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 2019. 1/22. 주일 설교
록펠러라는 사람은 미국의 전설적인 부자입니다.당시 그의 재산을 오늘의 가치로 환산해 보면, 현재 최고의 부자라 할 수 있는 빌게이츠보다 세배나 많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철저한 신앙생활 덕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라는 책을 보면 록펠러가 실천한 철저한 신앙생활은 세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철저한 성수주일,그리고 담임목사에 대한 충성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볼 때 이 사람은 ‘좋은 교인’(good churchman)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록펠러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잔혹한 독점 자본가’의 모습입니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책을 보면 록펠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1870년대 스탠더드석유회사를 창설해 입법부를 매수하고, 철도업자들과의 비밀거래로 운임할인을 받고, 뇌물과 사보타지 공세를 펴 경쟁사들을 무력화시킨 끝에, 정유업 물동량의 90~98%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거대기업의 독점은 결과적으로 가격의 인위적 상승, 경쟁의 차단, 그리고 임금의 형편없는 저하를 초래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고 스탠더드석유회사는 미국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이 되었다.” 교회 밖에서 볼 때 이 사람은 ‘나쁜 기업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록펠러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좋은 교인이었고, 교회 밖에서는 나쁜 사업가였던 것입니다. 과연 이 사람을 ‘좋은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주변에 록펠러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문제를 일으켜서 매스컴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의 이중성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가운데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교회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만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왜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처럼 일터에서도 인정받으며 일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일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들뿐 아니라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에 대해 같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를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과 직접 관계된 일이 주의 일이고,하나님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이 세상일이라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목회, 선교, 그리고 교회 봉사 같은 것은 주의 일이고, 직업이나 세상에서 하는 일들은 세상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일에 대한 가치에 차이가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의 일은 귀하지만, 세상일은 그다지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은 열심히 돈 벌어서 주의 일에 기여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을까요? 골 3:23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말씀에서 주의 일과 세상일의 구분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께 하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 15절에 보면 “구원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을 합니다. 따라 하죠? ‘당신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저는 향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만,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향수가 사넬이고, 사넬 중에서도 넘버 5가 세계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클래식한 향수라고 합니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30초에 한 병에 팔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향수입니다. 사넬 넘버 5가 그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향수를 만드는데 재스민, 장미, 바이올렛 등 약 83가지의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향수 25g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장미 꽃잎의 양이 무려 45kg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장미가 들어가 농축되고 농축되어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향수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향수의 향기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재료에 정성과 노력이 합해져서 사랑받는 향수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그 향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상 속에서 향기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그만큼 신앙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른 신앙의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향기가 나도록 절제하고 노력해야 말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우리의 삶과 인격에서 곧바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격을 내 삶에 녹이고 녹여 내 삶에 농축액으로 가득 채워질 때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우리를 향하여 “구원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우리가 지닌 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똑 같은 향기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으로 이끄는 향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이 향기는 사사건건 그들의 잘못을 들추어내기 때문에 괴롭게 하는 냄새이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냄새인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어떤 사업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번은 이렇게 제게 말하였습니다. 종교란 우리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는 주는 것이 근본일 텐데, ‘왜 기독교는 하지 말라는 것이 그렇게도 많은가?술도 마시지 말라, 담배도 피우지 말라. 이런 것도 하지 말라, 저런 것도 하지 말라… 왜 이 어려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복을 주고 위로를 주지 않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가?’ 그리고는 불교는 그런 면에서 괜찮은 종교라고 그럽니다. 불교는 언제나 극락을 말해주고, 불공과 시주만 하면 항상 마음 편하게 해 주니까 말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분명 우리 인간을 때로는 괴롭게 만듭니다.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향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우리로 부정직한 것을 아프게 만들고, 거짓말 한 것을 들추어냅니다. 요즘 끝도 없이 일어나는 ‘me too' 역시 비록 그것이 즐거운 듯 보이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바로 파멸로 이끄는 길임을 들추어냄으로써 그런 일을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고용인이 갑질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삭개오와 세리 마태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동족의 피를 빠는 독충과 같은 존재였지만, 이들이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때, 더 이상 사망의 향기를 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분명 아픔의 냄새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죄악으로 드러나게 하는 고통을 주는 냄새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겐 또한 ‘위로’와 ‘생명’이 되는 냄새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 ― 이 ‘권세의 향기’와 ‘영적인 사랑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질 때, 병자가 완쾌함을 얻고, 굶주린 자가 배부름을 얻으며, 눌린 자가 해방을 받고, 절망하던 자가 소망을 얻게 되며, 심지어는나사로와 같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던 자도 이 냄새를 통하여 생명을 얻어 소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지적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5절에 보면,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바로 ‘우리’라고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에게서 발하여 졌던 그 향기가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서도 발하여 져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우리가 현재 있는 각처에서,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지만, 신앙의 이중성으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 냄새를 발하고 있으십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있으십니까? 그런데, 바로 여기에 또한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냄새를 우리에게서 풍겨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부족한 점이 장점보다도 더 많고 죄지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죄의 냄새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내 속에 향기를 만들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 보면 자신의 아픔을 고백합니다.바로 자신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7장에 보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죄를 행하게 되는도다’고 탄식합니다. 이처럼 자기 하나도 주체 모하는데,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의 몸’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로마에는 다양한 사형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잔인한 사형 방법 중에 하나는 산 사람과 죽은 송장을 함께 묶어서 죽은 시신이 썩어 들어가면서 생기는 병균들이 산 사람의 몸에 옮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면 한 두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사형제도를 연상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사망의 몸, 전혀 희망이 없는 몸, 완전히 사형선고 받은 몸,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 보려해도 자주 습관에 넘어지고, 유혹에 무너지는 그리고 잘 변하지 않는 자신 때문에 얼마나 절망을 합니까? 그런데. 롬7:25절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며 갑자기 일어섭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자신은 더 이상 일어설 것 같지 않았는데,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나의 죄를 사해 주시고 흘리신 그의 보혈로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뿐만 아니라 사명자로 살게 하시는 그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은혜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가 내 인생을 붙잡기 때문에 내 안에 더러워진 냄새를 보혈로 바꾸어 생명을 증거하는 향기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기억나십니까? 지난달 23일 새벽 서울 여의도 KBS공개홀에서 열린 ‘2018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27년 연예인 생활 끝에 그는 시청자들 앞에서 고백합니다.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게 기둥이 돼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멋진 간증이자 넘치는 향기였습니다. 이영자 집사는 정말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인데 그는 도저히 재기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상을 받았을 때, 그의 시선은 사람들이 안 들어 왔습니다. 자기를 한번 택한 주님이 이렇게 우뚝선 자리에 서게 한 것에 대해 공개 방송에서 자신이 받은 상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왔던 신자든 불신자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시청자들은 함께 울먹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주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믿음 없는 내 모습이었습니다. 여기 바울도 자신의 이중성 때문에 괴로워 하다가 벌떡 일어섭니다. 그리고“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바울은 14절에 외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마다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박해와 시련이라고 하는 장애물이 바울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회에도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은혜의 주님을 붙잡고 일어섭니다. 그런 시련과 박해 가운데서 더욱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땅에 펼쳐 나갑니다. 지난 번 성지 가보니까 유대광야 가보면 드넓은 평원에는 백합화들이 만발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백합화 사이사이에는 가시나무들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연약한 줄기의 백합화들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러면 곁에 있는 가시나무의 가시에 연약한 백합화의 줄기가 찔리고, 꽃잎이 찢어집니다. 백합화는 가시에 찢기면서 그 안에 감추고 있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냅니다.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백합화는 더욱 진한 향기를 풍겨냅니다. 고난이 오는데, 상처가 생기는데 더 깊은 향기가 나옵니다. 이 은혜 앞에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기 ‘혼잡하게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쉽게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의 것을 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지식이나 세상의 풍조나 가치관이나 무슨 이해타산이나 그 어떤 것도 희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갓난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50년 동안 그 믿음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럴 때 진실로 ‘예수님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늘에 있는 존재나 땅에 있는 존재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서 생명의 주요, 만왕의 왕이요. 하며 경배 드려야 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분이 우리를 불러서'너는 그리스도의 향기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도망칠 일입니까?흥분하고 너무 감사해서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될 일입니까? 이 놀라운 영광의 하나님, 최고의 권위,최고의 능력, 최고의 거룩, 최고의 비전을 가지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는 자기 무릎 앞에 우리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지 않니. 너무나 거짓되고 음란하고 더러운 이 세상, 내가 이대로 방치할 수가 없어서 이 세상 사람 가운데 할 수 있는 대로 얼마를 구원하려고 한다. 네가 그 일을 도와줘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너를 먼저 구원한 거야. 내 일 좀 해줘. 나를 위해 뛰어 줘야 되겠어. 그래서 내 생명의 피를, 그 생명의 향기를 너의 삶에 부어 준 거야” 이렇게 말씀하는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음성을 들으십니까? 제 귀에는 들리는데 여러분 안 들리십니까? 들릴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한 평생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들립니다. 안 들릴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비전을 우리와 나누시고 자기 일 좀 해달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를 먼저 불렀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우리가 3,40년 세상을 더 산다고 합시다. 그 동안 무엇 하기를 원하시는지 뻔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일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머리를 주셨고, 사회적인 명성을 주셨고, 좋은 재능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건강한 몸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맞습니다.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황송하면서도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이렇게 대단하게 보시고 자기 일을 맡기시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일을 동성교회에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제 당당합시다. 우리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악취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향기나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일제시절 어느 장로님은 신사참배를 주위에서 자꾸 권하자, ‘아, 내게서 향기 대신에 얼마나 더러운 악취가 풍기기에 이처럼 내게 파리 떼가 끓는가?’ 하며, 그래서 더욱 자신의 믿음의 생활을 가다듬고 그 고비를 이겨내었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늘 점검하며 승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한마디 한마디의 말, 행위 하나 하나가 과연 어떤 향기로서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재확인 하십시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이 은혜가 우리 동성의 식구들 안에 가득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