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롬 8:5-11. 2016. 1/17 주일예배
요즘 ‘가나안 교인’이 우리나라에도 100만 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가나안 교인은 출애굽 당시에 가나안으로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다가 교회에 대해 실망을 했거나 어떤 상처로 인해 구원은 받았지만, 교회를 ‘안나가’는 말을 뒤집어서 만든 조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100만이 넘는다는 것은 교회 위기를 반영하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난 동기가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14년 정도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것에 대해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새해에 무거운 마음으로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다시 교회를 선택한다면,어떤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싶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각자 한번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을 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를 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요즘처럼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사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예수님에게 오세요. 하고 말하면 그 말 때문에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또 병을 안고 씨름 하는 사람에게 병이 나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반가워하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성향입니다. 실패하여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낙망하지 마세요. 하면서 소망과 희망을 주는 교회로 인도한다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1장을 통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병든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기 위해서, 갇힌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마음이 슬픈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 위해서 라고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의 평안을 요구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 .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심리를 나무라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를 나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강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펴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 교회는 신년도에 “자라나는 신앙으로, 성숙해지는 신앙으로 열매 맺는 신앙으로”라는 표 어로 시작을 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구원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그 사명을 위해 내 한 목숨, 죽어도 좋은 목숨으로 만들어지는 열정과 헌신이 일어나는 그런 사람들이 세워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가져야 될 진정한 이미지는 어떠해야 합니까? 날마다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원하는 어린애 같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뛰는 강자의 이미지입니까?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거룩한 강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제자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답지 않을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어제까지 살던 버릇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버리겠습니까?뭔가 새로워지고 싶은데, 내가 나를 바라보아도 도대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 것일까? 남들은 멋지게 성장하고 은혜를 체험하는 것 같은데, 늘 상 성경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늘 실패하는 못난 자신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그래서 나는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하지 않는 자가 아닐까? 나는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로 로마서 8장입니다. 이 로마서 8장은 로마서의 핵심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성경 66권을 66개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에 비유한다면, 그중에서 가장 중앙에 해당하는 특별한 보석은 ‘로마서’이며 그 보석 중심에 박혀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 몬드는 로마서 8장이다.” ‘만약 성경이 불타 없어진다고 해도 로8장만 있으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어느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만큼 8장의 가치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언제든 로마서 8장을 읽고 묵상을 합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 믿음이 흔들릴 때, 고독할 때, 실패의식에 빠져 있을 때, 기도 응답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용기와 자신감이 없을 때, 이 8장을 소리 내어 읽노라면 어느새 새 힘과 능력을 얻곤 합니다. 여러분도 로마 서 8장을 계속 읽고 외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본문 자체가 주는 강력한 은혜를 경험한다면 승리의 삶을 살 줄 믿습니다.
1. 먼저 우리의 성장이 바르게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8절의 말씀입니다.“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기 육신이라는 말은 헬라어 “사르크스”(sarx)를 우리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flesh"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육신라는 말은 우리의 신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육신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을 뜻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 선악과 사건 이후 이 하나님의 형상에 치명적인 손상이 왔습니다. 마치 저 높은 창공을 나르던 새들이 날개 깃털에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인간 본성이 타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창 6:3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육체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락한 인간 본성이 주도하여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저 타조와 같이 된 것입니다. 새는 새인데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채 살아가는 저 육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육신을 따르는 삶은 자기 욕심에 이끌리고 조종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욕심은 계속 커지다가 결국에는 파멸의 길로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인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도무지 변화의 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우리를 승리로, 영적성장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8장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20번 이상 나옵니다.어떤 분들은 이 8장을 일컬어 성령장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말씀이요 성령이 역사하는 말씀이요,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은총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9-11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기 ‘거한다’는 말은 일시적이 아닌 영원이 거한다는 말입니다.보십시오. 내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입니다.이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고 우리들의 부활을 보증하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능하신 성령께서 내안에 또 다른 이 육신의 소욕과 싸우는 모습으로 말씀하고 계십니까? 어찌 하나님의 영, 성령이 이 연약한 육신과 싸우시겠다는 말이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쓸 때가 있어요. 그때 부모가 그 아이와 다를 때가 있습니다. 사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완력으로 누른다면 모든 것을 부모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다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깨닫고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이와 싸우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도 늦동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4살 때 일입니다. 이 녀석이 막무가네일 때가 있습니다.한번은 집회를 마치고 사택으로 들어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묘해요. 아이가 막무가내로 우는데 할머니와 집사람이 당해내질 못해요. 지하철을 타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야단도 쳐보았지만 안 통해요. 별도리가 없쟎습니까? 그래서 저녁시간에 막둥이하고 지하철을 타러 나갔습니다. 보세요. 아이가 지하철을 타는 순간 눈빛이 반짝거리며 야경에 비친 창밖에 광경을 보고얼마나 좋아하는지 조금 전에 떼를 쓰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빠 사랑한다는’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저에 대해서 때로 얼마나 실망이 많으시겠습니까? 그러나 내 부족함, 내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다 받아 주시고 참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왜 그렇습니까? 나를 포기하기엔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자녀 삼으시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기대가 이루기를 소망하며 모든 것을 용납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당신의 형상으로 세우기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설득하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엡4:30에“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말씀처럼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살전5:19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충만한 스데반의 입술을 통해서 완악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행7:51에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의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저들을 설득하고 사랑으로 다가오지만, 이은혜, 이 사랑을 져버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령을 거스리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힘이 없어서 이런 대접을 받으시는 게 아닙니다. 다만 철없는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부모의 심정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를 성장시키기를 원하심으로 이와 같이 우리를 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이제 좀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으로라야 영의 일 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가 열린 사람들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같은 십일조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돈 이야기로 듣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얘기로 들을 수 있습니다. 큰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육의 개념으로 판단하면 아무리 영적인 것이라도 육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을 따르는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6절을 보세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여기 육신을 따르는 것과 영을 따르는 것의 핵심이 ‘생각’입니다. 흔히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만들고, 인격이 일생을 만든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 일생의 출발이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변해야 삶이 변합니다.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영적 전쟁은 생각의 세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작은 생각이라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여기나오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mind'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mind'를 주로 ‘마음’이라고 번역합니다. 생각은 곧 마음입니다. 생각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생각이 가면 마음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을 하지 않으니까 원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생각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메시지가 자기중심적이요 세상 지향적입니다. 항상 땅의 것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어떤 생각을 하며 생활합니까? 그 생각이 당신생각, 아니면 세상에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생각이란 무서운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로 그 생각에 깊이 빠져들면 나중에는 도저히 자기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도비니다. 그러나 여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생명이 있는 삶은 무엇입니까? 영으로 지배되는 삶, 그리스도중심의 삶, 하나님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비록 땅 위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늘 하나님 나라로 향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생활이란 따로 있는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내가 생각하면 그것이 거룩한 삶이요, 하나님의 뜻을 나의 듯으로 받들면 그것이 성결한 삶입니다. 이성령을 좇아 살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요즘 나는 무슨 생각을 많이 합니까? 만약 우리의 생각을 엑스레이로 찍어본다면 어떨까요? 그 생각이 내 인생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정밀 진단을 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생각은 나도 모르게 큰 종양처럼 크게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홀로 있을 때 하는 생각이 나의 본래 모습입니다. 신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초점이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영에 속한 자들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자의 삶은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자주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합적이고 좀 더 넓게 바라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에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날마다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이기주의자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화를 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에 묻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속해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범죄 할 수 있습니다. 쓰러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귀는 수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니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포기하라고 우리의 생각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때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갈 5:16에 있는 말씀처럼 내 삶을 내 삶의 방식를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화에로의 삶의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얼마간 독이 들어 있습니다. 냉면에도 대장균이 우글 우글대고, 우리가 먹는 밥에도 독이 있습니다. 심지어 김치 속에도 독이 있습니다.그런데 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이유는 속에 있는 墟 력이 몸 안에 있는 나쁜 세균들과 싸워 이기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 지면 소화가 되지 않고 설사를 하고, 그러다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됩니다. 우리가 병이 들면 ‘투병 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병과 싸울 수 있느냐하면 내속에 생명이 붙어있을 때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병과의 싸움은 이기느냐 죽느냐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 원리가 동일하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납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한해도 열심히 자라나야 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공군 조종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사관학교 4년을 마치고 정식 F-16 조종사 한 명이 양성되는 데는 무려 28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그것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을 뽑는데 한 기수 당 100여명 정도가 뽑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또28개월 간 훈련을 하는데 거기서도 반수 이상이 탈락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20% 정도인 14-5명 정도가 F-16조종사가 되는데 그 한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15억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그만큼 힘든 게 조종사들입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세상에도 전문가 하나를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 노력,물질이 듭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신 자녀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보좌를 포기하시고 십자가에서 내대신 죽음을 허락하셔서 구원받게한 엄청난 은혜 받은 자입니다.우리가 누구입니까? 더 이상 육신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사 나와 함께 동행자로 살아가게 하는 자녀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영의 생각을 하기 위해서 애를 쓰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들로 가득 찰 때 성령이 친히 생명과 평안의 길로 이끄실 줄 믿습니 다.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좇아가며 영의 생각으로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