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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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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한 신앙인의 탄식 (롬 7:14-25)

작성자: 관리자 | 등록일: 2019-08-11 | 조회: 1035

한 신앙인의 탄식 롬 7:14-25. 2019. 8/11.

  

챨스 쉘던이라는 목사님이 한 신앙소설을 썼는데 이것은 미국사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준 책입니다그 내용을 보면 목사님이 설교준비를 하는데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설명하고 우리도 그 길을 걷자는 내용의 메시지였습니다아주 영감있는 설교가 마무리 될 즈음에 사택밖에 갑자기 한 초라한 실직자가 찾아왔습니다그는 목사님에게 자초지경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했지만이 목사님은 짜증이 났습니다설교준비하기고 바쁜데 별 사람이 다와서 설교준비를 방해하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 사람을 문전박대해 돌려보냈습니다그 다음 주일에 목사님은 준비했던 내용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난 후 교회 문 입구에 소란이 일어났습니다한 걸인이 현관 앞에 쓰러져 죽었습니다그 걸인은 다름 아닌 자기가 문전박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현장이 광경 앞에 목사님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엄습했습니다. ‘과연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옳았던 일인가아니면 설교준비를 제쳐놓고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옳았던 일인가?’ 이 일로 고민하던 목사님은 그 때부터 회개하는 심정으로 만약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그는 모든 일을 할 때마다 겸손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이 경우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질문 속에 일을 감당하기 시작했고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에게도 이 질문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호소했습니다이것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생각해 보세요믿는 듯 마는 듯 어영부영 살아갈 때 아무런 갈등도 없고 문제도 생기지 않았는데 내가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과연 이일을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 보셨나요아마 이와같은 주님의 심정으로 살아갈려 할 때 전에 생각지 못한 엄청난 삶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역시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15절을 보면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니라” 룩함을 향한선한 것을 향한 소원함은 내게 있습니다이 소원함은 주님이 내게 주신 새 생명 때문에 그렇습니다주님은 분명히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새로운 성품을 주십니다러나 성령께서 내안에 거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새 생명을 압도하는 거대한 육신의 힘이 있습니다내 안에 존재하는 부패성의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바울은 그것을 죄악의 힘 또는 본문에서 죄악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나를 굴레 씌우고 나를 구속하고 나를 지배하는 죄악의 법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18절에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내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얼마나 기가 막힌 자기모순입니까어떤 면에서 크리스챤으로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지난날 자연인으로 살 때 보다 더 심각하고 더 본질적인 존재의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양심의 갈등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게 오신 후 죄 때문에 겪는 갈등은 양심의 갈등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타락한 양심은 마비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성령님은 마비될 수가 없습니다내가 이 죄를 토할 때까지 포기할 때까지 성령은 내 안에서 탄식하고 신음하며 나로 갈등하게 합니다이 죄는 초대받은 손님이 아닙니다.월세를 내는 하숙자도 아닙니다그는 무단거주자입니다도무지 좇아낼 수 없는 무법자입니다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불청객입니다이죄가 우리 몸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감추고 싶은 자기 안에 갈등과 상처를 드러냅니다. 24절입니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기 보세요왜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합니까? 내 속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는 마음이 있지만 또 다른 하나의 법이 나를 지배하고 나는 그 지배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패배하고 만다그래서 내가 나를 봐도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다도대체 이 사망의 이 순종치 못하는 육신의 소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이 아픔의 탄식입니다.

  

이 탄식의 이유는 25절의 말씀처럼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말씀에는 서로 대조가 되는 두 개의 존재가 나옵니다하나는 마음이고하나는 육신입니다하나는중생 받은 새사람인 우리자신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옛사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키코스고 하는 육신 즉 타락한 이성입니 다그런데 이 두 가지가 내 속에서 갈등하는데 정말 심각합니다이것을 이겨야 할 텐데 마음뿐이지 안 되는 것입니다23절에 보면 자신의 무기력함을 이야기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여기 사로잡는다.’는 말은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이 승리자의 포로가 되어 손과 발이 밧줄로 꽁꽁 묶여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단어입니다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말을 타고 당당하게 앞서서 가는데그 뒤에는 밧줄에 매인 포로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끌려가는 그런 비참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이 죄의 포로가 되어 죄 아래로 끌려가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샤를르 푸코라는 군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수도사가 되었습니다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선교하다가 원주민이 쏜 총에 순교했습니다그분이 쓴 사하라의 불꽃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까그런데도 왜 그리스도인들이현실적인 삶 속에서 성경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을 합니까그 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여러분,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는 만큼 그 사실을 내가 인식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경건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다아무도 없는 빈들에서 죽였습니다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쌓인 가인에게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외하던 다윗은 남의 아내를 데리고 궁중의 밀실에서 통정했습니다치밀어 오르는 욕정 앞에서 다윗은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애굽에 도망갔을 때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가친척을 떠나는 용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객지의 까닭 없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여러분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그분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여러분이 아무리 선교와 봉사 그리고 섬김의 행위를 아름답게 행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 앞에서욕정 앞에서두려움 앞에서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바울의 탄식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불신자의 탄식이 아니지 않습니까지금도 불교계에서 추앙하는 스님이 바로 성철입니다이분은 고행에 도가 튼 사람입니다. 결혼 직 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수행을 했습니다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자신이 머무는 거처에 철조망을 치고 10년 동안이나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답니다16년 동안 쌀가루와 솔잎가루만 먹고살았습니다그리고 8년 동안 눕지 않고 자면서 수행을 했다고 하니 보통이 아닙니다그런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내 일평생 허다한 남녀의 무리들을 속였다.”

  

대단한 말입니다성철 스님은 고승으로서 속세를 떠나 정말 몸부림치는 수도승의 생애를 살았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서 수미산보다 더 높다산채로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가 푸른 산에 걸려 있다." 내 죄가 수미산보다도 더 높다고 했습니다수미산은 불교의 가상의 높은 산입니다한평생을 후회하는 말인데 그 속에는 구원받은 자의 소망이 없습니다쉽게 표현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심각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나 바울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입니다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일평생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어찌 그뿐입니까그의 마음속에그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삶의 목적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그는 늘 그렇게 살았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은 사람이었습니다그런 그가 지금 자신은 이렇게 살았다고 무용담을 이야기해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텐데지금 바울은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로마교인들 앞에서 어쩌면 그들에게 시험될만한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그 부끄러운 부분을 송두리째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오늘의 이 말씀은 바로 우리자신의 이야기가 아닙니까내적 모순과 갈등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아무리 말씀에 해박한 사람이라도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죄의 작업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이상 원하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모순을 보게 됩니다이 때문에 가끔 죄를 짓는 영적 패배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영적 갈등 속에 괴로워합니다보십시오우리는 의인이면서 죄인인 것입니다믿는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의인된 것이 틀림이 없는데 하는 꼴을 보면 죄인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아침!!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탄식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바울이 율법 아래에 있었을 때는 이런 탄식이 없었습니다자신의 노력으로 자기를 강화시키고 의롭게 포장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바빴지자신에 대해 이렇게 탄식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아닙니까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 다 된 존재인 줄 알아요교회 생활에서 항상 남보다 앞서가는 것 같기 때문에 이젠 내가 아니면 뭐든 안될 것 같은 당당함이 있어요이 정도면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이지 않는가아닙니다은혜의 빛 앞에 나오면 란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는 탄식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성 성도 여러분우리는 너나나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야 할 사람들입니다그 능력에 장중에 붙잡혀야 할 사람들입니다내가 가진 지식물질세상의 명예나 힘그것은 나를 세상에서 편리하게 해 줄수는 있지만 나를 한 터럭도 새롭게 할 수가 없어요지금 바울이 탄식하고 절규했던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마냥 머무른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 다가오는 여러 고통과 탄식을 그 패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그러나 여기 25절을 보십시오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롬7장 부분에 가장 극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만약 25절이 없었다면 로마서 7장은 비극의 장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이 7장의 처절한 심음의 고백이 마지막 절에서 그러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본문은 절대로 패배의식이 아닙니다여기 그러나” 하며 갑자기 일어섭니다왜 입니까이 절망 한가운데 견딜 수 없는 나의 무능력 속에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이 나를 사로잡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일어설 수 있습니까여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말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니 갑자기 소망이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십니까보십시오내가 일어설 수 있는 것 바로 그 근거는 예수님의 구원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내가 사망의 몸에서 머물러 있을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분입니다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지닌 분입니다그것을 바라보니까 힘이 생깁니다내속을 바라보니까 소망이 없었는데 성령님의 힘 주심을 바라보니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우리 주님 역시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뭐 자격을 따지지도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희생 제물로 나 죽으신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내가 뭔데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습니다.

  

여러분우리의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눈물을 씻겨주시는 분이 예수님 외에 누가 있습니까우리의 약함과 허물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분이 예수님 외에 누가 있습니까우리가 어떤 죄를 범해도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의의 옷으로 감싸주시는 분이 예수님 외에 누가 있습니까한번 범한 죄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우리를 무장시키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로 새롭게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 외에 누가 있습니까?그러므로 우리는 울다가도 즉각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괴로워하거나 낙심하는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안됩니다재빨리 십자가의 주님그 부활의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볼찌라.

  

사랑하는 여러분우리 주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더욱이 믿음이 흔들리는 절망의 골짜기를 혼자 걸어가라고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믿음으로 의롭다하는 주님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이것이 구원의 근거요성도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승리의 소리입니다이 놀라운 축복이 이 시간 여러분 위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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