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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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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9 사도행전을 계속 써 가는 교회( 행28:16-20,30-31)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4-29 | 조회: 1125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20168월에 시작한 사도행전 강해를 오늘 마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제목에서 밝혀주고 있는 것처럼, 초대교회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사역한 사역의 현장을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처음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대부분은 자포자기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옛날 직업으로 아니면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믿기기 어려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옛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님에게 모여 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40일을 머무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다시 하나님 나라의 꿈을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흔히 천국을 이야기 합니다. 죽어서 들어가는 나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들어가는 천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은 의미를 갖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지배를 곳입니다. 이 나라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통치하실 나라입니다. 1:3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왕 노릇 하는 나라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은 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증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 예외 없이 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여기 환상을 보든, 예언을 하든, 꿈을 꾸든, 이 세 가지 표현은 한 가지 의미를 삼중으로 표현하며 강조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무언가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꿈이 있다는 겁니다.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 29:18의 말씀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묵시라는 말이 곧 비전이요, 꿈입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신중함이나 자제력을 상실한 경거망동을 의미합니다. 꿈이 없으면 인간이 경고 망동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전이란, 꿈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시선은 오늘을 뛰어넘어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맞닿아 있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꿈이 없는 인간은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자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항상 목전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대로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은 방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꿈이 없으면 목회자이든, 교인이든, 어떤 인간이든 방자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꿈을 가졌다, 가지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의 마지막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16절입니다. 어떻게 시작됩니까?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아무런 감동이 없으시네요. 이는 사법 고시를 10번을 치렀는데 마침내 합격을 한 것입니다. 이때 당자자는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수많은 환란과 핍박,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고난과 광풍을 지나 드디어 로마에 당도 한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벅차오르는 감격과 함께 주마등처럼 지나간 일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여정 속에서 자신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분명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난 여기 까기 올 순 없었을 거야!’ -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로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지만 그 여정 속에는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인생은 홀로 걷는 길이 아닙니다. 인생은 함께 하는 길입니다. 아니 인생은 함께 해야만 끝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1. 우리는 지금 이 사도행전을 마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하나가 바로 함께 하는 삶의 원리를 배워야합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힘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힘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본문 15절 보세요.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 무엇을 얻었다고요? 담대한 마음입니다. 힘을 얻은 거예요. 용기를 갖게 된 거예요.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어디까지 와서 바울을 맞이하고 있다고요? 압비오 광장입니다. 로마에서 무려 7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입니다. - 그런데 본문을 잘 보면 그런 형제들이 또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로마의 형제들이 로마에서 56킬로미터 떨어진 트레이스 타베르네이란 곳에서 까지 와서 바울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격려하기 위해 계속해서 바울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마중, 로마라는 도시에서 살기에 바빴을 그 형제들이 그것도 걸어서 그렇게 먼 거리까지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바울은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사실 바울도 지쳐 있었거든요. 계속되는 핍박과 환란, 끝나지 않는 재판, 급작스럽게 불어온 광풍과 난파, 그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아니었잖아요? 사실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주님만 바라보고 가는 길이었지만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먼 거리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로마의 형제들을 보는 순간 바울은 눈물 나게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최근에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배우자, 자녀, 부모, 직장 동료, 그 누구든 간에 정말로 용기를 심어주는 따뜻한 격려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비판과 정죄가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문을 펴면 온통 비판의 글들이 가득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비판하고, 고용인과 고용주들은 서로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비난하고, 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뜻하게 위로해 줄 사람이 참으로 없는 세상입니다. 사람과 이 사회를 세우는 격려의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대입니다. 누가 이 척박한 세상을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정죄의 화살을 맞고 남몰래 신음하는 자들을 찾아가 치료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바울의 사역을 보면, 늘 그의 곁에 있어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16절에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우리가 누구입니까? 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입니다. 의원으로 알려진 누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누가는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키며 바울과 함께 고난을 나눕니다. 갖가지 병을 가지고 있는 바울과 함께 있는 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믿음직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다른 이들이 다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르기만 하면 먼 곳에서도 바로 찾아올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나의 힘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실로 행복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면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로 인하여 힘을 얻어 끝까지 사명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바울은 비록 재판을 받으러 로마에 왔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하나님 나라 확장 - 복음 증거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오긴 했지만, 사도 바울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긴 하지만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30절에 의하면, 로마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된 셋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6절부터 보면, 자기가 머물던 셋집으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사도 바울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미결수입니다.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 복음을 전할 수도 있고, 구금되어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재판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나도록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변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재판에서 변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의 관심은 하나 -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유의 몸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지금 형편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유대인들이 날짜를 정하여 다시 사도 바울을 찾아왔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마에 머물러 있는 2년 동안 자기 집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셋집에서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본문 마지막절인 31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보십시오. 비록 몸은 쇠사슬에 매어있고 감시당하고 있었지만 복음은 거침없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복음화 아니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위해 하나님은 여기 로마에서의 아주 특별한 2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인생을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의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인생의 평가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사는 동안 어떤 특권을 누렸는가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보람찬 시간을 보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인생 평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 사도행전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 강해를 마치면서 이런 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친 인생이야 말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 제목을 사도행전을 계속 써내려가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을 가르쳐 학자들은 오픈 엔딩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났지만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일터에서 이제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동성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여러분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것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말라는 명령도 아닙니다. 하고 싶든 아니든, 할 수 있든 없든 우리가 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오시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세상 나라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몇 해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선교지에서 참 놀라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사역을 마치고 버스로 10시간을 타고 도미니카로 국경을 넘어 왔습니다. 거기에 김현철 선교사님이 저를 기쁘게 영접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저 뿐만 아니라 어느 선교사든 도미니카에 오기만 하면 아파트를 아예 선교사를 위해 제공하고 그렇게 잘 섬겨 주십니다. 지금의 프로 야구를 만든 전 삼미슈퍼스타시즈의 구단주요, 삼미그룹의 회장을 지냈던 한때 정말 잘나갔던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이었습니다. 그 집에 3일간을 머물면서 받은 인상은 지금도 ?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회사가 정부의 미움으로 혹자 부도가 나고 실의에 빠지면서 정말 모두를 증오하는 삶을 살다가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분노와 좌절 속에서 그는 수술 과정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도미니카로 와서 선교 센타를 위시해서 교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인데 저보고 고생했다고 제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계셨던 몇 분도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느낀 것은 정말 낯선 목사에게 이렇게 자신의 집을 열어서 최고로 대접을 하며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는가, 사람은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보면 그 사람이 참인가 거짓인가 진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직 관심은 내가라는 이야기는 안합니다. 제가 거기 식사를 하면서 그분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로 하여금 다 버리고도, 다 잃고도 가슴 설레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까였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던 하나님 나라비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이 사람들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세상이 원하는 것을 다 쥐어본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인생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이렇게 우리 인생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덧없습니다. 아무리 호화로운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허무만이 남습니다. 하나님 나라 모르는 인생.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살아갈 가치조차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소망적으로 자꾸 좋은 말 하려고 떠들 뿐, 우리가 영적으로 이 세상을 보고 인생을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없다면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있기에 오늘도 태산을 지나 험곡을 가도 찬송 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하여 무언가 소명을 갖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증인들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가난하던 잘 살던, 못 살던, 잘났던, 못났던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벽돌 하나씩 옮기는 엄청남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 때문에 세상을 사는 것 아닙니까?

 

 

 

, 우리의 사도행전 29장을 위해 이제 다시 우리의 주인 되신 그분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인생을 그분에게 후회 없이 헌신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순종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동안 솔직히 헌신을 못하셨다고요? 순종을 못하셨다고요? 괜찮습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 다시 한번의 도전을 위하여 이제 헌신의 인생, 순종의 인생을 시작할 준비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제 다시한번 우리도 행29장을 써내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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