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2017- 5-7 (어버이 주일) 효도하며 삽시다 (창9:20-2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5-08 | 조회: 987

 

누구나 인생 살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우리 부모라는 데 주저 않고 동의할 것입니다. 그 중 어머니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었고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녀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이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보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자존감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도, 일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목표의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 아버지의 모습들이 점점 왜소해 져 가고 있습니다.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신해철이라고 하는 가수가 있는 데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 중에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의 노래가 반주가 너무 크고 박자가 빨라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됩니다마는 이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노래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의 어느 곳에도 이제/더 이상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려 집을 나간 자식들....." 런 노래입니다. 참 먹먹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자살율이 세계에서 최고인데 특히 아버지의 자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야구 해설가로 명성이 있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있는 그 유명 인사조차도 목숨을 끊는 세상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자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 해에 2,248명의 아버지가 자살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운 아버지 상만큼 여러분의 존재는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인생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격하시키면 내 자신이 또 격하됩니다. 아버지를 높은 분으로 높이는 순간 내 존재의 위치도 높아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이미지라는 것은 요새 와서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특히 오늘 어버이 주일에 저는 부모 가운데 우리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입니다. 홍수 뒤에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노아는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담갔습니다. 홍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에게 무슨 세상 친구가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포도주를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너무 많이 마셔버렸습니다. 그는 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는 자기 장막 안에서 하체를 부끄럽게 내놓고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작은 아들인 함이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된 도리가 무엇이겠습니까? 얼른 이불로 아버지의 하체를 가리워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아버지를 도와서 옷을 입혀 드려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장막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자기들의 형제 셈과 야벳을 찾아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들쳐 내며 흉을 보았습니다. 소문을 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노망하신 것 같아. 아버지가 요즘에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 정말 주책이셔. 지금 술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럽게 그 모습을 다 드러내고서 주무시고 계셔!"

    

아마도 함은 다른 두 형제가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얼른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볼세라 빨리 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갈 때에 바르게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아니하려고 눈을 가리고 뒷걸음질쳐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서 자기의 세 아들이 자기에게 한 행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들들이 보여준 효성에 따라서 그들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킨 함은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대를 이어서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뜻깊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어버이를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 세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첫째로, 우리의 부모님도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 앞에서 완벽한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6:9의 말씀을 보십시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훌륭한 노아였기에 하나님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홍수로 심판을 받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토록 훌륭했던 노아였지만 그에게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잘못이 있었습니다.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부모님은 말로 다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역시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얼마든지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의 눈앞에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할 때라도 "아니, 그럴 수가?"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서, "그래, 우리의 부모님도 연약하시니까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해하도록 애쓰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원래 공경한다는 말의 어원은 신체의 간장이란 뜻입니다. 몸이 모든 장기들이 중요하지만 특히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간을 소중하게 돌보듯 그렇게 부모님을 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무겁다'는 뜻입니다. ,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 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님에게 어떠한 허물이 보일 때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그것을 적극적으로 덮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흉을 보았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찾아가서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습니까? 여러분, 모든 인류가 홍수로 다 심판 당할 때 함이 누구 때문에 살았습니까? 아버지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일백 이십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다 살아남았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살아남았다면, 비록 아버지에게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덮어주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새들은 보통 둥지를 틀지만 물고기는 거의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고기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물고기가 있는데 바로 가시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움푹하게 둥지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모래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암컷이 산란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것을 넣었다가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고 해야 합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이렇게 온전히 알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이면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해갑니다. 이렇게 가시고기는 자기 새끼를 위해 생명을 바쳐 보호하다가 최후에는 자기의 몸까지 내어놓는 물고기입니다. 그 부성애로 인해 대부분의 물고기의 부화율이 낮은데 비해서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라고 외치는 오늘 이 인간시대를 부끄럽게 하는 물고기의 부성애입니다. 이 시대는 온통 문제투성입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자녀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야단칠 아버지도 없고 회초리도 없습니다. 질서도 규율도 없는 난장판과 같은 시대입니다. 존경받지 못하는 아버지도 많고 존경하지 않는 자식들도 정말 많은 시대입니다. 존경을 스스로 잃어버린 아버지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자식들은 더 문제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도 완전할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보다 불안한 세상을 먼저 살아가시면서 우여곡절을 겪으시면서 우리보다 먼저 실패도 하시고 실수도 하시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버지가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영원히 존경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비록 실수가 있고 실패도 있는 분이지만 자식의 가슴에는 언제나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어서야 되겠습니까? 함은 그런 면에서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혼자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내가 이제부터라도 내 아버지의 말상대가 되어 드려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어야 자식된 도리일 것입니다. 가만히 성경을 묵상하며 그 셈과 야벳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셈과 야벳 같이 어떤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전해 주어도 그것을 은근히 좋아하지 아니하고, 보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옷을 들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그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고 다시는 사람들이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어떤 문제가 발견되면 조용히 찾아가 겸손하게 그것을 말해 주어 상대방으로 그것을 고치게 하고 누구에게도 그것을 발설하지 않는 그런 인격을 갖춘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아닙니까? 남의 허물과 실수를 즐거워하고 비열하게 그것을 남에게 퍼트림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습니다. 그것과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허구한 날 뒤에서 남의 흉이나 보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처럼 부끄러운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지 못한 소문이나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퍼트리는 그런 사람은 결국 소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생각해 보면 소름 끼치도록 추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이 침으로 사람을 쏘면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만, 벌 자신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우리가 남을 험담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마치 벌이 침을 쏘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지만, 내 영혼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의 실수와 허물을 드러내기 보다는, 사랑으로 덮어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의 실수를 목격했다 할지라도, 함과 같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말고, 셈과 야벳처럼 사랑으로 그 허물을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한 그대로 내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함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25절입니다.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잘 덮어드렸던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6-27절입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러니까 24-27절까지를 보면 [가나안]에 대한 저주가 있고, []의 영적 축복, 그리고 [야벳]의 물질적인 번영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26절을 보면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는 축복의 선언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정말 귀한 말입니다. 셈에게 엄청난 영적축복이 담겨져 있는 말을 하고 있고,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야벳의 지경을 넓혀 주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야벳이 받은 복입니다.

    

그런데 효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불효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에게 내려진 것은 저주였습니다. 18절을 보면 함에 대해 소개할 때 남다른 소개가 붙어 있습니다.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22절에도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랬습니다. 급기야 25절에서는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라고 불효에 대한 저주가 아버지를 업신여겨 조롱거리로 삼았던 당사자인 함이 아니라 그 아들 가나안에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자식의 고통은 부모에게 몇 백, 몇 천배의 고통이 되는 법입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자식이 아픈 것을 부모는 못 견뎌합니다. 오늘 함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내가 저주를 받는 게 낫지 자식이 저주에 떨어야하는 것을 어떻게 볼일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아들 가나안에게 내려진 저주가 아버지 함에게는 엄청 가혹한 형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보다 더한 형벌이 어디 있겠습니까?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잘 공경한 결과 번영과 창대의 축복을 대대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엡6:1-3에 기록한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마음대로 뜻대로 살아왔는데 변화가 없었다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야 될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가는 인생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은 잠23: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살아생전에 잘해야 합니다. 산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남아 있고, 물은 언제까지나 그곳을 흐르겠지만 늙으신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번이라도 더 그 손의 체온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부모님의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인생의 자서전입니다. 흰 머리카락은 나를 위한 고생의 여정입니다. 갈라진 손과 발은 나를 위한 영광의 흔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는 바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를 맡고 우리가 살았다면 이제는 그 향기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