 특권은 내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고 빛의 자녀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일은 같은 죄인인 인간은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빛의 아들의 권세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춤으로 어둠을 물러가게 하는 권세입니다. 우리는 그런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연약할지라도, 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영접했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작은 삶에서 그 빛을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가슴에 모신 사람들이라면 우리 안에 계신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밝게 비추시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빛으로 오신 예수를 세상은 거절 했지만, 우리는 생명의 빛을 마신 자들입니다. 그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 은혜 앞에 섰다면, 그 진리 앞에 섰다면, 이번에도 우리 주변에 구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신 주님의 그 사랑을 우리 함께 실천하여 우리의 섬김과 사랑이 이번 성탄절에도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은 이웃을 돌아보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연약하기 때문에 나만 생각하고 나의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유에 누이신 일을 생각하며, 나의 메마름 때문에, 나의 무정함 때문에 버려지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사랑으로,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베풀 수 있는 뜻 깊은 성탄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도 우리 교회는 자양동과 노숙자를 섬기는 등대 교회에, 여러분 가슴에 담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저들에게 나누기를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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