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시126:1-6. 2019. 8/18.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 속에서 36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다가 해방된 74번째 맞이하는 광복기념주일입니다. 광복절은 ‘빛을 다시 찾은 날’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이 광복의 기쁨 속에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할텐데, 왠지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무거워져 있습니다. 그간 반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 민족은 많은 경제적 도약과 번영을 일구어 냈지만, 남과 북이 갈라지고 이념적,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극도의 갈등과 긴장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가한 무역 경제보복은 힘든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제 36년사는 우리의 소중한 가치가 다 허물어진 아픔의 세월입니다. 일본은 무력으로 우리의 주권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조정래씨의 소설 중에 아리랑을 보면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160만명, 그리고 징병으로 차출된 사람들이 40만명, 그리고 위안부로 우리의 곱디고운 처녀들이 30만명이 중국으로 동남아로 저들의 성 노리개로 끌려갔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조국의 해방은 점점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많은 문인이 친일한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민족의 밤이 깊고 절망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날’은 아득한 미래였으며 민족의 가슴 속에 있던 염원이었을 뿐입니다. 어둠이 깊어 희망의 노래조차 부를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 이육사나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던 이범석조차도 해방의 그 날은 아득한 미래로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참으로 암담해서 ‘그날’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절망이 짙게 깔린 이 땅에 해방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조국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시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 함석헌 선생은 우리나라 해방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나라 해방은 도둑 같은 해방이었다, 예기치 않았다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이었다. 그리고 이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었다. 어느 누가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해방을 스스로 할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고 그는 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핍박 속에 3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면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 땅에 젊은이들은 총알받이로 성 노예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제물로 이국 만리에서 죽어간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긴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는 말씀은 칠흑과 같은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 1-6절까지 보면 가장 슬픈 단어가 어떤 단어인지 아십니까? 1절과 4절에 나오는 ‘포로’라는 단어입니다. 이 ‘포로...’ 이 한 단어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다는 말이지요. 이룬 모든 것,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말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가고 있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낙담하고 포기하고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짧은 시구에서 그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암담한 삶의 처지를 독자들이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은 너무도 우리와 같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빼앗겨 본 아픔을 가진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땅을 떠나 약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이국땅에서 온갖 치욕과 고난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된 지 70년 만에 그토록 갈망했던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해방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 줍니다.
1-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 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상상도 할 수없는 현실이 그들의 눈에 펼쳐진 것입니다. 해방입니다. 그것도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엄청난 해방을 보면서 1절에 보니까 고향 땅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겨지지 않아서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착각을 했을 것입니다. 서로 꿈인가 생신가 해서 얼굴을 꼬집고 허벅지를 꼬집었을 것입니다! 2절에 보니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웃음'과 '찬양'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남의 나라에서 종노릇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당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이들이 크게 웃고 기쁨의 찬양을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해방도 이와 같았습니다. 일제 시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재일 동포들이 광복이 되어서 고향 땅으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사할린에 강제 징용 갔던 동포들이 고국 땅을 밟았을 때의 감격을 그려보십시오. 그 기쁨과 감격은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너나할 것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웃고 또 웃으며 기쁨의 찬송을 크게 불렀을 것입니다.
2. 그런데 보십시오. 그 해방의 기쁨을 안고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기쁨도 잠시입니다. 고향 땅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예루살렘 도성은 잿더미가 되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의 제사를 드렸던 예루살렘 성전은 형편없이 허물어져버렸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마음대로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 눈앞에 비쳐진 현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가족들이 살던 옛 집 옛 동네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기뻤겠지만 현실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건물들은 다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먹을 것 입을 것 마져 여의치 않을 때 그 좌절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에 왔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무너지고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지 않습니까?
막상 해방을 맞이했지만, 미래를 열어가기도 전에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나라를 되찾은 것도 잠시 전쟁 남겨준 이 민족은 한가지 있는 희망마져 다 사라져간 처절함이 있습니다. 뭔가 나라를 일으키고 싶지만, 1960년대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 국가였던 것입니다. 국가 경제를 재건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3천만 달러의 차관을 빌려와 경제 개발을 하려고 했지만 차관을 보증할 담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내게 된 것이 광부와 간호사였지요. 이들이 독일에서 번 봉급을 담보로 삼아 차관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건너간 광부가 7,968명, 간호사가 1만 2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광부들은 지하 막장 천 미터 이상의 갱도로 내려가서 석탄을 팠습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꽃다운 어인 간호원들이 오지에 들어가 병원의 허드렛일을 하고 또 남들이 꺼려하는 시체를 닦는 그야말로 힘든 일을 했습니다. 정말 악착같이 일해서 고국에 보낸 돈이 그 당시 우리나라 외화 수입의 1/3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된 배경에는 이런 분들의 눈물과 땀이 있었습니다. 낯선 나라에 가서 말도 통하지 않고 인종차별도 있지, 목숨을 걸고 하루 16시간씩 일만 하다 보니 이 분들의 몸이 다 시퍼렇게 피멍이 맺혔습니다.
그러던 차에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식순에 따라 애국가가 시작되자, 고국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가난 때문에 이역만리 지하 수천 미터에서 일하는 새까만 여러분 얼굴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까지 이렇게 못살지만, 후손들에게는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식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식순이 다 끝난 뒤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설움에 목이 멘 광부와 간호사 한 사람 한 사람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70년만에 조국에 왔지만, 그들 눈 앞에 비쳐진 것은 절망 - 그 자체였습니다. 건물들은 다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먹을 것 입을 것 마져 여의치 않을 때 그 좌절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에 왔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무너지고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이에 이와 같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4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운명을 과거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고향 땅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처참하오니 제발 옛날처럼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도 그냥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남방 시내들' 같이 넘치도록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남방 시내'는 이스라엘 헤브론 남쪽의 네겝(Negeb) 시내를 말하는데 중동 사막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기(雨期)를 제외하고는 늘 물 없이 말라있던 시내를 말합니다.
흔히 '와디스'(Wadis)라고 부르는 이 시내들은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강둑이 무너질 정도로 쏜살같이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가 '남방 시내들 같이' 우리를 돌리라는 말은 그 옛날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해주셨던 같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쏜살같이, 그리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자기들을 구원해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3. 그리고 이제 시인은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노래합니다.
5-6절을 보세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현재 엄청난 시련에 봉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미래의 소망인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어서 비참하게 되었지만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이렇게 형편없이 비참하지만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라는 격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무엇보다 오늘의 우리 주변 환경을 보면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4대국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국,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나라 일본, 세계에서 땅이 가장 큰 나라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 건너편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강한나라 미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그 나라들은 언제라도 한반도에 약한 틈이 생기면 자기들의 땅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우리나라는 내부적으로도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간의 이념갈등,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풍랑이 이 한반도를 덮치려 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뇌경색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색이라는 말은 혈관이 혈전 따위로 막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뇌경색이라는 혈관이 꽉 막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경색이 무서운 것은 결정적인 고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정상처럼 보이다가 일단 조짐이 시작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뇌경색 발병과 동시에 쓰러지면서 사망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고, 이를 치료하더라도 평생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막히고 닫힌 사회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곳곳에 경색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 관계, 국내 관계에서 오는 이 문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사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주변 정세는 뇌경색의 심각한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이런 벼랑 끝에 이 민족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탄식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시장 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생겨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의 나락입니다.’
무서운 예언입니다. 보세요. 오늘날 대통령을 위시해서 정치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적 경색에 빠져 있습니다. 오히려 우상이 난무하는 시대 앞에 백성들은 보통 자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색이 얼마나 무서운 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러한 때,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이 당하던 고난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교회와 성도들이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교회와 성도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여 민족의 등불이요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역사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안 됩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가 가진 약함을 주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울며 씨를 뿌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들이 눈물로 기도하면서 온 국민이 하나 되도록 힘쓰면 좋겠습니다. 오늘 광복절 기념 주일에 부디 이 말씀 마음에 새기고 통일을 위해, 세계 복음화를 위해 그래도 울며 씨, 뿌리십시다. 그것이 이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시대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