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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2017-4-2 디딤돌 인생, 걸림돌 인생 (행9:26-3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4-02 | 조회: 1206


옛날 시골에 다리가 놓이지 않는 냇가를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돌로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를 통해서 건너가는 것입니다같은 돌일지라도 그 돌이 놓여진 장소에 따라서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제법 커다란 돌이 아이들이 건너기 힘든 냇가에 있어서 냇가를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면그 돌은 분명 디딤돌입니다그러나 같은 돌이 자동차가 많이 왕래하는 길 한 가운데 있다면 그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입니다 


돌뿐만이 아닙니다모든 것이 그렇습니다얼마 전 심방을 가기 위해서 집에서 차를 타고 나오는데차 굴러가는 소리가 좀 이상했습니다그래서 차를 멈추고 내려 바퀴를 살펴보았더니 앞바퀴 하나가 바람이 다 빠져 있는 것입니다정 집사님께 바퀴를 좀 갈아놓아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심방 끝나고 와서 물어보았더니 바퀴에 못이 하나 박혀 있었다는 것입니다작은 못 하나가 바퀴에 박혀서 바람을 다 빼놓아버리니까 자동차가 운행할 수가 없었습니다작은 못 하나가 말입니다그런데 그 못이 목수의 손에 들려져서 나무를 고정시키고 집을 짓는데 사용된다면 그건 아주 유용하게 쓰여진 것입니다작은 못 하나도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유용하기도 하고무익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떤 사람은 디딤돌 같은 인생이 있고또 걸림돌로 사람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아침 디딤돌로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바나바입니다그는 무엇보다 사람을 믿어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아마 바울에게 이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이 그 엄청난 사역을 감당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할 정도로 바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의 회심 이후에 사건이 나옵니다다메섹 도상의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바울은 견딜 수 없는 가슴의 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을 합니다그런데 누가 이 사실을 믿어주겠습니까?

 

그때 한 사람 등장하는데그가 말합니다사도행전 9장 26,27절을 보세요"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여기 보시면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지금 아무도 바울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나바가 먼저 사도들에게 데리고 갑니다요즘으로 말하면 신원보증을 선 것입니다바나바의 인격을 아니까 그제야 성도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나바가 그 회심한 다메섹에 같이 있기라도 한 것입니까아니지 않습니까그리고 여기 교회 공동체 안에 바울을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이것은 모험입니다. 이 중에는 바울 때문에 가정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사울은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장 포악하게 조직적으로 핍박했던 인물입니다스데반이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에 증인으로 참석할 정도로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자입니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니 누가 그것을 믿어주겠습니까그런 곳에 그는 사울을 적극적으로 변론해 줍니다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회심의 과정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주님께서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는지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제자들에게 자세히 소개를 합니다그래서 사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복음의 동역자로 예루살렘 공동체의 당당한 멤버로 존재하게 만듭니다만약 바나바가 사울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사울은 무명의 전도자로서 변방에서 사역을 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바나바가 그를 믿어 주었기에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사도로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사도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약자에 대한 믿음의 배려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가를 봅니다역사학자 토인비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발을 디뎠을 때 로마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말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사도바울로 인해 마침내 로마는 세계 복음화의 전초기지가 되었고그 복음이 유럽을 변화시키고세상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결국 바나바 한 사람의 사랑의 수고와 신뢰가 상상하기 힘든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이것이 바로 디딤돌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누가 고마우십니까저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참 고맙더라고요아내가 저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고마운가요리안마이런 것보다 몇 백 배 더 고마운 것은 저를 믿어주는 겁니다제가 참 믿지 못할 사람인데 너무나 믿어줍니다"당신은 목회 잘 할 수 있어당신은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있어!" 라고 믿어줍니다어떤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자랍니까믿어주는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자라납니다.

 

얼마만큼 믿어주어야 합니까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하루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잘못하는 것을 몇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 잘못하고 일곱 번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해도 그 사람을 믿고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나 사람을 믿어주지 않습니다내가 변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아요내가 회개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아요이것이 문제입니다그래서 한번 붙은 딱지를 떼려고 하면 10년이 걸린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하나님은 전 우주에 유일한 신이십니다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권세 있는 자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요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발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찬송해야 될 영광의 주님승리자 되신 분이십니다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해요별로 감동도 받지 않습니다왜 그렇습니까자신이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자신이 지금 얼마나 큰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내가 너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노라나는 내 생명보다 너를 더 사랑하노라십자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이 너를 사랑하노라." 그리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우리 각자에게 쏟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내가 내 생명보다도 너를 � � 사랑한다그래서 내가 죽었노라그리고 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말씀하셔도 우리는 별로 모릅니다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다 영적으로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이 나를 믿어 주었다면 우리 역시 믿어야 하는 것 아입니까?

 

상대방을 세워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11:에는 바나바의 또 다른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있습니다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목회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그리고 바나바가 부임한 그 날부터 안디옥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바야흐로 바나바의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을 바나바가 혼자 감당하기 어렵자 그는 바울을 초청하여 함께 동역하기 시작했습니다그 당시 안디옥 교회를 보면 지도자훌륭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사도 바울 없이도 충분히 교회가 커 갈 수 있었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왜 사도 바울을 불렀는가사도 바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다른 사람은 다 그를 생각하지 않았지만바나바는 그의 소명을 생각했습니다바울의 은사를 생각했습니다.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도와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겁니다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감동을 주는 사람은 사람을 볼 때저 사람이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오히려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세상은 참으로 차갑습니다언제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너무도 매정합니다.쓰고 나서 쓸모 없으면 가차없이 버립니다지난번에 방영한 미생이란 tv를 보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비정규직이란 직책은 회사에서 적응도 힘들고 파리 목숨입니다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을 존중하기보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쓰고 나서 버리는 사회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곳입니다4:11-12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어떤 사람은 선지자로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여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교인들이 아닙니까우리는 세우는 자들입니다디딤돌들입니다내가 받쳐주고 내가 격려해 주어서 당당하게 사람을 세워가는 현장이 교회입니다.

 

저는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잘 봅니다사자는 사냥을 할 때 반드시 팀을 이루어 사냥을 합니다아프리카에 소와 당나귀의 중간쯤 되는 소가 있어요그 소 떼들을 사자가 사냥하기 시작합니다소 떼들이 도망을 가는데 개울을 건너갑니다그런데 한 마리가 넘어집니다넘어진 소와 같이 달리던 소가 저만큼 달려가다가 다시 돌아옵니다그 넘어진 소를 돌면서 "푸르르푸르르~"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놀라운 것은 그 넘어진 소가 얼마 있다가 일어납니다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결국 같이 도망을 가는 겁니다그 동물을 관찰하는 과학자들이 '동물의 격려'라고 이름을 붙였어요과학자들이 관찰한 결과넘어진 소는 누군가 다른 소가 격려할 때 반드시 일어나서 다시 도망가더라는 겁니다그러나 아무리 건강한 소라도 실수나 지쳐서 넘어졌을 때 격려하는 소가 없으면그 소는 사자의 밥이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 리 사회에 격려의 사람이 필요합니다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보는 사람을 이 세상은 찾고 있습니다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하나님은 감동을 주는 사람을 찾으십니다그 사람은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합니다이 감동의 사람은 사람을 믿어줄 뿐만 아니라 세워 줍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불렀고 그가 오자마자 교회는 더욱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바나바의 판단은 신중했습니다. 바나바의 천거로 사울은 바울이 되었고 바울은 바울되기 위한 일터의 현장을 얻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바울이 있었기에 비로소 안디옥 교회는 세계선교의 센터가 되었습니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행11장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표기가 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11장 이전에는 "바나바와 사울이"고 기록되었지만 이일 후에는 "바울과 바나바가"로 표기가 바뀌고 있습니다그러나 선교가 시작되면서 사도행전 13:13절 이하에서는 이름의 순서가 점차 바뀝니다. ‘사울과 바나바그리고 나중에는 바나바의 이름이 사도행전에서 사라지고 맙니다대신 바울의 이름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바울에 대해서 어떤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기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 감당하는 이것이 전혀 섭섭하지 않았던 이 사람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인기체면 ,목표보다도 주님의 사역이 더욱 활발하기를 원했던 바나바여러분은 이 사람이 그립지 않습니까"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다면주의 교회가 좀더 부흥될 수 있다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주를 섬기리라" 살았던 사람 바나바자기 의나 체면이 세워지는 것,그것은 그의 일차적 관심이 아니었습니다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역시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그는 오로지 주의 일이 부흥되기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승리하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했던 사람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했던 사람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숙하기를 원했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라면 자기는 조용히 사라져도 좋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 사람이 그립지 않으십니까어쩌면 오늘의 동성교회가 더욱 필요로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바울보다는 아마도 바나바 일지 모릅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15장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의 문제로 심히 다투는 장면이 나옵니다1차 전도여행 때 그를 데리고 갔는데그는 전도여행이 힘들다고 중간에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사도 바울은 냉철한 사람이었기에, 2차 전도여행에 또 마가를 데리고 간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였어요. 1차 여행 때 그렇게 불성실하게 우리를 떠나갔던 마가를 데리고 갈 때 문제를 일으키면 커다란 어려움이 일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결국 행15:39절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이 사건으로 바나바는 더 이상 성경에 그 모습이 등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딤후 4:11절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 머지않아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제 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텐데그 때 마가의 아팠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를 불러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야그 때 힘들었지마음이 아팠지섭섭했지그 때 내가 좀 심했을거야미안하다!" 그러면서 마가를 불러 위로하고 난 뒤 바울은 하나님에게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마가는 그저 동정의 대상이 아닙니다마가는 나중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마가복음을 쓴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그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바로 바나바가 있지 않았습니까바울이 바울 되었던 것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바나바의 배려와 디딤돌의 역할이 얼마나 큽니까마가도 그의 손길이 다가갔기에 신약 성경 가운데 최초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위대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우리는 비판과 정죄가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신문을 펴면 온통 비판의 글들이 가득합니다학생들은 교사를 비판하고고용인과 고용주들은 서로의 잘못을 비판합니다국민들은 지도자를 비난하고,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따뜻하게 위로해 줄 사람이 참으로 없는 세상입니다사람과 이 사회를 세우는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대입니다누가 이 척박한 세상을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가 정죄의 화살을 맞고 남몰래 신음하는 자들을 찾아가 치료할 수 있단 말입니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교회는 한번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격려의 삶이 필요합니다우리 가운데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하 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도 넘어진 자였습니다모세도 쓰임 받기 전에 넘어졌던 사람입니다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넘어진 경험을 가졌던 사람입니다성경은 우리 모두가 다 허물이 많았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격려가 필요한 자들입니다우리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고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성령님의 별명은 '보혜사'였습니다파라클레토스직역하면 '옆에 서서 돕는 자'입니다오늘 말로 번역하면 '우리를 격려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왜 보내셨는가우리는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목사인 저 역시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가 필요합니다우리 모두는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실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기도와 내 희생을 통해서 누군가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내가 디딤돌이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여러분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디딤돌입니까걸림돌입니까내가 있음으로 우리 가정이 행복하다면내가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디딤돌입니다내가 있음으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내가 있음으로 가정이라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가정에 걸림돌입니다그건 교회에서도 그렇고 직장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내가 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면내가 그곳에 유익된 사람이라면 나는 디딤돌입니다그러나 내가 교회에 있음으로내가 그 직장에 있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불화가 있다면 나는 그곳에 걸림돌입니다. 차라리 그 사람은 없는 것이 나아!’라는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 걸림돌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오늘의 세상은 바나바를 찾고 있습니다우리의 자녀들은 바나바를 소리쳐 요구하고 있습니다누가 바나바가 되어 낙심하여 멸망해 가며격려가 필요해서 아우성치는 저 사람들의 소원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오늘 여러분이 이 사람이 되어 보지 않겠습니까바나바와 같이 남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남을 믿어 주며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목적으로 생각하며넘어진 자를 과감하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자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불신과 낙담으로 인해 넘어져 가는 이 한국 사회가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지금은 바나바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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