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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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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 날마다 새롭게 - 십일조와 헌물 (말3:7-12)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1-21 | 조회: 1133

 

기독교 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하는 연구 보고서들에 의하면 교인들이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언급하지 말았으면 하는 주제 중에 1위가 돈(헌금)이야기이고, 2위는 정치 이야기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칼빈 당시에도 그런 문제의 제기가 있었던지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돈에 대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고 알려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설교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략 38개의 비유가 기록되고 있는데 그 중에 16개가 재물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거의 예수님의 설교의 절반이 돈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달란트이야기, 데나리온 이야기, 청지기, 과원지기, 품 군, 부자 이야기 등은 다 물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닙니까. 신약성경에 평균 10구절에 한번 씩 물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복음서에만 288구절이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경 전체에 무려 2300구절 이상이 돈과 재정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관심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돈은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피해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 전직 대통령들이나 정치인들이 어떤 문제로 수치를 당합니까? 그리고 지난 날 날고 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수치를 당합니까?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과정에서 의혹종류도 편법증여, 병역면탈, 증여세탈루, 재산신고 누락 등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가 아닙니까? -돈의 문제입니다. 나라를 다스릴 사람들이 돈에 메여있다, 이것 때문에 그동안 쌓았던 명예와 자존심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은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피해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 소원 성취의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지체 없이 저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정은 곤란한 듯 꼭 세 가지를 다 원하시나요?”하자 다시 청년은 , 저는 돈 여자 결혼 세 가지가 다 필요한데요했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지요. 소원대로 해드리지요그래서 그 청년은 얼마 후 돈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돈 여자와 결혼 안하시고, 돈 인간으로 살지 않으시려면 돈에 대한 바른 생각, 돈에 대한 바른 헌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대하는 이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인 회의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들 그것이 자신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형식주의와 타락의 길로 치닫는 영적인 고통의 시대를 맞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들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그 내면에서는 여전히 부패한 모습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에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더러운 떡을 드렸다. 눈먼 희생제물을 바쳤다. 병든 것을 제물이라고 가져왔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모습이란 말이냐?’ 만일 총독이나 높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이라면 정성껏 준비한 좋은 것을 가져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사람에게조차 선물로 줄 수 없는 병들고 절고 쓸 수 없는 것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라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윤리적인 타락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거룩하고 바른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도, 율법을 바르게 가르쳐야할 제사장들이 율법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비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방의 우상숭배자와 결혼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 자신의 정욕과 욕망 때문에 조강지처를 헌신짝 버리듯 버렸습니다.

 

 

말라기 3장에서는 심지어 십일조와 마땅히 하나님께 드릴 예물조차도 떼먹고 말았다고 꾸짖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떼먹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떼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 말라기는 외칩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돌아오라는 애절한 하나님의 외침과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영적인 지도력을 상실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제파탄에 빠져있는 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돌아오라말씀하십니다. 유턴(U-turn)해서 오너라. 지금 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곡하게 돌아오라 돌아오라! 7절에 세 번씩이나 돌아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우리에게 돌아오라 말씀하신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라. 무릎이 닳도록 엎드려서 기도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심히 전도해라 그럴 것 같은데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참으로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겠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가 십일조 떼어먹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하나님!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백성들아 회개하라 해 놓고 왜 돈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말라기서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은 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셨지요. 우리말 성경에 재물이라 되어있습니다만 원문에서는 맘몬, 돈 귀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돈은 단순한 재물이 아닙니다. 그 속에 인격이 있고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씀하십니다. 돈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알 수 있고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관심이 먹는데 있습니다. 언제나 옷 사고 맵시내는 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옷에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 버는 것은 재주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재주가지고 안됩니다.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돈 버는 것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비슷합니다. 돈 버는데 특별히 인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쓰는 것 보면 거기에 신앙이 있고 인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 쓰는 것은 종말이요 심판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을 보면 천국과 지옥이 나누어지고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하늘백성과 땅의 백성들이 나누어진다는 말입니다.

 

 

1. 여러분!! 십일조는 종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가던 청교도들이 마지막에 사랑하는 자식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종자를 저들에게 먹이지 않았습니다. 날고기를 잡아먹으면서도 종자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 종자는 대륙에 가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만큼은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축복의 종자였습니다. 은혜의 종자였습니다. 내 삶의 내 생명의 종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소중히 잘 지키면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8절 하반 절에 보면 때문에 십일조와 봉헌물을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얘기하면 십일조는 헌금이 아닙니다. 저한테 볼펜을 어떤 청년이 빌려갔어요. 볼펜으로 싸인도 하고 메모도 하고 나서 볼펜을 돌려주면서 어깨에 힘을 딱 줍니다. 볼펜 빌려갔다가 쓰고 다시 내게 돌려줬다고 하는 것은 신실하다 정직하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선행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선행이나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십일조하고 폼 잡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어깨에 힘줄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볼펜 하나 가져오고 목사님 잘 썼습니다. 새 볼펜 두개 끼어서 주면 그건 선행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봉헌물이 따라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선교헌금이 바로 봉헌물입니다. 해외선교, 구제, 미자립 교회, 장애인 선교, 그리고 감사헌금이 봉헌물입니다. 이 헌물이 주는 신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십일조 뚝 잘라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나머지 90%가지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면 안되고 나머지 물질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아무리 정성스럽게 했다 할지라도 삼천만원짜리 밍크코드 입고 가난한 자 앞에서 으스대며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머지 90% 가지고 하나님 나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역사를 위해서 소중하게 진실하게 하나님 자녀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때에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상달된다. 이것이 헌물이 주는 의미입니다.

 

 

2. 십일조를 어디다 갖다 바쳐야 되겠습니까? 이 문제는 지난 금요일 국민일보에 나온 이슈입니다. 2030세대 기독인 사이에서 십일조를 출석교회에 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고아원에도 갖다 주고, 선교헌금 내기도 하고, 이웃을 위해 구제도 하는데, 이것은 십일조의 주인이, 물질의 주인이 자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십일조든 헌물이든 선교든 구제든 자기가 직접 하는 것은 자신이 마치 하나님처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10절에 보면 잘나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교회에다 바쳐야 합니다. 내가 꼴 먹는 그 자리에 바쳐야 합니다. 내 영혼을 위탁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몸 된 집,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십일조하면서 무명으로 하는 것을 대단한 공로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요. 잘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숨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숨기고 구제는 숨어서 하는 것이지만 믿음은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나 감사나 건축이나 선교헌금이나 모든 헌금들은 선언하고 하는 것이요, 당당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헌금을 한다든지 이웃을 도울 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내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 몰라야 합니다. 기억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공개적으로 선행은 은밀하게!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어떤 분이 십일조를 결단하면 깜짝 놀랄 일 몇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 십일조 뗄 때에 내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서 놀랬다. 그런데 얼마동안 했더니 너무나도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서 놀랬다. 아홉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지혜가 생겨서 풍성한 것을 보고 놀랐다. 십일조를 바치는 날이면 교회에 달려나가고 싶고 하나님 앞에 은혜가 되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리고 기름진 삶을 누릴 수 있는 나의 삶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그랬습니다.

 

 

3. 십일조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일조 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저주를 받았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 하지 아니하면 이미 저주를 받게 되는데 이 땅에도 쌓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고 하늘에도 쌓이지 않습니다. 십일조 하지 않은 돈은 하나님이 직접 떼 가지고 가십니다. 병원에 갖다 주는 사람도 있고요. 사기꾼에게 사기당해서 갖다 주는 사람도 있고요. 엉뚱하게 사고 당해서 갖다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자원하여 드릴 것인가? 아니면 사기꾼에게 또는 사고 당해서 땅에 쏟을 것인가? 둘 중에 하나 결정만 남아 있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3. 십일조 축복은 십일조 잘하는 백성에게 오늘 본문이 많은 것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10-11절에 보면 첫째, 하늘 문이 열린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하늘 문이 열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베드로가 고백할 때 "천국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하늘 문을 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열어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찬송하고 기쁨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늘 보화 창고를 열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놀라운 이런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황충이 금해질 것이다.

 

농사를 지었으면 주인이 먹고 살아야 되는 거지요. 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회사에 황충이 생겨 망합니다. 어떤 가정은 행복한 결혼을 시작했는데 애정생활에 황충이 생겨서 가정이 파탄에 이릅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살았는데 건강에 황충이 생겨 질병으로 고생합니다. 이런 것에서 자유합니다.

 

 

셋째,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겠다.

 

농사를 지었어도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기한 전에 떨어지면 저주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70이요 80인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했는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겠다. 결혼생활 시작했는데 결혼이 마칠 때까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겠다. 임신한 여자가 해산하기 전에 낙태하는 것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그랬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중도에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하나님은 시험 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에 단 한번 오늘 읽은 말라기서에 십일조를 교훈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믿음으로 아멘 하면 좋고, 그러지 못하면 하나님을 시험이라도 해봐라. 체험이라도 해봐라 그런 얘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 결단하고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면 환난 날에 네가 나를 영화롭게 했으니 이제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내 삶의 중심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자리로 몰아내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할 것은 바로 물질생활입니다. 내 인생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십시오.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주의 손길을 붙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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