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일본에 선교대회에 강사로 초대를 받아서 고베에 있는 로크 수련원에서 컨퍼런스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토요일에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했는데 이 고베에 태풍이 불었습니다. 금요일에 참 잠이 안오더라구요. 한국까지 2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만약 결항이로 하면 주일을 어떻게 섬기나하는 생각에 사실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겨우 날이 안정되어 비행기를 탔는데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여러분,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가면 한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풍을 만난다든지, 또 그만 도중에 나쁜 사람들에게 하이재킹을 당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2시간을 갈 것을 7-8시간 비행기 안에서 온갖 공포와 두려움에 빠질 때, 그 고통을 아십니까? 그런데 불안과 초조 속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겨우 한국 땅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힘 있게 살다가, 멋있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 휩싸여 마귀에게 하이재킹 당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비참하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에 한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면 모두 같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있음에도 신앙생활의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기 힘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시험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날이 갈수록 신앙이 몰라보게 자라나는데. 어떤 사람은 수없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신앙이 자리 잡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말씀을 듣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승리하는 반면, 어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실패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우리는 모두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립니다. 이제 중견 목회자가 되어 신앙이 자라나고 믿음의 삶을 살 때가 되었는데도, 때때로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제 믿음을 성장시켜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 전투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실패와 좌절로 신앙생활을 연명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1.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하면 영적 전쟁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지, 그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베트남 전쟁이 시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산토리라는 종군 기자가 신병들이 전쟁터에 도착한 모습을 책을 통해 자세히 알려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미국인들 대다수는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전쟁에 나가면 위험수당이 붙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무조건 지원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비행기에서 내린 그들은 부대에 도착하여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으려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립니다. 잡담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때 이들이 서 있는 운동장에 트럭이 들어오고, 트럭에서 병사 몇 명이 피범벅이 된 부대 자루를 내립니다. 그중 터져버린 한 개의 지루에서 형체를 알이볼 수 없는 병사의 시체가 튀어나옵니다. 그 순간 연병장에는 정적이 감돕니다. 웃음은 사라지고, 어떤 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떨고, 어떤 신참 병사는 울음을 터뜨리고, 또 다른 이는 갑자기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전쟁에 참여한 신참 병사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시작이었을까요?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충격을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마치 에덴동산에 휴양 니온 기분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어느 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질병과 사업의 어려움, 시고와 고난, 험담과 비방 등 갖가지 문제 가운데 그들은 놀람과 충격을 받으며 현실을 믿기 어려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 믿으면 복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평안과 기쁨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들은 의문과 충격 속에서 그 현장을 바라보며 당황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정의합니까?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즐기는 것인가요? 행복과 평안으로만 이어지는 천국과 같은 생활인기요?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쟁터로 묘사합니다.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쟁터 말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피를 흘리며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하는 전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믿어지십니까?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 “우리의 씨름은”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씨름이라는 단어는 사실’ 전쟁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다름 아닌 전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름 받은 곳은 휴양지가 아니라 전쟁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것을 먼저 알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흐리멍텅하게 하면 마귀는 별로 신경도 안 씁니다. 만약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몇 주가 지나도록 성경한번 안 읽고, 기도한번 안하면 마귀는 춤을 추며 좋아합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좀 은혜를 받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마귀는 안절부절못해 어쩔 줄 모릅니다. 어떻하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할까 하고 온갖 계략을 다 꾸밉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마귀는 온갖 술책을 동원해 훼방을 놓습니다. 그러므로 벧전 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시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무슨 말입니까? 잘 믿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싸움한번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사탄을 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 3: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탄을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잘 보십시오. 이 둘 사이의 전쟁으로 말미임아 인류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말씀 이후 하와의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가인과 아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이 전쟁이 노아 시대에도 일어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죽게 만들었고, 이 전쟁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 속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대적하라! 전신갑주 갑옷을 입으라! 너희의 전쟁을 알아라!',리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인생에서 승리하기 원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생활의 영적 전쟁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바랍니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세계 속에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 우리가 내린 결정 속에 영적 실체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과 이것을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Ⅱ.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하면 적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지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지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는 적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우리가 싸울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가 싸울 대상이 아닌 것을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많이 속기 때문입니다, 싸울 대상이 아닌데 그것과 싸우다가 영적인 전쟁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싸움에서 적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혈과 육'입니다.
그러면 혈과 육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이주 쉽게 말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싸움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과 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성도끼리 다투고, 미워하고 더 나아가 원수 맺는 분쟁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과 싸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속을 썩입니까? 그러나 싸움의 상대는 남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적이 악한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싸웁니까? 왜 가정에서 싸우고, 형제까리 싸우고, 교회 안에서 싸웁니까? 우리가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전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구약에 보면 다윗 왕국이 세워질 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삼상17장에 보면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줄 음식을 가지고 엘라 골짜기로 갑니다. 거기서 다윗은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분노합니다.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고 골리앗을 물리치러 나가겠다고 사울에게 자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용감한 결단을 내린 다윗에게 그의 장형 엘리압은 분노에 찬 질책을 합니다. 삼상17:28절에 보세요.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믿음의 결단을 내린 막내 동생 다윗에게 격려하고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는 화를 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요, 이것이 마귀의 시험인 것입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며,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흥의 조짐이 보이려는 곳에서는 마귀의 극심한 방해가 있을 것임을 예상해야 합니다. 부흥하고자 할 때 방해자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 형제, 내 자매, 내교회 안에 있는 동역자들이 방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고 막았던 것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아닙니까? 그러나 부흥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부당하게 방해하는 사람이 나온다 할지라도 그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방해받는 사람과 시기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대적은 골리앗이지 엘리압이 아닙니다. 엘리압의 공격이 있을 때 이기는 유일한 길은 참는 것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엘리압하고 싸우기를 원합니다. 엘리압하고 싸웠다면 이겨도 문제요, 져도 문제인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엘리압을 이겼다면 도덕적인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형이 잘못했어도 형 때린 동생을 칭찬하는 문화는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졌다면 골리앗과의 싸움에는 나가 보지도 못하고 온 힘을 다 쏟아 부어 탈진 상태가 되어 골리앗과의 싸움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살펴보면 많은 교회가 골리앗과는 싸움도 해보지 못합니다. 밤낮으로 교회 안에 있는 엘리압과의 싸움을 벌이느라고 탈진해 버립니다. 지난 걸프전 당시 지상전에서 숨진 미군 147명중 미군 화기에 의해 숨진 희생자는 무려 35명. 사망자의 4분의 1이 적군이 아닌 아군의 총탄에 죽었습니다. 소위 ‘프랜드리 파이어’라는 용어로 아군 사격(friendly fire)으로 적이 죽는 것이 아니라 아군의 전사가 더 심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골리앗이지 엘리압이 아닙니다. 잘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싸우는가는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적은, 너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고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짜꾸 싸움을 걸어옵니까? 자꾸 회가 나게 만듭니까? 도저히 못 참게 만듭니까? 그러면 그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 사람 뒤에 있는 그 사람을 조종하여 당신에게 다가오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영적인 악한 존재를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우리 싸움의 대상은 바로 그 악한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한마디로 마귀입니다. 이 마귀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를 대적합니다. 이것이 사단이 밤낮으로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했고, 유대안들을 선동하였으며 가롯 유다를 끌어들여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들을 무참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사단은 거짓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했고, 흑암으로 빛을 가렸으며 인간의 마음을 혼미케 만들어 논쟁과 싸움을 하도록 선동하였습니다. 사단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인류를 자기와 함께 멸망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사단은 끝까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렸습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끝까지 방해하는 것이 그의 계략이요, 그의 최대 목표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Ⅲ.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하면 ‘영적인 대비책’을 알아야 합니다. 10-11절에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여기 ‘주 안에서 강건’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강건해져야 한다는 이 말씀을 제가 찾아보니까 현재 수동형으로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주 안에서 자신을 강건케 하거라” 혹은 “주 안에서 너희 강건함을 찾아라”라는 말씀입니다.
강건함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주안에서 한번만이 아니고, 하루만이 아니고, 매 순간, 주 안에서 우리의 강건함을 찾아야만 사탄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가 어떤 고통 가운데 있든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때에도 찾아오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밟고 그 장애물을 건너가도록 우리의 발밑에서 디딤돌이 되어주십니다. 우리의 눈이 가려져 바르게 분별하지 못할 때에도 빛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갈 길을 알게 하시고, 그 길에 밝은 빛을 비춰주심으로 넘어지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단 한번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울 때에도 찾아오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4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여기 전신갑주는 성경이 기록된 당시 로마 병사들이 입었던 갑옷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한 번만 입으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무기도 주지 않은 채 혼자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마귀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완벽한 무기를 우리에게 주시고 전쟁터로 보내신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무기를 날마다 취하는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영적싸움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앙생활을 능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근신하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굳게 하고 사단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게 될 사람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힘 있는 장수인 골리앗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대적하면 그는 절대로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