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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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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3 지금은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 ⑮ (엡 5:15-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09-23 | 조회: 1087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이와 같은 일이 솔로몬에게 일어났습니다.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아버지는 보통 왕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자리를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는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의 음성 앞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사무엘하 3장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있을 때 이미 6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솔로몬이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물론 그 6명 가운데 큰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은 먼저 죽었습니다. 형 둘이 죽었다 해도 솔로몬에게는 최소한 4명의 형이 있었습니다. 4명의 형을 제쳐두고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된다고 하니까 그 4명의 형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아가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비록 아버지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왕궁 내에서도 형들을 제쳐두고 거의 막내 뻘인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왕이 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은 더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심했을 것입니다. 형 아도니아를 죽여가면서 왕위에 올랐기에 백성들로부터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 잘 된 일이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게 여간 심한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부담감은 아버지 다윗으로 인한 부담감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고 백성들에게도 정말 좋은 왕이었고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건 솔로몬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자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급한 처지를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로움 마음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합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혜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데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왜 우리가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그것은 예배시간에 들려주는 말씀을 잘 듣는데서 우리의 삶의 방향이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말씀에서 바울은 지혜를 이야기 합니다. 5: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그렇다면 지혜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15절은 삶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주의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은 아주 귀하게 따로 보관하지 않습니까? 빗자루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결혼반지는 어떻습니까? 반지를 손에 끼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그것을 벗어 놓을 때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지 않습니다. 예쁜 보석함 안에 잘 넣어둡니다. 왜냐하면 아주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귀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막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아주 자세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 보내는 칠팔십 년의 삶 자체보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본문은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지혜롭게 살려면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6절은 간결하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끼라로 번역한 헬라어 엑사고라조는 대가를 지불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시간이란,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나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끼라는 영어성경에 ‘redee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redeem'이라는 단어는 구해내다라는 의미인데, 이 말씀은 우리의 세월과 시간을 구해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헬라어로 때를 의미하는 단어 가운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흘러가는 자연스런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입니다. 그런가하면 그것과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가 하나있는데 그것은 카이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영어로 이 단어가 크라이시스(crsis)로 번역하는데 위기라는 말입니다. “때가 악하다이 때라는 것은 위기의 때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때라는 말입니다. 이는 구원의 긴박성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기에 그 시간들을 놓치지 말고 어떤 희생의 대가를 지불을 해서라도 우리의 것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너무 악해서 우리을 시간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이 세상의 잘못된 것에 우리의 시간을 투자하게 하므로 하나님은 얘들아, 너희의 시간을 구해내거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세월을 구해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90세인지, 100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의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악한 때를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적당히 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주시는 참 지혜를 기진 사람은 세월을 아끼고 구해낼 줄 압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보십시오. 800만의 성도가 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온 땅에 펼쳐 날 갈 수 있는 엄청난 자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합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은 머리 잘린 삼손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당시 에베소 도시에는 당신 인구의 1%가 될까말까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소수지만, 그들의 삶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훗날 이 음란과 쾌락의 상징인 에베소 도시가 이들이 전한 복음으로 무너졌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바울은 여기 에베소에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도시의 복음화에 전력투구합니다. 바울 당시 에베소는 세계적인 무역 도시였으며 인구가 한때 30만에 달하는 곳이었습니다. 로마 당시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신 로마로 불렸습니다. 석주 127개가 동원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테미 신전에서는 매년 5월에 세계의 호사가들을 불러 모으는 아테미 여신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도시의 겉 모습일 뿐 이미 영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버린 도시였습니다.

 

 

여기 머물면서 주의 사역을 펼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16:17-20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보십시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속의 도시가 복음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모든 것들을 가지고 나와 버립니다. 이게 상상이 갑니까? 복음을 들은 자들이 회개합니다. 우상과 음란 서적을 불태웁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에 일어 난 이 놀라운 일을 보십시오. 무엇이 이 오만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교만한 헬라인들로 하여금 두려움 가운데 떨며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예수의 이름을 떨리는 음성으로 찬송하게 만들었습니까? 에베소 사람들로 하여금 평생에 생업처럼 여겨 오던 마술 책을 불사르며 여호와를 노래하게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자복하게 하고 예수를 믿게 만들었습니까? 그들은 세월을 허송하게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사람들로 하여금 허탄한 일을 버리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만들었던 것은 당시 영적인 어두움을 이길 수 있는 에배소에 있는 성도들의 변화된 삶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영적 긴장감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한 생명을 주께로는 표어아래 태신자를 세우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한 사람의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는 밤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하는 영혼의 절규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곳곳에서 부르짖는 영혼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영혼을 결코 살릴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겉은 멀쩡한데 영혼이 병들어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절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일에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7) 여기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신앙생활은 열심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성과 성실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뜻이 저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 어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칭의 문제입니다.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즉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화입니다. 거룩입니다. 6:38-39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하나님의 뜻 - 영혼 구원입니다. 칭의입니다. 예정가운데 당신의 자녀 삼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한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녹취록입니다. 이 영혼을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추적자에 관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을 영혼의 추적자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여러분을 포기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탕자처럼 멀리 떠나 그분을 잊고 방황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셨습니다. 고멜과 같이 세상에 짝하여 방탕할 때도 그분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쾌락에 묻혀 살 때도 그분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죄를 짓고 두려워 숨어있을 때에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 나서셨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가 숨어있는 장소를 몰라서 부르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또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이고 전혀 회개할 마음이 없을 그 때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를 역시 부르셨습니다. "가인아,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하나님의 사랑 이는 한 영혼을 놓칠 수 없는 하나님의 절규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번 택한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집요하게 추적하셔서 기어코 여러분을 주께서 자녀 삼으시지 않으셨니까? 자신이 잘나서 변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구원을 받은 우리를 더욱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살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화의 삶입니다. 세상과 다름을 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4: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구원과 거룩 - 이는 성도의 삶의 여정입니다. 이 거룩 속에는 끊임없는 회개가 동반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쳐서 겸손한 모습으로 낮아지는 자리에까지 가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게 안 되면 때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 책망도 하시고 연단의 자리에 나를 세워 주의 뜻 앞에 서게 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물론 광야의 여정 가운데 그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전갈을 보내기도 하시고, 불뱀을 보내기도 하십니다. 이방 나라의 왕들을 통해 괴롭힘을 당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배후에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우리를 온전하게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 가운데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살전 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그렇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 어떤 위치 않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그것은 바로 상황 앞에 흔들리지 않고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그 분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지금은 내가 나의 이 현실과 처한 환경 앞에 왜 이 어려움이 있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우리 주님은 나의 머리털 하나까지라도 세신바 되신 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작은 신음마저도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가운데도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주변에 불안한 소리가 있고, 지금 여러분 가운데도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의 말씀 앞에 서셔서 흔들림 없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고주의 뜻 앞에 서십시오.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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