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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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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4 상속을 받은 자라면 (롬8:12-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6-02-24 | 조회: 1759
상속을 받은 자라면 롬8:12-17. 2016. 1/24. 주일 설교 

  

3년 전인가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재미있는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세계적인 호텔체인 힐튼(Hilton)의 창업주이자 현재 최고경영자인(CEO) 배런 힐튼이 자신이 가진 재산이 약 23억 달러(2조 5000억원)인데 그 재산의 97%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배런 힐튼이 자신의 재산 거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재산을 상속받을 여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배런 힐튼의 재산을 상속받을 여인은 그의 손녀딸인 올해 26살의 패리스 힐튼입니다. 



지금까지는 패리스 힐튼이라는 여인이 할아버지의 재산 대부분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제 그녀가 재산을 전혀 상속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 힐튼이 손녀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손녀딸이 지금까지 난잡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한 번 입은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고, 애완견인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 산 가방이 300만 원 짜리 명품가방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사생활이 너무 난잡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패리스의 사생활이 너무 난잡해 말로 표할 수 없는 치욕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말썽을 일으키는가 하면 이미 19살 때에는 섹스비디오를 찍어 난잡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손녀딸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차라리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할아버지 배런 힐튼의 결정은 어떻게 보면 바른 정신으로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식이나 후손들이 어떻게 되든지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깨뜨리는 멋진 결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애써 벌어 놓은 막대한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그들의 미래가 불행해지고 그들의 인생이 파탄을 맞게 될게 뻔한데 그럼에도 그 재산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지요? 우리가 고생한 것처럼 고생하지 않고 그래도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서 무언가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나 후손들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유산을 물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산은 단지 재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신앙과 삶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도전적인 정신을 물려주는 것은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유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고 거기에 따른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구원받은 자녀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여기 17절에 ‘상속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땅에 유산을 물려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대한 것을 다룬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지난날의 옛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변화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의 삶에 빠져 있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옛날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살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8장의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죄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입니다. 육신의 소욕에 지배를 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대신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제 본문 12-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슨 말입니까? 성령을 모신 사람은 더 이상 육신대로 살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13절 말씀처럼 우리가 더 이상 육신대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굉장히 단호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세워놓고 하시던 경고의 말입니다. ”먹으면 결코 죽으리라” 바로 그 말입니다. 지금 성령 안에 사는 그리스도 이들에게 마치 아담, 하와를 불러 세워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 말을 주님께서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롬8:1에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을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죽을 수 없는 성도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모순 같이 들리지 않습니까? 분명히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강한 경고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롬 11:20 절에도 비슷한 경고가 나옵니다. “높은 마음을 좋지 말고 도리오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 하셨을 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선택하신 백성들은 원 가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꾸 거역하니까 아끼지 아니하고 도끼로 찍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백성과 비교할 때 어떤 존재 어떤 존재입니까?  접붙임을 받은 가지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는 원가지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데 가지인 너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으로 살지 아니하면 그대로 둘 것 같으냐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무서운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여러분!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은 육신대로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때려서라도 우리를 설득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 내가 악하여 넘어집니다. 유혹의 더미 속에 허우적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경고의 말 앞에서 믿음으로 이 말을 붙잡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받기 시작하면 죄에 대하여 민감해집니다. 죄가 감정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그런 죄를 즐기면서 살아온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구역질 날 정도의 역겨운 감정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것이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할 때 내가 누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확인해보십시오. 결국 신앙생활은 세상에 익숙한 때들이 점점 벗겨지고 하나님의 백성다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전의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고 세상의 모습 대신 내 안에 다른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은 정말 신자답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자답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단한 기적을 행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기독교가 활동도 많이 하고 건물도 많이 세우고 좋은 일들을 많이 했지만, 그 일을 하는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나를 닮았구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할 때도 그 활동이나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과정 속에서 그분을 닮는 경험이 있어 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을 때 그 일을 통해서 대단한 것을 이루라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그 일을 이루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로 세워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의 빛으로 온전히 드러나 너희의 행실을 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는 삶으로 세상에 드러낼 때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서 중요한 주제는 “신앙의 목표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떤 신분이며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거룩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죄와 싸워야 하는 데 자기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죄와 육체의 소욕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거룩하기 위해, 하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고 다른 차원의 싸움이라는 말입니다. 

  

그 해답이 1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은, 우리 힘만으로는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인도함을 받는다’ 는 말은 강제로 끌고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육신대로 살던 시절에 잘 가던 곳을 못 가게하고 성령의 사람으로 꼭 가야 할 곳은 가기 싫어도 데리고 가실 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행동을 간섭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끄는 힘은 매우 강합니다. 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쳐도 도망칠 수 없고 아무리 거부하려해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인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우리의 삶의 핸들을 육신에게 맡겨 놓지 않습니다. 할 성령의 손에 맡겨 놓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옛 사람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최근 고위공직자의 숨겨둔 아들 논란이 있었습니다. 요즘에 이런 일들이 부쩍 많아져서 친자확인 의뢰도 많고, 그런 일을 하는 기관도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의뢰한 사람들 가운데 30%는 실제로 친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의심이 간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이 아니면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다면 새로운 DNA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을 닮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어떤 분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확인하려면 내 삶을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다르지만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변화란 세상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는 주제이고 로마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그 신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신분에 걸맞은 성화,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15-17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여러분, 여기 양자란 말, 그리고 상속자, 또 고난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특히 양자라는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는 그다지 피부에 와 닿는 단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꼭 ‘내 자식’ 이라야 했고, 그래서 슬하에 자식이 없다든지 해서 다른 집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으라고 해도 “안 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내가 왜?....”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 땅에서 태어난 고아들이 남의 나라에 가서 양자로 입양된 사례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 어떤 경우에는 로마 사람들은 양자를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자식을 낳을 때 생각지도 않고 그냥 낳을 때가 있지만, 양자를 삼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를 자기 양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자녀와 조금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대에 악명 높았던 네로 황제도 사실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입니다. 

  

전에는 노예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양자가 됐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 뒤를 이여 황제가 됩니다. 왕가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일반가정은 말할 것 도 없습니다. 일단 가정에서 양자를 삼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정교사를 붙여줍니다. 아 아이 교육이 다 끝나게 될 무렵 그 가정 교사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대를 위해서 그대의 양부모가 된 분들은 놀라운 상속을 준비해 놓았다”고 격려해줍니다. 성령님의 하시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놀라운 특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아버지를 향해 ‘아빠’ 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자랑스러워 보이는 분이 아버지 일 것입니다. 그 아빠는 자기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뗌슴〈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고 어색함도 없습니다. 아빠! 아버지! 얼마나 행복한 부름인지 모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빠가 되십니다. 믿습니까? 어찌 그뿐입니까? 성령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써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에게 17절에 보시면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재산을 준비하셨고 너는 그 재산을 상속자라고 말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이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양자로 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상속하시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시시하게 살도록 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그 영광을 누리며 이 땅에서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보세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넘어지는 순간도 있고 쓰러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러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하게 너를 위해 준비하신 이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그 영원한 곳의 상속자가 되어야 해”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빛나는 상속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따로 이 땅에서 내가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를 지치게 하고 쓰러지게 만드는 아픔의 상처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히 11:24,25를 보세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창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가 왜 고난을 모세가 왜 고난을 택했습니까? 누가 고난을 사서하겠습니까? 여기 보면 ‘죄의 낙’이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죄에는 타락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순간적인 쾌락 때문에 거기에 빠집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쾌락을 보여주지만 쾌락 저 건너편엔 우리가 지불해야할 값비싼 대가는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술의 타락을 보여주지만 술을 깬 후의 육체적, 정신적 고충은 보여 주지 않습니다. 사탄은 정욕을 로맨스처럼 보여주지만, 그 정욕의 죄가 가져올 가정파괴, 인격파괴, 또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그 값 비싼 대가는 결코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죄의 낙보다는 고난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간섭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아픔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상속자들인데 그 상속자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영국에 '줄리안 모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미아가 퓸 걸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청년이 된 어느 날, 그는 어느 굉장한 부자 집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되고 졸지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부자가 되고 나서도 걸인 행세를 지속하는 유별난 행동을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걸인의 옷차림으로 비누, 샴푸, 좀약 같은 것을 집집마다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자기 소유의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런던의 초호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1년에 한 두 번은 파리를 비롯한 구라파의 다른 도시들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이면 다시 비누와 샴푸를 팔러 다녔습니다. 그는 그런 생활이 좋은 것입니다. 좋다기 보다는 그런 거지생활이 자기에게 맞았던 것입니다.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 초점 없이 방황하는 눈동자를 보면 그는 영락없는 거지 중에도 상거지인 것입니다.때로 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그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왕자다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주께서는 엄청난 하나님의 기업을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감격해 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 딸, 곧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일이 지나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나가 살아야 하는 다음 날에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수많은 악의 세력 앞에 굴복하면서 마치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걸인처럼 그렇게 연약하게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당 안에서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교회당을 떠나가기만 하면 모든 게 걱정거리이고, 삶을 힘겹게 살아갑니다. 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깊은 시름 속에서,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 그 신앙인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 !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영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영입니다. 그 확신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환경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될 줄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령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래서 승리할거야. 네 인생은 너를 대적하는 자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너의 인생은 내 손에서 결정된단다. 어떤 어려움이 너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야. 죽고 사는 것이 나의 손에 있단다.” 아버지의 주권을 믿는 것, 내가 그분의 아들임을 확신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삶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지탱해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어떤 것이 내 삶에 힘이 됩니까? 돈, 신분, 건강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됨의 신분을 날마다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영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증언하실 때 ‘아멘’으로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감격을 날마다 깨닫고 누리며 삶 속에서 실력으로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더 깊은 자리로 인도해주시는지를 친밀감 안에서 누리고, 아버지의 부유함을 삶 속에서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순간순간 아버지를 불러보십시오. 그분께 무한신뢰를 보내드리며 친밀함을 나눈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이라도 이기는 능력이 주어질 줄 믿습니다. 기도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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