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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 가정을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라 (행 10:1-8)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1-14 | 조회: 1185

 

 

한 때 우리나라는 지진과는 상관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웃인 일본과 중국에 지진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지진 때문에 나라가 고통당하는 일이 없었기에 지진에 관한한 안전지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보면 우리 역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작년 11월 포항에 진도 5.4의 강진이 발생해서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이때 지진으로 인한 가옥 파손이 28,356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해서 허물고 다시 져야 하는 집이 무려 538채나 된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수많은 집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정에 관한 하나의 비유를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가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가족해체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족해체란 가족 간의 불화나 사회적인 이유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구조가 붕괴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가족해체 현상으로 최근 나홀로 가정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가정 가운데 나홀로 가정수가 전체 가정수의 27.9%나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가족구조의 붕괴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진이 일어나 집(house)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처럼, 우리 사회에 사회적인 지진이 일어나 가정(home)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에는 집도 가정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있습니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영적 가족 해체 현상입니다. 믿음의 가정 안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족들 가운데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신론이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가정이 영적인 만남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무늬만 신앙인이지,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고, 가족들이 믿음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사회에 들어와 영적인 강진이 가정에도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들이 믿음의 가정이기를 포기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는 우리교우들의 가정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날마다 새롭게라는 표어 아래 가정을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교우들 가정이 이런 시대적인 위기 상황에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심각한 영적 강진이 일어나고 있는 이런 상황에 우리교우들의 가정을 잘 지키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가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 가정이 본질적으로 어떤 가정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추구해야 할 가정의 목표를 묻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이란 우선 모든 가족이 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가정을 말합니다. 가족 구성원들 중에 예외 없이 모두가 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를 잘 다니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그런 가정을 말합니다.

 

 

오늘은 고넬료의 가정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아닙니다. 고넬료는 신앙적인 유산이나 믿음의 계승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입니다. 당시에는 로마가 이스라엘(유대)을 지배하고 있을 때인데, 로마는 사마리아 지역인 가이사랴 지역에 총독의 관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100명씩 병사를 조직해서 지휘관을 한명 두었습니다. 백부장이라고 하지요. 고넬료는 100명의 군대를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런 고넬료가 식민지 지역에 파견 나와 살면서 회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고넬료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고넬료가 이방 지역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기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축복을 누렸을까요?

 

 

첫째로 고넬료 가정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외의 원어 뜻은 공경하다. 존경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존경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날까요? 예배로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공경하니까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뜻입니다.

 

 

33절에도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해서 만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중간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통해서 듣게 되는데,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들으려고 하나님 앞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고넬료는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온 집안과 더불어고넬료는 부인, 아들, 딸과 더불어 온 식구들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겁니다.

 

 

혼자서 개인적으로 예수를 잘 믿을 수는 있어요. 남편 혼자 잘 믿을 수도 있고, 부인 혼자서 잘 믿을 수도 있어요. 부모만 예수를 잘 믿을 수고 있고, 자녀들만 예수를 잘 믿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예수님을 잘 믿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자신과의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잘 믿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천사가 베드로를 불러 오라고 말하니까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서 보내지요. 하인들도 부하 중에도 예배드리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24절에 보면 베드로를 기다릴 때에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서 기다립니다. 친척과 친구들도 예배드리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고넬료가 이방 땅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신앙을 소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넬료는 자신만 신앙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와 종들과 친척까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고넬료 한사람이 예수를 믿으니까 그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고넬료가 살았기에 이런 역사가 가능했겠습니까?

 

 

둘째로 고넬료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신앙인으로의 아버지, 한 시대의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음을 보여 줍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족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삶이란 반드시 삶에 향기가 일어납니다. 여기 2절을 계속해서 보면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고넬료가 무엇을 했습니까? 구제와 기도의 삶입니다. 이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그는 식민지의 주둔한 권력자입니다. 얼마든지 사람들을 갈취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기는커녕 백성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늘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세속적인 언어보다 늘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언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정이 신앙적이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한 어머니가 비탄에 잠겨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부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돈벌이로 바빴고 아이는 아이대로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가끔 버릇없는 행동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벌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옷에서 담배냄새가 났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성적과 품행에 대해서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습니다. 학교에서 도둑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용돈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아이가 강도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경찰에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경찰이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맥없이 바라보자니 내 인생이 다 끝나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범죄자를 길러온 나는 경찰에 끌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남의 이야기로 돌릴 것입니까? 오늘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녀양육에는 지독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는 물질도, 정성도, 보살핌도, 공도 들어가야 합니다. 요즘 아이 하나를 낳아 키우는 비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 하나를 낳아 18세까지 키우는데 총 2억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2-3 키우는 게 얼마나 큰 부담입니까? 그런데 자식 하나를 양육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정성이 들어야 합니다. 화초 하나를 키우는데도, 강아지 한 마리를 사육하는데도 얼마나 공이 들어갑니까?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키워도 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않으면 결국 어느 순간에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문제가 나면 무너지게 됩니다. 신앙이 재산입니다. 고넬료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남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 앞에 서니까,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높은 자리,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지만, 하나님의 사람 앞에 십자가의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달으니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기도 줄을 붙잡고 삽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어려운 이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본 자녀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침 묻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가정에서 예배하며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계십니까? 24:15절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십시오. 그래서 금년 2018년은 여러분의 가정을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 가십시오. 무슨 유산을 물려 줄 생각마시고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기도하십시오. 우선 기도해야 합니다. 127: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실 때만 우리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지 않으신다면, 결코 우리들만의 힘으로 우리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정을 지켜주실 때 우리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계속 서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들만의 힘으로 우리가정을 계속 믿음의 가정으로 지켜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아직 구원 받지 않은 가족들이 있다면, 저들이 모두 다 구원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가정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김석균이 작사 작곡한 복음성가 가운데 [어머니의 기도]라는 곡이 있습니다. 한때 자신의 병을 하나님이 고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요나처럼 방황하던 자신인데 주의 은혜를 깨닫고 고등학교 선생을 접고 목사가 된 분입니다. 그 가사가 절절합니다. ‘예배당에 처음 간 날 서원한 기도, 아들의 병 고쳐주시면 주의 종이 되게 하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어머니, 죽음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 어찌 다 갚으오리까. 그러나 이제 예수를 모른다 하니, 아버지여 어찌합니까./ 새벽 종소리에 깨어 기도하시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죄악의 길로 달려만 가는 사랑하는 아들 살펴 주소서. 절망 속에서 항상 기도하시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아들입니다. 탕자 되어 살아가던 이 죄인에게 하나님 빛을 주시니, 사랑하는 주님 품에 안겨 이제 회개하고 용서 빕니다.

 

 

어머니가 뿌려 놓은 눈물의 기도. 이 죄인 이제 돌아와 주님의 복음 전하며 헌신하오니, 아버지여 받아주소서 내 평생소원/ 이것뿐 내 평생소원 이것뿐 앉으나 서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나의 어머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주의 종이 되어 왔어요. 이 아들이 새 사람 된 것은 어머니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을 구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가족들을 구원하는 것은 부모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고자 할 때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아직 믿지 않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온 가족이 믿음의 삶을 살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다음으로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신약시대에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그리고 구약시대에 성전이 세워지기 훨씬 전에, 가정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교회가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심지어 구약시대 성전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 아담의 가정부터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정에서도 드려졌고,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본격적으로 드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정예배는 구약시대 성전이 세워진 뒤에도 계속되었고, 신약시대 교회가 세워진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성전예배와 가정예배로 이원화되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성전과 가정은 하나님께 드리는 두 기둥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안타깝게도 예배의 한 기둥인 가정예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극소수 그루터기만 남아있고,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이 주일의 삶과 주중의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가정을 예배의 자리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정을 영적으로 살리는 일이고, 교회를 살리는 일이고, 이 민족을 복음 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예배를 회복하는 일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주일 저녁은 가족과 함께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을 꼭 가지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집안청소도 하고, 식사도 함께 만들어 먹고,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각 가정에서 가정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도록 앞으로 가정 예배지를 만들어 가정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드리는 토새는 가족이 다 나와 기도하는데 특별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십시오.

 

 

샌디 워너(Sandy Warner)라는 기독교 동화 작가의 독수리 이야기에서 부모 독수리가 아기 독수리와 작별하는 순간의 묘사로 저는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부모 독수리는 자녀 독수리가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고 느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녀 독수리를 비상시키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 곁을 나르며 이렇게 말한다.넌 이제 혼자 날 수 있어, 다음에 우리는 네가 나르는 그 멋진 모습을 저 높은 곳에서 지켜 볼 것이야./ 아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보내는 특별한 소리와 함께 네 비상 도움을 요청하는 날개 짓을 하면 되는 거야. 아빠 엄마는 언제라도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너는 곧 너의 아기 독수리를 키우기 위해 우리를 당분간 잊어 버려도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다만 먼 후일 언젠가 우리가 보고 싶으면 넌 저 광야의 골짜기로 내려오면 돼. 거기서 넌 너의 늙은 아빠 엄마 독수리를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아빠 엄마는 늙으면 더 이상 이 높은 곳에서 살수 없거든. 하지만 그때에도 아빠 엄마 독수리는 너를 알아보고 저 골짜기에서도 너의 멋진 비상을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 말과 함께 마침내 부모 독수리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자신들의 둥우리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를 사정없이 밖으로 밀쳐 낸다. 더 먼 곳으로 더 멀리 비상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다시 부모 독수리는 허공을 가르는 큰 소리로 외친다. ‘그것 봐!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우리보다 더 멋지게 나는 거야!’] 날마다 새롭게 -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요 기업입니다. 우리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새롭게 믿음으로 세워지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각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구원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각 가정이 하나님 잘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십시오. 모든 가족들이 구원받게 해 달라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 잘 섬기는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부모가 이제 포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시작하십시오.

 

 

오늘 안타깝게도 예배의 한 기둥인 가정예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극소수 그루터기만 남아있고,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이 주일의 삶과 주중의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가정을 예배의 자리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정을 영적으로 살리는 일이고, 교회를 살리는 일이고, 이 민족을 복음 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예배를 회복하는 일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번 드리는 토새는 가족이 다 나와 기도하는데 특별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십시오.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할 우리의 가정 다시 한 번 돌아보시고 영적 가족해체 현상에서 믿음의 가정으로 회복이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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