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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2018-9-2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⑫ (엡4:25-32)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9-02 | 조회: 891

 


 

 

수없이 다양한 문화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문화가 있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가 옷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옷을 통해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입는 옷과 외출할 때 입는 옷이 다르고, 예식장과 장례식장에 갈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는 것은 당연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파격적인 행동입니다. ,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이 우리의 문화요 예의입니다.

 

 

뿐만 아니라 옷은 신분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군인이나 경찰관들은 그들만의 제복을 입습니다. 우리가 일듯이 법관은 법정에서 특수한 옷을 입고, 의사는 병원에서 자기가 의사임을 알리기 위해 흰 기운을 입습니다. 죄수들은 반드시 죄수복을 입어야 합니다. 신분이 바뀌면 입는 옷도 달라집니다. 죄수가 형기를 다 마치고 출옥하면 죄수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습니다. 군인이 2년 동안 군복을 입고 다니다가 제대를 하면 군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습니다.

 

 

본문에서 비울은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옷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귀중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보셨지만,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요점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던 우리를 하나님 이 은혜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 나는 하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분이 바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1. 언어의 변화입니다.

 

. 정직성의 회복입니다. 25절에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새 번역 성경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짓을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예수님은 사탄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사탄의 대명사를 하나로 얘기했어요. '그는 거짓의 아비라' 그는 거짓말에 왕자라는 겁니다. 사탄이 누구냐 하면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제로 사탄이 어떻게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습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그는 거짓말을 통해서 인간을 타락시켰어요. 어떤 거짓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이 말씀을 사탄이 하와에게 가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또한 사탄은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왜 못 먹게 하는 줄 아니? 숨은 동기가 있어.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네가 하나님과 똑같이 될 거야!' 거짓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을 타락시킨 이 사탄은 지금도 동일한 원리와 방법으로 우리를 멸망시킵니다. 오늘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속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파괴하는 것 역시 거짓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온 사회가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 여파로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리도 신용하지 못하고, 기업도 신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2000년 초, 우리 국민들의 고소 고발 건수가 약 60만 건에 달했습니다. 가히 고소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같은 해 일본에서 일어난 고소 고발 건수는 단 12천 건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인구가 우리의 3배인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리의 고소 고발 사건이 일본보다 150배나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고소 고발 사건은 대개 폭행 사건이 주를 이룹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52퍼센트, 60만 건 중에 30만 건 이상이 사기 사건입니다. 더욱이 그 가운데 무고 사건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거짓으로 남을 모함하기 위해 고소를 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국민의 거짓말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본문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비랍니다. 거짓말은 삶의 방편으로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철저하고 엄중하게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4:24)

 

 

거짓이 지배하는 공동체,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 이것은 병든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반드시 도덕적인 위기가 찾아옵니다. 진실을 잃어버리고 양심이 통하지 않는, 신용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 때 그 사회의 복된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기대할 수가 있을까요?

 

 

. 그런데 여러분, 이 분노와 거짓말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십니까? 26-27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물론 이 구절은 서로 다른 구절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과 거짓말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힘께 해석해 보려 합니다. 특별히 분을 품는 것과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동기가 마음속의 분노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회를 품게 될 때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키우면 그를 망칠 기회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때가 오면 교묘한 형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중상 모략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마음에 분을 품지 말리는 것입니다. 분을 품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는 도구로 시용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무슨 말을 하든지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고 은혜가 되는 말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 데이라는 사람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세 개의 문을 통과하라. 첫 번째 문은 사실의 문이다. 그것이 사실인기? 두 번째는 필요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는가? 세 번째는 유익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나와 그 사람과 내 가정과 이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이 세 개의 문을 반드시 통과하라고 말했습니다. 말에는 위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에 대해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3:1-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잠언에서는 혀를 잘 제어하는 사람은 큰 성을 쳐서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12:36-37에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힘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심판 날에 여러 가지 근거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무슨 말을 했든지 어떤 거짓말을 했든지 간에, 그 거짓말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를 엄중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롬 3:13절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쉬지 아니하는 약을 발하나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고,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도다라고 말하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당신의 입에서 독을 뿜는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는 독,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독, 가정을 죽이는 독, 교회를 죽이는 독을 내뿜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하는 그 순간 내 목구멍에서 무덤이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서 언제 탄식하고 근심하십니까? 내가 덕이 되지 않는 말을 할 때, 거짓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부분에서 어느 누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신 이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 이렇게 결심해 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제가 금년에는 입을 열 때 마다 남을 세우는 말만 하겠습니다. 거짓말을 중단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말하겠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옵소서다윗은 시141:3절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내 입술을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나누어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자에게 구제 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 � 하라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의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속의 도시 한 복판에서 교회가 세워졌지만, 그 교회의 구성원 가운데 여전히 자신의 소유를 집착하여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도둑질의 근원을 하나님과의 바르지 못한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그릇 되이 소유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의 주인이심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일확천금을 노릴 필요도 없고 투기에 매달릴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투기와 투자를 고민하는 대신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일상에 성실한 삶을 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눈을 뜨든지 감든지 돈만 보인다면 우리는 이미 탐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탐심은 언제라도 우리를 도둑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공동체가 제대로 세워지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당한 방법에 의하여 정당한 결과를 얻는 것 -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장해 놓으신 창조 질서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심은 때때로 이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며 사람들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유익을 얻는 일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도둑질이라고 합니다. 이 도적질이 인간의 삶 가운데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던지, 하나님께서는 430년 간 애굽에서 노예 살이를 끝나게 하시고 새로운 자유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세워나가시면서 저들에게 허락하신 율법 중의 율법인 십계명에서 제8계명으로 넣으셔야만 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이 도둑질이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아주 무서운 죄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를 망각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도둑이 된다고 말합니다. 3:8을 읽어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이어서 3:10에서 그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책임져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했던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장로)님의 고백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사례입니다. 이분은 본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무허가 약품 제조로 도망 다니면서 양산 통도사 절간에서 범인인 자기를 찾는 신문 기사를 읽고 생전 처음 기도하기를 하나님, 구해 주시면 하나님 믿겠습니다.”고 기도했답니다. 그 후 자수하고 8억 벌과금 처벌을 받은 후 교회 나가기 시작했는데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한 여성도가 이분에게 사장님, 혹시 십일조 하십니까?”고 도전했다고 합니다. 국민으로 세금안내면 국민 자격이 없고 성도로서 십일조 안내면 성도 자격이 없다고 도전하면서 말3:8-10을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김광석 회장님은 하나님, 그러면 꼭 한번만 시험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도둑질 안하고 드릴 터이니 저를 구체적으로 한번만 축복해 주십시오기도 했답니다. 그때 이분이 일 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결단하고 십일조 드린 후 놀랍게도 8억 매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하나님은 이분의 모든 삶의 장에 문자 그대로 하늘 문을 열고 부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습관화해 보십시오. 자녀들에게도 십일조를 가르쳐 보십시오. 물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이미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소유할 모든 것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요한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라는 신학자는 요한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나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구원의 복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들끼리 말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과 세상을 향해 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목적이 바로 복의 근원(=복의 통로)이 되게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면 무엇을 얻을 것이라고가 아니라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 복을 나누는 자가 건강한 신앙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의 웅덩이가 아닙니다. 흘려보내는 축복의 시냇물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이 더욱 풍성하게 축복하십니다. 11:24-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구제하고 나누는데 신기하게 더욱 풍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혈의 공로로 말미임아 새 사람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성경은 거듭 말씀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 영혼의 옷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예복을 입고 결혼식에 왔는데, 당신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작업복을 입고 앉아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모두가 예배드리기 위해 양복을 입고 앉아 있는데, 수영복을 입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성경은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하나님의 어린양 혼인잔치가 열릴 것인데 그 자리에서 옷을 검사하실 거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림을 뽑아내 그를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면 누가 가장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30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성령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떤 말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냐 여기에 메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날은 잊어버리십시오.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과거를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러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진실의 옷, 선한 일을 행하는 옷, 서로 사랑하는 옷을 입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뿐 아니라 우리 동상 교회를 세워나가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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