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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 희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8:1-10) 송년 예배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8-12-30 | 조회: 1311

희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8:1-10. 송년 예배 2018. 12/30

 

오늘은 12월 마지막 주일, 한 해도 한 주를 남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해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어느 병원에 기억력이 점점 사라져가는 환자가 의사와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시력과 기억력에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둘 중의 하나는 살릴 수 있습니다. 시력을 살리면 기억력을 잃고 기억력을 살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제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력을 택하시겠습니까? 기억력을 택하시겠습니까?” 남자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둘 중 하나를 갖는다면 저는 시력을 택하고 싶습니다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기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환자는 과거를 기억하기 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척 스윈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 네 가지가 있다. 내뱉은 말, 쏜 화살, 지나간 시간, 무시해 버린 기회다그러나 과거는 지나갔지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있습니다. 은혜의 기억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광야로 나오게 했습니다. 거기서 40, 이스라엘은 고난의 광야를 돌아 이제 가나안땅 가까이 왔습니다. 그 지점에서 모세가 설교를 시작합니다. 주제는 회고와 전망입니다. “돌아보고 바라보고”. 지나간 4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올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오늘 우리도 같은 싯점에 서 있습니다. 지나간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년을 바라보고, 이 뜻깊은 시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억했던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 다 이루지 못한 것은 잊으십시오.

지나간 1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많았지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은혜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만 60만이었으니 남녀노소 합쳐서 약 200만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무슨 수로 광야 길을 가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끼씩만 먹었어도 얼마나 많은 음식이 필요했겠습니까? 누가 그 많은 음식을 공급했습니까? 아마 비행기로 음식을 날라야 했다면 매일 수백대의 비행기가 동원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 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누가 인도했겠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이 앞서 행하셨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건너셨습니다. 13:21절에 여호아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광야도 앞서 걸으셨습니다. 23:20절에도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여러분은 지난 1년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앞서 행하셨다고 믿습니까? 나님이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거에 대해 갖는 생각이 있습니다.

먼저 확대해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지나치게 획대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동차 백미러를 보면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당신이 보는 물체는 실제보다 크게 보입니다.” 백미러에 보이는 모습은 실제보다 큽니다. 이것이 우리가 과거를 보는 눈입니다. 또 하나는 미화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무지개빛 언덕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장미꽃 만발한 정원에서 데이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우리에게 현재와 똑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아름다운 것이지 그때가 더 아름다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이 후회입니다. , 왜 그때 내가 그랬지? 내가 좀 참았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겸손해야했는데, 그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품었어야 했는데, 나의 모난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도 만나를 준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이 인생의 참 소망임을 보여 준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맛이 있니, 없니, 고기가 있니, 없니 하지 않았습니까? 모르니까 그랬겠죠? 깨달으니까 후회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쉽게 원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은 일을 만날 때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열심 내었던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았나요?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든지, 가정이 파경에 이르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올 때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파 병원에서 죽음을 생각하셨나요? 오랫동안 기도하던 제목, 아직도 응답이 못 받았나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이유 없이 비난받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사는 광야입니다.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나님이 안계시거나 침묵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그 억울한 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도 겸손히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너머 부활의 영광을 보셨기에 그대로 끌어안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앞서 행하시는 주님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십자가 앞에 내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맡기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면, 회개하며 주의 은혜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13:12이 중요합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곧 생명 나무니라”. 우리의 소망은 항상 우리의 희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광야에 살고 있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우리는 아직 광야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뜻하는 대로 다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마음 상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이면 언젠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2. 받은 고난에 감사하십시오.

지나간 1년을 돌아보며 그래도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받은 고난 때문입니다. 5-6절입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아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여기에 징계말이 나옵니다. 징계고난, 훈련이란 뜻입니다. 광야를 걷는 사람은 반드시 광야의 훈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크게 다섯 가지 훈련을 받습니다. 첫째는 먹고 마시는 훈련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훈련인지. 애굽에서 배불리 먹던 채소와 고기는 먹지 못하고 오직 만나만 먹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었습니다. 취업문제, 직장문제, 사업문제,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겪는 가장 첫 번째 문제입니다.

 

두 번째 훈련은 단조로운 일상의 훈련입니다. 광야의 풍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 걸어도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사람이 견디기 힘든 것중의 하나가 일상의 단조로움입니다.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은 삶은 얼마나 견디기 힘듭니까? 우리도 지난 한 해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세 번째가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0년을 같은 길을 걸었으니 얼마나 부딪치며 살았겠습니까? 상처는 늘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 받습니다. 고슴도치와 비슷합니다. 고슴도치는 가깝게 몸을 지댈수록 서로 찌르지 않습니까?

 

네 번째 광야 훈련은 대적들로부터 오는 훈련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가는 곳마다 공격을 받았습니다. 르비딤에서는 아말렉의 공격을 받고 요르단에서는 에돔족속의 공격을 습니다. 모압에서는 발람의 저주까지 받았습니다. 그 대적자들로 인해 여러번 길이 막혔습니다. 21:4입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땅을 둘러 행하려 하다가 길로 인해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러분도 한 해동안 길로 인해 마음이 상했습니까? 가려는 목적지는 뻔히 보이는 데 대적자, 방해자 때문에 길이 막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대학의 길을 막고 사업의 길을 막고 건강의 길을 막지는 않았습니까?

 

마지막 훈련이 낙심의 훈련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고 하루 하루가 단조롭고 가까운 사람끼리 부딪치고 대적자들이 길을 막으면 영혼은 지치고 소망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생기는 것이 낙심입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할 것은 누가 우리에게 이런 훈련을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이 사십년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네 하나님 여호아입니다. 무슨 훈련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라고도 묻지 마십시오. 해답이 없습니다. 누구냐고 물으셔야 합니다. 누가 이 고난과 훈련을 주셨는가? 네 하나님 여호아께서”. 같은 고난도 누가 주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마귀가 주었다면 대적해야 합니다. 사람이 주었다면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셨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지나간 한 해동안 받은 고난의 종류를 기억하지 마십시오. 분명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중 하나입니다.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고난받을 때 고난을 주시는 분을 바라보지 않고 고난자체를 바라보면 백발백중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가 바라볼 두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 예레미야가 그렇게 했습니다. 3:21-24절에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여호아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고난 자체를 바라보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힘을 얻습니다. 모든 능력의 비결이 여호아의 자비와 긍휼에 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고난이 올 때 바라볼 또 하나의 방향은 입니다. 히브리서가 아주 탁월하게 말했습니다. 6:18,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앞에 있는 소망”. 절망은 뒤에 있고 소망은 앞에 있습니다. 뒤 돌아보면 낙심이고 앞을 바라보면 희망입니다.

 

3. 아직도 희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면서 기억하는 마지막이 있습니다. 희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은 16절입니다.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말씀의 키는 마침내입니다. 마침내가 중요합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당한 모든 고난은 마지막에 축복으로 마쳤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도 고난 그 자체를 위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침내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희망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이 있기 때문에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희망은 우리는 살리고 죽이는 힘입니다. 사람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은 희망입니다. 히브리어로 희망티크바라고 합니다. 이 말은 노끈란 뜻입니다. 이 말은 끈을 꼬다콰바라는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말하고도 비슷합니다. 끈은 많이 꼬아야 단단합니다. 여러 개의 실이 꼬아져서 결합된 것이 노끈입니다. 희망은 노끈을 붙잡는 것입니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할 때 앙망하다, 바라보다티크바입니다. 여호아를 앙망한다는 말은 여호아를 노끈처럼 붙잡는 것입니다. 희망은 붙잡는 것입니다. 희망이 과거를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되지만 잊어버린다고 희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희망은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티크바”, 붙잡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끈질기게 요구하신 삶은 바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여전히 주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삶의 스타일은 바로 주만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 화가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잘 그린 그림은 무엇입니까?” 그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에 그릴 작품이요그는 곧 훌륭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그림에 붙잡히지 않고 미래의 그림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미래는 무엇을 붙잡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안 믿는 사람은 상황을 붙잡고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고 그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희망은 반드시를 붙잡는 믿음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이 반드시붙잡았습니다. 어느날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했습니다. 내년 이 맘때 반드시 네게로 오리라”. 사라는 이 약속을 믿고 이삭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반드시를 믿고 광야를 건넜습니다. 11: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얻으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할찌라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모세를 가나안의 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들을 주시겠다는 반드시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1: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그 결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우리가 붙들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보세요. 광야는 것으로 볼 때,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거기엔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광야지만 이 광야에는 숨겨진 축복들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사막과 황무지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기막힌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비밀은 아무나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 비밀을 알고 볼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광야에서 생수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의 비밀이 있고, 이들을 인도해서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인도하는 율법의 비밀이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좌절하고 절망하는 인생들에게 성막의 비밀은 다시금 그들에게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이 성막 위에 떠오를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들을 보호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의 안내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면 비참해질 수 밖에 없고, 이웃을 보면 원망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보면 구원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광야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 고난을 이 역경을 감사로만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광야에서 얼마든지 생수를 마실 수 있고 얼마든지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광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실 때까지입니다 이 길은 2018년도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에게 2019년도가 시작이 됩니다. 비록 실패가 있고 아픔이 있고, 고통과 슬픔이 있어도 내 시선 하나님을 향해 더 주목하십시다. 이 한해 우리 교우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돌아보면 담임인 제가 제일 부족한 게 많이 있습니다. 혹시 나로 인해 시험이 든 분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또 다시 일어서십시다. 한 해가 지나가지만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직 희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달력에서 2018년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시간에 희망은 계속됩니다. 주의 은혜가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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