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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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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17 버리고 가야할 것 (골3:5-1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09-17 | 조회: 1067


우리는 살아가면서 좀 더 나은데로, 아니면 어려울 때 자주 그 한경에 따라 이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이사를 얼마나 해 보셨습니까? 저는 10번도 넘게 이사를 해 보았는데 이사를 하다보면 버릴 것이 많습니다. 평소 생활할 때에는 집안 구석구석에 들어가 있는 짐들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또 내가 살아가는 데 별로 필요하지 않는 것들도 쌓아둘 공간만 있으면 쌓아둡니다. 특별히 저와 같이 버리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구석구석 별로 쓰지 않는 것들이 쳐박혀 있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릴 수가 없습니다. ‘2년 이상 한 번도 안 쓴 것은 평생 쓸 일이 없을 것이니 과감하게 버려라.’ 하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쓸 때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제 때 제 때 버리지 않으면 쓰레기만 쌓이게 되고, 언젠가는 반드시 버려야 할 때가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쓰는 물건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썩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썩는 것인데도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다면 그것은 언젠가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주변에 곰팡이를 창궐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썩거나 상하는 것들은 유통기한을 두어 그 기간 안에 소비하도록 합니다. 그걸 잘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썩거나 상하는 물건을 유통기간이 한참이나 지나도록 방치하진 않습니다. 어떻게든 유통기간 안에 소비하거나 유통기간 안에 소비하지 못한 것은 아깝지만 버립니다.

 

쓸모가 없거나 못쓰는 것, 그리고 썩거나 상하는 물건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보다 더 빨리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땅을 밟고 살아가지만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육체에 속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얽매여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인 골로새서 3: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생명에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땅의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위의 것 - 하늘의 것, 신령한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엔 죄와 사망에 종노릇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가 버려야 할 옛 사람의 모습을 두 가지 차원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못된 성품들입니다. 5절에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새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못된 성품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는 나쁜 습관들입니다. 8-9절에 새사람이 된 우리가 버려야 할 못된 습관으로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 그리고 거짓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 성품이나 습관을 성품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우리에게 그것을 버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그 암 덩어리를 제거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하는 것이 아프다고, 고생스럽다고 암덩어리를 계속 안고 있으면 수술의 아픔은 겪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내면 깊이 자리잡고 있는 나쁜 성품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큰 아픔도 겪어야 하고, 또 그만한 수고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제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과 수고를 겪으면서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암덩어리를 없애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버려야 할 나쁜 성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걸로 인해서 우리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서는 그런 나쁜 성품들 제거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벗어나 풍성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바로 앞인 에베소서 2: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감춰져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버려야 할 성품들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금 그 진노 아래로 되돌아간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일이지라도 우리의 삶의 목적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까?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4)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 속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 앞에 빛 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온 세상에 두루 비추게 하는 것은 착한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의 선행이 예수 믿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지름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 이후에 우리의 삶이 세상 앞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를 못박은 세상에서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요,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내 삶에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공관병에게 비인격적인 갑질을 자행했다는 제2작전사령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분했습니다. 특히 그의 부인의 갑질이 더욱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인이 거주하는 공관에 냉장고가 9대나 있었고, 그 냉장고 안에 있는 과일이 썩어나갈 정도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공관병들에게는 사과 한쪽도 나눠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문 밖에서는 버려진 거지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부자는 날마다 호위호식하며 잔치를 즐기며 삽니다. 집을 나설 때마다 그 거지를 보았을텐데 부자의 안중에는 배고파 죽어가는 거지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9대의 냉장고에 과일에 썩어가는 데도 공관병에게 사과 한쪽 주지 않았다면, 그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한들 그게 과연 신앙인의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는 그에게 거짓된 욕심이 남아 있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현주소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우리 삶의 현장이 만만치 않더라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마음에 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기쁘신 뜻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삶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원에서 일생을 사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공회의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렇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만 우리가 흔들림 없이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영적으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심을 느끼고, 성령께서 내 삶을 주장하시도록 주도권을 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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