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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 다음세대를 준비하라 (딤후1:1- 7)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9-01-13 | 조회: 1121

다음세대를 준비하라



 

한국교회가 위기다!’라는 진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런 진단의 원인분석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외적인 원인입니다. 세속주의 물결이 거세지고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조류가 밀려들면서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내적인 원인입니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능력이 눈에 띠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도도 낮아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원인들 때문에 한국교회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정체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이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침체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인보다 더 심각하고 두려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다음세대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출산율저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출생아수 지표를 보면 실감할 수 있습니다. 1970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출생아가 1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0년에 55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40만을 기록한 뒤로 지금은 30만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니까 50년 만에 1/3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인구가 감소하게 되고, 노동력이 저하되어 국력이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학교학생수를 감소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출산율저하 속도보다 교회학교 학생 수의 감소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입니다. 2007년에서 2016년까지 10년 동안 인구추세 변화를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기간 동안 초등학생수의 감소를 살펴보면 30.2%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교회 출석하는 초등학생 수의 감소는 42.3%나 됩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의 학생수감소보다 교회의 어린이부 학생수감소가 10.2%나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가 침체를 겪고 있는데, 다음세대의 문제는 설상가상으로 한국교회의 쇠퇴를 가속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다음세대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과거와 달리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전도가 잘 안 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학교 내에 불신 가정의 학생들이 25%정도는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10%이내로 줄었습니다. 불신 가정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믿는 가정의 아이들 중에도 교회출석하지 않는 비율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눈이 띠게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청소년시기에 접어들면서는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면 이제 교회출석하지 않는 청년들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최근의 한 통계를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청소년들 가운데 자기가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0%정도 됐습니다. 대부분 모태신앙이거나 믿음의 가정의 청소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회 다니느냐 그리고 예수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4%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가정의 청소년들 가운데서도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답한 청소년들이 1/5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문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다음세대문제입니다.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믿음의 가정의 다음세대가 제대로 신앙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한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로 동성호가 거친 세상을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 안에 승선한 우리 가정이 과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통계가 말해 주듯 우리 교회도 가정 구원이 믿음으로 바로 서지 다음 세대가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 가야할 문제가 바로 믿음의 대잇기입니다. 소극적으로는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믿음의 가정에서 훌륭한 신앙인이 배출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대 잇기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에 디모데가 나옵니다.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참 좋은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디모데를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이 디모데를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4:17)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이라고 할 정도로 깊은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수감된 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그리워하며 목회를 잘하라고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디모데 후서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디모데가 어떤 자이었기에 이렇게 노년에 있는 바울의 마음에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1. 디모데의 가정을 보십시오.

디모데가 좋은 제자로 성숙해간 첫째 배경은 그의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디모데의 경우 그의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이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경은 디모데의 어머니의 경우 믿는 유대 여자요라고 강조한 것을 지나치지 마십시오. 사실상 가정은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나 첫째로 경험하는 학교이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인생의 첫 번째 교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위 학교 교육은 대체로 만 5세가 되어야 시작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때 이미 교육의 80는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인생의 영향은 바로 우리 부모에게서 유래하고 있다면 이런 부모의 가르침이야 말로 오늘의 내 인생의 기초이었음을 확인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교육의 책임을 학교나 교회, 사회에게만 전가하고 가정에서의 일차적 교육의 책임을 기피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링컨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부모를 가졌다면 그는 부자다라고 했습니다. 풀러 신학교에서 가족 사회학을 가르치는 잭 볼스교수라는 분은 오늘날의 모든 가정을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전통적인 가정, 2)현대적인 가정, 그리고 3)성경적인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유형의 가정은 누가 가정의 주인인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의 주인은 부모님이나 남편 등의 가부장적인 권위라고 할수 있다면 현대적인 가정에는 주인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지만 반면에 통제와 학대가 있습니다. 반면 현대적인 가정에는 자유가 있습니다만 무질서와 혼란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적인 가정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가 다스리는 가정의 특성은 질서와 자유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을 깊이 참고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지능지수는 평균106으로 나라로 보면 세계 최고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지능지수는 평균9445위에 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공부합니다. 한국인의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도 가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유대인과 비교해서 영 신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에 불과하지만, 현재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유대인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의 비율은 무려 약 40%정도에 이릅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몇 십 배, 몇 백 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런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우리와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자녀교육법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녀교육법에는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대인들은 자녀의 질문을 절대 무시하지 않으며, 자녀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며 논리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낳고 아이비리그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며,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그 비밀은 하브루타 있습니다. 이는 토론을 자유롭게 하며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토론만하면 마치 상대방을 죽이려는 듯 싸울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토론이 자유로움 속에서도 결국 그 토론의 정점은 크게 4가지로 나눕니다.

 

1.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다/2.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3. 그 말씀을 순종하라/4. 다음세대에게 가르치라 이런 삶을 바탕으로 하여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앞에 하나님 주신 꿈을 갖고 살기 때문입니다. 꿈은 그 사람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꿈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꿈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꿈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일 중요한 것은 환경이나 삶의 조건이 아니라 꿈입니다. 꿈의 크기만큼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기 위한 꿈입니다. 비전을 품고 사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분명한 삶의 기준과 푯대를 가지고 삽니다. 어떤 유혹과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이뤄질 때 까지 계속 달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꿈의 힘입니다. 비저너리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교회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사는 비전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연말 TvN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분을 이시대의 성자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분은 평양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다 6.25때 월남해서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복음병원과 청십자 병원을 세워 피난민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왔습니다. 이분은 고전 13장을 유독 좋아하며, 이 말씀 따라 의술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분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분이 신앙의 명문가문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후손들이 4대째 의사로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손자인 장여구 교수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매일아침 가정예배를 드리며 비전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어느덧 할아버지의 비전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그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런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믿음의 명문가문의 비전, 자손들 가운데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들이 세워지는 그런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2. 다음 세대를 위해 신앙의 양육을 하자

우리가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려면 다음으로 신앙의 양육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 자손에 대한 축복입니다.

27장을 보면 이삭이 나이 들어 세상 떠나기 전 아들 야곱을 축복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7:27-30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에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그리고 이 축복 이후 야곱의 삶은 이 축복대로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요? 물론 우선은 하나님께서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것은 창 48-49장을 보면 야곱도 세상 떠나기 전에 자기 자식들을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열두 아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축복 그대로 야곱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이 지파를 이루며 살았는데, 그 축복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 자손들을 축복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6:6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실제로 유대인들은 이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 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하나가 안식일 식탁이라고도 하는 밥상머리교육입니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눕니다. 가족이 함께 준비한 식탁에 둘러 앉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축복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이 돼서 모임을 이끌며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눕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고, 때로는 가정이나 사회적인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합니다.

 

다른 하나가 베드스토리(bed story)라고도 하는 베갯머리교육입니다. 엄마가 아이가 잠들기 전 30분 동안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많은 경우 성경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는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꿈나라로 갑니다. 이 밥상머리교육과 베갯머리교육이 유대인들을 수천 년 동안 신앙을 이어오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고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민족이 되게 해왔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신앙 대잇기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면 그것으로 신앙교육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교회학교가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다 책임질 수 있을까요? 최근 교회학교 문제를 지적하는 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1/168’입니다. 교회학교는 아이들의 한 주간 168시간 중에 단 1시간만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고작 이 1시간으로 아이들의 신앙양육을 책임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부모들이 나서야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교회학교는 이것을 도와줄 뿐입니다. 우선 가정예배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온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신앙양육의 출발점입니다. 1주일에 한 번, 가능한 집은 두 번, 세 번, 더 나아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과 위기는 바로 여러분의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보십시오. 신앙의 대가 끊기지 않았나요?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금년부터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정 신앙양육을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 신앙양육을 위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밥상머리교육과 베갯머리교육 훈련프로그램도 계속해 갈 것입니다. 또한 교회학교와 가정의 연계 프로그램도 시작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우리교회 표어가 세상을 향한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로서 시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교회의 모든 가정에서 믿음의 대가 이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우선 믿음의 대를 잇는 비전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신앙양육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예배를 드리시고, 교회와 연계된 가정신앙교육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 지역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겅한 신앙인들이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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