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라드 다빈치’가 이태리 밀라노에서 그린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중심은 물론 예수님이지만 다빈치는 예수님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을 때 그 순간 모든 제자들의 반응을 자기가 믿는 데로 묘사한 것이 이 그림의 특징인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제자들은 다 제각기 이 감정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내 니이까?"하는 표정들입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이런 다른 표정들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동시에 돈주머니를 꼭 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보다도 물질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여전히 주 앞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보다 더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까?
막14:21절에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았을 사람!! 이것이 주님이 말하시는 가룟 유다의 평가입니다. 예수님께선 그를 향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사람,' 이 얼마나 수치스런 말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12명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지상에서 마지막 성찬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여기서 "괴로웠다"라는 것은 마음이 너무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멀리 떠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고토록 고통스럽게 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변화되지 않은 한 제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성찬식에서 주께서 하시는 이 말은 지난 날 가룟인 유다에게만 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만, 아직도 연약한 자리에 서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오늘 이 성찬식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구약시대에서 구약교회를 대표하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애굽에 노예로 팔아먹은 사람들입니다.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한 사람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성질이 불같은 자들이어서 자기 누이가 세겜에서 강간당했을 때 그들을 속여서 할례를 받게 하고 결국 그들을 다 죽인 사람들입니다. 유다는 상당한 기간 음란한 생활을 했고 며느리를 창녀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후손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모두 교회의 기둥으로는 부적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변화시켰던 하나님께서 그들도 변화시켜서 구약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한없이 부족한 자들이었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보고 택하셨으며, 결국 그 사람들 중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5차례나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다가 그 떡을 받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왜 저를 이처럼 사랑하십니까? 저는 이 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오늘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다가 이처럼 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유다는 버림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다는 속죄를 거부하고 십자가를 거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해 줘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유다의 마음은 뒤틀리고 비뚤어진 채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남의 진실한 사랑을 무감각하게 받아 넘겼습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줘도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친절과 호의를 받을수록 강퍅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후13:5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 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자니라"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시험해 보십시오. 정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계신가?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지 자기 자신에 게 정직하게 한번 물어 보십시다. 만약, 이 질문을 가롯 유다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했더라면 그의 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주님께서는 가롯 유다가 우리 주님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제자로 선택했을까요?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대로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도다" 이런 사람을 왜 제자로 부르셨냐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땅의 교회는 영원히 가롯 유다와 같은 비극적인 인물들이 존재할 것이다. 교회 속에서 가라지는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함께 천국 문에 다다랐을 때, 함께 신앙 생활하는 동료들 가운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뚝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놀라지 말아라. 알이 차지 못한 껍데기 신앙인들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존경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너희들 조금도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이런 분이 있습니까?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이 시간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바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당신을 지배하여 영원히 회개의 문을 닫아 버리기 전에 주님 앞에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30절에 보십시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 유다는 어둠을 향해 달려갑니다. 유다가 어둠 속으로 달려간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안에는 예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도 빛을 배척했습니다. 예수 없는 세계는 암흑이며, 그 결국은 죽음뿐입니다. 유다는 주님을 등지고 나간 지 얼마 안돼서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는 삶을 포기했습니다.(마27:3,행1:18) 실로 그는 예수 없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성례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주님과의 첫사랑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맡겨진 주의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는 다짐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세례와 입교, 그리고 학습을 받는 분들에게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신앙 안에 들어와 성장해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세례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았고 거듭났다는, 구원함을 받았다는 표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약속의 현장이 이 물 세례를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젠 내가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이 고백이 일어는 자리가 오늘 이 자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도 성찬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이 구원은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흘리신 바 그 보배로운 피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내 몸으로 마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가 세상의 양식으로 살아지는 것처럼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을 살겠습니다. 산 떡이신 주님을 인해서 내가 삽니다. 그래서 내가 이 떡을 받습니다." 이런 놀라운 고백을 내 행동으로 하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성례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주님과의 첫사랑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도 부부가 되 살아갈 때, 하나로 마음을 맞추고 사는 게 어디 쉽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요6: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이는 성찬의 회복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내 안에 모시고 살 때 형용키 어려운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내 니이까? 이는 가룟 유다처럼 은혜를 거부하는 자리가 아닌 주의 은혜 앞에 회개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 내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은혜 앞에 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제 이 성찬에 동참한 분들은 한 가지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뗄 때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대할 때, 도대체 내가 누구이길래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터뜨려 나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셨는가 깊이 생각하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은총과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이 생명의 떡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의 식탁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