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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2025 2024~2009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6-8, 21-22) 2009. 12. 27주일예배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09-12-29 | 조회: 2045
몇 해 전에 동해안에 절벽을 끼고 있는 한 조용한 기도원에 머물던 때의 일입니다. 기도원 앞에 펼쳐진 바다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한번은 먼 바다를 보는데 멀리 배 한척이 움직이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한참 바다를 가르면서 열심히 달리는데, 배 뒤쪽에서 하얀 거품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 거품이 마치 굵은 선을 그리듯 바다에 긴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데 잠시 후 하얀 거품이 그려놓은 흔적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제 배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잔잔한 바다가 되고 맙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인생이 바로 저런 것이로구나!” 한참 열심히 달리듯 살아갈 때는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잠시 후에 보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덧 송년주일입니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훌쩍 지나갔습니다. 마치 배가 열심히 달리면서 내뿜은 거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한 해가 지나가는 건 아닙니까?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입니다. 냉정하게 한해를 살아오면서 지난 인생을 반성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의 흔적을 남겼는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모습은 그 어느 때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정황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 머지않아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본문 9절을 통해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그리고 21절의 ‘겨울 전에’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 말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겨울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 전체를 읽어보면 바울이 단순히 자연의 겨울을 뜻하는 의미만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관제,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라는 이 세 단어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깊은 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이제 인생의 결산의 시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울의 삶 속을 거쳐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데마, 마가, 알렉산더의 세 사람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여기에 나오는 그레스게와 디도는 신실한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일 때문에 부득이 바울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데마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바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해서 자기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던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 사도 바울과 함께 온갖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던 사람이 그만 타락해서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옛 생활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때는 자신의 동역자로 바울과 함께 하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잘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래 계속되니까, 참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한 채 자기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데마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마음속에는 데마를 향한 연민의 정이 있습니다. 데마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11절에 마가가 나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함께 했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별로 고생을 안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선교여행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환난이 많았을 것입니다. 핍박도 있었습니다. 결국 마가는 중도에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와버렸습니다. 그 뒤에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가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언지하에 딱 잘라서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졌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선교 여행을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텐데, 그 때 마가의 아팠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를 불러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가야, 그 때 힘들었지? 마음이 아팠지? 섭섭했지? 그 때 내가 좀 심했을거야. 미안하다!" 그러면서 마가를 불러 위로하고 난 뒤 바울은 하나님에게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잘못은 어디까지나 마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본문 14절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라고 말씀합니다. 구리 장색이란 옛날에 구리로 우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바울을 심히 괴롭혔습니다. 바울에게는 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아주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희에게 갚으시리니" 하며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너희도 저희를 주의 하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는 관계의 삶을 정리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한해의 겨울, 인생의 겨울, 역사의 겨울이 다가와 오고 있는데 아직도 남을 비판하고 내 모든 운명의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원망을 해야 합니까? 결코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환경을 탓하지 맙시다.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도 맙시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보고 감사하는 기회를 가져 봅시다. 내가 불평하는 그 사람들과 입장을 한번만 바꿔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장에게 불평했습니까? 내가 사장이라면 나 같은 사람 쓰고 싶을까? 감사하자! 내가 남편이라면 나 같은 아내로 만족할까? 감사하자! 내가 부모라면 나 같은 자식 두고 행복해 하실까? 부모님께 감사하자!내가 며느리라면 나 같은 시어머니를 좋아할까? 그래 감사하자! 현재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뿐입니다. 살아온 인생 후회하지 마십시오. 그 아픔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내 영이 깨끗해졌습니다. 원한을 품고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버리십시오. 모두 - 겨울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나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이제는 남의 허물 속에서 나를 보십시다. 시비 걸려고 하지 말고 허물을 남에게 묻지 마십시오. 자식이나 남편에게 잘못이 있어도 내 탓이라고 하십시오. 실수는 그가 했지만 원인은 내게 있는 것을. 지난 한해 동안 내가 겪은 일, 내가 만난 사람, 내 경험한 사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셨습니까? 언제나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요 반응입니다. 역사상 위대했던 인물들은 모두 부정적 환경을 긍정적으로 대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데마와 같이 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가처럼 화목하지 못하고 우리가 사과해야 될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또 알렉산더처럼 우리에게 많은 해를 입힌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떠한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까? 신앙이라는 이름 한 가지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마음에 못질을 한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바울처럼 너그러운 마음과 사랑의 온정을 가지고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용서해야 될 사람은 용서해 주십시다. 그리고 사과해야 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신앙의 담력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바울처럼 겨울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아름다운 마지막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13절 말씀 아들 디모데에게 얘기합니다. “네가 올 때 내가 드로아 가보에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책은 특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 인생의 문턱을 습기 차고 칙칙한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사도바울은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겨울을 나기 위해 외투 한 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구약성경은 양가죽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거웠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회당에 두고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의 말씀을 별도로 두었습니다. 선교여행으로 정착할 수 없었던 바울은 어느 집에 맡겨두어야만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와 모든 것은 떠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졌을 때에도 힘과 용기 그리고 소망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의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한 20년 전만 해도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 교포들은 성경 말씀을 손에 쥐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 빼앗겼고 또 만약 쥐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가정적으로 엄청난 재난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공공연히 다닐 수 없고, 또 그 말씀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성경을 숨기고 있다가 수백명이 처형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성경은 하늘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책으로 된 하나의 인쇄물과 같이 보이지만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눈으로 보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 가운데서 최고의 것은 성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성경을 우리가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경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누구한테 들어야 됩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발견합니까? 그분을 어떻게 만납니까? 그분의 은혜를 어떻게 우리가 소유할 수 있습니까? 성경이 있기에 그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것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알고 그 말씀 붙들고 우리가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러나 죄인이기 때문에 용서 받아야 되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또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 지를 배워야 되지 않습니까? 말씀을 우리가 읽고 묵상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성경이요, 이제 예수 믿고 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는 진리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이 두가지 이유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입니다.

지난번에 오신 전광 목사님이 성경을 사랑한 사람들의 축복을 우리가 듣지 않았습니까? 링컨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주신 작은 성경책 한권을 평생 품에 안고 살았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취임할 때 그 성경책 위에 손을 얻고 취임을 했다고 합니다. 백화점 왕이라는 와나 메이커는 14살 때 점원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31세 때인 1869년에 가장 큰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분이 성공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재산이 모두 200억 달러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은 내가 11세 때 시골에서 살 때 돈이 없어 2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이 성경책입니다, 그때 돈이 없어 할부로 구입한 이 책이 나에게 가장 귀한 재산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책이 오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인생의 겨울에 서서도 말씀과 함께 했습니다. 소망의 나라로 인도하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자기 삶을 아름답게 살았노라고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오늘 내 고백이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십시오. 그리고 그에 따라 삶을 다시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에 준비하는 사람은 인생의 겨울을 춥게 지내지 않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결산을 위해 말씀으로 준비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셋째로 우리는 한 해의 마무리를 할 때마다 또 새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그러나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1월 30일을 기해서 북한은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12/6일까지 다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무역과 장사를 통해서 많은 돈을 모은 자본가들의 목줄을 죄기 위해 화폐를 개혁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중국과 공공연한 밀무역을 통해서 그리고 장마당을 통해서 자율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 동안 인민들이 굶어죽는 것을 막아주는 젖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일인당 가구당 15만원 밖에 새 화폐 교환을 해 주지 않아 그동안 모아놓은 모든 돈이 졸지에 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노동자의 평균월급이 2000원인 점을 참고하면 15만원은 제법 큰 돈 같지만 쌀 1kg에 900원인 것을 참고하면 15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화폐 개혁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환해주는 화폐의 금액을 정해 놓았다는데 있습니다. 15만원이상 가진 모든 부자는 졸지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뼈빠지게 노력해서 번 돈이 모두 휴지조각이라니 아마도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할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돈으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이웃에게도 몹쓸 짓 하지 말고 많이 베풀면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장사할 때도 그렇게 야박하게 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좀 베풀면서 장사했더라면 본인도 이웃도 훨씬 더 행복했을 것입니다.

가정생활에도 겨울이 옵니다. 또 부부가 20년 30년 함께 살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귀한 줄을 모릅니다.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맛있는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지요. 아내도 으레 저녁이 되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이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저녁에 돌아와야 할 남편이 없어 쓸쓸한 벽이 당신을 반기는 날이 옵니다. 서로 귀한 줄 알고 서로 아끼고 서로 속썩이지 말고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십시다. 예배에도 겨울이 옵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예배를 그리워 할 날이 옵니다.교회에서도 주일 봉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목장을 섬기고 심방을 하고 찬양대에서 찬양하던 그 일에도 겨울이 옵니다. 찬양대도 보면 나이드신 권사님, 장로님들이 옛날 생각하고 찬양대에 앉아 보는데 자꾸 음이 플렛이 되고 샵이 됩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집니다. 그땐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입니다. 더 늙기 전에 열심히 하세요. 우리 인생은 일방통행입니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겨울이 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21절을 유심히 살펴보면 겨울 전에 오되 "너는 어서 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몰라도 너만은 어서 오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너만은, 너라도 겨울 전에 와야 합니다. 디모데만이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바울을 만나야 했습니다. 겨울이 옵니다. 사역도 생명도 끝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네게 준 시간, 건강, 재능, 물질을 나를 위해 사용하다가 왔느냐?”라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당신은주님이 주신 것들을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무엇을 위해 쓰고 계십니까?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복음전도를 위해서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 겨울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하려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짧은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땅에 좋은 것을 남기고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랑과 덕, 인자함을 남겨야 하며, 좋은 발자취를 남기고 가야합니다. 이젠 용서합시다. 이젠 말씀 앞에 가까이 섭시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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