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매우 뜻 깊은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5월 한 달을 가정의 달로 삼고 이번 마지막 주 청년, 즉 성년 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성년이 되는 청소년들은 1999년생 61만 여명이라고 합니다. ‘성년의 날’은 만 19세인 청소년이 사회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권리와 의무, 책임을 지며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정당 가입이 가능하고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투표할 수 있으며 부모나 후견인 의사와 관계없이 혼인이나 재산관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병역의 의무가 있으며 잘못을 저지를 경우 미성년보다 더욱 엄격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됩니다.
현대 성년의 날에는 장미, 향수, 키스 세 가지 선물을 하는데 장미는 ‘열정’, ‘사랑’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어서 성인이 된 젊은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의미고 향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향기를 풍기는 좋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며 키스는 책임감 있는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대에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습니다. 너무 일찍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버렸기에 뛰어가고 싶어도 뛸 수가 없습니다. 실패하여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설 기력이 없습니다. 불의를 보아도 분노할 힘조차 갖지 못한 채 사회에 너무 일찍 길들여져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고 젊음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포기’라는 단어가 청년들의 삶에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회학자들은 청년 세대를 ‘포기 세대’라는 용어로도 대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tv방송에서 설문을 냈는데 20-60대까지 시대를 가장 잘 못만 난 시대를 꼽으라고 했는데 응답자 중에 43%가 20대이고 30대가 30대가 26%로 2번째로 높았습니다. 또 기회만 되면 이민을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20대가 63%가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생각이라면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한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갈렙 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제안을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 산지란 유대 나라 가나안 땅의 남방부에 있는 산과 언덕으로 구성된 산악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한 요새일 뿐 아니라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장이 크고 힘 있는 족속인 아낙 자손들이 그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헤브론과 같은 큰 성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수년 동안 전투를 해왔지만 그곳은 아직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슬슬 피하면서 지금까지 남겨 놓은 땅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내가 올라가서 저 산지를 취하겠나이다. 저 땅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소유하겠습니다." 누가 이 고백을 합니까? 갈렙입니다.
이 갈렙이 누구입니까? 본문 6절에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기 갈렙을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로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출12:38절에 보면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민족이 애굽으로부터 탈출을 하는데 히브리 사람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잡족 - 이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잡족 중에 ‘그니스 또는 그나스’ 라는 족속이 있습니다. 갈렙은 바로 순수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례를 통해 언약 안에 들어 온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 출신 갈렙은 유다지파의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1. 편한 길 아닌 바른 길에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시작하는 말씀에 보면 7절에 "내 나이 사십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금 본문의 주인공 갈렙의 나이 여든 다섯 살입니다. 45년 전의 세월을 돌아보며 한 말입니다. 갈렙은 사십에 12지파의 대표 중 유다 지파 대표로 뽑혀서 가나안을 정탐하는 12정탐꾼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10명의 동료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고하고 이제라도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합니다. - 이 이야기를 듣던 200만이 넘는 백성들이 통곡을 하고 광야에 원망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이때 분연히 갈렙이 일어납니다. "저 10정탐꾼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처지와 형편만 보고 모든 상황을 판단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내 나이 사십에! 가나안 적군이 강해 보인다고, 문제가 커 보인다고 절망해야 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게 힘이 없다고 포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보았으니 갈 길이 없다고 좌절해야 될 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전하고 개척하고 창조해야 될 나이라고 갈렙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두가 다 내려놓으려고 더 이상 도전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유독 갈렙만 나서서 “이 산지를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비전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비전의 유무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집니다. 비전을 다른 말로 ‘목적의식’이라고 할 때 살아가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비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상실했을 때, 그는 40년간 쌓아온 하나님의 귀한 사역이 한 여인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새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갔지만 그가 비전과 사명을 상실했을 때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비전을 가지고 850명과 싸워서 승리하는 정말 놀라운 일을 했지만 그 비전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로뎀 나무에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는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돌아섰습니다. 바로 비전과 꿈을 잃어 버렸을 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갈렙은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정복하겠다는 도전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산지를 달라’고 한 갈렙은 높고 안전한 성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강한 아낙 자손과 위험한 도박을 벌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갖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다. 내 발로 밟는 땅은 다 내 것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가서 밟으면 그것은 내 땅이야.' 확신이 분명했기에 값을 지불하는 것쯤은 두려워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갈렙은 지금 이스라엘의 제2인자요, 가나안을 정탐하던 시절부터 그곳을 정복해 가는 지금까지 여호수아를 지척에서 도운 지도자중 지도자입니다. 이쯤 되면 가장 좋은 땅을 요구할 자격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어려운 일을 맡겨 달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험한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가서 점령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당당한 신앙입니까. 이 얼마나 든든한 뱃장입니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조용히 은퇴하여 쉬고 싶고, 이름이 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어려운 일을 맡겨 달라고 말합니다. 그는 몸은 늙었지만, 분명 청년입니다. 우리 중에 연령으로 봤을 때는 청년인데 그 속에 든 것은 세상의 썩어지고 병든 것이 가득 하여, 자신의 야망과 꿈 이룰 생각만 하는 청년답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 도전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50% 실패한 것이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100% 실패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위험은 따르게 마련입니다. 위험이 있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망사고 원인의 20퍼센트는 자동차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자동차를 탈 수 없습니다. 비행기, 열차, 배로 여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갈렙을 보세요. -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성공하는 사람은 도전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땅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래서 묘한 갈등마저 일고 있는 그 자리에서 누가 보아도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갈렙이 험한 산지를 갖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하고, 개척하고, 창조할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험한 산지를 내게 주소서" 평지가 아니고 산지를, 옥토가 아니고 거친 산야를, 푸른 초장이 아니고 험한 산지를 요구하는 이 모습은 "편한 길이 아닌 바른길에 도전한다" 는 것입니다.
2.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늘 붙잡고 살았습니다.
갈렙이 헤브론을 자신에게 기업으로 달라고 한 이유를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온전히 좇았은즉’ 이는 일부분만 좇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부만 좇은 것이 아닙니다. 가능해 보이는 부분만 좇은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은 45년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 약속을 받은 이후 85세가 된 지금까지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45년 동안 그의 마음에서 단 한 번도 지워지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1-12절에서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직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삶이 있었기 때문에 강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링컨의 좌우명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굉장한 역경 속에서도, 위태한 지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링컨의 이 놀라운 낙관이 무엇이었을 까요? 그 이유를 사람들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 때문이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당신 편에 계시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되물어 오자, 링컨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어떻게 계실 수가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당신이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하십시오” 갈렙은 얼마든지 여호수아에 비견될만한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인자의 삶으로 한생을 살면서도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중심 신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아십니까? 이 시대는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이 표현한 것처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무신론 문명’입니다. 모든 사람의 의식에서 하나님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디에서 인간성이 파괴됩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인간성이 파괴됩니다. 누구의 마음에서 증오와 복수가 불탑니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질이 일어나고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 성 매매나 성 문란의 죄악들이 날마다 날마다 반복됩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자의 마음에서 그와 같은 죄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치와 한탕주의가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유혹을 받을 때, 그와 같은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합니까? 개인과 가정이 망합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세상의 모든 악이 다 가능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없는 자리입니다.
지금 갈렙은 4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초지일관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게 갈렙으로 하여금 청년의 기백과 열정과 도전 정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가 머무는 자리마다 사람들은 희망을 찾았고, 섬김이 무엇인지를 알아갔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청년 여러분, 어느 시대이고 그 시대는 항상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비록 다른 어느 때보다도 취업하기 힘들고, 젊은이로 산다는 것이 힘든 시대이지만 불평이 우리 마음에서 고개 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불평이 우리 마음에 살아 역사하면 우리의 인생 전부가 무너지고 맙니다. 세상에 사는 젊은이들은 불평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하라 하십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 손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마치 신앙 없는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신앙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죽이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짓밟으심으로 그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이미 우리는 승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로 사단이 완전히 박멸되어서 온천한 만국이 사탄 free zone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뉴스만 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는 내 속사람 안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싶은 또 다른 자아가 있음을 그것이 한상 내안에 충돌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는 이미 확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상태가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에게 사단을 대적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사단이 머리가 부서진 채로 역사하고 있지만, 이제 그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그 사단의 권세를 대적하고 무찌를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이젠 써야 하는 거예요. 더 이상 사단이 내 삶속에서 역사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무찌를 수 있는, 압도할 수 있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 권세를 가지고 이 천하만국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고 있는 이 마귀와 이제는 우리가 싸워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싸우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싸우지 않으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너무 밉지 않으세요? 우리의 자녀들을 그렇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음란에 무릎을 꿇게하고 이 세상의 헛된 철학과 속임수에 빠져서 이 진리를 떠나게 만드는 마귀의 역사가 너무 믿지 않으세요? 그것이 그렇게 미우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권세를 가지고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산지가 무엇입니까? 그 산지 앞에 여러분은 어떤 도전을 해 보셨습니까? 아무 도전도 안 해 보셨습니까?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해 보지 않겠습니까? LA에서 여객기가 떠서 태평양을 건너 열 몇 시간 만에 서울로 온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객기가 열 몇 시간 동안 날면서 지정된 항로대로 나는 경우는 전체 10%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항로를 벗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항로를 벗어났다가 제자리에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목표에서 벗어나고, 실패하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계속 그 목표를 향해 믿음으로 도전하면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목표가 희미해서는 뜨거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도전하고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목표를 분명히 정하면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십시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주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사실은 실패해도 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이렇게 청년 여러분과 또 우리 성도들이 우리가 달려가야 될 길, 우리가 손에 넣어야 할 산지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달려가면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목표, 곧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뜁시다. 또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얻어야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열심히 도전합시다. 그래서 아말렉이 있는 산지를 우리의 소유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