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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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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3 날마다 새롭게 - 내가 사는 이유 (빌1:20-2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2-11 | 조회: 1136


강철 왕 카네기의 집무실 한 쪽에는 낡고 커다란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배 한 척이 모래와 진흙 바닥에 처박혀 있는 그림입니다. 노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버려져 있습니다. 배가 뜰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경입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아니었기에 대단한 명화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카네기는 왜 이 그림을 소중하게 여겼을까요?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이 그림은 젊은 카네기가 세일즈맨 시절에 방문했던 한 노인의 집에 걸려 있었던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그 구절이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그 노인에게 사정을 해서 얻게 되었습니다. 카네기는 인생의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을 썰물 때라서 물이 빠지고 배도 띄울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이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밀물 때가 오고야 만다는 것이 아닙니까? 경영자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엄청난 모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그 기대의 열망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열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본문 20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사도 바울에게도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연로해지면서 몸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몸이 몹시 약한 사람이었는데, 감옥에 갇히면서 더 많이 약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이유는 자신이 뭔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죄명,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에게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갖고 있는 간절한 열망,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20절 하반 절에 오직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21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죽음마저도 그에겐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마음으로 평생을 산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도, 자신의 생각과 마음도,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도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에 주인이신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엇을 하든지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불러 가신다 하더라도 그 생명이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께 유익이 된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사는 이유였고 그로인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당당히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도 바울만의 믿음이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에게 주신 사명과 우리의 사명이 다르고, 사도 바울의 삶과 우리의 삶이 다르다 하더라도 믿음의 방법과 가치는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며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열망을 갖고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것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렇게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가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 마음도 있습니다. 소망을 이루고 픈 간절한 마음을 우리는 열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간절한 열망은 무엇입니까? 취업을 앞둔 청년이나, 취업을 앞두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취업이 가장 큰 열망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할 청년들에게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열망일 수 있습니다.

 

 

삶이 너무너무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이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고 남들처럼 행복한 웃음으로 웃는 그날이 속히 오는 것이 가장 강렬한 열망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 불화나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은 빨리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되는 열망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던 사업에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은 사업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분들은 건강의 회복이, 친구나 이웃과 관계가 불편한 사람은 좋은 관계로의 회복이 그들의 마음속에 큰 열망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갖는 그런 열망 말고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신앙의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전혀 신앙적이지 않는 것들만 끌어안고 살거나,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만을 열망하며 산다면 우리 스스로 어찌 신앙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인이라면 뭔가 신앙인다운 열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서 점점 믿음의 가치가 그 힘을 잃어가기 때문에 우리 안에 신앙적 열망, 간절함의 열망이 점점 식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이 여유롭고 편안해지면서 신앙적 열망은 점점 더 식어져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살이에 너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신앙의 행복을 느낄 신앙적 감각이 점점 무디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적 감각이 무디어지다 보니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내 자신이 영적으로 메말라져간다는 사실조차도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세상적인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 나에게는 오직 주님뿐입니다.’라고 고백했던 그 첫사랑의 감격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면서 예배에 대한 열정도, 찬양하는 열정도, 기도하는 열정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마음 빼앗기고 세상의 것에만 너무 집중한 채 살다보니, 세상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져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은혜가 아닌 세상의 풍요로움에 목숨을 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간절함이 사라지면 우리의 신앙은 점점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말씀을 읽어도 말씀이 내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그저 구경꾼의 심정으로 읽을 뿐입니다.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죽어가는 내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어야 하는데, 재미를 위해서 읽는 소설처럼 여겨집니다. 소설처럼 읽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전혀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베뢰아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함으로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후에는 그 말씀에 기초해서 성경을 날마다 깊이 묵상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간절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세상적인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의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이 주는 쾌락과 세상의 편안함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혹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보다 더 간절한 믿음의 열망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간절함이 사라지면 우리의 신앙은 점점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말씀을 읽어도 말씀이 내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그저 구경꾼의 심정으로 읽을 뿐입니다.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죽어가는 내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어야 하는데, 재미를 위해서 읽는 소설처럼 여겨집니다. 소설처럼 읽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전혀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베뢰아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함으로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후에는 그 말씀에 기초해서 성경을 날마다 깊이 묵상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간절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세상적인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의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이 주는 쾌락과 세상의 편안함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혹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보다 더 간절한 믿음의 열망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빨리 잃어버린 신앙의 열망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재림의 열망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좋아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수출 100억불 목표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수출 100억불만 달성되면 우리나라는 엄청 잘 사는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출 100억불은 1977년에 이미 달성이 되었고, 지난 2016년에는 수출 5천억에 이르렀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로 본다면 40년 만에 우리나라는 50배나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수출 100억불을 이루기 전에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주님 재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50배나 성장한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의 재림에 대한 열망은 50배나 적어졌습니다. 왜요? 지금이 살기 너무 좋아졌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지난 (금요일 오후 8!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을 시작하는 대한민국 참 대단하고 훌륭한 나라입니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 15개 종목, 금메달 102, 17일 동안, 92개 국가가 참석하고 거기에 선수만, 2,925명이나 됩니다. 참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국력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자동차 생산, 6대 강국입니다. 造船1등 강국입니다. 반도체 1등 국입니다.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반도체의 20%, 삼성과 SK하이닉스 제품입니다. 북한보다 40배 이상 잘 삽니다. 국민 다섯 명이, 자동차 2대 이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냉장고, TV, 세탁기 1등국입니다. 1970년에 고속도로가 1개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43개입니다.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5연패 했습니다. 인천 항공은 12년 연속 세계 1등입니다. 서울 지하철은, 운행거리가 세계 3입니다. GS에너지가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유 8억 배럴을 개발하여, 매달 150만 배럴씩 40년간 들여옵니다. 한국 타이어는 세계 3대 타이어 회사이며, 매년 1억 개를 생산합니다.

 

 

이러다 보니 주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풍요롭게 잘 살고 있기에 주님이 오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오히려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주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혹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열망이 사라져버린 오늘 우리 시대의 신앙인들의 마음에는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 오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이 주는 풍요와 쾌락과 즐거움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좇아가고, 세상에서 즐기며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간절함의 열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의 쾌락을 좇아가려는 우리를 신앙 안에 머물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신앙의 간절함을 잃어버리면 그 신앙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함으로 가득 찬 신앙의 열망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태도가 미지근한 것이었습니다. 이 미지근한 태도에 대한 주님의 냉엄한 심판은 토하여 내치리라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처럼 심한 말이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미지근한 태도로 하는 모든 종교적 태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아주 냉정한 표현을 하십니다. 현재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간절함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갈망이 없는 예배를 예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소리를 크게 지르고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갈망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 신앙이 살아 있는지 죽어 가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있고, 찬송하고픈 열정이 있으면 우리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감동이나 믿지 않은 영혼을 보면 불쌍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은 죽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있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봉사할 때면 마음에 기쁨이 있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신앙인입니다. 예배드릴 때에 예배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나고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우리의 신앙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의 어려움이 있고 그것 때문에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평강으로 인해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생명을 사라지면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나 감격이 없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찬송하고픈 열망도 없고, 복음을 전하고픈 감동도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맨송맨송합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주일이 다가오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교회에 가긴 가야 하겠는데, 마치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교회당에 나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영과 우리의 신앙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며, 베옷이 벗겨지고 기쁨의 띠를 띠게”(30:11) 됩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했을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옵니다.”(30:5) 주님을 만나면 그렇게 달라집니다. 행복을 찾지 못해 불행의 나날을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남으로 행복해 집니다. 삶에 웃음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했던 자도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열정이 일어납니까? 오늘 바울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좋은 예배당에 있습니다. 먼저 수고한 주의 종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는 이렇게 평안한 가운데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우리는 죄와 허물을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여전히 주님의 심장 속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은 신앙의 간절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신앙의 간절함이 사라질 때 주님의 마음에서 우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향한 간절함의 열망이 사라질 때 우리의 신앙은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함의 열망이 우리로 주님의 심장을 갖고 살게 하는 생명의 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지금보다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지금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감격적인 예배로, 간절한 기도로,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우리의 신앙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십시다. 주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내가 사는 이유, 바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 패배자로 사는 것 아니라 어떤 환경,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신앙의 열망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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