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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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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8 살리셨도다!! (엡2: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7-08 | 조회: 884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숙제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기독교단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20퍼센트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산다고 합니다. 10명 중 2명만 신앙생활의 감격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8명은 교회는 다니지만, 그저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단체는 발표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생활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진정 신앙의 감격이 있습니까?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감사가 있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하면 내 영이 열리고, 억지로 하거나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미음으로 찬양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미 1장에서 우리에게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라고 권면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이 지어지기도 전에 아들 삼기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뱃속에서 지음을 받기도 전에 하나님이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고 고난당하시며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인을 치셨습니다. “너는 나의 기업이야!"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보증금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증거로 성령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하나님의 복을 받고서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찬양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제가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여기서의 앎이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앎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하나님 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 이 얼마나 큰 가를 생활 속에서 체험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울러 바울은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신앙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신앙의 감격을 회복하려면 우리의 처지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2:1-7절까지의 말씀은 크게 두 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3, 두 번째 문단은 4-7절입니다. 먼저 1-3절에서는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렸는가? 왜 감사가 넘쳐나지 않는가? 왜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가? 바울은 구원받기 이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상태였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에 우리가 처했던 그 절망적인 상황을 마치 입체적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도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받기 전의 내 환경이 얼마나 암담했던가를 하나님 앞에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체험 가운데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 자원봉사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8월의 하늘은 그 당시 불을 토해내는 것 같은 더위 속에 잠시 휴식을 갖게 되었고 우리 일행은 삼옥 2리라는 곳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참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남자 학생들이 강을 다 건너는 것입니다. 나는 별로 수영 체질이 아닌데 다 가고 나 하고 몇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학생들이 수영하는 남자들을 격려하고 야단입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물갈퀴를 가지고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든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강을 중간 쯤 가다가 두려움이 온 것입니다. 몸이 굳기 시작하더니 강 한 복판에서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저의 친구 전도사 한분이 나를 보고 튜브를 가지고 헤엄을 쳐서 나를 건진 것입니다. 창피도 하고 미안도 했는데 그 당시 저를 건져준 친구에게 큰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영월을 가서 그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얼마나 끔직한 지 모릅니다. 당시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씻벌건 황토물이 되어서 소용돌이를 치며 내려가는 그 광경을 본 순간 가슴이 메어지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질 당시는 잘 몰랐는데 범람하는 물줄기가 급류를 타고 내려오는데 만약 그 때 내가 거기서 죽었다면 하는 생각에 미처 깨닫지 못한 죄송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건져준 친구에게 지금도 고마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디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전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이제 예수 믿고 영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고유의 신학적 표현으로 그 때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1. 그때에

 

본문 1-3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과거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특별히 1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으로 죽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5절에도 허물로 죽은 우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의 진단입니다. 이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을 두 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허물이 무엇입니까? 원문에 허물이라고 하는 말은 밟지 말아야 될 땅을 밟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이 허물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이 허물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 허물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과녁이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화살로 명중시켜야 할 과녁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박혀야 될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얘기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말을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랑해야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땅히 기도해야될 때에 기도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 주변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 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친절을 베풀어야 되는데 친절을 베풀지 못했고, 헌신해야 될 시간에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얘기합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의 세 가지 특징을 2-3절에서부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 보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의 인생은 세 가지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인생의 3가지 영적인 적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가 세상, 둘째가 마귀, 셋째가 육체입니다. 먼저 2절에 보면 세상 풍조에 따르고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의 첫 번째 특징은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잠시 지나갈 가치에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유행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중요합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늘 신경을 씁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꼽으라고 한다면, 제일 먼저 이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입니다. 어떤 차를 탔는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가, 은행에 돈이 얼마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돈이 얼마나 많은가,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이것이 구원받기 이전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그들은 또 지위를 중요시합니다. 어떤 학위가 있는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 박사 학위를 소지했는가, 그래서 돈은 있는데 공부를 못한 사람일수록 학위를 사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절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 종종 사용하신 말씀이 더러운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였습니다. “악한 귀신아, 그에게서 나와라!” 여러분, 우리가 영의 눈을 조금만 뜨고 보면, 이 세상은 영적 전투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살 것인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영적인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이전에는 윤리적으로 남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고 그럴 듯하게 산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 있는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살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특징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여기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사는 삶의 특징은 갈5장에 보면 첫째, 성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명예나 돈에 목숨을 겁니다. 세 번째 특징은 관계적인 면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관계가 깨어지고 파괴되는 역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육체를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분 때문에 불화가 생기고, 목장에 가면 목장이 깨어지고, 교회에 가면 자신으로 인해 다툼이 생긴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육체를 따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거듭나지 않았던 지난날의 모습들입니다. 인간의 마음 전체가 이 타락의 영향아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철저하게 다 타락한 것입니다. 칼빈은 이런 상태를 전적인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의 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풍속을 좇아 마귀의 종이 되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내가 그러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4-5절을 보십시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헬라어 원어로 보면, 이 문장은 첫 단어가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한결같이 ‘But God''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 우리가 전에는 죽었던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다여기 살리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내 신분이 마귀에 속했고 세상 풍속에 젖어 살았습니다. 더 나아가 온통 죄의 오염 덩어리인 타락 속에 살았던 우리가 이제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지난 날, 마귀에 종노릇하던 우리가 세상에 풍속을 ?아 육체의 소욕에 사로 잡혔던 바로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새 생명으로 신분의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5절과 6절에는 함께라는 단어로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다. 그리스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과거를 깨끗이 지워버렸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육체의 소욕이나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삽니다. 우리 정신과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엄청난 기쁨이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누릴 수 없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를 범했을 때. 제일 먼저 고백이 나에게 성령을 거두지 마시고 나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달라고 통절하게 회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 기독교인 가운데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 신분의 변화를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요즘 태국에 유소년 축구팀 선수와 코치가 동굴에 갇혀 전 세계가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 지금부터 8년 전에 칠레 산호세 광산의 광부 구조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이 칠레 산호세 광산의 광부 구조 사건한 마디로 이 지구촌에 사랑과 용기와 생명의 보석을 선물한 정말 엄청난 기쁨이 아닙니까? 두 달이 넘는 기간을 33명이 칡 흙처럼 어둡고 32~36도에 이르는 더운 지하온도와 90%가 넘는 습도 속에서 지내야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과 죽음의 그림자가 교차되는 현장에서 얼마나 삶의 애착이 일어나겠습니까? 69일 만에 구출된 마리오 세불베다 광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난 40년간 내 인생을 저 아래에 묻었다. 이제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저는 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 왔습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이 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지난날의 내 모습을 볼 때, 너무나 부끄러워서 입에 담기조차 힘든 모습이 있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는 어두음만이 깔려 있는 그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게 얼마나 버겁겠습니까? 그리고 동시에 살고 싶은 본능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들이 그 굴을 빠져 나왔을 때 첫마디는 이제 다시는 옛날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의 각오 역시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마귀가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놀라운 특권을 가진 자가 바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주님으로 모신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장차 영광의 하늘 보좌에 앉히신 그 소중한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난 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나를, 죄를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도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를, 그리고 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고라도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형편없는 이 한심한 내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냐는 말입니다.

 

 

이 아침,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이미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나 하나를 위해 저주와 고통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실 만큼 결코 예수님이 놓칠 수 없는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오늘도 보혜사가 되신 성령께서 어디로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은혜로 붙잡으시며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말씀하신 가장 소중한 존재가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 안에서, 예수의 공로로, 우리는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분명히 선포하십시다. 죄를 짓고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여러분을 조롱하는 사단을 향하여 선포하십시다. 여러분을 비웃는 세상에 모든 느낌들을 향하여 선포하십시다. 마귀가 너무 밉지 않으세요? 우리의 자녀들을 그렇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음란에 무릎을 꿇게 하고, 이 세상의 헛된 철학과 속임수에 빠져서, 이 진리를 떠나게 만드는 마귀의 역사가 너무 믿지 않으세요? 그것이 그렇게 미우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권세를 가지고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지금 아직도 구원의 그 엄청난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 시간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 하나를 당신의 자녀 삼기 위해 쏟으신 그 사랑은 우리의 입으로 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그 은혜를 바로 알고 그 능력을 의지하고 힘있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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