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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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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0 한 밤중에 부르는 노래 (행 16:19-2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8-20 | 조회: 957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씩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됩니다. 혹은 육신의 질병으로, 혹은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혹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으로 더 이상 어찌 해 볼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업을 하다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빚 갚을 능력도 없고,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말기 암이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일들을 당하게 되면 어떤 이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아예 다 외면하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이런 일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00년 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한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습니다. 그 불쌍한 모습을 보다 못한 바울이 귀신을 쫓아내고 그 여종을 자유케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못된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서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는 본문을 보면 정말 상상이 안가는 아픔의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주도 보셨지만, 성령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는 것을 막으시고, 그를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유럽에 건너와서 처음으로 선교를 시작한 곳이 바로 빌립보라는 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과 실라가 당한 어려운 시련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여기까지 이끌어 놓으시고,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가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얼마든지 이런 핍박은 막아 주실 수도 있고, 피하게 해 주실 수도 있으실 텐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토록 몸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실까를 생각하면,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억울하게 잡혔습니다. 옷이 찢겼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옥에 갇히되,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그 발에 착고까지 든든히 채워졌습니다. 이런 억울한 옥살이, 언제 나가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를 막막한 순간에, 여러분, 별별 생각이 다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깊은 감옥에서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아프죠,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면서까지 순종하여 이 길을 왔는데 왜 이런 고난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얼마나 통증이 심했겠습니까? 25절에 보면 이 감옥 속에서 그들은 깊은 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 보면?밤중쯤?되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과 실라가 맞이한 이?은 호텔 방에서 누워있는 편안한 밤이 아니라, 내일이면 희망이 열릴 것을 기대하는 그런 밤이 아닙니다. 괴로운 밤이었습니다. 맞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의 밤이었습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정말 두려운 밤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우리 인생에게도 환경과 처지는 달라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습니까? 아니면 직장을 잃었습니까? 사업이 잘 안됩니까? 또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30대 후반에 속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직장에 대한 환멸과 불만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밤이 오고있는 증거입니다. 30대 초기에 큰 꿈을 가지고 출발했던 직장생활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는데 어느덧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이것이 내가 쏟은 삶의 전부인가하는 환멸을 느끼기 시작할 때 밤이 온 것입니다. 아마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합니다.

 

내 뜻과 방향대로 삶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 앉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고 불안해 지고, 두려워 지고, 사는 것이 겁나고,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남처럼 앞서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자기를 붙들어주는 손도 없고, 기대만한대도 없고, 결국은 우울증에 빠지는 비참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힘입니다. 힘이예요. !! 것을 극복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살 수 있게 하는 힘, 벌떡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내 자존심을 살려주는 힘이요, 절대로 기죽지 않게 하는 힘이요, 비틀 거릴 때마다 붙들어 주는 강한 손이요,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는 힘이요, 그 힘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 이 힘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없는 힘이 필요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힘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서 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까이 나아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붙들고 그분의 그 놀라운 사랑을 내가 마음에 다시 한번 체험할 때 힘이 생깁니다. 이 힘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나요? 이 아침!! 이 힘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이 시간 말씀하십니다. “너 인생의 짐이 무겁다고? 나는 너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살았어!! 그러나 다 지나는 거야! 나중에 내가 너에게 안겨줄 하늘의 영광은 세상의 고난과 비교가 안돼!!”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이런 음성을 듣는다면 힘이 안 생길까요? 내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보시는구나!! 그러면 나는 절대 시시하게 살 수가 없어!‘ 지금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하나님도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이런 자아의식을 가질 때 힘이 안 생기겠어요? 내 당대에 고생할지 모르지만, 내 자식 대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고생할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에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할 것입니다. 오늘 살아계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 그거 생각하면 힘이 안 생기겠습니까? 그렇다면 절대 인생을 시시하게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아침 나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25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했다는 말입니까? 억울하다고 소리쳤습니까? 그 불쌍한 여인을 공연히 도와주었다고 후회했습니까? 자기를 감옥에 가둔 저 못된 사람들을 원망했습니까? 주님 위해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은 왜 이리 어려움을 주시는가 하고 불평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고난의 밤에 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신음소리가 먼저 흘려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신음대신에 찬송의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고, 전도여행을 떠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소리는 신음소리 대신에 기도가, 원망이나 저주 대신에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들은 당당하게 기도하고, 당당하게 찬송했습니다. 밤중에 지옥의 어두움이 전율을 느낄 만큼 그들은 능력 있는 기도와 능력 있는 찬송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나시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골고다를 향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무엇을 했습니까? 이제 고난의 아픔이 밀려올텐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그들은 찬양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성령 받은 사람은 찬양합니다. 성령은 노래하는 영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해 놓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 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만 닿으면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천국의 거문고와 같습니다. 성도는 이미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데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러므로 밤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래합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한데가 있습니다.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됩니다.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은 은혜스럽지만 그런 찬송은 입에서만 나오는 찬송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밤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을 때, 실패를 당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영혼에서 나오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 밤의 노래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이 밤중의 노래는 자신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도 구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25?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이들이 ?계속해서? 찬양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듣더라.‘ 라는 단어를 보면 자세히 진지하고 주의하여 들을 뿐 아니라 기쁘고 기대하며 듣는다는 의미의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의 소리가 울립니다. 죄수들은 압니다.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아프며 그가 얼마나 좌절하고 있으며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신음소리대신 자신들의 영혼에 위로를 주는 음악이 들려집니다. 아니 위로의 노래가 아니라 희망과 구원이 선포되는 찬양인 것입니다.

 

여기 26절에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여기 이에 ... ’라는 표현은 바울과 실라의 찬양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란 의미입니다.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면서 문이 열립니다. 차꼬가 풀립니다. 이 절망의 밤에 이 엄청난 기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간수가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착각하고 자살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로마에서는 죄수를 놓치면 간수가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위험해집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자기 목숨만 버리면 가족은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울이 제지합니다. 우리가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자살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간수도 더 놀랍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아까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뭐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넙죽 엎드립니다. 바울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그러자 바울이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3-34절을 보면 더욱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간수의 집안 식구들이 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너무 기뻐합니다. 이들이 자주장사 루디아 집 식구들과 함께 빌립보 교회의 개척 멤버가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절망이 음습해 오는 감옥에서 탄식대신 터져나온 이 찬양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가질 능력이요, 힘이 아니겠습니까? 찬양은 우리의 입술에서 원망을 몰아냅니다. 불평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환경을 바라보게 만들지만,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한숨을 쉬게 만들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찬송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에도 열 두 번 씩 흔들리는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이 입만 열면 한숨을 쉬는 입술이 아니라, 결국에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원망대신에 찬양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드리는 그 찬양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밤은 반드시 밝아 아침이 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절망은 없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절망 안에 가두어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절절한 외침을 기억해 보십시오. 고후 4: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는 능력의 보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능력의 심히 큰 것이?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 /span>인생의 밤이 왔을 때 노래하십시오. 밤은 잠깐 지나가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막다른 골목에 섰던 바울을 일으켜 세우신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 밑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여러분의 손을 잡고 그 주님을 우러러 보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다시한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옥문이 열릴 것입니다./쇠사슬이 풀릴 것입니다./모든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찬양과 기도로 살아가는 우리 앞에, 날마다 능력 있는 삶을 사는 우리 앞에, 기적은 꼭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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