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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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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누가 진정 왕입니까 ① (마2:1-8)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7-12-17 | 조회: 92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으로 대림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의 의미는 옛날 로마에서 황제가 즉위한 뒤에 그 나라의 주요 도시를 초두 순시할 때 쓰던 의전적 용어였습니다.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그것을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황제요 유일한 주님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그 절기를 대림절(Advent)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진정한 왕이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사는 샬롬입니다. 전쟁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최고의 희망은 평강이었습니다. 2: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로 이 땅에 가장 필요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디를 가나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분쟁의 소식이 들리고, 세계가 긴장 가운데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주변 여러 나라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모릅니다. 또 우리나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념의 대립으로 갈등의 골이 깊습니다. 가정들은 어떻습니까? OECD 국가 중에서도 한국은 이혼율, 자살률 등이 위험 수위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별일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곳에 갈등과 분쟁과 다툼이 끊임없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도 유대는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고 팽팽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폴 존슨에 의하면 예수가 탄생한 세계는 가혹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세계였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 연안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지중해로부터 내륙으로 밀고 들어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전역, 그리스, 이집트와 터키를 점령했습니다. 그 결과 5천만에서 6천만 명의 사람들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는 무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독재자의 폭정, 타락한 귀족 정치로 인한 경제적 압제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헤롯 왕이 로마와의 정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도덕한 삶을 살면서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던 때였습니다.

 

 

이 헤롯 왕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부모 모두가 아랍계인 이두메 사람인데, 그는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유대인의 왕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그 헤롯이 자기 민족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반감을 갖게 됩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두 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유대인 하스몬 왕가의 공주와 재혼해서 자기 가문도 유대인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했고, 다른 하나는 초라하게 지어진 제2의 성전인 스룹바벨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성전 재건 사업은 엄청난 돈이 투자되면서 크고 화려하게 확장되어갔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세금도 감면해 주었고, 자기의 금 접시를 녹여서 백성들의 식량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유대인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을 없애기 위해 300명의 법정 위원들을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를 반대하는 장모나 아들들에게도 쉽게 칼을 휘둘러 서슴없이 죽이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또 그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10명의 아내를 거느리면서,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근친상간도 서슴없이 하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속국으로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때에 저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외쳤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동방박사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보통 왕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유대 땅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와서 그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 헤롯 왕에게 만왕의 왕 -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가 태어나셨다는데 그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렇게 물어왔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이 물음은 한 순간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을 소동케 했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결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3절에 "소동했다"는 말은 민란이 일어날 지경이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는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빨리 이 소문의 진상을 파악해서 예루살렘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소문으로 해롯 왕은 심기가 극도로 불편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헤롯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조용히 불러 말합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도 만왕의 왕으로 나신 분이 경배를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마음속에는 다른 음모가 숨어 있었습니다. 헤롯은 아기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셔야 할 분임을 알았으면서도, 진심으로 그분께 경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헤롯의 마음에는 자신의 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왕은 나인데 나 말고 누가 감히 왕이 된단 말인가그런 생각 때문에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아기 예수께 경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메시아이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것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세상의 왕인 헤롯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그는 만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은 어리고 연한 순과 같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53:2-3절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스도는 너무도 낮아진 상태로 오셨기 때문에 마음이 높아진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마차를 타고 폭풍을 일으키며 거대한 천군천사를 대동하고 왕의 모습으로 행차하셨다면 사람들이 두려워 떨며 도망쳤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람보 같은 이미지로 보내셨다면 사람들은 위엄과 권위에 두려움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신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웅적 이미지가 전혀 없습니다. 강자의 모습이 아니라 연약하고 상처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평화의 왕은 끝없는 낮아짐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왕으로 오신 그 아기 예수를 이 세상 사람들이 기뻐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이 메시아의 탄생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에 누가 기뻐했습니까? 당시 그 나라를 통치하던 정치적 실세인 헤롯입니까? 아니면 영적 지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율법과 제사를 통해 영향력을 끼쳤던 대제사장입니까? 아니면 평생 성경에만 파묻혀 살았던 서기관들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영접한 사람의 숫자는 그 당시 불과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소수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행한 성탄의 자세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했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몰린 자, 이런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6개월 먼저 왔던 세례 요한의 아버지 어머니,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사람입니까? 물론 제사장이기는 했지만 아주 평범한, 무명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 자식이 없어서 외롭게 살다가 이제는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구를 이끌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 옆으로 밀쳐놓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는데 쓰임 받은 요셉이라는 사람과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1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20대 초반의 아주 젊은 나이의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평생 목공소를 경영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골뜨기 청년들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여러 마을 가운데서도 그 이름이 끼이지 못하는 아주 후진 곳입니다. 따라서 별 볼일 없는 데서 태어나 그저 한 생 살다가 가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소리를 듣고 찾아온 목자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 당시에 목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천민 중에 하나였습니다. 남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제 이름 석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자들이요,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와야 하는 천민들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탄생을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좋아하던 시므온이라고 하던 선지자와 안나라고 하는 선지자를 한번 보십시오. 그들은 다 초라한 사람들이요, 평생 외롭게 산 사람들입니다. 안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고 7년 만에 과부 된 후고 84년 동안 아무 혈육 없이 그저 성전에서 날마다 심부름이나 해 주고 기도나 하고 먹을 것 없으면 금식이나 하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 이런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 말입니다. 모두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상적으로 말하면 천대받는 사람이요, 무시당하기 쉬운 사람들이요, 세상에 무슨 소망이나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대관식은커녕 우리 인간들이 드린 것은 고작 구유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말하길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들에게 우리 인류가 최초로 준 선물은 구유였으며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십자가였다고 했습니다. 너무 죄송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왕으로 오신 주님은 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의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2:28) 그리고 그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섬겨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친히 섬겨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도 하시고, 친히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바르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나 삶에는 왕의 위엄이 없으셨습니다. 다른 왕들처럼 남들 위에 군림하거나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군사력을 키워 자기 나라의 영역을 지키려 하거나 그 영역을 넓히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왕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피해버리셨습니다.(요한복음 6:15)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빈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외치며 다니는 그 처절한 외침을 외면한 우리 인간이 도대체 누구기에 저 구유에까지 당신의 자리를 펴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면 안되었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이기에 저 거룩한 영광의 보좌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합니까?

 

 

도대체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그런 수모, 그런 수치를 감당을 하셨습니까? 암만 생각해도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 앞에 여기 먼저 부름 받은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서 그렇지 그 십자가의 보혈로 적셔진 우리는 그 엄청난 은혜 앞에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하지만, 아들을 보내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아들이 내려가면 반드시 죽을 것인데, 그것도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을 것인데, 죄의 저주를 뒤집어쓰고 죽을 것인데, 그 아들을 보내는 하나님의 마음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당신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왕이신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탄이 무엇입니까? 왕이신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4: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가난한 자들이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되고,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게 되고, 표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실패자들에게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다고 다시 일어서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도가 감사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에 감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왕이신 예수께 드리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래 전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생전에 만 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셨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 생전에 내가 쓴 왕관을 그 발 앞에 벗어 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이 땅에 왕의 귀한을 선포한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탄을 맞는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 될 만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가장 귀한 것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물론 어느 학자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무슨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예물들에 영적인 의미를 덧붙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황금은 보석 중에 가장 귀한 것입니다. 유향과 몰약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얻을 수 있는 향유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여비가 부족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예물을 팔기만 하면 얼마든지 넉넉하게 여행을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소중한 예물을 절대로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장 존귀한 것을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드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동성 교회는 이번에도 성탄에 사랑의 쌀 나눔을 통해 우리 주변에 사랑을 주게 됩니다. 쪽방에 가서 노숙자들과 함께 식사도하고 그들에게 겨울을 날수 있도록 쌀을 나누는 시간도 가집니다. 지금 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 사실이지만, 그 여파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성탄의 계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그 작은 일마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이번에도 우리 주변에 구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신 주님의 그 사랑을 우리 함께 실천하여 우리의 섬김과 사랑이 이번 성탄절에도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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