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선박왕’이라고 불리우는 ‘오나시스’의 외손녀라고 합니다. 그녀는 18살 생일 때에 외할아버지로부터 10억 달러를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1조 2000억원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가 갖고 노는 인형에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크리스찬 디올)가 직접 만든 옷을 입힌다고 합니다. 그녀가 1년 동안 쓰는 용돈만 해도 1백억 원이라고 하니까 그럴만도 하겠지요.
그런 일이 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20살이 되지 않는 미성년자가 가진 땅이 전국적으로 5400만평이라고 합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21배입니다. 그 중에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가진 땅은 여의도 면적의 5배나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2살도 채 되지 않는 아이의 명의로 된 땅도 제법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선박왕 오나시스가 외손녀에게 유산으로 준 것같이 한 1조원쯤 모아두셨습니까? 아니면 커다란 땅 덩어리 하나 장만해 놓으셨습니까?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일년에 용돈으로 백억 원씩 쓰는 사람이나 자신의 이름으로 수만 평의 땅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 잘 만나서 인생이 활짝 펴진 사람입니까? 그들이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성공적으로 산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설교 말씀입니다. 모세는 요단 동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제 여호수아를 앞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저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면서 한 가지 염려가 앞을 가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대대로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가나안 땅에서도 계속해서 믿음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로 소위 “쉐마”라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쉐마 교육’이라 부릅니다. 쉐마는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가 ‘쉐마 이스라엘’이죠. 무엇을 들으라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줄여보면 7절에 나오는 대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전수하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라는 말입니다. 어려서 한 동안 시골에서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마 밑에 옥수수를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것들은 먹지 않고 왜 저렇게 매 달아놓았을까?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년에 심으려고 종자 옥수수를 저렇게 매달아 놓은 것입니다. 저것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습니다. 아니 먹으면 안 됩니다. 내년에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꼭 저것은 남겨서 내년으로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음대로 남겨서 넘겨주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수해 주지 않으면 다음 대에 대가 끊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려주어야 할 정말 가장 소중한 유산은 무엇입니까?
첫째, 진정한 유산은 부모의 신앙입니다.
쉐마는 우리에게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중동사회가 다신론이요, 범신론이요 자연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저들의 문화에 빠져들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부모들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신앙인이 되는 일 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본 그대로 믿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6절에서도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르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따라 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바른 신앙에 서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신앙의 유산이 자녀들에게 전수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가정은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나 첫째로 경험하는 학교이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인생의 첫 번째 교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위 학교 교육은 대체로 만 5세가 되어야 시작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때 이미 교육의 80%는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인생의 영향은 바로 우리 부모에게서 유래하고 있다면 이런 부모의 신앙이야 말로 오늘의 내 인생의 기초이었음을 확인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교육의 책임을 학교나 교회, 사회에게만 전가하고 가정에서의 일차적 교육의 책임을 기피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링컨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부모를 가졌다면 그는 부자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디모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난 자식은 아니지만, 아들처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 적으로 결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기록하면서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약한 체질을 타고났습니다. 몸이 허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율법을 잘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진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한 꼴입니다. 다시 말해서 디모데는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어려서부터 심한 갈등과 번민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디모데가 훗날 위대한 목회자가 되어서 바울 사도를 대신해 에베소 교회 후임 목회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외가 쪽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딤후1: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의 마음 속에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겉과 속이 똑같은 믿음,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믿음을 디모데가 가졌는데, 그 믿음이 누구를 통해서 주어졌느냐 하면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 생활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신앙의 유산을 받아 충성된 주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자녀에게 물려 줄 유산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7절을 보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가르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님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르칩니다. 회당에서 동네 어른들이 가르칩니다. 정부가 나서서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이 쉐마교육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쉐마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의 행동을 명하는 동사들을 보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각인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그 내용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출애굽과 광야생활 속에서 자신이 체험하였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역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애급에서 탈출할 때 기적같이 출발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기적이 일어나서 건너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먹고 살아온 모습, 만나,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 반석에서 흐르는 생수 이것들을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 주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책임은 신앙유산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부모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그때 부모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 교육이 가깝게는 가정을 든든히 하는 교육이고 나아가 국가를 든든히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든든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다음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상숭배를 절대로 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일(신 7:5, 12:2-3, 16:21-22)”입니다. 이 백성들이 애급에서 430년을 살았습니다. 애급은 우상의 나라입니다. 애급을 여행해 보면 박물관의 유물은 100% 우상들입니다. 43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그 우상들을 섬기는 풍조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을 고집하셨는가 하면 그 찌든 우상을 씻어내고 하나님만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장 가나안에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방인 가나안 사람일 것입니다. 새 땅에서 생존과 적응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가장 손쉬운 방법이 원주민과 타협하고 농사짓는 법을 배울 것이고 그들의 우상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삶을 배우고 그 문화에 동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우상숭배 하는 풍습을 그대로 본 받아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기를 “우상숭배 하지 말고 통혼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 얼마나 신선했습니까? 왕이 되자마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 말은 오직 하나님 중심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신명기를 통해서 두 가 지 신성한 율례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과 또 하나는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을 미혹하게 하지 말 것(신17:16~17)입니다. 그리하면 네 날이 장구하리라고 약속(20)하셨습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뜻은 왕이 하나님 보다 군마를 의지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뜻은 아내를 많이 두면 이방인의 아내까지 둘 염려가 있으니 그러면 결국 우상이나 여인들 때문에 마음이 뺏기고 우상 숭배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상 10장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자마자 애급으로부터 병거 천 400대를 수입합니다. 잘 훈련된 마병 만 2천명과 말을 수입(왕상 10:26)합니다. 또 왕상 11장을 보면 애굽왕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여인들과 정략 결혼을 합니다. 자그만치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3)입니다. 그 여인들이 오면서 몸만 왔겠습니까. 모두 자기들의 토속 신과 우상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들이 가지고 온 우상들의 신당을 지어주었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모습에 우려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돌려보시려고 꿈에 두 번이나 나타나 경고하셨고(9) 명령하셨으나 솔로몬이 듣지 아니하였다(10)고 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 대에 르호보암 때에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나라 구석구석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남색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동성애자가 창궐합니다. 이는 진정한 가르침이 없었기에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는 불행한 역사를 자초하게 됩니다.
세 번째 부모가 할 일은 실천하는 일입니다.
8-9절을 보면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너는 이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육에서 가장 큰 맹점이 말만 앞서고 실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거역하는 것도 언제나 부모들이 말만 앞서고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난 번 우리 교회에 와서 많은 감동을 주었던 이 철환씨의 책 “연탄길”이란 책에 보면 "먼 불빛"이라는 제목의 실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태란 이름을 가진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사고치고 친구들과 패싸움하고 심지어 절도까지--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인 아들, 언제 교도소로 들어갈지 모르는 위태 위태한 자식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마지막 충격 요법으로 아들이 교도소에 가기 전 자신이 먼저 교도소에 가서라도 자식의 교도소 행을 막아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없는 도적질을 하는체 하고 쉽게 붙잡혀 교도소에 간후 면회 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아버지를 용서해라. 사는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넌들 바른 길을 갈수가 있었겠니.--그러나 한가지 부탁이 있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교도소는 인간을 처참하게 만드는 곳이란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를 면회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아들 현태를 붙잡고 통곡으로 절규하면서 폭탄선언을 합니다. “현태야, 할 말이 있다. 네 아버진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았어. 정말이다. 이 엄마가 네 아버지를 안다. 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 하실 분이 아니다. 너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교도소가 사람있을 곳 아니라는 걸 너에게 보여 주려고-- 생떼 같은 네 놈, 거기서 네 젊은 시절 다 보낼까봐서-- 네가 갈 그 곳에 미리 가셔서 네가 오는 걸 막아 보시려고” 현태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충격, 이 아버지의 희생으로 아들 현태는 이 날부터 마음먹고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검정고시 치르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새 인생의 길을 걷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끝을 이런 말로 마무리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 주었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 두고 바라 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아 놓는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잘 입히고 잘 먹임도 다가 아닙니다. 오늘 이 세상은 이교도의 풍조로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사탄 문화와 이방 문화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세속주의 한복판에서 우리 자녀들이 숨 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오직 신앙인으로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오늘 이 세상은 세속과 교회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사라진 세상입니다. 세속적인 일과 하나님 일에 구분이 어려워졌습니다. 하나님 말씀 보다 돈이나 명예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지는 때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신앙교육이 어려운 때입니다.
오늘 날처럼 가정의 위기의 시대에 우리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랑의 진정한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가정- 여기서 자라나는 내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정말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받은 우리는 이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환상을 보여주며 미래를 희망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세상적인 많은 유산을 물려 줄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신앙의 유산을 남김없이 물려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의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재능과 은사를 개발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그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떠나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못다 이룬 인생을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내가 만난 예수를 자녀들에게 평생을 전하고 가르쳐야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세우고 그들의 삶 속에 예수의 향기를 가지고 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야 할 그들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시대 앞에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늘 승리할 수 있도록 그들 삶속에 말씀을 심어 주십시오.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