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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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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승리의 갑옷을 입으라 (엡6:10-1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12-03 | 조회: 863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우리나라의 연예인들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흔히 한류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공항에 나타나면 수천 명씩 팬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도 말입니다. 혹시 방탄 소년단을 아십니까? 누구나 가수이면 한번이라도 자기가 부른 노래가 빌보드 챠트에 100위 안에 오르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빌보드 챠트에 1위로 올랐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팬들을 매료 시키는 그룹이 이 방탄 소년단입니다. 그런데 이 그룹의 이름이 방탄이라는 것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의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으로 10대에서부터 60대들이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내고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팬클럽의 이름을 아미라고 부르는까닭은 아미는 영어로 '군대' 라는 뜻이고, 방탄과 군대는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아미와 방탄소년단이 "영원히 함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아미가 자그만치 1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팬클럽은 누가 방탄 소년단을 건드리기만하면 이 아미들 100만이 벌떼처럼 달려듭니다. 일개 가수들도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 엄청난 인기를 관리하며 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를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오늘도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살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이제 세상 방법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 가는 날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참 승리의 생활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에 한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면 모두 같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있음에도 신앙생활의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기 힘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시험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날이 갈수록 신앙이 몰라보게 자라나는데. 어떤 사람은 수없� � 세월이 지났음에도 신앙이 자리 잡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말씀을 듣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승리하는 반면, 어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실패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우리는 모두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립니다. 이제 중견 목회자가 되어 신앙이 자라나고 믿음의 삶을 살 때가 되었는데도, 때때로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제 믿음을 성장시켜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 전투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실패와 좌절로 신앙생활을 연명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하면 영적 전쟁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여기 우리의 씨름은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씨름이라는 단어는 사실전쟁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다름 아닌 전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름 받은 곳은 휴양지가 아니라 전쟁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것을 먼저 알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흐리멍텅하게 하면 마귀는 별로 신경도 안 씁니다. 만약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몇 주가 지나도록 성경한번 안 읽고, 기도한번 안하면 마귀는 춤을 추며 좋아합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좀 은혜를 받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마귀는 안절부절못해 어쩔 줄 모릅니다. 어떻하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할까 하고 온갖 계략을 다 꾸밉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마귀는 온갖 술책을 동원해 훼방을 놓습니다. 그러므로 벧전 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시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무슨 말입니까? 잘 믿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지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지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는 적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우리가 싸울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가 싸울 대상이 아닌 것을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많이 속기 때문입니다, 싸울 대상이 아닌데 그것과 싸우다가 영적인 전쟁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싸움에서 적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혈과 육'입니다.

 

 

그러면 혈과 육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이주 쉽게 말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싸움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과 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성도끼리 다투고, 미워하고 더 나아가 원수 맺는 분쟁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과 싸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속을 썩입니까? 그러나 싸움의 상대는 남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적이 악한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싸웁니까? 왜 가정에서 싸우고, 형제까리 싸우고 , 교회 안에서 싸웁니까? 우리가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전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싸움의 대상은 바로 그 악한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한마디로 마귀입니다. 이 마귀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를 대적합니다. 이것이 사단이 밤낮으로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했고, 유대안들을 선동하였으며 가롯 유다를 끌어들여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들을 무참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사단은 거짓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했고, 흑암으로 빛을 가렸으며 인간의 마음을 혼미케 만들어 논쟁과 싸움을 하도록 선동하였습니다. 사단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인류를 자기와 함께 멸망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사단은 끝까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렸습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끝까지 방해하는 것이 그의 계략이요, 그의 최대 목표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원하면 영적인 대비책을 알아야 합니다. 10-11절에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능력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강건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비슷한 단어입니다. 짧은 구절 안에 세 단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능력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습니다. 강력한 힘입니다.

 

 

신자가 능력을 가지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으면, 세상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이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블레셋에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머리는 잘리고, 눈은 뽑히고, 줄에 묶여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능력을 잃으면, 세상에서 재주를 부리며 살게 됩니다. 신자가 능력을 잃어버리면, 대적이 구름떼처럼 달려듭니다. 신자를 대적하는 무리가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악의 무리들은 이 세상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탄이 왜 공격합니까? 우리가 만만해보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4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여기 전신갑주는 성경이 기록된 당시 로마 병사들이 입었던 갑옷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한 번만 입으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무기도 주지 않은 채 혼자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마귀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완벽한 무기를 우리에게 주시고 전쟁터로 보내신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무기를 날마다 취하는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보세요. 인류의 역사는 무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무기를 가졌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 났습니다. 돌로 무기를 삼던 사람들은 철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었고, 검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총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땅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평생 검술을 익히면 뭐합니까? 총 앞에서는 맥을 못춥니다.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무기입니다. 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늠한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을 조금만 열면 지금 우리의 삶은 영적전쟁의 치열한 현장입니다. 사탄이 지금도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뿐이라면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 이 땅에서 형통해야 됩니다. 내가 건강 관리를 잘 하면 병에 걸리지 말이야 합니다. 매시에 조심성이 있으면 사고를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긋나는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오해가 쌓이고, 말을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 외에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무척 강조합니다.

 

 

영적 전투의 현장을 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영적 전투의 현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장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 전투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싸우기는 너무 어려운 전투입니다. 이 싸움은 그저 맨몸으로 나가 싸울 수 있는, 쉽게 승리 할 수 있는 가벼운 전투가 아닙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시실을 이시고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무기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본문을 지세히 보면, 바울은 사탄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몇 가지 무기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여기 14-17절에 소개 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바울은 이 진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던 로마 군병의 군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 당시 로마 군병의 복장을 보면 여섯 가지 중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허리띠, 호심경, 신발, 방패 투구와 검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여섯 개의 복장에 대한 각각의 명령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 신발을 신으라' 하는 명령의 동사는 분사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주동사는 14절 처음에 나오는 서서입니다. 이 동사 다음에 여섯 개의 분사가 나란히 나옵니다. 이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방어용입니다. 5가지인데 허리띠, 호심경, 신발, 방패 투구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공격용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사단이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인생의 불화살을 겨누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상처를 주고 불신으로 상대를 괴롭힙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거짓과 모함으로 진실을 호도합니다.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여기 악한자의 모든 불화살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 악한 자는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인격과 마음을 항해 불화살을 당기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괜히 드는 것이 아닙니다. 힘든 상황이 우리 마음을 반드시 어렵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질병이 있다고 해서 다 낙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 내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까? 환경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자동으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환경 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오는 이유가 환경 때문이 아니리. 사탄의 불화살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이런 생각을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통해 심어 줍니다. 혹시 우울하십니까? 혹시 누군가에게 섭섭하십니까? 누군가 굉장히 밉습니까? 인생이 불행합니까? 당신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십니까? 음욕이나 세속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시달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괜히 일어나는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사탄이 당신의 미음에 불화살을 쏘고 있는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나쁜 생각들을 집어넣고 우리 마음을 향해 불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제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가 마귀를 한 번만 대적하면 그 다음엔 찾아오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계속해서 의심과 낙심이 있고, 계속해서 우리 마음에 섭섭함과 미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귀를 계속해서 매일 매일 매시간 대적하라 좋지 않는 감정이 들 때마다 계속해서 그것들에 대항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까? 그 마음에 대항하기 비랍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잘못된 마음에 대항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좋지 않은 생각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라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해, 용납과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사정없이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인생에 불화살을 겨누고 있는 시대입니다. 약점을 파고 들고, 무언가 엄청난 두려움으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이런 수많은 인생의 불화살을 감내해야만했던 2018년도를 한 달 남긴 이 시점에, 올해의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축구경기는 후반전 끝에 주심의 휘슬이 울릴 때, 결정되듯이, 올해 우리의 삶의 경기는 마지막 시간에 휘슬이 울릴때 그 승패가 결정됩니다.

 

 

지난 11개월이 아무리 힘이 들었다 해도 1231일을 보내는 그날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갑옷을 입고 내 삶의 자리위에 굳건히 서 있는 한, 여러분과 저는 성도의 가치와 품격을 지키며 다시금 승리자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과 기대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더욱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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