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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13 (광복72주년기념주일) 잊지 말아야 할 광복절 (출3:7-12)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8-13 | 조회: 945


 

이번 러시아 선교 사역 속에 우리가 흔히 연해주로 알고 있는 한 도시, 우스리스크에 있는 고려인 문화관을 탐방을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이주 상황을 잘 보여주는 전시관에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국만리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막상 말로만 듣던 우리 선조들이 일제의 피압박을 피해 20만이 넘는 동포가 연해주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짓밟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나라의 해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했습니다. 또 공산 혁명으로 소련이 우리민족을 강제로 기차에 태워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등지로 이주정책을 강행합니다. 그 현장의 사진 몇장은 우리 선조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닙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주권을 찬탈 당한 우리는 징병으로 총알받이로 끌려갔고,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위안부들이 여기저기 전쟁터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군함도에서도 보셨지만, 전범 기업인 미스비씨가 석탄을 캐낸다는 명목으로 징용해 간 이런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아픔을 가진 이 민족이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점점 이 민족이 역사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광복 72주년이 되는 이 시점을 돌아보면 역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도 대다수가 일제 강점기에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겪었던 그 피눈물 나는 삶의 모습을 우리는 겪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전혀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역사의 뒷면으로 퇴장했고,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피땀으로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을 위해 쏟아 부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목숨을 버리고 모든 것을 조국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던 것은 미래 대한민국의 해방과 자유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그 선열들의 꿈으로 가꾸어 놓은 희생의 디딤돌위에서서 이렇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난 날 우리의 선조는 누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분에 넘치도록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광복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광복 72주년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요?

 

지나간 역사의 아픈 과거를 미래를 향한 소중한 유산으로 삼는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세웠습니다. 저들은 나찌에 의해 600만이 대학살당한 사건을 홀로코스트라고 이름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홀로코스트는 제물을 통째로 태워 바치는 번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이 대학살 사건을 번제로 드려진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으나 돌려받은 것처럼 대학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쳐졌으나 되돌려 받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한 것 같으나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가면 정말 끔찍한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찌가 유대인들의 기름을 짜서 만든 비누며, 가스실, 생체실험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들... 유대인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추모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용서는 하지만 망각은 또 다른 방황으로 가는 길이다.” 히틀러도 독일도 다 용서는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또 다시 이런 수치와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침에 왜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게 됐는지? 그리고 그 국난에서도 어떻게 나라를 되찾게 됐는지?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동일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 관점에서 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길잡이 역할을 해 줍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을 10절 보면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겠다는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렇습니다. 무슨 수로 그 강대한 애굽의 손길을 벗어 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저 초강대국 애굽으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저들은 꿈에도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로 저들이 해방의 그 감격스런 날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한 주축으로 아시아에서 침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마저도 도무지 일본에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중국 땅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독립군이 나름대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었지만 일본과는 맞설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중국도 국민당의 장개석 정부나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일본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필리핀을 위시해 아시아 그 어느 나라도 당시 일본과 맞설 나라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나라치고 스스로 일본과 맞서서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기세등등한 일본은 미국의 본토인 진주만을 기습해 막대한 전력 손실을 가져 오게 했습니다. 미국은 독일과 전쟁하는 일만도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국은 19457월 포츠담 선언을 통해서 일본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19458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원자폭탄은 당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무기였습니다. 아직 한 번도 전쟁에 사용된 일이 없던 폭탄이었습니다. 그 위력도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피해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천황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때에 갑작스럽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좀 지나친 역사 해석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필이면 그 때 원자폭탄이 개발됐을까요? � �합군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두렵고 힘겨운 상대였던 히틀러에게도 써 보지 않았던 원자폭탄을 하필 일본에게 사용했을까요?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마치 저 바로의 저항을 물리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본의 저항을 물리치시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요?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원자폭탄을 준비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2.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자기의 자격 없음과 무능함 때문에 사양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순종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저 가나안 땅으로의 기나긴 여정을 이끌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를 보면 광복 당시 선배들의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부신 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 민족 독립투쟁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헌신적이었고 큰 공헌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독립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고, 그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이런 분들은 모두 연동교회를 출석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일제가 한일합방을 강행한 1910 이후 본격적인 항일 투쟁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 사건 가운데 하나가 신민회의 105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민회는 숭실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이 항일운동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이 123명이었는데 그 중 93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선교사만도 24이었습니다. 그리고 19193.1운동은 범 민족적으로 일어난 항일투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봉에는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33명의 민족대표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은 연동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0.9% 밖에는 안 되는 정말 미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전국 교회가 이 일에 분연히 일어나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겪는 수모는 아마 영화를 통해서 보셨을 것입니다. 옹혜 옹주라든지, 귀향, 그리고 동주, 밀정, 요즘 나오는 군함도등을 보면 치가 떨리는 아픔들이 있지 않습니까?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제 강점시기에도 글로 저항하고 비밀 결사대로 저항하고 했지만, 광복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절망의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파로 돌아서는 가슴 아픈 일들이 이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올 것 같지 않은 해방을 기다리며 삶을 바쳤던 그들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1 운동을 무저항 주의로 이끌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을 잘 아실 줄로 압니다. 이상재 선생이 애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패망한 민족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의 근심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감옥의 벽 속에 조그만 종이쪽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꺼내서 보니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끝부분이었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중략)...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얼마나 역설적인 이야기입니까? 이상재 선생의 가슴 속에 콱 치미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로 대항하려는 분노와 복수심 대신에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때 펼쳐질 놀라운 하나님의 화평을 바라본 것입니다. 무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할 때 허락하실 참다운 하나님의 평강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을 나와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1907720일 고종황제가 폐위되었습니다. 절망감에 젖어있던 이상재 선생에게 또 다른 절망감이 찾아왔습니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감옥에 있느라 돌보지 못했던 아내 유씨가 숨을 거뒀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사흘 만에 맏아들 승윤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듬해에 둘째 아들 승인이 마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친구 같은 동반자이던 아내는 죽고, 미래의 희망이던 아들 둘도 한꺼번에 잃은 상황 속에서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리한 후 자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이것을 알고 선교사 몇 분이 찾아왔습니다. 게일 선교사와 YMCA 운동을 하고 있던 질레트라는 선교사 그리고 브랑방 선교사가 왔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어떤 위로 받기도 거절했습니다. 그때에 어느 선교사님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설사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다 죽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는 아직 조국의 미래인 저 젊은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 젊은이들은 선생님의 자식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희망이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토록 고통스럽고 아픈 과정을 허락하시면서 선생님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절망했던 그의 가슴에 아들과도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가왔습니다. 패망한 조선, 무너져가는 한반도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그 비전과 꿈을 보았습니다.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YMCA의 총무일을 맡았습니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백성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고 결단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일만 육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1907년 일백만 구령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전하며 절망한 이들의 가슴에 생명의 불을 던졌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통해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3. 이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시대에 특히 신앙인들이 회복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기도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부르짓는 기도가 되복이 되어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가 왜 유황불에 심판을 받은 줄 아십니까? 기도하는 의인 10명 마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좀 살만하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불신앙의 나라를 뒤 엎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기도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십니까? 일제가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키려는 그때에 1907년 정월 첫 주간 북한 전역에서 700명의 신자가 평양 장대현 교회에 부흥회로 모였습니다. 8일 주일저녁 예배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장대현 교회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 회중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전에 자기 친구가 세상 떠나면서 재산 관리를 자기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당시 미회 100불상당의 금액을 사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간과 같은 자가 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통회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그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때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은혜의 역사가 물밀 듯 회중에게 밀려들어왔습니다. 무거운 죄책감이 통회로 다 날아가고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저들이 은혜의 사람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 정치적으로 기독교를 이용하려던 무리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신앙적 열정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철야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도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이제 72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17년 국제 정세 전망을 한 마디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우선 대외적 여건이 초 불확실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보호를 앞세우고 실리외교로 인해 국제 무역 질서가 어떻게 뒤바뀔지, 북핵 문제와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어떻게 맞서게 될지 현제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를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어떤 보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다음으로 대내적 상황 역시 초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올해 대통령을 탄핵되는 아픈 상처를 갖고 새 정부가 출발을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만 1300조원이나 됩니다. 우리 경제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초불확실성입니다.

 

이 정말 힘든 상황 앞에 우리는 광복 72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오늘의 주변 정세에 대해 안보 불감증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소돔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 롯이 사위들에게 우리가 사는 이 소돔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는다고 할 때, 그들의 반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농담으로 여겼다고 나와 있습니다. 결국 소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었던 우리의 선조들의 그 희생과 비전의 터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나라를 이완용처럼 포기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역시 민족의 미래를 위해 오늘을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미래가 하나님의 기쁨으로 열리는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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