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과 우리의 자세 사 10:12-14, 17-18. 2019. 3/3.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피 끓는 젊은 시절 - 주먹 쥐고 읊어대던 이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 건국 후 많은 혁명, 정권교체 그리고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헌법 전문 첫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이 만큼 3.1운동은 이 나라의 건국정신이 되고 있습니다. 금년은 삼일운동 백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100년 전의 그날을 돌아보며 삼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계도 삼일운동 백주년을 즈음하여 기독교가 삼일 만세운동에 기여한 점을 재조명하며, 다시금 나라 발전에 기독교가 해야 할 역할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삼일운동의 역사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 기독교가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이 땅에 전파된 지가 고작 30여년 밖에 안 된 신생종교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인구 1700여만 명중 기독교인은 고작 22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은 전체 국민들 중1.3% 밖에 안 되는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시위인원의 30%를 차지했고, 체포와 투옥된 사람들 중에 22%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당시 3.1만세운동이 시작되고 난 직후 기독교인들에게 ‘독립단 통고문’이라는 문서가 배포되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①일본인을 모욕하지 말 것. ②돌을 던지거나 주먹을 치는 등의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③매일 기도와 성경묵상을 할 것 매일 3시에 기도하고 주일은 금식하며 월요일 이사야 10장, 화요일 예레미야 12장, 수요일 신명기 28장, 목요일 야고보서 5장, 금요일 이사야 59장, 토요일 로마서 8장을 읽으라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본문은 이 중에서 월요일에 읽었던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당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을까요? 당시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삼일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3.1운동의 100주년을 돌아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당시 왜 사10장을 월요일에 온 기독교인들에게 읽으라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Ⅰ. 그 첫째가 교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여 년 전에는 중동 지역의 대부분을 앗수르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중국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앗수르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앗수르 제국은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 앗수르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통치할 때까지만 해도 비록 영토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의 어느 나라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힘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잘 보이고 싶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성했던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둘로 나눠지고 말았습니다. 북쪽 열 개 지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북이스라엘이고,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남 유다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눠지면서 이스라엘은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은 나라가 세워진 지 200년 만인 주전 721년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은 그 기세를 몰아 남 유다까지 멸망시키기 위해서 남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당시 남 유다는 거대한 앗수르 제국에 맞서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의 침입에 남 유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 뿐입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앗수르를 물리쳐 주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벌하신 이유는 (쉬운 표현으로 말한다면) 앗수르가 너무 건방지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되는 것처럼 오만방자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13-1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여러분, 얼마나 건방진 말입니까? 자신의 힘으로 세상 모든 나라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고 뻐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에도,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능력,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앗수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실제로 앗수르는 얼마 못되어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세상은 자기도취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권력을 손에 쥐면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인 양 권력을 휘드릅니다. 강대국들이 약소국가를 경제적으로 압력을 주면서 압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2,700년 전의 앗수르처럼, 오늘날 강대국들이 약소국에 대해 압력을 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것처럼 자기들의 힘을 가지고 힘없는 사람,힘없는 나라들을 압박합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모습을 보십시오. 요즘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런 고통과 아픔을 가지게 됩니다. 남의 집 가정에 들어온 강도가 안방을 차지하고 이 집은 내 집이라고 외치는 정말 분통이 터지는 일을 일본이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지난 날 이 땅을 찬탈하고 일본 정부는 징용, 징병, 위안부 등으로 끌고 간 사람이 100만명 넘습니다. 지금도 일말의 양심을 버린 채 당시 조선인 희생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몇 해 전부터 미 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분명한 잘못임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법적 책임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치지 않습니 까? 심지어 ‘역사를 왜곡’해서 만든 교과서를 버젓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듯 통분하는 심정입니다. 거기에는 위안부 문제 같은 것은 아예 빼버렸고 대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젠 아예 극우 보수 진영들이 나서서 다케시마 행사를 독려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십니다. 거만한 사람을 반드시 꺾으십니다. 오만에 가득한 권력은 아무리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특별히 자신들이 가진 힘이나 권력을 이용해서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기들의 욕망과 이익을 갈취하는 사람이나 민족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Ⅱ. 지금의 현실 앞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7-19)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1)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저들을 심판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현실이 힘들어도 결코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910년에 한일 늑탈 조약이 맺어졌고 결국 일본은 우리의 영토, 주권, 그리고 우리의 민족 정체성까지도 말살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 때 국내의 민족지도자들 대부분이 ‘독립불능론’에 빠져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까지 파죽지세로 점령해 가고 있던 때라서 이런 일본을 상대로 독립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독립시기상조론’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은 해야겠지만 아직은 우리 힘이 미약하고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때 여운형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독립운동에 앞장 설 수 있었을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대제국 애굽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200여만 명이 참가하여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위키 백과사전은 삼일운동 전모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삼일독립운동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 사랑한 애국애족운동의 정신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들도 일제가 이런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끌려가 매를 맞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투옥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박해를 무릎 쓰고 일제에 저항하여 분연히 일어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대체로 역사학자들은 세 가지를 그 이유로 듭니다.
하나는 폭압적인 신민통치에 대한 반발, 둘은 기독교계의 민족운동 전통, 그리고 셋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객관적인 평가로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런 생각너머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이 있었기에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시 역사자료를 찾아보면서 새삼 놀라운 내용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삼일운동에 당시 기독학생들이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는 당시 이화학당 재학생이었습니다.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일제에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다 결국 19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순교하고 맙니다. 이분이 죽음을 맞기 전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전해집니다. ‘여러분! 조선의 해방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용기를 가지고 다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이제는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일본을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큰 용기와 힘을 주시고 그로써 민족의 평화에 기여하게 하소서 주여 함께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이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도대체 이 젊은 학생들은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이 이렇게 나설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이 말씀처럼 당시 기독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 신앙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을 굳건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 신앙이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국 대한민국은 온 땅에 만세 소리가 메아리치던 그 함성을 뒤로 한 채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27-28일에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렸습니다.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기틀이 놓여지는 중요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합의 도출이 결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주도해야 할 남북의 문제가 우리는 여기에 깊은 관여를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 자기들의 힘으로 비핵화와 평화구축이라는 역사적인 큰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미국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없다면 언제든지 일을 틀어버릴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사업가 출신입니다. 철저하게 사업적 마인드로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한반도를 위해서 희생해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 한국교회가 그리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더욱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중국이나 미국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냐 세상의 힘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을 의지한다고 우리나라가 평화를 되찾는 것도 아니고,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더 친해져야 우리가 살아남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그렇습니다.미국이 아닙니다. 중국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Ⅲ. 이 3.1 운동은 이 땅에 모든 이가 연합하는 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씁쓸한 단어가운데 하나가 바로‘내로남불’이라는 단어입니다. 뭐, 여러분 다 아실 것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 이야기는 상대를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 3.1 운동은 우리 민족역사 가운데 다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바로 연합입니다. 만세운동에 온 겨레가 다 힘을 합해서 참여했던 것입니다.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연합을 위해 모두가 힘을 썼습니다.
해외에서는 우선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유학생들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2.8독립선언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북지역에서 시작하여 서울, 호남, 영남, 강원 등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지역감정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를 이루는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의 모든 정파와 세력들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습니다. 후에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정쟁을 일삼게 되었던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반상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양반후손과 천민후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존여비가 사회 저변에 그 힘으로 작용하던 시기에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안에 남아있던 분열의 요소를 하나로 묶어낸 용광로와 같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남북이 화해무드가 되고 평화정착을 위한 로드맵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드는 여러 가지 혼란을 생각해 보십시다. 정치는 정쟁이 일상화되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 그리고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제로섬게임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인터넷 공간도 온통 분열과 다툼의 전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념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지역갈등 최근에는 남녀 성별사이의 갈등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치열한 전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아니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힘들었을 때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너무나도 풍요로워진 시대에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지 않았습니까? 너무나도 살기 좋은 시대가 되어서 이제는 신앙생활을 목숨 걸고 하는 시대는 지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 취미생활 정도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위대한 신앙의 역사를 오늘 우리가 계승해가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 두려움을 이겨내는 신앙, 그리고 연합하는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적 사명을 앞장서서 잘 감당해 나갈 뿐 아니라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