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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28 (부부주일) 그대들, 돕는 배필이어라! (창2:18-2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5-28 | 조회: 1070

 

저의 가정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얼마 전에 병원에 40여일 넘게 입원해 있을 때, 그동안 아내의 수고와 희생이 얼마나 큰지 그 고마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결혼을 한지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쭉 함께 살았기 때문에 아내가 있을 땐 몰랐는데 막상 한 달 이상 집에 없으니까 그 빈자리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실감을 했습니다. 제가 집에 있으면서 정말 힘이 들었던 것은 집안 살림을 해도 해도 표가 안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서툰지 모릅니다. 세탁기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또 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게 설거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설거지를 언제 하십니까? 설거지를 식사 후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사하기 전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안 하고 남겨 둡니다. 그러다 식사를 하려면 그 지저분한 설거지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게 잘 안됩니다. 참 가정에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결혼 30년 생활한 제가 이제 조금씩 철이 들고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여러분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내 여러분, 여러분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부부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부부의 존재를 아주 간단하게 정의합니다. 1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그리고 21절에 하반 절에도 아담에게 돕는 배?이 없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돕는” “돕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Ezer”라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거들다고 했습니다. 거들어 준다는 말도 재미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알맞은 짝이라고 했습니다.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의미라고 봅니다.

 

히브리어의 에제르라는 말은 돕는다, 원조하다, 지원하다, 구조하다는 말로, 군사적인 지원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움을 말합니다. 에제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이 말은 군사적인 도움, 원군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는 원군을 의미합니다. 돕는다는 말에는 이렇게 귀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조금 도와주고 협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의 반려요,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승리를 가져다주는 원군과 같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어떤 사람을 돕는다는 것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남자의 힘만으로는 인생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돕는 베필이라는 말은 남자를 돕는 여자의 역할만을 얘기하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돕는 배필은 '남성 명사형'입니다.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도우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보완의 의미가 돕는 배필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부부생활은

 

1.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21-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여기 보면 남자와 여자는 원래 만든 재료부터 다릅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입니다. 남자는 강한 것 같지만 약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들었습니다. 여자들은 만든 재료 자체가 남자보다 고급입니다. 창조를 할 때보면 뒤로 갈수록 좋은 제품, 고급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뒤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자가 좀 더 고급 제품입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는데 여자는 재료 자체가 뼈입니다. 인류 최초의 본차이나가 여자입니다. 여자들은 유지비가 남자보다 더 듭니다.

 

미국의 존 그레이 박사는 남녀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은 베스트셀러이고, 남녀 관계를 다룬 책으로서 고전이 되었습니다. 존 그레이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라고 말합니다. 남자는 문제 해결 중심적이고, 여자는 관계 중심적입니다. 남자는 신뢰와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면, 여자는 관심과 이해와 공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남자는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여자는 관심과 이해를 받으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여자는 남자의 단점을 고치기를 원하지만, 남자는 현재의 그 모습 그대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남자는 좌 뇌가 발달하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우뇌가 발달하여 감성적이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말을 꺼냅니다. 오늘 동창회를 갔다 왔는데 한참 애기하다가 친정 엄마 애기를 하다가 또 애들 교육애기를 합니다. 말을 듣던 남편이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결론이 뭔데?’ 남자는 여자가 말을 하면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문제의 답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답을 달라고 애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을 잘 듣고 그냥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하자고 하다가 싸움이 납니다. 여자는 정말 예민합니다. 그래서 남편의 말 한 마디에 쉽게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남편이 생각 없이 불쑥 내뱉는 말 한 마디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결혼만 하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는 줄 압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기성품이 아닙니다. 누군가 행복이란 옷을 만들어 놓고 결혼만 하면 누가 저절로 입혀주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행복은 요술이 아니요 마술이 아닙니다. 예술입니다. 결혼만 하면 요술적으로 마술적으로 행복한 가정이 꽃 피어 나리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훌륭한 예술가가 각고의 노력 끝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 듯이 부부는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됩니다. 서로 인내해야 됩니다.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 땀을 흘리며 가꿔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피를 흘리는 희생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행복의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담은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았습니다. 2:23절의 말씀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여러분, "중의 이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최고라는 말입니다. "당신이야말로 내게 있어서 최고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 생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아담이 기막힌 사랑의 표현을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언제 아담이 하와를 본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아담이 하와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담이 하와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 멋진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좋은 배필을 주셨을 것이다!" 이 믿음이 아담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즉석에서 그와 같이 멋진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아담은 즉석에서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압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사랑하여 부부가 되었음에도 어느 순간엔가 되돌아보면 부부 사이에 깊이 존재했던 사랑이 메말라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마치 풀로 종이 두 장을 접합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존재인 남자와 여자를 � 毬し� 접합시켜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아교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에는 풀로 붙여놓은 두 장의 종이를 갈라놓으려 할 때 찢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헤어진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과 감정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는 붙여놓은 두 장의 종이가 찢어져 누더기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누더기가 되더라도 찢어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것 아십니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인 노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변함에 따라서 사랑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서로 사랑하다가도 그 감정이 사라질 때에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랑 없는 관계로 전락하고 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언제나 일정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변함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감정이 변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랑을 일관되게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가정이 깨어지는 배경 안에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숨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고통 하는 때의 특징을 말하는데, 그 첫 번째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고 했고, 또 마24장에서 말세의 징조를 열거하는 중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했는데, 말세에 대한 이런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노래는 수없이 많지만 진짜 사랑은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무서운 개인주의가 판을 칩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면 모두가 불행해 집니다. 우리는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식을 하러 갈 때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TV 채널을 양보해주는 이런 소소한 훈련을 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내 편에서 끊임없이 사랑의 수고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람은 생각보다 이기적입니다. 행복은 공짜가 아니고,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서로가 만나서 살면서 내가 손해 보고 억울하다고 여기면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살펴 주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배필을 주셨습니다. 내게 가장 적합한 자를 배우자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어쩌면 배우자에 대한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배필을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그 배필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장 좋은 배필을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도 아담처럼 사랑의 표현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부부 사이에 애정을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또 그렇게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한 몸은 참 신비로운 말입니다. 결혼은 완전한 연합입니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완전한 연합을 말합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특히 그 하나 됨의 결합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습니다. 인류 최초로 하나님께서 중매쟁이가 되셔서 부부가 하나가 되게 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공동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어떤 경우에도 나뉘어서 평가되지 않습니다.

 

결혼한 이후부터는 한 몸,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괜찮은 사람인데 남편은 문제가 많다는 것은 없습니다. 문제가 많으면 같이 많은 것입니다. 아내의 연약함은 남편의 연약함이고, 남편의 아픔과 실패는 아내의 아픔과 실패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저 인간이 우리 가정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없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미련한 것은 자기 배우자의 흉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흉보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남자와 여자에게 동일하게 내려졌고, 성경은 그 책임을 아담이 범죄했다고 말합니다. 둘로 나눌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인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쩌자고 저런 인간을 만났는지 모르겠다고 운명을 탓하지 말고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끔 속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속은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을 내가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억울한 것이 아니라 결혼 안에서 그 연약함을 끌어안고 한 몸을 이뤄 가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잘 때 코를 골고, 이를 가는 것을 다 알고 결혼할 수 없습니다.

 

결혼해서 같이 살면서 점점 알아가고 배우며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용납하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그런 모습이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오히려 편안해집니다. 부부란 나눌 수 없는 한 몸입니다. 이혼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찢어지는 것입니다. 왜 아픕니까? 한 몸이 찢어졌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 것을 나눌 � � 있는 것은 음행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음행은 부부의 하나 됨을 깨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관계 안에서만 만족을 얻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이태영 여사를 아십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입니다. 그분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화여자전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다녀온 남편 정일형 박사가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자,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교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누비이불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녁이면 가위질을 해서 이불보를 만들고, 그 다음날에는 그 이불을 이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불을 팔아야 했습니다. 전차의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불보따리를 이고 수십 리를 걷는 날이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던 해에 남편 정일형 박사는 감옥에서 풀려났는데, 감옥에서 나와 아내의 손을 처음 본 순간 남편은 그만 눈물을 쏟을 뻔 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엄지손가락이 90도 넘게 뒤로 제켜져 있었고, 검지와 중지도 크게 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전쟁물자로 일제가 모조리 빼앗아 가버린 탓에 제대로 된 가위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밤새도록 이불을 만드느라 이태영 여사의 손이 그렇게 엉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 아내의 손을 본 정일형 박사는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고생한 아내와 무거운 짐을 바꿔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이후194633살의 아내를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시켜 법을 공부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뒷바라지를 다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태영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변호사가 됩니다. 훗날 정일형 박사는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꼭 아내를 위해서 선물을 하나 사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정일형 박사가 아내를 위해서 사온 선물은 언제나 가위였습니다. 잘 드는 가위 하나를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의 옛 소원을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아진 가위가 무려 2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손가락이 다 뭉개지도록 가위질을 해야 했던 이태영 여사, 그리고 그런 아내를 위해서 법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소박한 꿈인 잘 드는 가위 하나를 사 주겠다는 마음으로 아내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사 모은 가위가 200여개가 넘도록 가위를 사다 준 정일영 박사, 그것은 바로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 부부의 날이 있는 것 아십니까? 521일입니다. 왜 하필이면 521일이 부부의 날일까요? 우선 가정의 달이 5월이니까 부부의 날을 5월에 두었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요 부부는 둘이지만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둘 하나 즉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부부 십계명입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마라/2. 집에 불이 났을 때 이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마라/3. 눈이 있어도 흠을 보지 말며 입이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마라/4.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5. 아픈 곳을 긁지 마라/6. 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마라/7. 처음 사랑을 잊지 마라/8. 결코 단념하지 마라/9. 숨기지 마라/10.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사랑으로 부족함을 채워주도록 노력하라. 이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부부가 서로를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 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 부부이고,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이 부부입니다. 어느 아파트 앞의 현수막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내 생애 첫 번째 실수는 내 남편을 만난 것이고, 두 번째 실수는 아파트 분양받은 거다”. 러분, 이런 실수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편, 아내를 만난 것이 생애 최고 최대의 은혜이고, 축복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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